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진퇴양난’ 이라크 파병

미군 협조 거부, 임무 불확실, 보급로 불안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4-03-29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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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지금, 우리 군이 ‘평화·재건 지원부대’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는 실현 불가능한 것임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군의 공동주둔 요구와 협조 거부, 현지상황 악화 등으로 인해 부대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
    • 이라크 추가파병,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나.
    ‘진퇴양난’ 이라크 파병
    조금 딱딱하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우선 살펴볼 것은 지난해 12월24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파견 동의안’ 가운데 ‘주요 골자’ 부분이다.

    가. 파견부대 규모는 3000명 이내로 함.나. 임무는 이라크내 일정 책임지역에 대한 평화정착과 재건지원 등을 수행함.다. 파견기간은 2004년 4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로 함.라. 부대의 위치는 미국 또는 다국적군 통합지휘부와 협의하여 이라크 및 주변국가로 하되, 부대안전 및 임무수행의 용이성을 고려함.마. 파견부대는 우리 합동참모의장이 지휘하며, 작전운용은 현지 사령관이 통제함.바. 국군부대의 파견경비는 우리 정부의 부담으로 함.

    국민 여론을 반으로 가르며 진통에 진통을 거듭한 파병동의안은 결국 2월9일 국회 국방위원회 심의를 거쳐 나흘 뒤 본회의를 통과, 확정되었다. 헌법 60조 2항에 따라 국군의 해외파견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 ‘일정 책임지역’을 담당한다는 내용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파견부대가 독자적인 지휘권을 갖는다는 내용 또한 상당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약속은 도대체 어디서, 왜 금가기 시작한 것일까. 과연 정부는 이를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혹은 알고도 숨긴 것일까. 이라크에 파견될 평화재건사단 ‘자이툰’ 부대(사단장 황의돈 소장)는 당초 국민에게 설명했던 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지난해 9월4일 미국의 공식요청 이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의 진실게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로 하자.

    “미군이 키르쿠크 지역을 떠나지 않으려 해 협의가 원만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몇몇 정부 관계자로부터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것은 지난 2월 말이었다. 2월25일 황의돈 사단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방부 현지협조단 14명이 이라크로 출국해 바그다드 소재 연합합동군사령부(CJTF-7)와 키르쿠크 주둔 미군부대, 카타르의 미 중부사령부를 방문하고 파병문제를 최종 조율하는 와중이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3월3일 귀국한 황 사단장의 발표를 기다렸지만, 당초 5일로 예정돼 있던 협의내용 브리핑은 열리지 않았다. 의혹이 증폭되던 3월7일 저녁 ‘한겨레’ 이튿날자 가판신문은 ‘미, 키르쿠크 공동주둔 요구’ 제하 기사를 1면에 실어 ‘한국군 전담지역으로 약속됐던 키르쿠크 지역에 미군 일부부대가 잔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미군과 한국군이 같은 지역에 주둔하게 됨에 따라 자이툰부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이 지역에 대한 작전지휘권도 어느 쪽이 맡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깨진 약속, 흔들리는 지휘권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대변인실이 급히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는 ‘공식적인 요구는 없었지만 실무차원에서 미군 주둔 필요성을 제기한 바는 있다’는 내용. 사실상의 시인이었다. 다음날 김장수 합참 작전본부장은 직접 기자간담회에 나서 “우리의 독자적인 작전 수행에 제한을 받는다면 미군의 어떠한 제의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2월13일 조영길 국방장관은 “일부 조정해야 할 문제가 있어 실무적으로 조정하고 있다”며 파병 연기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미군에 대한 이라크 현지 주민들의 반감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불거진 추가파병 논의과정에서 정부가 미군과는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지휘권과 지역관할권을 갖기로 한 것도, 1차적으로는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침략군’으로 인식되고 있는 미군과 함께 행동할 경우 한국군도 같은 취급을 받아 저항세력의 심각한 테러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의한 것이었다. 소요가 거의 없는 남부 사마와 지역에 주둔하는 일본 자위대의 경우는 연합군 지휘체계 안에 있어도 큰 무리가 없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른 키르쿠크에 주둔할 한국군은 독자지휘권을 가져야 안전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애초 약속과 달리 미군은 지난 2월말 키르쿠크 지역에 주둔중이던 173공정여단을 철수시키고 하와이에 주둔하던 25사단 2여단을 투입했다. 그리고는 같은 시기 사령부를 방문한 우리측 현지협조단에게 앞으로도 비행장 경비 등을 위해 미군 1개 대대 또는 감편된 여단이 이 지역에 계속 주둔하는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더욱이 미군측이 제안한 연락체계도 CJTF-7 예하부대와 같은 형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조율이나 협조체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애초 합의했던 한국군의 독자지휘권 행사와는 거리가 있는 형식이었다는 전언이다.

    아직 최종결론이 난 것은 아니므로 협상의 여지는 있지만 미국측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신동아’가 3월11일 보낸 이메일 질의에 대해 미 국방부 정보공개담당관실측은 “현재로서는 키르쿠크 인근에 주둔해 있는 미군 병력의 이동은 검토된 바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결국 정부가 국회에 보고했던 ‘독자적 지역책임 및 지휘권’이라는 내용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군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서는 미군과 붙어 있으면 안 된다는 원칙엔 국방부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협상이 현재 상태로 흘러간다면 자이툰부대원들은 훨씬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군과 한국군이 각각 작전의 개념이 아예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현지 부족장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일을 풀어나가는 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미군은 무력행사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는 것. 대(對)테러 임무나 저항세력 소탕보다는 민사작전에 주력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는 국방부의 계획은 미군과 같은 지역에 주둔하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보급로가 없다

    그런가 하면 미군과의 협의가 늦어지면서 파견부대에 대한 군수지원 문제도 난항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헬기와 험비 장갑차량 등 당초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주요장비도 확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캐터필러 장갑차와 달리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어 저항세력의 테러로부터 지휘관을 보호하는 데 쓰이는 험비 차량은 모두 60여대를, 공중감시 및 유사시 지원사격에 필수적인 헬기는 20여대를 지원 요청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미군으로부터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보급품 지원경로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일단 자이툰부대가 현지에 도착하면 이후에는 식량과 피복, 탄약 등을 모두 CJTF-7 예하 미군부대의 보급로를 통해 전달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현지사정에 정통한 군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간단하다. 미군은 지금 삐친 상태다. 한국이 과감하게 게릴라 소탕임무를 펼칠 수 있는 부대를 보내주기를 기대했는데, 한참을 기다려서 나타난 부대가 그나마 숫자도 기대에 못 미치고 무장수준도 낮은 것이다. 게다가 미군의 작전지휘는 받지 않겠다면서 석유 같은 이권문제에만 관심이 많으니 섭섭할 수 밖에. 헬기나 장갑차량 같은 장비도 없이 오려면 아예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 현지 주요지휘관의 반응이다. 자이툰 같은 민사작전용 부대에는 이 지역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미군의 이러한 인식에는 키르쿠크 현지의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자이툰부대가 미군측과 합의한 관할지역은 키르쿠크가 포함돼 있는 타밈주와 인근 샬라딘주의 투즈 지역까지였다. 문제는 이 지역이 이라크 북부지역의 중심 축선을 이루고 있는 데다, 저항세력의 공격이 잦은 ‘수니 삼각지대’, 즉 바그다드-티크리트-모술 인접지역이라는 점. 특히 미군이 수니 삼각지대에 대한 소탕작전을 강화하자 저항세력이 대거 유입돼 공격이 빈발하는 등 치안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형편이다.

    이는 국방부가 파병결정 과정에서 키르쿠크를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갈 곳은 키르쿠크뿐이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들은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현지사정이 악화된 것은 파병지역이 결정된 지난해 12월 이후의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2월1일 인근 아르빌 지역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쿠르드족 110명이 사망한 사건, 1월말 미군캠프에 대한 네 차례의 로켓 공격 등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테러사건이 줄줄이 발생하고 난 2월9일, 국회 국방위의 파병안 심의회의에 나온 조영길 국방장관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국방부는 1월말 미군캠프가 로켓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부인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이후 사실로 확인되어 ‘의도적인 진실 감추기’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렇다면 키르쿠크는 파병지역이 결정된 12월 이전에는 안전한 지역이었을까. 지난해 11월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2차 정부합동조사단(단장 김만복 당시 NSC 정보관리실장, 현 국정원 기조실장)이 작성한 ‘현지조사결과 보고자료’를 살펴보면, 과연 어떤 근거로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고 한 것인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보고자료 중 키르쿠크 및 주변지역에 관한 내용이다.

    ▲ 대부분 수니파로서 친후세인 성향, 전직 바트당 요원 다수 활동지역으로 적대행동이 가장 빈번한 지역▲ 동맹군 지원 민사작전 본부, 병원, 경찰서 및 개인상점도 공격▲ 최근 원격 조종 급조폭탄에 의한 공격 행위 계속 증가▲ 쿠르드족과 투르크만족간 인종갈등 재연, 지역안정에 위협요소▲ 동맹군의 강력한 후세인 추종세력 체포작전으로 테러 점차 감소 예상▲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저항세력들이 최근 공조 양상 조짐▲ 시아파 지도자 ‘알 하킴’에 대한 차량 폭탄테러(8.29) 이후 불안정 상황이 지속되고 시아파와 수니파간 충돌 가능성 상존

    ‘진퇴양난’ 이라크 파병

    한국군 추가파병 예정지와 외국군 주둔현황

    이 가운데서도 가장 불안한 요소는 쿠르드족과 투르크만족, 아랍인 사이의 인종갈등 문제다. 쿠르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키르쿠크는 후세인 정권 시절 단행된 아랍인 이주정책으로 다종족 도시로 변모해 80만 인구 가운데 쿠르드인(40%)과 아랍인(30%), 투르크만인(25%)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쿠르드인들은 키르쿠크가 속해 있는 타밈주를 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27만명에 달하는 현지 아랍인을 추방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반면, 주변 아랍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키르쿠크로 몰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무력충돌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이러한 대치상황은 향후 종족간 내전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외신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가 키르쿠크 치안사정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홍보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추가파병 요구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국회 동의를 받기 위해 무리수를 둔 측면이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파병에 대한 찬반논란이 거세다보니 긍정적인 여론을 만드느라 정작 현지상황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모술이 유력한 파병예상지로 거론되던 지난해 10월 현지에 파견됐던 1차 정부조사단이 모술 지역을 안정적이라고 표현했다가, 동행했던 민간전문가의 ‘폭로’로 부실조사 비판에 휩싸였던 사례만 봐도 유추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관심은 한 가지로 집중된다. 모든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정부는 왜 키르쿠크를 선택했을까.

    파병지역 결정은 주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와 국방부가 담당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외교부 관련부서는 발언권이 적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현지에 부임한 임홍재 대사도 이 문제에는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당초 한국군이 검토한 파병 후보지는 북부 지역의 키르쿠크와 탈 아파르, 카야라와 서희·제마부대가 주둔중인 남부 나시리야 등 네 곳. 파병규모가 결정되지 않았을 당시 미국이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 모술 지역이 3000명 규모의 부대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범위가 넓다는 판단하에 고른 후보지였다.

    그 가운데 키르쿠크는 이라크 사상 처음으로 유정(油井)이 발견되고 이라크내 석유의 40%가 매장돼 있어 전후복구가 완료될 경우 한국과의 활발한 경제협력이 기대되는 1순위 후보지라고 이 무렵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12월 중순 김장수 합참 작전본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라크 파병 대미협의단이 워싱턴에서 미군 주요 간부들과 만나 키르쿠크 주둔에 대한 원칙적인 동의를 얻어냈고, 이는 곧바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어 12월24일 국회 동의안 제출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 정부 관계자는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른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초 키르쿠크를 먼저 거론한 것은 미국측이었다는 것. 가장 안전한 지역에 속하는 남부 나시리야가 가능성 있는 후보지였다면 왜 마다했겠냐는 반문이다. 파병을 공식요청한 9월부터 미국은 한국군이 북부지역 일부를 맡아줄 것을 요구해 왔는데, 이후 협상과정에서 5000명 이상 대규모 파병을 원한 미국은 모술을 선호한 반면 3000명 규모로 방향을 잡은 한국은 키르쿠크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지금 규모의 파병으로는 키르쿠크가 거의 유일한 후보지였다는 것. 덕분에 이 지역에 일찌감치 우리측 관계자들이 들어가 ‘우호여론 조성’을 위한 물밑 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다음 쟁점은 이라크에 파병되는 한국군의 임무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것이다. 즉 얼마나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인가 하는 부분. 정부는 이에 대해 무기회수, 인도적 지원, 주민 생활여건 개선, 친한화(親韓化) 활동 등이 중심이 되고 치안유지는 주로 이라크 군경에 대한 지원에 한정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2월까지 이 지역에 주둔했던 미 173공정여단은 주로 저항세력 색출작업에 집중해왔지만 이제는 이라크 자체치안능력이 상당부분 향상되었기 때문에 여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진퇴양난’ 이라크 파병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키르쿠크 지역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인근에 흩어져 있던 저항세력이 이 도시로 모여들어 크고 작은 소요가 쉴틈 없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각 종족을 무장해제하기 위한 군사작전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미군이 수행하던 이러한 임무를 미군 대신 들어가는 한국군이 피할 수 있겠냐는 반문이 자연스레 나온다. 관할지역 안에 저항세력의 은신처가 있다는 정보가 확보되었다면 무력을 동원해 적발하는 것은 결국 자이툰부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방부가 추진중인 무기회수 프로그램도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3월9일 국방부가 발표한 바로는 박격포, 기관총, 로켓추진수류탄(RPG) 등 각종 화기(火器)를 유상 회수하고 일부 품목은 자전거 등 물품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지만 이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 이미 미군이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나, 치안불안에 따른 자위수단 확보와 개인화기를 명예로 생각하는 고유정서 때문에 성과가 전무했다는 전언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미 이라크 현지에서 1년 가까이 활동중인 서희·제마부대가 별다른 사상자를 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자이툰부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여러 주변 여건상 두 부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우선 의료지원을 맡은 제마부대는 이라크 주민들이 부대 안으로 들어와 진찰을 받는 형태이고, 건설지원을 맡은 서희부대도 상당수 병력이 임무와는 상관 없는 영내활동에 치중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공격위협에 노출되지는 않았다는 게 현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희부대의 활동반경에 제약이 생긴 것이 현지 저항세력의 테러 위험 때문이었음을 감안하면 치안이 불안정한 북부지역에 주둔할 자이툰부대의 경우는 임무수행에 더 큰 한계가 있으리라는 지적이다.

    명목상 재건지원부대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형 토목공사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아니라 특전사 병력이 주축을 이루는 부대구성을 고려하면 이는 보다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건설사업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실업률이 70%가 넘는 현지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으로 자이툰부대가 ‘치안유지’가 아니라 ‘재건(Reconstruction) 지원’을 목표로 내걸고 이라크에 오는 유일한 부대다 보니 현지 주민들은 한국군이 직접 인프라 등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점도 문제다. 한국군이 와서 도로를 깔고 집을 짓고 전력을 공급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이렇게 된 데엔 여건조성작업을 위해 현지에 간 한국정부 관계자들이나 파병 결정 후 한국을 다녀간 키르쿠크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을 상대한 당국자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줄 듯한 자세’를 취했던 게 화근이었다고 현지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전한다. 특히 이들이 서울에 올 때마다 현지 주민들에게 안길 ‘선물’을 들려보냈던 것이 한국군에 대한 호감과 동시에 기대수준을 지나치게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지인들의 무리한 기대가 자이툰부대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평화재건 지원임무의 실체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라크 파병부대는 일반적인 인식처럼 ‘공병·의료지원’ 역할을 하기보다는, 현지인들과 교전 가능성이 높은 키르쿠크 지역의 치안유지와 내전방지 등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단 사령부의 전투요원을 제외하고도 특전사 특공여단 해병대 등 전투부대 출신이 전체 병력의 반을 넘는 반면 공병의료부대는 서희·제마부대(순수 의료공병요원 350명)를 보완해 고작 600명 수준으로 편성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이에 대해 국방부는 한국 공병이 직접 재건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이라크 현지인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시급하고, 특전사만큼 민사작전에 경험이 풍부한 부대는 없다는 점을 파병부대 구성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파병. 마지막으로 따져볼 것은 이번 파병으로 한국이 잃을 것은 무엇이고 얻을 것은 무엇이냐는 점이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부대원들의 인명피해 가능성은 일단 차치하고 논의를 진행해보자.

    금전적으로 한국이 이라크 재건과 관련해 써야 하는 돈은 모두 6170억원+α다. 이 가운데 3040억원(2억6000만달러)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라크재건원조공여국회의에 내기로 한 국제협력단(KOICA) 지원금이고, 파병관련예산이 나머지 3130억원(서희·제마부대 비용 260억원 포함)이다. 그러나 우호적인 여건 조성을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규모도 공개된 바 없다.

    당초 파병관련예산은 유동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파병동의안에 포함되지 않고 2004년 일반회계예산으로 처리되어 위헌(違憲)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달 말에는 ‘안전보장 강화’를 이유로 570억원이 추가로 요청됐다. 국회 국방위의 검토보고서는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한국이 40% 이상 부담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군의 이라크파병 경비 전체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고 있다.

    반면 파병으로 인한 기대수익은 얼마나 될까. 추가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하반기, 언론에서는 파병시 얻을 수 있는 경제효과에 대한 보도가 줄을 이었다. 아랍권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수출증대, 복구사업 참여를 통한 건설공사 수주를 비롯해 키르쿠크 지역의 석유개발권에 획득을 기대하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정작 파병이 임박한 지금 이러한 효과에 대해서는 외교통상부 아중동국 관계자들조차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석유 같은 큰 이권의 경우에는 이미 미국의 다국적 업체들이 대부분 장악한 상태라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적고, 이미 상당부분 ‘나눠먹기’가 진행된 재건사업 공사수주는 파병 여부와 크게 상관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부 관계자는 “물론 경제적인 효과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기적인 이익은 이라크 재건과 관련해 투입하기로 한 예산규모에도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고, 장기적인 이익은 아직 변수가 많아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한미동맹 강화인가, 약화 방지인가

    민사작전 경험을 통한 군의 대응능력 향상,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추상적인 가치들을 제외하고 나면, 결국 이라크 추가파병을 통해 한국이 얻을 효과는 한미동맹이라는 ‘총론’만 남는다. 당초 일각에서 거론되었던 북핵 문제와의 연계 등은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히려 미국은 북핵 문제를 파병과 연동하려는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의 언급에 대해 ‘상황인식이 그것밖에 안 되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로는 파병이라는 카드를 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는, 파병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았을 때의 부정적인 결과에 더 신경을 쓴 형국이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미동맹의 ‘강화’보다는 ‘약화 방지’에 가까웠던 셈이다.

    이라크 파병안을 내면서 ‘독자지휘권을 갖고 특정지역을 책임지며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재건지원 임무에 주력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대부분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진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미군과의 협의도 완결짓지 않은 상태에서, 특히 해당지역에 교체부대를 파견하는 것 같은 주요 움직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혹은 알면서도 공개하지 않은 채) 서둘러 국회 동의에만 매달렸던 국방부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추가파병안의 해당 내용을 수정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이에 대한 국회의 심·동의를 다시 받는 것이 그 하나다. 물론 이라크 현지상황이 훨씬 악화되었으므로 비등한 반대여론을 뚫고 다시 국회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부결될 수도 있고, 통과된다 해도 훨씬 강화된 안전보장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부담이 남는다.

    다른 하나는 미군과의 협의를 통해 당초 예정됐던 대로 독자주둔을 얻어내거나 키르쿠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파병지를 옮기는 일이다. 이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 전자는 한국군을 믿지 못하는 미군을 설득해야 하고, 후자는 이미 안전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임자’를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불거진 논란을 무시하고 미국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파병을 강행할 경우에는 위법시비와 헌법소원이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 파병안의 국회통과라는 난제를 넘기고 한숨을 돌렸던 정부는 지금 진퇴양난의 덫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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