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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⑫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도발적 매혹 강수연 “평생 받을 사랑과 질투, 한꺼번에 다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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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햇수로 따지자면 올해로 데뷔 몇 년째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어느 시점부터 따져야 할지 불명확한 거죠. 제가 네 살 때부터 연기를 했거든요. 입을 떼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 앞에 섰어요. 그런데 솔직히 내 의지로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그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공백이 없었으니까요. 누가 ‘몇 년 되셨어요?’ 하고 물으면 좀 창피해요. 그냥 오래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그렇게 얘기하죠.

어릴 때는 지금보다 50배쯤 바빴어요. 아역배우가 참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무렵 어린이영화가 붐이었거든요. 그때만큼 어린이영화를 많이 찍었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방송도 그래요. TBC에서 방영한 ‘똘똘이의 모험’이 어린이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만들었죠. 그렇게 해서 초등학교 내내, 중학교 때까지 어린이물을 찍었어요. 어린이잡지, 어린이신문에도 단골 모델이었고요.

그런데 그 시절에 찍은 작품들은 대부분 기억이 희미해요. 한번은 집에서 식구들이랑 TV를 보고 있는데 문희 선생님이 나오는 옛 영화를 보여주데요. 그런데 문희 선생님이 안고 있는 애를 보고 어머니께서 ‘저거 너 아니니?’ 하시더라고요. 보니까 맞아요. 나예요. 아무리 단역이라지만 전혀 기억이 없었거든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웃음)”

-어린 나이에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떻던가요?



“저한테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네 살 때부터 연기를 했으니 오히려 당연하죠. TV나 영화가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어느 날 거기에 나오게 됐다면 특별한 기분이 들겠지만, 저는 제가 당연히 TV에 나와야 되는 줄 알고 잘해야 하는 줄 알고 그랬어요. 함께 일하는 어른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면 그게 마냥 듣기 좋은 그런 나이잖아요.

어린이드라마를 녹화하고 있을 무렵인데, 아역 배우들이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녹화를 했어요. 저는 토요일, 일요일에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 처음으로 파업이라는 게 일어나서 녹화가 없다는 거예요. 뭘 할까 계속 고민하다가 친구들이랑 인형옷을 사러 명동 백화점에 갔어요. 그런데 명동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공포감 같은 게 확 밀려오는 거예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죠. ‘왜 이래, 왜 이래’ 하면서 벌벌 떨었어요. 길거리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걸 처음 본 거죠.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으니.

또 한번은 길을 가는데 아는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멈춰 서는 거예요. 정말 딱 멈추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옆에 있는 가게로 뛰어들어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국기하강식이었던 거죠. 나오는 노래는 애국가였고. 그때만 해도 국기하강할 때 길을 걷던 사람도 모두 섰잖아요. 제가 그러고 살았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죠.”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혼자 자란 사람 같아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설마 혼자 자라기야 했겠어요? (웃음) 하지만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저 영화촬영장이나 방송국 안에서 생활을 했으니까 그들 전체로부터 영향을 받았겠죠. 어떤 동경의 대상을 세워두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어린 시절에는 놀이터가 촬영현장이었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이 전부였으니까 그런 분위기나 환경이 영향을 미쳤겠죠.”

TV에 나오는 게 당연한 아이

-그 외에는 세상을 충분히 경험할 기회가 적었군요.

“적었다기보다는 전혀 없었죠. 갇힌 사회에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영화사 제작부장이 현장으로 배우를 데리고 다녔거든요. 저는 아이니까 그냥 달랑 집어가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시간합의 봐 가면서. 내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난 후에야 그런 기회가 생겼죠. 성인 연기를 한 첫 작품은 ‘W의 비극’이었어요. 그때 고3이었는데 대학생 역을 했죠. 영화 홍보문구도 ‘강수연의 첫 성인연기’ 그렇게 나갔죠. 갑자기 하이틴에서 성인으로 뛰어올랐어요.”

-청소년기에는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연기를 하지만 나중에는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아마 성인 역할로 변신할 무렵에 연기를 계속할 것이냐는 문제로 고민이 깊었을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고민 많이 했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예요.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할 게 없더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뭘 할 수 있는지 아는 게 없는 거죠. 한 1년쯤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연기라는 거였죠. 제가 영화광이에요. 배우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극장 앞에만 서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그래서 이제부터 연기를 좀 제대로 해 보자, 그렇게 마음먹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TV 출연을 안 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이 영화라면 제대로 배우자고 결심한 거죠. 그래서 ‘W의 비극’부터 한 20년 동안 오로지 영화만 했어요. 그러다가 ‘여인천하’로 TV에 다시 출연했죠. 어릴 때는 연극도 많이 했어요.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했죠. 그러다가 역시 영화에 집중하면서 한참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죠. 영화연기와 TV연기와 연극연기는 180도 다르지만 셋 모두를 해보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죠. 저는 무대연기를 좋아해요. 지금도 하고 싶어서 연극 대본을 검토하고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보약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대에 서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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