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집 아듀! 월드컵

한국대표팀 선수, 코치들이 들려준‘축구전쟁’뒷이야기

“아드보카트는 덜 영리해요, 속이 다 보이거든요”

  • 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riveroflym@hanmail.net

한국대표팀 선수, 코치들이 들려준‘축구전쟁’뒷이야기

2/6
박지성의 반성처럼 그날 플레이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었을까. 축구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11명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경기가 제대로 된다. 그러나 한국대표팀에서 박지성이 차지하는 비중과 실제 경기장에서의 의존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박지성이 아무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뛰어다니고 중앙으로 열심히 패스를 찔러준다 해도 다른 선수들과 손발이 맞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세 경기에서 종종 노출됐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앙에 선 원톱의 머리를 향해 줄기차게 패스를 날리는 박지성은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대 수비수들의 거친 태클과 집중견제의 대상이 되다 보니 박지성처럼 그라운드에서 빈번히 넘어진 선수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부담과 스트레스였다. 축구팬, 기자, 심지어 대표팀 후배들까지 박지성의 발끝만 쳐다보며 선전을 기대했고 당부했다. 특히 병역면제 혜택을 간절히 소원하던 후배들은 그를 볼 때마다 “저희는 형의 다리만 믿겠습니다”라며 본의 아니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 박지성 혼자 뛰는 팀이 아닌데도 자신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현실이 스물다섯 살 청년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박성종씨는 독일월드컵 직전에 이렇게 하소연한 바 있다.

“My English is bad”

“지성이가 많이 힘든 모양이다. 평소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애인데 이번엔 ‘좀 힘들다’고 하더라. 4년 전에는 워낙 난다 긴다 하는 선배가 많아 배운다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월드컵을 치렀는데, 이번엔 너무 큰 임무가 주어지다 보니 이래저래 어깨가 무거운 것 같다.”



그러나 박지성은 그라운드에서 몸을 불살랐다. 상대 수비수의 숱한 태클과 반칙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토고전이 끝난 뒤 박지성은 월드컵 첫 경기를 마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패한 뒤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어떻게 게임을 풀어가야 하는지를 알았어요. 오늘 경기에서 세 개의 포지션을 소화한 것 같습니다.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판타스틱한 골들이 터져서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녔어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를 즐기지도, 재미있어 하지도 않던 박지성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만난 그는 4년 전에 비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다. 선수들의 공식 인터뷰가 있을 때 박지성은 영어와 우리말로 수많은 기자를 상대한다. 옆에서 듣기엔 우리말로 하는 것보다 영어 표현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한번은 프랑스 기자가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그동안 한국 기자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숱하게 들었던 박지성이 어떻게 대답할지 시선이 쏠렸다. 박지성은 이렇게 재치 있는 멘트를 날렸다.

“My English is bad!”

박지성의 발전은 선수들에게도 묘한 자극을 주었다. 선배들은 후배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4년 전보다 두세 계단은 업그레이드된 플레이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박지성과 의형제처럼 지내는 김남일(29·수원 삼성)은 박지성의 존재 자체가 대표팀에 큰 힘이 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남일은 “역시 선수는 큰물에서 놀아야 하나 보다. 지성이가 몰라보게 발전해서 돌아왔다. 그 친구 때문에 덩달아 나도 열심히 하게 된다”면서 후배의 성장을 대견해했다.

박지성은 스위스전이 끝난 뒤 주심의 석연치 않은 오프사이드 판정에 대해서 다른 선수들이 감정적인 멘트를 쏟아낸 것과는 달리 “심판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며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동료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가운데 그런 ‘소수 의견’을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박지성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누나, 뭔가 터질 것 같아”

“천수, 어때?”

“(물) 올랐어. 뭔가 터질 것 같아.”

2/6
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riveroflym@hanmail.net
목록 닫기

한국대표팀 선수, 코치들이 들려준‘축구전쟁’뒷이야기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