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주장하는 재정학자가 있다길래 그를 만나러 갔다. 이철성(李喆晟·75) 박사다. 처음 들어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았다.
“6·25 전쟁 때 군량미와 구호미를 조달할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현물세인 토지수득세란 걸 거뒀거든요. 당장 사용할 식량이 아쉬웠으니까. 그런데 공약대로 휴전 후에는 폐지했어야 하는데 현물이 들어오는 재미에 그대로 뒀거든요. 수백만 농민과 그 자손들이 이것 때문에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감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어요. 그 현물세만 없었어도 우리 농민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으로 쫓겨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 들어보자.
“민주당 정권도 신구파 싸움을 그만두고 3·15 부정선거의 원흉과 부정축재자들을 신속하게 처벌했더라면, 그래서 그들의 재산을 세금으로 환수했더라면 군부는 5·16 군사정변을 일으킬 명분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에 간 것도 따져보면 부가가치세 때문이에요. 박 대통령이 17년 동안 침식(寢食)을 잊다시피 하며 고민한 것이 중화학공업 육성과 부가가치세인데, 부가가치세를 남징(濫徵)했어요. 그게 부산 국제시장 상인들에게 사무친 반감을 자아내 시민봉기를 일으킨 것이 부마항쟁이라고요. 부마항쟁이 없었다면 차지철이 그렇게 날뛰지 않았을 것이고 김재규가 총을 쏠 명분도 없었겠지요.”
그는 재정학(財政學)을 ‘세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세금은 거두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렵다. 쉽게 거둬 쉽게 쓰는 게 세금인 줄 알았다간 반드시 국민에게 보복을 당한다고 경고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정치사라는 것이다.
“원래 세금은 곡식을 뜻하는 ‘벼 화(禾)’변에 기쁨을 뜻하는 ‘태(兌)’자를 합쳐서 만든 말이거든요. 1년 농사를 끝낸 농부가 신에게 수확을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제단에 바치는 제물, 그게 바로 세금의 원형이에요. 우리 국민은 올 한 해 좋건 싫건 한 사람당 465만원의 세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건국 이래 가장 무거운 세금입니다. 그런데 공무원 수는 2만명이나 늘었고 장관급 자리가 148개나 된다잖아요. 이거 큰일난 거 아닙니까. 세금을 겁 안내면 안 됩니다. 임자 없는 돈이 세금인 줄 알다간 큰코다친다고요.”
국가재정과 관련해서 생겨나는 수많은 낭비와 허비를 이제는 국민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게 바로 납세주권운동인데, 세금 낸 사람이 자기가 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낭비되지 않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자는 것이다.
“물론 세금 없이는 나라 살림을 할 수 없지요. 그러나 과세(課稅) 기술을 발휘해서 세금을 거둬야지, 무조건 걷을 수는 없다고요. 과세 기술은 가능한 한 잡음 없이 오리의 깃털을 뽑는 것과 같거든요. 껍질에 손대면 오리는 펄쩍 뛰면서 꽥꽥거려요. 자칫하면 오리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오리가 아프지 않게, 살살 털을 뽑는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