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박태영 전남지사 자살 미스터리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4-05-27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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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의사실 전면 부인한 ‘자수서’ 제출한 까닭
    • 자살 2시간 전 의문의 행적
    • 병원 가다 차 돌려 갑자기 한강시민공원으로
    • ‘J-프로젝트’ 위해 청와대와 ‘빅딜’
    박태영 전남지사 자살 미스터리

    박 지사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배경은 5월3일 광주도청 앞에서 치러진 영결식.

    지난 4월29일 검찰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남지사의 투신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또 한번 큰 충격을 줬다.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과 올해 2월 안상영 전 부산시장, 3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 이어 벌써 네 번째 사회 고위층인사의 자살이다.

    하지만 박 지사의 경우 몇 가지 점에서 앞선 이들과 차이가 있다. 정 의장과 안 전 시장은 자살직전 유서를 남겼고, 남 전 사장은 유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변호사에게 자살의 뜻을 전했다. 반면 박 지사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한강에 투신하기 직전까지도 함께 있던 측근들조차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지사는 4월27일과 28일 이틀간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후 사건 당일 오전까지도 변호사 및 측근들과 함께 검찰 조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해오던 터였다. 하루이틀 정도 밤을 새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서 쓰러질 정도로 허약한 체력도 아니었다. 전남 도정(道政)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미래를 던질 만큼 깊은 애정도 갖고 있던 터였다.

    때문에 주변 관계자들 중 박 지사가 검찰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 임직원이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느낀 배신감 때문에 목숨을 버렸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박 지사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검찰과 결코 협상할 수 없다



    먼저 박 지사의 측근과 변호사 등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건 당일로 거슬러 올라가 그날 아침부터 자살하기까지의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취재과정에서 박 지사의 자살사건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린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박 지사가 투신한 곳은 반포대교 남단에서 북단방향이 아닌 북단에서 남단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이었다.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방향이었던 것.

    4월29일 아침 7시30분경,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을 나선 박태영 지사는 초췌한 모습으로 승용차에 올라탔다. 이틀째 13~14시간의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은 데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이다. 이날도 오전 11시까지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었다.

    동부이촌동을 빠져나온 박 지사의 차는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뒤편 팔레스호텔로 향했다. 오전 8시에 담당 변호사와 측근들과 함께 모여 검찰 조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기로 약속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호텔 일식당에 모인 이는 박 지사와 그의 변호를 맡은 이종찬 권오영 변호사, 박 지사의 친척인 또 다른 변호사 한 명, 박 지사의 친구, 정창욱 전남도청 종합민원실장 등 모두 6명이었다. 정 실장은 박 지사를 13년간 보좌해온 최측근.

    이날 모임배경에 대한 정 실장의 기억이다.

    “전날 지사님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검찰 쪽에서 ‘일부 시인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흘러나왔어요. 밤 12시쯤 조사를 받고 나오는 지사님에게 그런 내용을 보고했더니 ‘죄가 없는데 어떻게 시인할 수 있느냐. 시인하면 그 사람들하고 공모했다는 게 되는데’라며 불쾌해하셨죠.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변호사들과 조찬 겸 약속을 잡아놨으니 그때 상의해보자고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날 아침 모임에 참석한 변호사 세 사람의 의견은 모두 달랐다. “어차피 기소될 것이니까 (불구속 기소를 조건으로) 일부 시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사실대로 해야 한다. 나중에 법정에 가서 진위를 따지는 것이 옳지, 검찰과 협상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검찰측과 대화통로를 열어놓고 있던 권오영 변호사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권 변호사는 ‘혹시 검찰의 기소내용 자체가 입증될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검찰측에 박 지사의 ‘자수서’를 제출해놓은 상태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자수서’ 제출사실만 가지고 박 지사가 검찰에서 자백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자수서는 자백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이번 경우엔 다분히 형식적인 것이었어요. 만일의 경우 박 지사의 혐의사실이 입증된다면 자수에 따른 감형을 받기 위해 사전 조치해놓은 것일 뿐이죠. 자수서 내용을 보더라도 알 수 있어요. 그 내용은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날 아침 회의에서도 권 변호사는 여러 차례 박 지사에게 “인정할 게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나, 박 지사는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회의 도중에는 간간이 건보 임직원들을 성토해 강한 ‘배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태영 전남지사 자살 미스터리

    4월2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사 및 납품비리 연루혐의로 소환된 박태영 전남지사가 서울남부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변호사와 측근들 간에 회의가 계속됐지만 중요한 것은 박 지사의 결심이었다. 오전 10시경 박 지사는 잠시 자리를 떠 누군가를 만나고 왔다. 그때 박 지사의 표정과 행동에서 특별한 변화를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 지사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변호사나 측근들은 이틀간 계속된 검찰 조사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으로만 여겼다.

    12시가 넘어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이들은 남부지검으로 가는 차 속에서 더 논의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가 길어지면서 오전 11시에서 12시30분으로 이미 한 차례 검찰 출두시간을 연기한 상태였다.

    박 지사는 순간 피곤함을 더욱 느낀 듯 권 변호사에게 “너무 피곤하다. 조금 쉬고 싶다. 2시간만이라도 (검찰 출두를) 더 연기할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권 변호사는 “일단 검찰에 갔다가 상태를 보고 이야기하자”며 출발을 서둘렀다.

    권 변호사와 박 지사, 정 실장 등이 박 지사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팔레스호텔을 나선 게 12시15분경. 정 실장은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한 박 지사를 위해 준비해간 잣죽을 꺼냈다.

    차가 호텔을 빠져나올 무렵 잣죽을 입에 대던 박 지사가 ‘욱’ 하고 구역질을 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갑작스런 박 지사의 행동에 함께 탔던 이들은 모두 놀라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내렸다. 아무래도 이런 상태로는 검찰조사를 받는다는 게 무리였다.

    권 변호사는 검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병원에 가서 박 지사의 상태를 보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출두시간을 연기했다. 이 대목에서 권 변호사와 정 실장의 기억이 조금 다르다.

    정 실장은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한 2시간 정도 출두시간 연기를 요청하니까, 검찰에서 ‘병원으로 가면 이해될지 모르지만 집으로 가면 조사를 피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박 지사가 ‘그럼 좋다.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권 변호사가 검찰측과 통화하는 사이, 박 지사를 태운 차는 수행하던 정 실장이 미처 탈 겨를도 없이 먼저 병원으로 출발했다. 권 변호사는 일단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뒤따라오던 자신의 차로 사무실로 갔고, 정 실장은 의료보험증을 가지러 박 지사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권 변호사나 정 실장은 그게 박 지사와의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재판부, 박 지사 혐의 인정한 셈

    박 지사의 차는 반포대교를 넘어 집 군처인 동부이촌동으로 향했다. 박 지사는 차 속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토증세를 이야기하면서 집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러자 부인은 “병원으로 가서 좀 쉬라”며 집 근처 K병원을 알려줬다. 박 지사는 곧 권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집 근처 병원으로 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정 실장은 박 지사의 집에 도착해 부인으로부터 박 지사와 통화한 내용을 전해듣고 의료보험증을 챙겨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시각, 박 지사의 차는 병원이 아닌 동부이촌동 근처 한강시민공원을 배회하고 있었다. 박 지사는 시민공원 등지에서 두어 차례 차에서 내려 바깥바람을 쐬기도 했다. 그러다 운전기사에게 집이나 병원이 아닌 팔레스호텔로 가자고 해 반포대교를 넘던 중 차를 세우게 한 후 한강에 투신,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검찰은 지난 1월14일 박 지사의 건보 이사장 재임 당시 총무이사(전남 정무부지사) L씨와 비서실장 K씨, 감사실장 N씨, 이사장 보좌역 Y씨 등 전·현직 임직원 8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기소된 이들은 대부분박 지사가 이사장 재임 시절 학연 또는 지연으로 핵심요직에 앉혔던 인물들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의 혐의는 대체로 박 지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다. 이들은 이사장의 개인적인 경비조달이나 사적인 추석선물비 등을 위해 승진대상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아냈고, 이중 일부가 전남지사 선거를 앞두고 광주전남지역 기초의원과 자치단체장에게 향응을 베푸는 데 사용된 사실이 드러난 것.

    1심 재판부는 이들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4월8일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납품비리로 조달한 금액의 대부분과 인사청탁 명목으로 받은 금품을 공단의 필요경비가 아닌 이사장의 선거비용, 개인비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이 박 지사의 혐의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1심 재판부의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형을 선고받은 건보 임직원들의 진술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검찰은 박 지사의 구속기소에 자신감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건보 임직원들은 검찰조사에서 자신들이 뇌물을 받은 내용을 ‘(박 지사에게)보고했다’ ‘(박 지사가)알았을 것이다’ ‘눈치라도 챘을 것이다’는 식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지사측, 특히 정 실장은 건보 임직원들의 진술내용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정 실장은 “이사장의 사적경비가 부족해서 모았다거나 선거자금으로 썼다고 하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2000년에는 이사장 판공비가 남아서 이월시켰고, 2001년 10월 이사장직을 그만둘 때도 1억 이상 남겨놓고 나왔다. 공금도 남았는데 부하직원이 뇌물로 받아온 돈을 쓰겠는가”고 반문하면서 “(지사 선거 때) 선거를 치른 사람은 난데 무슨 선거자금을 썼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박 지사의 결백을 주장했다.

    정 실장은 박 지사의 자살 이유를 열린우리당 입당과 이후 과정에서 찾고 있다. 정 실장과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지사는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이전인 3월 초에 이미 열린우리당에 입당키로 결심한 상태였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박 지사를 영입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탄핵 전 민주당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광주전남에서 박 지사가 이같은 모험을 했던 이유는 전남에 ‘J-프로젝트’로 명명한 ‘동북아관광중심도시’ 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이 계획은 박 지사 일생일대의 꿈이었다. 이에 필요한 외국인 카지노 등 부대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제정돼야 하는데, 그것은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결국 미국의 유수한 자본가까지 내부적으로 확보한 상황에서 박 지사는 자신의 입당 대가로 대통령의 지원약속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지지도가 바닥을 맴돌고 있던 당시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호남 중심부의 자치단체장인 박 지사의 입당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박 지사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 청와대와 ‘빅딜’을 시도했던 것.

    당초 계획대로라면 박 지사의 입당예정일은 3월19일이었다. 전남도의회 회기 마지막 날인 18일을 넘겨 도의원들의 집단 반발을 피하려 했던 것. 그리고 3월24일 서울-목포간 호남선복선 준공식과 광양경제자유구역청 개청식 때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지사는 노 대통령이 그날 행사에서 “전남에 동북아관광중심도시가 건설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청와대측과 조율중이었다. 그러나 3월12일 탄핵이 결정되면서 박 지사의 이같은 계획은 완전 백지화됐다. 박 지사는 그런 데도 15일 전격적으로 민주당을 탈당, 오히려 예정보다 4일 앞당겨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정 실장은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해, 정치적 딜과 전혀 상관없이 오직 전남에 동북아관광중심도시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단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박 지사는 열린우리당 입당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동북아관광중심도시 건설, 기업신도시 유치,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등 대형 프로젝트는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이룰 수 없다”며 “중앙정부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도민의 뜻에 부합되는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박 지사는 그러나 입당 이후 도의회와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전남도의회는 3월18일 “열린우리당 입당은 도민을 배신한 것”이라며 도지사 사퇴권고 촉구결의안을 채택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클린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천정배 의원(현 원내대표)은 3월25일 “입당원서가 들어왔다 하더라도 심사기구에 관한 규정이 공백상태이기 때문에 중앙위원회에서 심사위원회를 만든 다음에 심사를 하겠다”면서 박 지사의 입당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채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해버린 셈이었다.

    박 지사의 영혼에 남은 상처

    박 지사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검찰에 출두하던 4월27일 열린우리당 중앙당에서 그의 입당을 공식 부인하고 나선 것.

    이재경 부대변인은 이날 “주요 인사들의 입당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박 지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중앙상임위나 중앙위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공식입당은 아니고 ‘보류상태’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에 확인한 결과 박 지사의 입당은 결정된 바 없다”고도 덧붙였다. 한달 전 천 의원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당 안팎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당 지도부가 뒤늦게 “박 지사는 100% 당원이다” “전산장애가 빚어져 박 지사 당적에 혼선이 빚어진 것 같다”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박 지사는 고인이 된 뒤였다.

    정 실장은 “전후 사정을 떠나 이번 총선에서 박 지사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검찰에 출두하는 날 열린우리당 당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박 지사의 입당이 마치 검찰조사를 피하기 위해 얕은 꾀로 입당한 것처럼 비쳐졌다”면서 “박 지사는 도지사직을 걸고 입당을 결정했던 것인데, 결국 도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입게 됐다”고 말했다. 이것이 박 지사가 투신자살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라는 게 정 실장의 생각이다.

    물론 박 지사가 한때 믿었던 건보 부하직원들에 대한 ‘배신감’도 컸다. 여기에 검찰에 구속될 경우 그동안 자신이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해오던 ‘J-프로젝트’ 등 전남도 발전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할 가능성도 큰 상황이었다.

    목숨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박 지사에게 어쩌면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순간적으로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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