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론

남미형 몰락 피하려면 재정개혁부터 시작하라

국책사업 남발에 대한 경고

  • 글: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jjun@ewha.ac.kr

남미형 몰락 피하려면 재정개혁부터 시작하라

3/5
남미형 몰락 피하려면 재정개혁부터 시작하라

성장이 지속적으로 위축되면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성장이 지속적으로 위축되면 가진 자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복지정책에 대한 정부의 여력도, 사회적 관용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즉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분배가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분배 개선을 위한 정책 수단들이 자원배분의 효율성면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다소 성장을 저해하는 정책일지라도 사회 안정과 저소득계층의 인적 자본 향상에 효과가 있다면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반면 적절한 성장과 분배 목표의 조합에 실패해 정치논리에 의한 갈라먹기가 본격화하면 성장과는 무관한 분배정책이 압도하게 되어 경제는 추락할 것이다. 현명한 정부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 후생을 높일 수 있는 복지정책의 체계를 갖추어야 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회구성원의 잠재적 불만을 생산적 의욕으로 전환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제 구실을 못 하면 계층과 집단을 대변하는 개별적인 목소리가 커진다. 정부는 주어진 자원을 어떤 순위에 따라 사용할지 정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성장이냐 복지냐 하는 어설픈 논리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큰 틀을 짜야 한다. 이러한 정책구조 결정에 도구이자 제약이 되는 것이 바로 정부 재정이다. 재정이 흔들리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 힘들고 궁극적으로 경제는 무너진다. 그러나 의욕 있는 정부라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재원에 비해 쓰고자 하는 용도가 넘칠 것이다. 이 경우 어떤 식으로 재정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정부 정책의 윤곽이 결정된다.

정부 실패가 경제위기 부른다

정상적인 재정수입만으로 정부기능을 수행하기 힘든 경우 우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재정적자를 통한 재원 조달이다. 기업이건 나라건 책임 있는 방식으로 돈을 빌려 쓰고 갚는다면 일시적인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경쟁 부재로 인한 부패와 비효율이 수반되기 쉽다. 정부가 제 구실을 못하는 만큼 성장은 좌초하고 세금은 덜 걷힐 것이며 그 결과로 재정적자는 구조적으로 고착되기 쉽다. 이 경우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통화 증발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그러나 의도적인 인플레이션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금을 걷는 편법이 오래갈 수 없다. 결국 물가가 급등하고 사재기 열풍이 불며 외국 자본은 빠져 나가는 나락의 길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1980년대에 남미 국가를 휩쓴 경제위기의 단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적자재정 대신 금융 및 산업 분야에 대한 직접규제 방식을 통하여 재정에서 가능하지 않은 정부기능을 수행하려 했다. 금융산업의 낙후와 저임금을 발판으로 한 이러한 성장전략은 경제규모가 크지 않던 시기에는 그 이득이 비용보다 클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며 금융부문의 인위적 규제에 수반되는 비효율이 급증했고, 성장이라는 과실의 공정한 배분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정부의 암묵적 보증과 계열사간 상호보증 관행을 발판으로 한 무분별한 차입 경영은 결국 무리한 투자 행태로 이어져 자본의 생산성을 하락시켰다. 1997년에 터진 외환위기는 이처럼 누적된 구조적 비효율이 일시에 터져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남미의 외환위기와 우리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경로는 다르지만 정부의 실패가 경제위기로 이어졌다는 점은 동일하다. 특히 대비되는 점이 정부 재정이다. 비대한 공공부문과 방만한 재정운영이 남미 국가들의 함정이었다면 무분별한 규제를 매개로 한 정경유착의 폐해가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우리의 경우 그나마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요인은 소극적인 재정 운영으로 적자재정이나 국가부채의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과 금융이 초래한 부실의 상당부분을 재정에서 조달한 공적 자금으로 흡수했기에 민간 부문을 빠르게 회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비효율과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치유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회적 위험을 정부 재정이 흡수해야

그래서 금융과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교적 건전한 재정 덕분에 시간적 여유를 번 것일 뿐, 은행과 기업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400만명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금융시장을 마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핵폭탄으로 자라나고 있다. 교육과 노동 부문이 지식기반경제에 걸맞은 인적 자본을 육성하지 못하고 낭비적인 지출과 소모적인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국가간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데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소수의 수출산업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것도 불안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미래의 경제 여건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잠재적으로 이룰 수 있는 평균 성장률은 5~6%에 이를지 모르지만 외부 충격에 흔들릴 위험도는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높아졌다. 경제 개방의 여파로 경기순환적인 위험이 국제적으로 전파되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 아니라 정치 민주화로 사회적 갈등에 따른 위험도 현저하게 커졌다. 예전 같으면 일시적인 충격으로 끝나던 사건이 경제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위험을 흡수해야 하는데 그 수단은 재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재정의 건전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3/5
글: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jjun@ewha.ac.kr
목록 닫기

남미형 몰락 피하려면 재정개혁부터 시작하라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