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구가 동양챔피언이 된 뒤 체육관 위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권투라면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들이 하는 운동쯤으로 여겼던 그녀는 김득구와 사귈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끈질긴 구애가 이어지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녀는 김득구의 운동복 등판에 ‘김득구’라는 이름 석 자가 박음질돼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한다. 하루는 데이트를 하다가 “옷에 이름이 쓰여 있으면 창피하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김득구의 대답은 이랬다.
“옷에 이름이 쓰여 있으면 게으름을 피울 수 없잖아요. 사람들이 ‘저 친구가 김득구 선수구나’ 하면서 보고 있는데 어떻게 게으름을 피워요….”

김광수
1997년 12월에 불거진 외환위기 직후 그가 펴낸 보고서는 동아시아 외환위기 분석, 국민연금 재정문제,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상, 부동산 투기, 신용카드 버블의 경제적 영향 등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꼭 필요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보고서는 정부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관가와 학계의 세미나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국엔 ‘江湖’가 없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제연구소 설립(2000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5월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라는 책을 펴내자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의 직원들이 앞다퉈 구입했다. 권당 3만원이란 ‘거금’을 지갑에서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짧은 시간에 1000부가 팔려나갔다.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해 여름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를 읽으며 휴가를 보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단 한 번도 추천사를 써본 적이 없다는 이헌재 부총리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고,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도 추천의 글을 썼다.
이 부총리는 추천사에서 “전환기의 한국경제가 직면한 구체적인 사례들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과 논리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의 실용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며 “적은 인력의 연구소지만 역량이나 수준으로 볼 때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연구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79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 석사까지 마친 김 소장은 자신만만한 경제학도였다. 석사 과정에서 공부할 때는 한눈 팔지 않고 전공(금융학)에만 정진해 지도교수를 비롯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패기 넘치던 김 소장은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이 득실대는 ‘강호(江湖)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한 도쿄대 교수의 면모를 보고 “천재가 여기 있었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명쾌한 논리로 문제를 풀어냈다. 김 소장이 보고서나 책을 펴낼 때 늘 ‘했습니다’ ‘이런 점 때문입니다’라며 경어를 쓰는 것도 어디에나 강자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몸을 낮추기 위함이다.
6년 동안 일본에서 공부하며 그는 일본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힘과 일본의 힘을 이렇게 비교한다.
“미국은 세계의 천재들이 모여들어 경쟁하는 나라다. 최고만 살아남는 시스템이라 어떤 문제가 생겨도 뚫고 나가는 힘이 있다. 미국이 경제대국이 된 것은 정보를 쥐고 있어서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회계법인, 법률회사뿐 아니라 미국반도체협회 등 분야별로 최고의 정보기관들이 미국에 있다. 국가 신용도를 평가하는 회사도 미국에 있다.
반면 일본에겐 그만한 힘이 없다. 미국만큼 천재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사기(詐欺)가 통하지 않는다. 전문가랍시고 TV에 나와 헛소리를 해댔다간 수많은 마니아들에게 혼쭐이 나서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 두텁게 형성된 실력파 전문가층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의 저력을 실감케 한다. 일본은 얼치기 지식을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특히 언론과 사회가 얼치기 전문가를 걸러내는 전문적 역량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