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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⑫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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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린 속의 그녀는 착하지 않다. 한 평론가는 강수연을 가리켜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작은 입술의 틈새를 거부할 수 없는, 독거미 여인’이라고 평한다.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정난정의 옷을 입은 이 배우는 직업도 정조도 상관없다는 듯, 오직 성공을 위해 독하게 남자들을 쥐고 흔든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그녀의 별명도 ‘독종’이다. 왜 그녀의 이미지에는 이토록 ‘독’의 향기가 충만한 것일까. 이 사람이 내뿜는 그 독한 향기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사실 강수연은 우리들의 누이나 어머니이기에는 언제나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초창기 ‘W의 비극’이나 1997년작 ‘깊은 슬픔’에서 드물게 멜로 연기를 펼친 적이 있지만, ‘깊은 슬픔’은 3만의 관객도 채우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객들은 고개 숙인 그녀를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수연의 ‘독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신감이고 자존심이고 당당함이고 자유분방함이고 섹시함이고 간교함이며 위험함이다. 그것은 또한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함과 집념이며 남성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성취 지향성이다.

강수연의 이런 이미지는 1980년대 여성관객에게는 대리만족의 쾌감을, 남성관객에게는 도발적인 매혹의 자장을 형성했다. 무엇보다도 스크린 속의 그녀는 섹시했고 섹스했다. 이 점이 흔히 ‘섹시하지만 섹스하지 않는’ 다른 여배우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강수연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욕망을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 표리부동하지 않다는 점, 억압적인 시대상황에도 일관되게 ‘성(性)’과 ‘성차(性差)’를 매개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는 탈근대적 모습을 보여준 여배우가 바로 강수연인 것이다.

그녀는 타임머신을 타고 전근대적인 조선시대로 돌아가 설 때도 여타의 여배우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씨받이’나 ‘감자’ 같은 사극에서 그녀는 무자비한 폭력에 가까운 첫 성관계 후 오히려 그 성관계를 즐기게 되고 마침내 남성들에게서 자신의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씨받이’의 옥녀는 본처를 제치고 일시적으로나마 남성의 사랑을 받아내고 ‘감자’의 복녀는 성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남편을 부양한다.

결국 사랑과 성을 같은 것으로 느끼며 남정네의 사랑을 갈구하다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끝내고 마는 영화 속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강수연이 뿜어내는 독기가 자신에게 향할 때나 그 욕망이 좌절될 때 그것은 곧 스스로에게 더 깊은 내상을 입히는 치명적인 독(毒)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강수연의 독기가 현대라는 양지에서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을 때 그녀가 가진 욕망의 적극성은 훨씬 밝은 색채, 가벼운 부력을 등에 업고 지상으로 뛰쳐나온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발랄한 간호사, 결혼을 거부하는 ‘그대 안의 블루’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의 여대생 미미 등은 발랄함과 귀여움을 갖춘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이미 2000년대 여성의 한 단면을 예언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른 이의 시선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남성을 주도하며 남성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선언하는 이 시기 강수연은 미국 TV시리즈물 ‘섹스 앤 시티’를 보며 열광하는 2000년대 여성과 분명 닮아있다. ‘섹스 액트’가 아닌 ‘섹스 토크’로 욕망을 분출하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호정처럼.

그러나 2004년 어느 여름날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말하는 그런 여성이었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던 격렬함이 기화해버린 편한 얼굴의 그녀는 미국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빛나는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휘어잡은 베티 데이비스지만 평상시에는 동네 주민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평범한 모습으로 다녔다고 한다. 부산영화제에서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만인의 시선을 끌던 여배우 강수연. 그러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강수연은 이제까지 만난 여배우 중 낙폭이 가장 컸다.

그리하여 필자는 1966년에 태어나 백말이라는 운명의 별자리를 가지고 한세상을 살아간 이 여배우에게 가장 적합한 말은, ‘독기’가 아니라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제목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느낀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므로 필자는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섹시한,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압도적인 스크린 퀸의 모습을, 그 희귀한 전통을, 그녀라면 세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콤플렉스, 조그만 입술

-화면으로 보면 강수연씨 입술이 너무도 섹시하거든요. 키스하고 싶은 입술이라고 할까. 실제로는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평범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상하리만큼. 카메라가 사랑하는 얼굴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실제로 보면 별로 섹시하지 않죠. 입술은 아버지를 닮았는데, 예쁘다거나 섹시하다는 말을 떠나서 모양이 특이해요. 립스틱을 바르면 도드라져 보이죠. 저는 실은 입술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어요. 변화가 불가능하거든요. 입술이 조그맣게 톡 튀어나오고 웃으면 양볼에 보조개가 들어가죠. 이 뚜렷한 이미지가 배우로서 얼마나 취약한 조건인지 몰라요. 헤어스타일이나 옷이나 화장색을 어떻게 바꾸든 변화가 참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얇고 긴 입술이 너무 부러웠어요. 예전에는 제 입술을 몹시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냥 제 일부로 받아들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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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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