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비상! 청소년 마약중독

“50알 먹고 나면 바이킹을 타고 있어요”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4-03-29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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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멸의 알약, 죽음의 백색 가루가 10대들을 잡아끈다.
    • 청소년 고객을 노리는 마약상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 아이들은 물건을 훔치고 몸을 팔아서 약값을 댄다. 그들의 몸과 마음이 썩어들어간다.
    비상! 청소년 마약중독
    “아줌마들이 명함을 줘요. 거기 있는 연락처로 전화해서 ‘땅콩’을 달라고 하면 직접 만나서 주거나 택배로 부쳐주죠. 경찰들이 감시하니까 겉보기엔 준 것 같죠. 하지만 한번 (약을) 해본 사람은 끊기 힘들어요.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파는 사람이 있는 거고요. 단속이 심해진 후 값이 많이 올라 예전엔 2만원이면 100알을 샀는데, 이젠 6만원을 줘야 해요. 그래도 다들 몰래몰래 하죠.”

    김모(18)군은 태연하게 말했다. ‘땅콩’은 그들끼리 러미나를 일컫는 말이다. 김군은 열네 살부터 마약의 일종인 러미나와 S정을 복용했다고 한다. 러미나는 기침을 멈추게 하는 진해거담제이고 S정은 근골격계 질환 치료제다. 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알을 먹으면 환각 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대용 마약으로 남용돼왔다.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이지만 서울역 근처 보따리상에게서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그래서 한때 서울역 앞의 모 빌딩 근처에 가면 약에 취해 괴성을 지르거나 벤치에 쓰러져 있는 앳된 청소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러미나와 S정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더 이상 유사 마약이 아니라 마약으로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됐다. 그래서 서울역 부근에서 버젓이 러미나와 S정을 팔던 보따리상들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군은 “지금도 살 수 있다”며 코웃음을 쳤다.

    김군을 따라 한때 러미나와 S정의 ‘메카’였던 서울역 앞 모 빌딩 뒷골목으로 갔다. 대놓고 약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40∼60대 여인 몇이서 이른바 ‘여관바리(여관에서 하는 매춘)’ 호객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약 판매책 노릇도 겸한다고 한다.

    “저 같은 ‘단골’은 아줌마들이 얼굴을 알아봐요. 단속 때문에 직접 팔지는 못하고 대신 명함을 주는 거죠.”



    김군의 귀띔이다.

    “안 해본 아이가 없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담배와 술을 입에 댔다는 김군은 중학교에 들어간 후 본드와 부탄가스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이혼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는데, “돈도 없고 사랑도 없는 집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고 한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밤새 친구들과 놀고 와서 오전 내내 잠만 자는 생활을 계속했어요. 그때 아는 형들이 ‘러미나 먹으면 뿅간다’고 하더라고요. 형들이 주길래 호기심에 먹어봤죠. 40분쯤 지나니까 몸이 가벼워지면서 슬슬 약 기운이 나타났어요. ‘바이킹을 타고 싶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정말 바이킹을 타고 있었어요. 그러다 등이 간지러워 긁었는데, 가려움증이 없어지질 않았어요. 1시간 가까이 피가 날 때까지 긁었죠. 꽥꽥 소리를 지르며 길거리를 돌아다녔어요.”

    그런 다음날이면 몸에 힘이 빠지고 구토를 하기도 했다. 속이 텅 빈 듯한 느낌에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팠다. 몸이 마비돼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저녁이면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약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한번에 25알을 먹었는데 내성이 생기자 50알은 먹어야 효과가 나타났다. 1주일 내내 먹은 적도 있다. 지금까지 먹은 걸 모두 합치면 수천 알은 될 거라고 한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한 달에 체중이 15kg 넘게 빠지기도 했다.

    “제 친구들 중에 안해본 아이가 없어요. 여자친구들도 다 한 걸요. 하지만 저는 넉 달 전부터 끊었어요. 몸도 안 좋고, 무엇보다 힘든 공사 일 하면서 저를 키우신 아버지께 죄송해서요. 다음달엔 고입 검정고시도 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김군은 “당장 누군가가 제게 약을 건넨다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숨기만 했지, 줄진 않았다”

    지속적인 단속과 캠페인에도 청소년들의 약물 남용이 여전히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흡연과 음주는 물론 마약류에 속하는 환각물질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 주머니가 가벼운 청소년들은 대개 필로폰(메스암페타민) 같은 고가의 마약은 손대지 못하지만 러미나, S정, 엑스터시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마약이나 본드, 부탄가스 등 환각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에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10대 청소년들의 마약류 사용은 신체적, 정신적 성숙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중독될 가능성이 크며 범죄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마약치료 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신용원 대표는 “소년범의 80% 이상이 마약 등 약물 문제를 갖고 있고, 성인 마약 중독자의 대다수가 10대 때 마약 또는 준(準)마약을 접했다”고 들려준다.

    대검찰청 마약부의 2003년 국내 마약류사범 통계를 보면 10대가 37명으로 전체의 0.5%를 차지하고 경찰청 마약수사과의 2003년 통계에서도 10대 마약사범이 23명으로 집계됐다. 절대적인 수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검거되지 않은 10대 복용자의 숫자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리라는 게 신 대표의 추정이다. 10대의 경우 판매상이 아닌 일반 투약자가 많기 때문에 수사관들의 주 관심 대상이 되지 않고 그래서 검거율도 낮다는 것. 그는 “요즘은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유학한 10대가 현지에서 마약을 접하고 중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마약 복용 청소년의 대다수는 앞서 예로 든 김군처럼 전형적인 ‘문제아’ 코스를 걷는다. 보통 흡연과 음주로 시작해 본드나 가스 등 유해물질을 접하다가 러미나, S정과 같은 가벼운 마약에 손을 대고 성인이 되면 필로폰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비행경험과 마약복용은 정비례 관계에 있다. 진태원신경정신과 진태원 원장은 “비행경험이 많을수록 마약을 포함한 약물복용을 많이 한다”면서 “비행경험이 많은 청소년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본드 21배, 대마초 29배, 필로폰 22배, 환각제는 39배 더 많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마약반 윤광호 형사는 “러미나나 S정을 복용하다 검거된 10대의 대부분은 집안이 불우해 가출한 청소년이었고, 앵벌이나 윤락녀도 꽤 있다”고 했다. 마약에 빠져들어 약을 사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도 많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의 마약 수사관들은 지난해 러미나와 S정이 마약으로 분류되면서 제약회사에서 더 이상 생산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복용 자체가 범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복용하는 10대가 많이 줄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10대 청소년들은 “(마약 복용 청소년들이) 숨기는 했지만 줄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노원경찰서는 러미나와 S정을 밀제조해온 공장을 적발했다. 경기도 파주와 포천의 인가가 드문 벌판에 있는 이 공장에선 지금까지 러미나 6600만여정과 S정 4만여정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약 600만회 투여분, 87억원 어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경찰이 압수한 양은 러미나와 S정을 합쳐 8만정 정도. 나머지는 모두 시중에 풀렸다는 얘기다.

    노원경찰서 마약반 수사관은 “압수한 약 가운데 일부는 우리가 적발한 공장이 아닌 곳에서 제조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또 다른 밀제조 공장이 있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조기 유학생들의 환각파티

    최근에는 부유층 젊은이들의 마약 복용도 크게 늘고 있다. 조기 유학 바람과 함께 많은 청소년들이 외국에서 유행하는 마리화나, 코카인, 엑스터시, LSD 같은 마약류를 직접 접하게 됐다. 이들이 국내에 마약류를 전파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열네 살에 뉴질랜드로 유학간 이모(18)양은 현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또래 한국 유학생들과 어울리다가 자연스럽게 마리화나를 피우게 됐다. 그는 방학을 맞아 귀국할 때마다 마리화나, 엑스터시 등 현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한 마약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팔려는 게 아니라 그냥 친구들과 같이 즐기려고 가져온 거예요. 제 남자친구도 클럽에서 친구들과 마리화나를 피다가 만났거든요(웃음). 약 하는 사람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통해요. 큰 잘못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중독성이 심한 약도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에선 규제가 심해서 조심해야 되지만, 외국에선 그렇지 않아요. 다들 한 번씩은 맛을 봤을 걸요.”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대학생 박모(25)군도 “흑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마리화나나 엑스터시를 접하는데, 10대 유학생들이 호기심에 흑인 친구를 따라다니다 마약에 빠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고 털어놓았다.

    중국어를 전공하는 대학 신입생 원모(19)양은 중국에서 마약을 처음 접했다. 최근 중국 유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데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이른바 ‘야오토우환’이라 불리는 엑스터시의 일종이 유행하면서 한국 유학생 중에도 마약을 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중국의 나이트클럽에도 엑스터시를 먹고 춤추는 사람이 꽤 많아요. 저도 클럽에 놀러갔다가 어떤 사람이 다가와 ‘약을 사겠냐’고 하길래 궁금해서 사 먹어봤죠. 게다가 중국 엑스터시는 값이 아주 싸요. 대량으로 구입해서 한국에 들여와 팔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물론 아직 실천은 못 했지만(웃음).”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미영 상담사는 음식점에서 우연히 고등학생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친구에게 ‘우리 형이 미국에서 엑스터시를 갖고 왔는데 먹어볼래?’ 하고 묻더군요. 제가 가서 타이르니까 생뚱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아이들에게 마약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청소년기에 마약을 접한 유학생들은 나이가 들면 마약 판매책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마약류 단속이 심한 만큼 약값이 비싸므로 해외에서 값싸게 산 마약류를 들여오면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마약 밀반입의 ‘작은 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비상! 청소년 마약중독

    마약이 온라인으로 거래되면서 누구든 어렵지 않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 사진은 온라인 마약판매상과 거래를 위해 주고받은 메일들.

    지난해 8월 경찰에 검거된 김모(26)양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미국 시민권이 있는 김양은 서울 강남에 살면서 명문 S대를 다니는 부유층 젊은이다.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냈고 유럽 등지로 여행도 많이 다녔기에 어릴 때부터 쉽게 마약을 접했다. 그는 지난해 초 네덜란드 여행을 다녀오면서 다량의 해시시와 엑스터시를 들여왔고 이를 홍익대 앞 모 클럽에서 판매하고 복용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담당 수사관의 말.

    “김양은 마약 밀반입은 잘못이라고 인정했지만, 마약 복용에 대해서는 ‘내 돈으로 약 사 먹는데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였어요. 어렵게 검거했는데 부모가 힘을 써서 그랬는지 한 달 만에 풀려났습니다. 이런 친구는 절대로 마약에서 못 벗어나요. 홍익대 앞이나 압구정동, 이태원 등지의 클럽에 가면 이런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약중독·성폭행, 2중의 고통

    원조교제나 채팅 등을 통해 10대 소녀들이 마약을 접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모(20)양은 2년 전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남자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경우.

    “친구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자가 있는데, 나이는 좀 많지만 돈깨나 있어 보이니까 같이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남자를 만났는데, 그들이 자기들 숙소라며 모텔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좀 걱정이 됐지만 ‘친구랑 같이 있는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하고 따라 들어갔어요. 그런데 좀 있다 친구와 한 남자가 나가버려서 다른 남자와 저 둘만 방에 남게 됐죠.”

    남자는 이양에게 “나한테 히로뽕 있는데 같이 할래?”라고 물었다. 이양이 기겁을 하자 그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히로뽕을 하면 살도 빠지고 예뻐지고…만병통치약이야”라며 설득했다. 감언이설에 넘어간 이양은 어느 순간 그의 손에 팔뚝을 내맡겼다.

    “20분쯤 지났을까.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머리털이 삐쭉삐쭉 솟아오르는 느낌이었어요. 온몸에 힘이 솟았고 거울 속의 제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죠. ‘아저씨’라고 부르던 그 남자를 나도 모르게 ‘오빠’라고 불렀고 자연스레 성관계도 가지게 됐어요.”

    당시 집을 나와 친구와 살고 있던 그는 그 길로 남자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히로뽕을 하고 성관계를 가졌어요. 다음날이면 몸이 너무 안 좋아 늘 후회했죠. 몸무게도 10kg이나 빠졌고 피부도 거칠어졌어요. 성격도 난폭해졌고요. 그래서 그 남자에게서 도망쳐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빨리 그 남자에게 달려가 약을 해야겠다’는 무시무시한 욕망에 빠져들었죠.”

    이런 그를 마약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남자로부터 “약을 줄 테니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새벽녘에 실성한 듯 달려나가는 딸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던 어머니가 딸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택시를 타고 남자에게 달려가는 중에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봤어요. ‘아가야, 엄마가 널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지?’ ‘너 또 주사 맞으면 엄마는 죽어버릴 거야. 제발 엄마를 살려다오’…. 가슴이 무너져내렸지만 유혹을 못 떨치겠더군요. 30분만 있으면 흰색 가루를 맛볼 수 있는데…. 하지만 결단을 내렸어요. 택시를 돌려 집으로 돌아온 거죠. 그렇게 유혹을 뿌리친 후 지금까지 약을 끊고 있어요.”

    지난 2년간 이양을 돌봐온 한국사이버시민마약감시단 전경수 단장은 “남성들이 성적 쾌락을 미끼로 던지며 접근하기 때문에 10대 소녀들이 마약에 연루되면 대부분 성폭행이 동반된다”며 “이양의 경우 어머니가 애정을 갖고 치료자 노릇을 했기 때문에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2002년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에 검거된 한 10대 가출소녀는 티켓다방에서 일하던 중 40대 손님이 음료에 몰래 탄 히로뽕을 마시고 중독됐다. 그후 윤락행위를 일삼다 여러 번 낙태수술을 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2000년 서울경찰청 형사과에는 10대 쌍둥이 자매가 히로뽕을 맞은 상태에서 윤간을 당한 사건이 접수됐다.

    “제보를 받고 현장을 급습했는데,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 둘이 옷을 벗은 채 히로뽕을 맞고 누워 있었어요. 어이가 없더군요. 범인들은 ‘머리가 맑아지는 약’이라고 속이고 주사를 놨다고 합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방배경찰서 조형근 형사의 얘기다.

    청소년들을 마약에 늪에 빠지게 한 데는 인터넷도 한몫했다. 마약이 온라인으로 거래되면서 누구든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기자가 시험 삼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마약 관련 카페에 들어가 관리자에게 “엑스터시 5정을 구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다음날 바로 “돈을 부치면 물건을 보내주겠다”는 답장이 왔다. 메일로 여러 차례 조건을 맞춘 후 돈을 입금하자 이틀 뒤 택배로 엑스터시 5정이 도착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도 온라인 판매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채팅방에 들어온 온라인 판매상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해드립니다. ①흥분제(조건만남 등에서 강한 요구를 하고 싶을 때) ②최음제, 수면제(흥분을 극대화하고 싶을 때) ③러미나, 의약품, 강한 감기약(일종의 환각제) 등등. 구입 원하시는 분은 쪽지 주세요.”

    “러미나를 구하고 싶다”고 답하자 판매상은 연락처를 물은 후 “지금 ○○역 근처에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판매상은 없으니 10대 청소년도 얼마든지 이렇게 약을 살 수 있다.

    지난 3월10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마약반에서는 60대 할머니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마약 성분이 든 중국산 살 빼는 약을 팔다가 검거된 것. ‘○○납명편’ ‘○○납동편’이라 불리는 이 약들엔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 성분이 들어있다. 100정 단위로 10만원에 팔리고 있는데, 최근 이른바 ‘몸짱 열풍’이 불면서 20∼30대 여성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 약을 먹으면 식욕이 급격히 떨어지고 몸을 움직이기 싫은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하루에 1알씩 먹는데,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몸무게가 10∼20kg까지 빠진다. 하지만 후유증이 심각하다. 약에 내성이 생겨 복용량을 계속 늘릴 수밖에 없고, 결국 불면증이나 중추신경계 이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 약을 끊으면 심한 우울 상태에 빠져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남대문경찰서 윤광호 형사는 “지난해 검거된 한 여성은 이 약을 몇 달씩 먹다가 탈진해 생명이 위독했다”며 “시중에 유통되는 살 빼는 약 중 상당수가 마약 또는 환각제 성분으로 만들어져 치명적일 수 있는 데도 젊은 여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복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강남지역에선 메틸페니데이트라는 마약 성분이 든 약이 ‘머리 맑아지는 약’으로 둔갑해 팔리기도 한다. 이처럼 마약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뿌리내리고 있다.

    최고의 의사는 가족

    신체적,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이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에 빠지면서 입는 폐해는 심각하다. 중증 마약 중독자들의 대다수가 10대에 환각물질을 접했다는 점만 봐도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전경수 단장은 “마약을 복용하는 순간 청소년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멈춰버린다”며 “마약을 복용하는 청소년들은 보통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하며 우울증 등 정신장애를 겪는다”고 설명했다. 청소년기에 약물을 남용하면 간질, 집중력 저하와 같은 뇌기능 장애는 물론, 가래가 심하고 감기에 쉽게 걸리는 등 폐기능 장애와 간, 위, 골수, 면역기능 장애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 1월, 스무 살 청년이 자살했어요. 그 청년은 17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마약을 배웠다가 귀국해서도 계속 복용했어요. 이 사실을 안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고 아이를 방에 가둬버렸는데, 이게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어릴 때 마약을 접하면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정신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청년은 방문을 뜯고 나와 옥상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부모가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중독을 치료하려면 무엇보다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이양이 어머니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약을 끊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가족은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윤현준 상담실장의 말.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이 종종 상담전화를 걸어요. ‘아이가 이상하다’ ‘성질을 내고 난폭해진다’면서 ‘혹시 마약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 전화를 뚝 끊습니다. 창피하다는 거죠. 초기에 잡아주지 못하고 곪을 대로 곪아야 치료하러 옵니다.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하러 나서야 합니다.”

    30여명의 마약 복용 경험자와 함께 재활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용원 대표도 “마약에 손대는 청소년의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가정이 불우하다”며 가정의 화목을 강조했다.

    “성인들이 주로 성적인 쾌락을 위해 마약을 시작하는 것과 달리 청소년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위해 마약을 복용합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가 러미나를 먹고 어머니를 만나는 환상에 빠진다면 어떻게 약을 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청소년 마약 중독자를 없애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고요.”

    세화신경정신과의원 사승언 원장은 “마약중독자는 범죄자가 아닌 환자”라고 말한다.

    “마약중독자더러 ‘마약을 끊겠다는 의지가 없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약중독은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약에 중독되면 뇌의 구조가 변합니다. 그러니 질병인 거죠. 우선 이를 치료한 후 정서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마약과 약물의 위험성과 폐해를 알리는 예방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마약 공급 및 복용자에 대한 철저한 단속도 필요하다. 2002년 일선 경찰서에 마약반이 신설된 이후 마약사범은 꾸준히 줄고 있다. 특히 공급책 검거에 주력함으로써 마약에 손댈 기회를 줄여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수사를 철저히 해도 마약중독자가 사라지진 않는다.

    “마약하는 사람은 결코 없어지지 않아요. 그저 숨을 죽이고 있을 뿐입니다. 한번 중독되면 절대로 약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죠.”

    마약중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감기약을 여러 병 먹으면서 환각을 즐기는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법으로 막으면 법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약을 찾아다닐 걸요.”

    서울역에서 만난 김군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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