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입력2004-07-29 19: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스크린 속의 그녀는 착하지 않다. 한 평론가는 강수연을 가리켜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작은 입술의 틈새를 거부할 수 없는, 독거미 여인’이라고 평한다.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정난정의 옷을 입은 이 배우는 직업도 정조도 상관없다는 듯, 오직 성공을 위해 독하게 남자들을 쥐고 흔든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그녀의 별명도 ‘독종’이다. 왜 그녀의 이미지에는 이토록 ‘독’의 향기가 충만한 것일까. 이 사람이 내뿜는 그 독한 향기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사실 강수연은 우리들의 누이나 어머니이기에는 언제나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초창기 ‘W의 비극’이나 1997년작 ‘깊은 슬픔’에서 드물게 멜로 연기를 펼친 적이 있지만, ‘깊은 슬픔’은 3만의 관객도 채우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객들은 고개 숙인 그녀를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수연의 ‘독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신감이고 자존심이고 당당함이고 자유분방함이고 섹시함이고 간교함이며 위험함이다. 그것은 또한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함과 집념이며 남성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성취 지향성이다.

    강수연의 이런 이미지는 1980년대 여성관객에게는 대리만족의 쾌감을, 남성관객에게는 도발적인 매혹의 자장을 형성했다. 무엇보다도 스크린 속의 그녀는 섹시했고 섹스했다. 이 점이 흔히 ‘섹시하지만 섹스하지 않는’ 다른 여배우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강수연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욕망을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 표리부동하지 않다는 점, 억압적인 시대상황에도 일관되게 ‘성(性)’과 ‘성차(性差)’를 매개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는 탈근대적 모습을 보여준 여배우가 바로 강수연인 것이다.

    그녀는 타임머신을 타고 전근대적인 조선시대로 돌아가 설 때도 여타의 여배우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씨받이’나 ‘감자’ 같은 사극에서 그녀는 무자비한 폭력에 가까운 첫 성관계 후 오히려 그 성관계를 즐기게 되고 마침내 남성들에게서 자신의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씨받이’의 옥녀는 본처를 제치고 일시적으로나마 남성의 사랑을 받아내고 ‘감자’의 복녀는 성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남편을 부양한다.

    결국 사랑과 성을 같은 것으로 느끼며 남정네의 사랑을 갈구하다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끝내고 마는 영화 속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강수연이 뿜어내는 독기가 자신에게 향할 때나 그 욕망이 좌절될 때 그것은 곧 스스로에게 더 깊은 내상을 입히는 치명적인 독(毒)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강수연의 독기가 현대라는 양지에서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을 때 그녀가 가진 욕망의 적극성은 훨씬 밝은 색채, 가벼운 부력을 등에 업고 지상으로 뛰쳐나온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발랄한 간호사, 결혼을 거부하는 ‘그대 안의 블루’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의 여대생 미미 등은 발랄함과 귀여움을 갖춘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이미 2000년대 여성의 한 단면을 예언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른 이의 시선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남성을 주도하며 남성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선언하는 이 시기 강수연은 미국 TV시리즈물 ‘섹스 앤 시티’를 보며 열광하는 2000년대 여성과 분명 닮아있다. ‘섹스 액트’가 아닌 ‘섹스 토크’로 욕망을 분출하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호정처럼.

    그러나 2004년 어느 여름날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말하는 그런 여성이었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던 격렬함이 기화해버린 편한 얼굴의 그녀는 미국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빛나는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휘어잡은 베티 데이비스지만 평상시에는 동네 주민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평범한 모습으로 다녔다고 한다. 부산영화제에서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만인의 시선을 끌던 여배우 강수연. 그러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강수연은 이제까지 만난 여배우 중 낙폭이 가장 컸다.

    그리하여 필자는 1966년에 태어나 백말이라는 운명의 별자리를 가지고 한세상을 살아간 이 여배우에게 가장 적합한 말은, ‘독기’가 아니라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제목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느낀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므로 필자는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섹시한,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압도적인 스크린 퀸의 모습을, 그 희귀한 전통을, 그녀라면 세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콤플렉스, 조그만 입술

    -화면으로 보면 강수연씨 입술이 너무도 섹시하거든요. 키스하고 싶은 입술이라고 할까. 실제로는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평범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상하리만큼. 카메라가 사랑하는 얼굴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실제로 보면 별로 섹시하지 않죠. 입술은 아버지를 닮았는데, 예쁘다거나 섹시하다는 말을 떠나서 모양이 특이해요. 립스틱을 바르면 도드라져 보이죠. 저는 실은 입술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어요. 변화가 불가능하거든요. 입술이 조그맣게 톡 튀어나오고 웃으면 양볼에 보조개가 들어가죠. 이 뚜렷한 이미지가 배우로서 얼마나 취약한 조건인지 몰라요. 헤어스타일이나 옷이나 화장색을 어떻게 바꾸든 변화가 참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얇고 긴 입술이 너무 부러웠어요. 예전에는 제 입술을 몹시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냥 제 일부로 받아들여요.”

    -굳이 햇수로 따지자면 올해로 데뷔 몇 년째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어느 시점부터 따져야 할지 불명확한 거죠. 제가 네 살 때부터 연기를 했거든요. 입을 떼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 앞에 섰어요. 그런데 솔직히 내 의지로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그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공백이 없었으니까요. 누가 ‘몇 년 되셨어요?’ 하고 물으면 좀 창피해요. 그냥 오래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그렇게 얘기하죠.

    어릴 때는 지금보다 50배쯤 바빴어요. 아역배우가 참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무렵 어린이영화가 붐이었거든요. 그때만큼 어린이영화를 많이 찍었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방송도 그래요. TBC에서 방영한 ‘똘똘이의 모험’이 어린이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만들었죠.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 내내, 중학교 때까지 어린이물을 찍었어요. 어린이잡지, 어린이신문에도 단골 모델이었고요.

    그런데 그 시절에 찍은 작품들은 대부분 기억이 희미해요. 한번은 집에서 식구들이랑 TV를 보고 있는데 문희 선생님이 나오는 옛 영화를 보여주데요. 그런데 문희 선생님이 안고 있는 애를 보고 어머니께서 ‘저거 너 아니니?’ 하시더라고요. 보니까 맞아요. 나예요. 아무리 단역이라지만 전혀 기억이 없었거든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웃음)”

    -어린 나이에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떻던가요?

    “저한테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네 살 때부터 연기를 했으니 오히려 당연하죠. TV나 영화가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어느 날 거기에 나오게 됐다면 특별한 기분이 들겠지만, 저는 제가 당연히 TV에 나와야 되는 줄 알고 잘해야 하는 줄 알고 그랬어요. 함께 일하는 어른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면 그게 마냥 듣기 좋은 그런 나이잖아요.

    어린이드라마를 녹화하고 있을 무렵인데, 아역 배우들이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녹화를 했어요. 저는 토요일, 일요일에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 처음으로 파업이라는 게 일어나서 녹화가 없다는 거예요. 뭘 할까 계속 고민하다가 친구들이랑 인형옷을 사러 명동 백화점에 갔어요. 그런데 명동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공포감 같은 게 확 밀려오는 거예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죠. ‘왜 이래, 왜 이래’ 하면서 벌벌 떨었어요. 길거리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걸 처음 본 거죠.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으니.

    또 한번은 길을 가는데 아는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멈춰 서는 거예요. 정말 딱 멈추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옆에 있는 가게로 뛰어들어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국기하강식이었던 거죠. 나오는 노래는 애국가였고. 그때만 해도 국기하강할 때 길을 걷던 사람도 모두 섰잖아요. 제가 그러고 살았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죠.”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혼자 자란 사람 같아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설마 혼자 자라기야 했겠어요? (웃음) 하지만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저 영화촬영장이나 방송국 안에서 생활을 했으니까 그들 전체로부터 영향을 받았겠죠. 어떤 동경의 대상을 세워두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어린 시절에는 놀이터가 촬영현장이었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이 전부였으니까 그런 분위기나 환경이 영향을 미쳤겠죠.”

    TV에 나오는 게 당연한 아이

    -그 외에는 세상을 충분히 경험할 기회가 적었군요.

    “적었다기보다는 전혀 없었죠. 갇힌 사회에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영화사 제작부장이 현장으로 배우를 데리고 다녔거든요. 저는 아이니까 그냥 달랑 집어가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시간합의 봐 가면서. 내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난 후에야 그런 기회가 생겼죠. 성인 연기를 한 첫 작품은 ‘W의 비극’이었어요. 그때 고3이었는데 대학생 역을 했죠. 영화 홍보문구도 ‘강수연의 첫 성인연기’ 그렇게 나갔죠. 갑자기 하이틴에서 성인으로 뛰어올랐어요.”

    -청소년기에는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연기를 하지만 나중에는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아마 성인 역할로 변신할 무렵에 연기를 계속할 것이냐는 문제로 고민이 깊었을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고민 많이 했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예요.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할 게 없더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뭘 할 수 있는지 아는 게 없는 거죠. 한 1년쯤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연기라는 거였죠. 제가 영화광이에요. 배우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극장 앞에만 서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그래서 이제부터 연기를 좀 제대로 해 보자, 그렇게 마음먹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TV 출연을 안 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이 영화라면 제대로 배우자고 결심한 거죠. 그래서 ‘W의 비극’부터 한 20년 동안 오로지 영화만 했어요. 그러다가 ‘여인천하’로 TV에 다시 출연했죠. 어릴 때는 연극도 많이 했어요.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했죠. 그러다가 역시 영화에 집중하면서 한참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죠. 영화연기와 TV연기와 연극연기는 180도 다르지만 셋 모두를 해보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죠. 저는 무대연기를 좋아해요. 지금도 하고 싶어서 연극 대본을 검토하고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보약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대에 서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2001년작 TV드라마 ‘여인천하’

    TV는 정말 힘들어요. 매체 자체가 재미없는 게 아니라 촬영환경이 너무나 안 좋아요. 하루에 40신씩 찍다 보면 빵공장에서 빵 찍어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연기 기술자가 되는 느낌이죠. TV 배우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어쨌든 TV는 정말 재미없어요.”

    보약과 같던 연극

    -친구들의 질투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여고를 나왔으니까. 사춘기 시절이 궁금합니다.

    “불행했죠. 평생 사랑과 질투를 한꺼번에 받는 느낌 있잖아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친구를 잘 못 사귀어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어요. 대신 한번 사귄 친구는 오래가죠. 제 친구들은 모두 이십년 지기예요, 남자건 여자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도 쉬지않고 연기를 해온 셈인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슬럼프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나요.

    “저는 계속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제 의지로 연기를 하면서부터는 계속 슬럼프였어요. 꽤 열심히 연기를 했지만 항상 그만두고 싶었어요. 이제는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안 하죠. 이건 그냥 해야 되는 건가 보다, 그렇게 마음을 바꿨죠. 제 성격이 배우란 직업과 맞지 않는 면이 참 많아요. 특히 연기 외적인 문제로 인해 참 많이 힘들었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1987년작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고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죠.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의 일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좋고요. 그런 점 외에는 별로예요. 촬영장에서 연기만 하고 그 사람들만 만났으면 좋겠는데,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거든요. 영화 홍보며 인터뷰며. 성격 탓에 제가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그런 일에 부족해요. 10분의 1도 안 하는 편이죠. 사람들이 나를 어떤 정형화된 모습으로 대한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어요.”

    -원래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그런 건가요. 겉으로 보기에는 외향적인 면도 강한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노력해서 많이 고쳐진 거예요. 어릴 때는 누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했어요. 내가 입을 열면 어른들이 ‘어머 너 말하네’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춘기가 지나 성인이 되어 내 갈 길을 챙겨야 하니까 자연스레 바뀌었을 뿐이죠. 원래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잖아요. 여자가 자기 일을 갖고 주관대로 충실히 해내려면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죠. 그래서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어요.”

    “연기는 이해를 표현하는 것”

    -이제 성인이 된 이후의 영화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강수연이라는 연기자가 어느 날 갑자기 화장을 짙게 하고 나타나 연기한 베드신이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 가지 유형의 역할을 했었죠. 초창기 역할 중 하나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의 발랄한 여대생이었죠.

    “특별히 성인으로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초등학교 때는 초등학생 역할을 하며 어린이영화에 나가고 중고생 때는 중고생 역할을 하며 하이틴 영화나 ‘고교생 일기’ 같은 드라마를 찍다가 스물이 넘어 성인영화를 했을 뿐이에요.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1986년작 ‘씨받이’(좌), 1998년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우).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성인연기를 하는 것은 당연했죠. 성인연기의 기준이 베드신이라면, 고등학교 다니면서도 언제든 할 수 있었지만 맞지 않아서 안했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W의 비극’ 개봉 후에 신문을 보니 ‘강수연이 옷을 벗었다’는 둥 ‘본격적인 성인연기를 선보인다’는 둥 베드신에 초첨을 맞춰 굉장히 낯설었어요. 왜 이런 게 이토록 주목을 받는지 알 수가 없었죠.”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는 박중훈씨와 함께 출연했습니다. 당시의 다른 하이틴물과는 달리 이규형 감독이 발랄한 청춘물을 만들겠다고 시도한 영화였죠. 분명히 이전의 ‘병태와 영자’보다는 훨씬 가벼웠습니다.

    “출연제의를 받기 전에 이규형 감독이 직접 쓴 ‘청춘스케치’라는 소설을 읽었어요. 깔깔거리며 읽고는 치워버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온 거예요. 영화사에 가서는 이 감독님한테 ‘나 그 책을 읽었는데요, 재미는 있지만 한 번 읽고 버렸어요’하고 말했죠. 감독님이 막 웃으시죠. 세상에 그렇게 당돌한 애가 어디 또 있었겠어요. 제가 예전에는 그랬어요.”

    -이후에 찍은 영화 ‘감자’에서는 충청도 사투리를 썼습니다. 캐릭터가 많이 변하는 역이었죠.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다가 일본인 염전 관리인에게 몸을 주고 난 뒤에는 적극적으로 변해서 남편을 구박하고, 심지어 왕서방이라는 중국인에게 사랑을 느껴 결국 그에게 낫을 들고 대드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비교적 어린 나이였는 데도 변화를 역동적으로 소화해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매번 받는 질문이지만 답은 간단해요. 그 인물에 가장 솔직하게 다가가는 거죠. 먼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게 가장 큰 숙제죠. 연기는 그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고요. 내가 그 인물에 얼마나 깊이 다가가느냐가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아요. 솔직하게 다가가서 이해가 되면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죠. 캐릭터에 따라서는 그 역할을 실제로 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겠죠. 예를 들어 ‘아제아제 바라아제’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 촬영 전에 실제로 절에 들어가서 6개월을 살았어요.

    그런 체험은 특이한 직업이나 상황이 설정된 역할에만 가능하죠. 다른 경우에는 간접경험을 할 수밖에 없어요. ‘씨받이’를 찍을 때는 출산 관련 다큐멘터리를 죄다 모아서 봤어요. 애 낳은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그때 내 나이 스무 살이에요. 아이를 낳는다는 게 상상이 안 가죠. 그렇지만 그 작품에서 출산신은 영화 전체의 관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임권택 감독이라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는 당시 나왔던 여성 수난사를 주제로 한 영화들과 달리, 아름다운 영상과 단아한 화면짜기로 ‘시대’를 비판한 사극이다. ‘죽은 자가 산자보다 더 대접받던 시절’이라는 타이틀이 말하듯, 이 영화에서 죽음과 삶의 이미지는 내내 공존한다.

    씨받이 옥녀는 그 씨를 받아야 하는 대상인 상규와의 만남이 제지되자, 뒤뜰에서 몰래 정사를 벌이는데 이때 한켠에서는 양반들이 제사에 관한 미덕을 시조 외듯 읊는다. 후사(後嗣)나 대를 잇기 위한 남성적 질서의 출발이 오히려 죽음의 세계에서도 삶을 연장하기 위한 강박임을 영화는 은밀히 고발하는 것이다. 장엄한 제사의식으로 시작해 씨받이의 자살을 담담히 비추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산 자의 머리 위에 덮인 질식할 듯한 죽음의 공기, 억압적인 관습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씨받이’를 찍기 전에는 임권택 감독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열렬한 팬이었어요. 임 감독님이 만든 영화를 다 봤죠.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이건 완전히 섹스 영화예요. 그때는 지방배급 때문에 시나리오를 일부러 그렇게 쓰는 일이 있었거든요. 시나리오만 봐서는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닌데, 감독이 임권택이란 말이에요. 결국 감독을 믿자고 결정하고 첫 촬영날 나갔더니 감독님이 ‘시나리오는 잊어버려라, 아예 보지도 마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영화는 시나리오 없이 찍었어요.

    출산신은 ‘씨받이’에서 가장 공들여 찍은 장면 중 하나예요. 영화진흥공사에 세트장을 지어놓고 그 10분 남짓한 장면을 일주일 동안 찍었거든요. 분량도 많고 상황도 다양했거든요. 아이 낳는 과정을 쭉 찍은 게 아니라 커트마다 다 세팅을 새로 하고 찍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 작품이 국내영화제가 아닌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외국 사람 눈에 그런 게 새롭게 보였겠죠. 국내에서는 오히려 흥행이 안 됐어요. 개봉하고 나서 극장에 가보니까 저까지 딱 네 명 앉아 있는 거예요. 다른 세 명은 중년 여자들이었는데 그나마 영화 중간에 애 낳느라 소리지르는 장면이 계속되니까 나가버리더라고요. 결국 2층 객석에서 나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끝까지 버티고 봤어요. 비참했죠.

    영화가 어떻다, 연기가 어떻다는 얘기도 개봉 당시엔 거의 못 들었어요. 어쩌면 그 나이에 옷을 훌훌 벗고 섹스신이나 출산신을 그렇게 능청스럽게 찍었냐는 이야기만 들었죠. 한마디로 에로배우 취급을 당한 거죠. 크게 상심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바다 건너서 수상소식이 날아든 거예요. 우리가 기획한 것도 아니고 의도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수상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갑자기 내가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가 되더군요. 하루아침에 모든 게 변해버리는 현실에 더 상처를 받았어요.”

    베니스와 모스크바

    -개인적으로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목을 매 죽는 신입니다. 그걸 발만 나오게 찍었죠. 전체적으로 곳곳에 촬영미학이 숨겨진 작품이었다고 봅니다.

    “원래 처음 콘티는 얼굴이며 전신이 다 나오도록 찍는 거였어요. 새벽부터 잠도 못자고 허옇게 분장하고 앉아있는데 감독님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발만 찍어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럴 거면 아무 발이나 찍으면 되지…. (웃음) 한참을 툴툴거렸죠.”

    -임권택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떻습니까.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함께하셨는데요.

    “저는 임 감독을 존경해요. 그냥 어른 같아요, 인간적으로. 배우 입장에서 보자면 연기지도를 가장 쉽고 간결하게 하는 감독이에요. 어눌하지만 단어선택이 기가 막혀요. 짧고 간결하고 강하게 한마디로 설명하고 넘어가거든요. 신인이든 중견이든 그분과 연기를 하면 자기의 최대치가 나옵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끄집어낸다고나 할까.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요.”

    -베니스영화제 시상식에 못 가셨죠? 세상은 요란했는데 정작 본인은 담담하셨나 봐요. 당시 대단했었죠.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도 그때 붙게 된 거고요.

    “못 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몰랐죠. 삼척에서 촬영하던 중에 연락을 받았는데 제 첫마디가 ‘왜? 나를 왜 줘?’였다니까요. 그때까지 해외영화제는 딴세상 일이었던 거죠. 다들 베니스영화제가 뭐냐고 묻던 시절이니까. 그 뒤부터는 모두들 너무너무 정신없이 굴더라고요. 여기저기 행사에 끌려다니고 일도 많아지고 방송이란 방송엔 죄다 나가고.”

    -2년 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는 어땠나요. 그때는 삭발한 게 대단한 화젯거리였는데요. TV에서 기자가 삭발식에 찾아가 기분이 어떤지 묻던 게 기억 나네요.

    “처음 영화사에 갔더니 감독님이나 제작자가 ‘머리를 깎아야 되는데…’ 그러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단순한가 하면 삭발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물론이죠, 가발로는 안 돼요’하고 대답해버렸거든요. 퍼머머리나 커트머리로 바꾸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몰랐죠. 촬영중에는 내가 진짜 승려가 됐다는 착각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냈는데 정작 영화를 끝내고 나니까 알겠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걸.

    머리가 자라나는 2년 반 동안 한 작품에도 출연하지 못했어요. 태어나서 한번도 삭발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되는지를 몰랐던 거죠. 감독이나 제작자는 뻔히 아니까 걱정스레 물었던 거고. 다행히 CF 출연 제의는 면도칼이 아니라 화장품업체에서 들어왔지만.”

    -모스크바에는 직접 상을 타러 가셨죠. 그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수상 여부를 확실히 모르니까 몹시 불안했어요. 서울에서는 당연히 상을 받을 것처럼 법석을 떠는데, 그건 모르는 거잖아요. 시상식 두세 시간 전에야 통보해주니까. 막상 가서 보니 반응은 좋았지만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어요. 상을 못 타는 줄 알고 시상식 전날 밤에 대책회의까지 했다니까요. ‘창피해서 김포공항에 비행기 타고 가기는 글렀고, 일본에서 부산행 배를 타고 가야겠다’고요. 수상 통보를 받고 나니 다행이다 싶은 마음뿐이어서 감격이니 영광이니 그런 걸 느끼지도 못했어요.”

    -결국은 비행기 타고 귀국하셨군요.

    “퍼스트 클래스로 왔죠. (웃음) 그렇지만 솔직히 출연료가 올랐다는 것 외엔 수상이 별 도움이 되지못했어요. 무슨 얘기냐면 수상이 제겐 큰 부담이었던 거죠.”

    -1990년대 들어서는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이 눈에 띕니다. 속물적인 욕망이 강한 J라는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하일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경마장 가는 길’은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R과 그의 도움으로 학위를 받은 J의 애정행각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 가는 인물들의 위선과 지식인의 속물근성을 그대로 까발린 장선우의 화제작이다. ‘너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냐?’ 같은 문어체적인 대사, 끊임없이 계속되는 R과 J의 말싸움 속에는 지리멸렬한 탈근대를 질주하는 동시대인의 초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주인공 R은 애인인 J가 사는 서울과 아내가 사는 대구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는데 이는 마치 전근대와 탈근대의 자장을 오가는 하나의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장선우 감독은 독자에게 소설로부터 끊임없이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하일지의 작법을 영화에 이식해, 마치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듯한 삼인칭화자의 카메라를 활용한다. 홍상수 이전에 이미 한국영화에 포스트 모던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포스트모던, 하일지, 유영길

    “모스크바영화제 참석차 출국하는 날 장선우 감독님이 소설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하시더군요. 작가에 대한 기본상식도 없이 그냥 받아 들고 비행기를 탔어요. 앉아서 책을 펼쳤다가 딱 세 페이지를 읽고 덮어버렸어요. 도대체 뭐 이런 걸 영화로 만들려고 그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도착하고 나서 모스크바 호텔방에 앉아있다가 편한 마음으로 다시 펴보니 이번에는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일지라는 작가에 대한 미움이 막 샘솟더라고요. 주인공 R이 하일지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 작가가 자기 얘기를 쓴 거야’ 그러면서. 나중에 알고보니 전혀 아니었지만. (웃음)

    여하튼 그렇게 재미있게 읽고 나서는 서울로 전화를 걸었죠. 서울에 돌아가자마자 촬영장에 나가겠다고. 당시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서울에 전화를 걸려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이 배역을 채갈까봐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이 작품에서 강수연씨는 ‘업’이나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의 무겁고 비극적인 역할을 벗어나 새로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등장인물을 클로즈업 하기보다는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는 카메라 구성이 배우들로 하여금 연기를 할 여지를 주었죠.

    “돌아가신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워낙 대단하셨어요. 그 영화는 대부분 장면을 방 안에서 촬영했거든요. 두 사람이 방 안에서 옥신각신 싸우는 장면이 많았죠. 지금 같으면 근사하게 세트를 짓고 찍었겠지만 그때는 변두리를 돌면서 다방만 찾아다녔어요. 다방이 대개 지하에 있고 비좁잖아요. 거기에 카메라 이동용 레일을 설치해서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을 잡아내는 기법이 탁월했어요.

    J라는 인물도 참 마음에 들었어요. 분명 위악성이 있는 여잔데, 그것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그 위악성을 너무나 창피해하면서도 그걸 무마할 만한 그런 그릇도 안 되고. 항상 자기를 들키잖아요, R이라는 인물한테. R은 그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이 여자에게 연연하고. 정상적이거나 도덕적인 여자는 아니지만 제 눈에는 그게 그렇게 귀여워 보였어요.”

    -1990년대 출연작을 살펴보면 지금은 거장이 된 감독들과 많이 작업했습니다. ‘베를린 리포트’의 박광수, ‘지독한 사랑’의 이명세, ‘블랙잭’의 정지영,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임상수 등등. ‘그대 안의 블루’에선 디스플레이어라는 전문직 여성역을 맡았죠. 대단히 색감이 강한 영화였고요.

    “이현승 감독님은 색감에 예민해요. 전공도 미술이었죠. 보라색 와이셔츠를 입어라, 노란색 와이셔츠를 입어라, 이것저것 많이 챙기니까 머리도 아프고 짜증도 많이 났어요. 특히 이 감독과 촬영감독이 거의 매일 싸웠죠. 같은 노랑이어도 저 노랑이 아니니까 다 지은 세트를 부수고 다시 지으라는 데 누가 이해하겠어요. 현장의 색을 그렇게 중시하는 영화는 나로서도 처음이어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어요. 나중에 완성하고 나서 보니 감독의 의도에 좀더 맞춰줄 걸 그랬다 싶은 후회가 들더군요. 미처 의도를 알아채지 못 했다고 할까요.”

    -‘베를린 리포트’나 ‘웨스턴 애비뉴’는 해외로케이션을 통해 분단이나 이민 같은 주제를 다루었는데요,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강수연씨의 캐릭터는 그 안에서 정형화돼 있다는 느낌도 들고 감독이 의도한 어떤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네요. 모든 사람이 내게 바라는 모습, 내가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 거예요. 그건 한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더욱이 그 시절에는 영화에 다양성이 없었어요. 한 시기에 나오는 영화들이 죄다 비슷했거든요. 지금까지 언급한 제 출연작들도 그런 시대별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요. 그러니 정형화될 수밖에 없죠. 사람들도 거기에 익숙해 있고.”

    -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개인적으로는 강수연씨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입니다.

    “이명세 감독님은 인간적으로 정이 많아요. ‘지독한 사랑’ 시나리오를 갖고 오셨길래 읽어보니 그야말로 이 감독님 스타일이더군요. 남자배우로는 김갑수씨가 후보에 올랐죠. 제가 원래 ‘연극배우 김갑수’의 열렬한 팬이었거든요. 기회가 되어 함께 연기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차에 그분 얘기가 나오니까 너무 기뻤죠.

    하지만 촬영하면서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부산 광안리에 오픈세트를 지어놓고 촬영했는데 그 겨울바닷가가 좀 추워요? 엉성한 세트 외에는 구멍가게 하나 없었어요. 거기서 옷 벗고 베드신을 하려니 죽을 지경이죠. 그 와중에 입김 나온다고 얼음 물고 찍고.”

    -이명세 감독은 원래 판타지 영화에 강한데, 이 작품에서는 디테일에 집중한 흔적이 보입니다. 만화적이거나 연극적인 면도 있고요. 정사신을 잡을 때 희화화한다든가 하는….

    “배우의 동선 하나까지 챙기는 스타일이죠. 화면 안에서 배우가 완벽하기를 원해요. 그러니까 참 많이 부딪치게 되죠. ‘여기까지 다섯 걸음 반을 가서 한 박자 쉬고 또 여기로 움직여서…’ 그 정도로 세밀했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감성에 깊이 의존해서 오히려 리허설 때 진이 다 빠져버리는 식이죠.”

    -1997년작인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에서는 전형적인 팜 파탈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남자를 파멸시키는 캐릭터죠. 팜 파탈 연기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자기 주장이 강한 전문직 여성 역이 많았죠.

    정지영 감독의 필름 느와르인 ‘블랙잭’은 최민수, 강수연의 투톱에다, 섹스와 음모가 교차하는 축축하고 숨가쁜 이야기이다. 리얼리즘 계열의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정지영 감독이 ‘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 이후 모처럼 마음먹고 만든 상업영화였다.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보디 히트’를 연상케 하는 탄탄한 줄거리와 비정한 하드보일드풍의 품격은 ‘블랙잭’을 한국에서는 드물게 필름 느와르의 전통이 살아있는 본격적인 장르 영화로 만들었다.

    “여자는 섹스를 말하면 안 되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그 여자의 정형화된 캐릭터가 딱 그려지더라고요. 나쁘고 강하고 두뇌게임하는 여자. 너무 뻔한 역할, 누가 해도 똑같은 이미지밖에 안 나오는 역할이죠. 그런데 문득 실제로 그렇게 머리를 쓰는 여자라면 오히려 아주 여성스럽고 나약해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만 상대방으로부터 100% 신뢰를 얻고 절대 들키지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도 그런 여자들이 나중에는 배반을 하죠.

    그런 캐릭터 해석에서 감독과 기분 좋게 합의가 이루어졌어요. 그 연기를 하면서 항상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불쌍한 여자’라고 되뇌었어요. 실체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는. 그렇게 보이려면 내가 정말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연기해야죠.”

    -마지막으로 살펴볼 영화는 1998년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입니다. 처녀 셋이 모여 성에 관한 야한 대화를 주고받는 영화였죠. 거기서 맡은 역할은 유부남을 사랑하다가 감옥까지 가는,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였는데요. 뭐랄까, 예전에는 성적인 ‘액트’를 영화 안에서 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성적인 ‘토크’를 했단 말이죠.

    “임상수 감독의 데뷔작인데 직접 쓴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하겠다고 응했어요. 이전 한국영화에서 그런 식의 영화는 없었잖아요.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자친구끼리 모이면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누고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나이가 몇 살이든 결혼 안 한 여자에게는 도덕적으로 섹스가 인정되지 않잖아요. 결혼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거죠. 아무리 상관없이 살고 싶어도 사회가 그러니까 누구나 그에 대해 억압을 느끼죠. 어떻게 살든, 그 사람의 도덕성이 어떻든 간에. 그걸 대화로 푸는 거죠. 실제로 여자친구들을 만나면 이성이나 섹스가 대화의 주제가 될 때가 많아요. 그러니 그에 관한 영화도 재미있었죠. 촬영중에 나는 오히려 심도를 더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찍는 사람들이 겁을 내더라고요. 대사 중에 재미있는 게 ‘언제부터 검찰이 내 아랫도리를 관리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간통죄로 피소되고 나서죠. 그런 대사가 참 재미있었어요. 의외로 사람들도 재미있게 보더라고요.”

    -마치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그랬던 거겠죠.

    “더 재미있는 건 그때 임상수 감독이 총각이었다는 거죠. 지금은 결혼했지만. 총각감독이 이런 시나리오를 어떻게 썼냐고 물어보니 인터뷰를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인터뷰에서 나온 실제 이야기를 근거로 시나리오를 쓴 거죠. 그러니 그 시나리오를 읽는 저는 대사마다 맞다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때 내가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왜 결혼 안 한 여자들은 남자랑 섹스를 하려면 여관에 가야 되느냐는 거죠. 여관은 분위기 자체가 음침하잖아요. 그런데 영화든 소설이든 미혼 여자는 꼭 여관에서 섹스를 하죠. 사회적으로 오픈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제는 터놓고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제가 처음에 그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도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나는 관객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볼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죠.”

    노처녀의 전형(?)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겠습니다. 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잘 마신다고 들었습니다.

    “술로 누구를 이겨보려고 하지는 않아요. 대신 술 마시고 실수는 안 해요. 제가 정말 싫어하는 게 술 먹고 주정하는 것이거든요. 그 전까지만 먹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잘 놀아요. 컨트롤을 잘 하는 거죠.”

    -술조차 컨트롤하면서 마신다면 무엇으로 위로를 받죠? 스트레스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취미든 버릇이든 몰두하는 것이든.

    “꼭 뭐한테 위로를 받아야 할까요. 보통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일로 풀어요. 정말 취미는 없어요. 굳이 집중하는 것을 꼽자면 기르는 애완동물들일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죽 길러왔거든요. 죽으면 슬프지만 또 기르죠. 항상 있어야 되니까요. 언제나 연기를 해왔듯이 제 옆에는 항상 강아지가 있었어요. 지금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합해 세 마리가 있어요. 동물에게 점점 더 집착하게 돼요. 사실 이런 얘기는 창피해서 잘 안 하는데. 노처녀의 전형 같잖아요, 고양이나 안고 다니는. (웃음) 내가 봐도 그렇거든요.”

    -그런데도 외로워 보여요.

    “외로워 보인대요.”

    -예전 기사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동생 도시락을 싸주고 나서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술을 마신다고요. 그런 기사가 나가면 무척 외로워 보이잖아요.

    “요즘도 자주 그러는데요, 일이 없을 때는. 뭐 아침부터는 아닐 테고 점심 무렵에 친구들을 만나면 와인으로 시작해서 저녁 때까지 하루 종일 마시는 경우가 있죠. 외로워 보이려고 한 얘기는 아닌데, 재미있으려고 한 얘기인데 그렇게 보인다니까요. 다른 의미는 없어요. 제가 친구를 참 좋아하거든요. 정말 그러고 노는 날이 있어요, 하루 종일. 일 안 할 때 뭐하냐고 물어보면 뭔가 특별한 걸 대야 하는데, 그런 게 정말 없거든요. 평범하죠. 친구들이 저한테 ‘너는 배우라는 애가 왜 그러고 다니냐’고 할 정도로.”

    -화장도 잘 안 하시고요.

    “안 하죠.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뻔한 질문인데요, 그래도 그냥 묻겠습니다. 왜 혼자 사세요?

    “왜 혼자 사는지 나만큼 궁금한 사람이 있겠어요? 언제쯤 할지, 누구랑 할지 나는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나는 독신주의자가 아니거든요.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은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아무리 내가 혼자 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지금부터 둘이 살아야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인연인데.”

    너무나 끔찍했던 ‘여인천하’

    -스크린에서 받은 느낌만으로는 강수연씨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유분방할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다고 조용하고 차분하지도 않아요. 전혀 아니에요. 주장은 강하지만 그걸 마구 내세우지는 않아요. 누구보다도 내 주장대로 살고 있는 여자라고 생각해요. 타협하지 않고 내 주장대로 할 뿐이에요. 그렇다고 상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결정하면 그냥 해요. 결정이 옳든 그르든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답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나를 만나기 전에는 다들 무서워해요. 영화에서 본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큰일날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만나면 다르다는 거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불만은 없지만 실제의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압니다.”

    -최근 들어 배우 강수연의 이미지가 한 가지로 고정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듭니다. 특히 ‘여인천하’의 정난정 같은 캐릭터로 다른 동년배 배우들에 비해 활동도 뜸하고요.

    “나도 지금 내게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요. 너무 절실히 느껴서 작품도 안 하고 오랫동안 내 시간을 갖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해야겠다는 정답은 안 나오네요. 고민하다가 안 되면 떠나기로 마음먹겠죠.

    ‘여인천하’는 오랜만에 방송해보겠다는 욕심에, 지금쯤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욕심에 50회를 계약했어요. 4~5개월 분량이었죠. 그런데 상상외로 인기가 좋았어요. 그게 방송의 문제인데, 중간에 나 혼자 그만두겠다고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세상에, 그걸 장장 2년을 했어요. 200회까지 했으니까요.



    그 이미지 때문에 누구보다 마음고생한 건 저예요. 그 캐릭터도 너무 싫어요. 시청률이 높아 남들은 잘됐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바라던 건 그게 아니었거든요. 그 뒤로 방송에서 사극 섭외가 엄청나게 들어왔어요. 심지어는 연극 작품도 황진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버거운 역할만 들어와요. 내가 아무리 창작극이나 소극장 연극이 하고 싶어도 기획자나 연출자들이 나한테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서글프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