2004년 4월호

국방개혁, 왜 ‘소걸음’인가

칼자루 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북핵 문제에 ‘올인’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4-03-26 1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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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권은 병력감축과 획기적인 군 구조개편을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국방개혁 방안은 공개된 바도, 추진된 바도 없다. 참여정부의 군 구조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어느 만큼 진행되고 있는가. 3월4일 공개된 안보정책구상의 속뜻을 통해 국방개혁에 대한 청와대의 고민을 짚어본다.
    국방개혁, 왜 ‘소걸음’인가

    지난해 12월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들.

    지난 2월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전략기획실은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노무현 정부의 안보정책구상을 담은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라는 90쪽짜리 소책자의 마지막 편집작업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3월1일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와 함께 소개될 예정이었던 이 책자는 “막판에 몇 가지 사정으로 인해 사흘 뒤 NSC 상임위원회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국방부의 ‘국방백서’의 상위개념에 해당하는 이 문서가 세상에 나오자 모든 언론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는 개념이 없다는 점. 이튿날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주적 개념이 폐기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고 그 의미와 파장을 분석했다. 이에 대해 NSC 관계자들은 “충분히 예상된 논란이지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 않은가. 비판적인 기사도 제목만 크게 뽑았지 내용 자체는 톤이 높지 않았다”고 촌평했다.

    정작 국방부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 특히 국방개혁 문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계획을 담은 부분이었다. 당초 여기에는 군 구조개편과 주한미군 문제, 한미동맹의 재조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일정과 시간표까지 담은 자세한 내용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군 구조개편 부분은 당사자인 국방부 관계자들 입장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3월4일 공개된 문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대부분 삭제된 채 원론적인 부분만이 남아 있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행간을 읽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대목이 있을 것”이라며 “일단 전체적인 기조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NSC는 이 문서를 작성하면서 관계부처의 초안검토 의견을 받았고 이를 참고한 수정안을 작성해 다시 한번 국방부 정책실 관계자들과 협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초안검토 작업에 관여한 국방부 관계자들은 “청와대에 전한 의견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전한다. 관련 내용이 ‘흔들림 없는 안보태세’라는 기조와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과 ‘긴밀한 한미관계’와 관련해 외부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 관계자는 “의견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핵문제 등 안보상황이 불확실한 현 상태에서 구체적인 일정이나 시간표를 명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견해가 많았다. 최종결정은 NSC가 내리는 것이지만 국방부의 의견이 충분히 전달되어 수정판에서는 민감한 내용이 대부분 빠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안보정책구상의 내용에 관심을 집중했던 한 이유는 작성주체가 국방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는 NSC 전략기획실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 문서작성 작업을 책임진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NSC에서 구성한 ‘국방개혁 TF’를 이끌고 있는 인물. 안보정책구상에 반영된 내용은 그대로 국방개혁과 군 구조개편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원칙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민감성’은 관계부처 사이 논란이 됐던 몇 가지 내용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안보정책구상에서 제시된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 ‘자주적 정예군사력의 건설’ ‘군 구조개편과 국방개혁’의 세 가지 과제는 실은 단계별 과제로 설정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즉 1단계로 자주적 정예군사력 건설을 추진하고, 이와 함께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핵 문제 해결 등의 실마리가 풀리면 2단계인 군 구조개편과 국방개혁을 추진하며, 이를 통해 주한미군 재배치가 완료되는 2010년 무렵까지 3단계인 한미동맹 개선을 완료한다는 컨셉트다.

    이러한 틀을 염두에 두고 청와대 관계자의 충고대로 ‘행간’을 읽어보기로 하자. 우선 눈길이 가는 첫 번째 단어는 ‘정예군사력 건설’의 ‘정예’라는 단어다.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공식화한 이후 ‘정예’라는 용어는 처음 등장한 것. 이는 군의 국방비 증가 요구에 대해 청와대가 ‘적정한 규모’라는 선을 그은 것이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지난해 5월 국방부가 주장했던 3.5% 국방비 증액안이 청와대의 진노를 샀던 일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NSC와 국방부 간에 이견이 있었던 쟁점은 안보정책구상 초안에 담겨있던 ‘기본전력’이라는 표현이었다. NSC가 이를 ‘우리 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전력’으로 설정한 반면, 국방부에서는 정찰위성, 3000t급 중잠수함,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 ‘이미 소요제기가 돼 있는 무기를 도입한 상태에서의 전력’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 결국 ‘기본전력’이라는 단어가 ‘현존 주전력’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됨으로써, 일부 군 관계자들은 NSC가 향후 무기도입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제한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쟁점은 남북 군비통제 혹은 상호군축과 군 구조개편을 연결하는 문제였다. 당초 청와대 일각에서는 “남북간에 군사적 신뢰조치가 축적되면 이를 구조적 군비통제로 이어나가고, 이를 우리 군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개선하는 작업과 연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복잡해 보이는 이 말은 간단히 말해 ‘남북 상호합의 하에 병력감축을 추진해 이를 국방개혁의 한 부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방부를 비롯한 안보부처 관계자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축을 이야기하는 것, 특히 그 구체적인 일정까지 공개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안보정책구상에서는 군 구조개편과 남북 군비통제를 연결짓는 어떠한 언급도 포함되지 않았고, 특히 군비통제는 ‘군사적 신뢰구축의 제도적 기반 강화’ 정도가 구체적인 목표로 언급되었을 뿐이다. 대신 병력 문제는 ‘감축’ 대신 ‘단계적 조정’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마지막 쟁점은 한미동맹과 관련된 것이었다. 안보정책구상에 표현된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이라는 표현은 당초 NSC 관계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한미동맹 개선’ 혹은 ‘재조정’이라는 단어를 ‘순화’한 것이다.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의 ‘자주국방’ 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이 맞물리던 시절 잠정적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연합지휘체계는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청와대 내부의 인식이라는 전언이다. 이후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모두 변했으므로 지휘체계가 이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동맹 자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 결론적으로 이는 지휘권 환수 문제를 염두에 둔 개념 정리였지만, 이러한 상황인식 또한 안보정책구상에서는 모두 생략됐고 표현도 방향이 불분명한 ‘미래지향적 발전’으로 추상화됐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청와대가 검토중인 국방개혁의 핵심원칙과 그 구체적인 방향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방부가 요구하고 있는 무기도입사업은 일정부분 선을 긋되, 대신 조직개편을 통해 병력감축 등의 군축작업을 북한의 군축과 연동해 추진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연합작전체계를 수정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는다는 복안으로 정리할 수 있다.

    NSC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는 무수히 검토한 사안이지만 국가공식문건으로 채택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에 섣불리 속내를 공개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당장 군의 의견도 의견이지만 보수진영의 반발과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한 관계자는 “주적 개념이 빠진 것만으로도 말들이 많은데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면 반작용이 어땠겠느냐”고 되물었다. “안보정책구상 발간은 평지풍파를 일으킬 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던 자문위원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제동 걸리는 무기 도입

    그러나 공식화되지 않았을 뿐 주요 방향은 이미 ‘각개격파’ 방식으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최근 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건과 사업들이 ‘눈을 크게 떠야만 보이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특히 이들 사업에 대해 최근 군 일각에서 흘리고 있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먼저 무기도입과 관련된 부분부터 살펴보자. 지난 3월5일 고건 국무총리는 “무기도입을 둘러싼 고질적인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특별대책팀을 구성, 군의 무기획득체계 전면 개편작업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존의 국방부 중심 획득체계를 뜯어 고쳐 시민사회단체 등 민간 전문가들까지 수렴하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것. 국방부의 획득과정을 감시해야 할 기무사령부와 헌병대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재검토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숙원사업’이 대부분 집중되어 있고 그간 군에 의해 전적인 결정이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무기도입분야를 국방부로부터 떼내겠다는 이 구상은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공식적으로 이 특별대책의 책임부서는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지만 관련 핵심지침이 청와대와 NSC로부터 나오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이와 함께 KDX-3(차세대구축함사업)의 이지스 체계, 중형잠수함 사업, SAM-X(차기유도무기) 등 주요 사업도 상당부분 청와대 차원에서 보류 혹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사업은 도입원칙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기종 결정을 미루거나 예산을 다시 검토하는 등의 방식으로 일정을 재조정하고 있다는 것. 안보정책구상이 이제 막 확정되었으니 이를 바탕으로 5월 국방백서를 발간하고, 이에 따라 국방기본계획과 중기계획을 정해 주요 무기도입사업의 일정과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획득체계 전면개편이 완성될 때까지 관련사업추진이 보류될 것이라고 보는 군 관계자들도 있다. 특히 연기가 거론되는 사업 중 상당수가 미국의 MD체계와 연관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무기체계인 만큼 청와대가 이를 최종 재가할 때까지 상당기간 고심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말 그대로 이들 무기체계가 ‘정예 군사력’에 해당하는지, ‘적정 수준’에 포함되는지 그 확인작업이 본격화되었다는 관측이다.

    국방개혁, 왜 ‘소걸음’인가

    지난해 10월1일 열린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조영길 국방장관과 함께 주요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일부 무기도입사업의 지연과 함께 군 관계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용히, 그러나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군 장성들의 비리관련 조사다. 지난해 4월 인사청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육군본부 감찰차감 유모 준장을 필두로 국방회관 운영수익금 관련비리로 구속된 김모 소장, 6월에 터져나온 인천국제공항 외곽경계공사 비리의혹, 이원형 전 국방품질관리소장 등 국방부 산하 연구소 책임자들과 전현직 최고위급 간부들이 줄줄이 연행된 군납비리 사건까지, 비리혐의로 옷을 벗은 장성급 인사만 수십 명에 달하고 있는 것.

    한 국방부 관계자는 “사건별로 추진되고 있어서 그렇지, 모두 합하면 YS의 하나회 숙청 때보다 더 많은 숫자”라며 “무슨 ‘플랜’이 있는 의도적인 인적청산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어쨌든 군 개혁을 위한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 아니냐”고 되물었다. 당장 무기도입체계 개선만 해도 군납비리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특히 군납비리 사건의 경우 국방부 합동조사단이나 검찰이 아닌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수사주체가 되면서 ‘상처 입은 자존심’을 토로하는 군 고위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수사과정에서 군의 생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찰청이 이를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 지난해 연말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요원들이 건설사업 자료를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폭탄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던 군인공제회 관련 비리의혹이 별 결과물 없이 잠잠해진 것도 군 고위관계자들의 ‘불편한 심기’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군 일각의 시각이다.

    국방개혁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병력감축 문제에 대해서도 몇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1월20일 군복무기간 단축에 관해 언급한 부분. 노 대통령은 이날 “(사병의) 복무기간을 2개월 단축했는데 좀더 단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서 “전체 병력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군 당국과 국방부 장관은 시간을 두고 줄여나가겠다고 하는데, 그 속도를 다시 논의하고자 한다”는 부분은 병력감축 계획에 대한 군의 이견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 2월3일 국가보훈처가 국무회의에 보고한 ‘제대군인 취업지원 대책.’ 우선 정부기관 등 공공분야에서 적합한 직종을 확보하고 제대군인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문용역업체 설립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형식상으로는 보훈처의 업무지만 실질적으로는 청와대가 주도해 수천 명 규모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대책은 지난해말 대통령에게 주요사업 가운데 하나로 보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서 설명한 안보정책구상의 군 구조개편 관련부분에 제대군인 취업에 관한 언급이 있었던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주변에서는 ‘장성급에서부터 준사관에 이르기까지 직업 군인들이 안심하고 퇴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병력감축과 구조개편에 대한 저항감을 없애는 ‘사전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간 추진되어온 군 구조개편이 군인들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 전철을 피하고 군심(軍心)을 달래는 멍석깔기라는 것이다. 병력감축에 관한 1월의 대통령 언급 또한 제대군인 취업대책에 대한 대통령 본인의 확신이 바탕이 되어 나왔을 것이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천용택 플랜’ 부활하나

    그러나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 조성’ 혹은 ‘사전정지’ 작업에도 불구하고 정작 군 구조개편을 위한 세부계획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게 NSC와 국방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NSC 국방개혁 TF가 다양한 내용을 꾸준히 검토하고 있지만 군 구조개편에 대한 공식적인 결과물이 나온 적은 없다는 것. 대신 국방개혁 TF는 국민의 정부 시절 추진되었다가 끝내 완성되지 못했던 군 구조개편안을 비중 있게 재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초기 국방개혁추진위원회를 설치하며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이 계획의 핵심은 육군의 1·2·3군 사령부 가운데 전방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1·3군 사령부를 통합해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를 창설하고, 2군 사령부는 후방작전사령부(후작사)로 개편해 예하 군단을 모두 해체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천용택 당시 국방장관의 지론이었던 이 계획은, 육군 항작사와 화방사, 국수사 등 오히려 새로운 사령부를 설치해 육군의 ‘자리’만을 늘린 채 두 차례에 걸쳐 연기(1차는 1999년 12월, 2차는 2000년 12월)되었다가 천 장관이 국가정보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보류됐다. 이후 DJ정부의 때이른 레임덕이 가시화되던 2001년, 군 사령부 통합계획은 ‘한미연합사와의 추가협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완전 백지화되었다.

    최근 청와대가 검토하고 있는 군 구조개편안의 방향 역시 ‘조직도상의 라인 하나를 잘라내기보다는 한 층을 덜어내는’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3군 사령부의 통합과 후방 군단의 해체라는 이른바 ‘천용택 플랜’의 큰 틀이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NSC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3군 사령부의 통합만으로도 육군 대장 한 자리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장성급 수십 명, 영관급 수백 명, 위관 및 준사관은 수천 명, 병사 수만 명 규모의 병력 감축이 가능해진다(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직업군인 감축 숫자는 앞서 설명한 ‘제대군인 취업대책’의 목표인원과 대략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핵 ‘올인’, 자충수 될 수도

    원론적인 총론만 만들어둔 채 전 정부의 청사진을 참고로 사전정지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형국. 정부 출범 1년을 맞도록 국방개혁이 이러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NSC 관계자들은 “우선 북핵문제라는 위기상황 해결에 몰두하느라 이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고, 자칫 섣불리 꺼내 들었다가는 ‘왜 우리만 무장해제를 하느냐’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북 상호군축 합의, 총선에서의 압도적 승리 같은 결정적 계기 없이 대대적인 군 개혁은 어렵다는 인식이다. “북핵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면…”이라는 청와대의 ‘고정 레퍼토리’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이와 함께 군 구조개편의 논리적 지렛대였던 ‘병력 중심의 육군 축소, 해·공군 전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 구조개편안을 추진하려면 대신 앞서 설명한 해·공군 관련 무기체계 도입을 적극 수용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 것. 임동원 전 외교안보수석 같은 강력한 군 출신 안보사령탑이나 천용택 전 장관처럼 ‘대통령과 마음을 나눌 만한’ 군 수뇌가 없다는 점도 분명한 한계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 등으로 청와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국방개혁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잠복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군 일각의 ‘희망 섞인’ 전망이다.

    반면 “국방개혁의 핵심주체 역할을 맡아야 할 NSC가 대통령의 ‘말씀자료’를 작성하고 6자회담 자리배치에 신경 쓰는 등 지나치게 세부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쏟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관련 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전문가는 “북핵문제와 남북군축, 주한미군 재조정에 국방개혁까지 연동하는 큰 그림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NSC의 본래 목적은 그런 중장기 전략을 짜는 것 아니었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북핵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고 남북 군축의 전기가 마련되면 그 근거로 병력감축 등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기본 원칙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무엇보다 북핵문제가 결정적인 전기를 통해 단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것. 오히려 사찰·검증과정에서 새로운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NSC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한 학계 전문가의 말이다.

    “출범 이래 NSC는 한마디로 북핵문제에 ‘올인’한 형국이었다. 모든 과제를 북핵문제 이후로 미뤄놓았다가 이 문제가 쉽사리 풀리지 않으면 군 구조개편 등은 포기하는 것인가. 이러다 북핵문제가 장기화하면 오히려 스스로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NSC는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물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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