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유방(劉邦)’

‘삼국지’에 필적하는 드라마틱한 매력

  • 정하현 공주대 교수·중국고대사 hhjung@kongju.ac.kr

    입력2007-08-07 18: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유방(劉邦)’

    ‘유방’ 사타케 야스히코 지음, 권인용 옮김, 이산, 544쪽, 2만5000원

    필자는 중학교 때 ‘통일천하’(김팔봉, 1956)를 읽고 중국 역사에 눈을 떴다. 그 책에서 다룬 것이 유방(劉邦)의 중국 통일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진(秦)나라의 멸망, 이후의 군웅할거, 그리고 유방이 항우와의 쟁패전을 거쳐 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중국 역사에 비교적 친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주제다. 중국 역사에서 따온 이야깃거리로는 ‘삼국지’에 필적할 만한 대하물일 것인데 삼국지의 내용이 ‘삼국지연의’에 의해 일찌감치 소설로 완성된 것과 달리, 유방 이야기는 ‘삼국지연의’ 같은 결정본이 없어 요즈음에도 문학 작품으로의 탈바꿈이 거듭 시도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삼국지’가 일찍이 역사의 영역을 떠난 데 반해 유방 이야기는 아직까지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유방의 중국 통일 이야기가 문학 작품 소재로 자주 이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중국에서 처음 출현한 거대한 통일 제국이 짧은 격동기를 통해 붕괴와 재건을 거쳐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중국사에서 중요해서다. 또 평민 출신인 유방이 우여곡절 끝에 천하를 주재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드라마틱해서다. 이와 함께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유방에 대해 전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사기’의 성격이다. 역사 서술에서 문학적 표현을 어느 정도까지 용납할 것인지는 역사학의 전통이 유구한 중국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사기(史記)’는 문학과 역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역사의 본령을 벗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서의 생동감을 더할 수 있게 만든 대작이다. ‘사기’의 내용 가운데서도 유방의 천하 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가치 있는 문제 제기

    유방을 주제로 한 문학서, 역사서가 적잖이 나왔지만, 일본의 중국고대사 연구자인 사타케 야스히코(佐竹靖彦)의 ‘劉邦’(원본은 中央公論新社, 2005년)은 종래의 유방 관련 책들과 다른 특색을 지닌다. ‘사기’의 관련 기록들을 10여 년에 걸쳐 정독하면서 ‘사기’ 고쳐 읽기를 시도했다는 저자의 후기는 역사학의 기본인 사료 분석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알려준다. 저자가 ‘사기’의 문학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당대인의 언어로 씌어졌기에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한 것은 정곡을 꿰뚫는 지적이다.

    작업 과정에서 ‘초한춘추’와 같이 이야기체로 씌었다가 후대에 사라진 ‘사기’의 원자료에 주목하면서 ‘초한춘추’가 유방을 둘러싼 집단의 한 인물에 의해 완성됐고, 그 때문에 유방의 이야기가 ‘사기’로 정리될 때는 유방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이 일정 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 것은 이미 알려진 해석이지만 적절한 인용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100여 년 뒤에 나온 ‘한서(漢書)’가 ‘사기’를 토대로 유방에 대해 묘사했으면서도, 한(漢)이라는 왕조의 정당성을 그려내는 데 치중해 본격적인 왜곡의 단초를 제공했던 데 반해, ‘사기’는 객관적인 사실 전달을 고집하는 저자 사마천(司馬遷)이 의도적인 저항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유방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의 견해가 낯설 것이다. 유방이 항우와 동년배로 약간 연장이었다는 것이나,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로도 널리 알려진, 유방이 항우를 격파한 최후의 격전지가 해하(垓下)가 아니라 진하(陳下)라는 주장은 ‘사기’의 사료적 가치를 판단하는 저자의 관점을 드러낸다. 장기를 둘 때 연장자가 한(漢)을 잡는 규칙이, 유방과 항우의 상당한 나이차에서 유래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는 저자의 주장에 전공자인 필자도 솔직히 놀랐다. 필자는 비록 이 주장에 수긍하지는 않지만, 이름으로 알려진 방(邦)이 패거리들 사이에서 자신을 리더로 내세우는 별명에서 유래한 것 같다는 지적과 더불어 역사 전공자로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유방 객관화에 실패

    또한 사타케의 새 책은 다른 유방 관련 책과 달리 일본 역사학계, 때로는 중국 연구자의 연구를 수시로 이용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논지에 해당하는, 유방과 그의 동료들이 임협적 유대를 펼치는 대목을 묘사할 때, 초와 한의 분쟁기를 관통하는 시대적 추세로 파악하는 것은 역사적 분석을 토대로 한 저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분적으로도 역사 연구의 장점을 살린 견해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풍과 패라는 출신 지역의 특성과 그로 인한 유방 집단의 성격(이에 대한 결론에 대해서도 필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내전에 참가한 다수의 여씨(呂氏)를 진나라 승상이었던 여불위(呂不韋)의 일족으로 보면서 유방과 부인 여후와의 관계를 정치적인 구도에서 추적한 내용, 당시 문서 행정의 비중과 소하의 역할에 대한 평가 등은 이 책의 장점으로 부각된다.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의 중국 고대사 연구가 어느 정도 세밀한 부분에까지 미치고 있는지 재확인하게 된다.

    치밀한 지리적 분석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긴 하나 이미 궈모뤄(郭沫若)라는 중국 역사학자가 편집한 지도집에 잘 정리돼 있으므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주곡으로 미작(米作)에만 주목한 것 등 부분적인 문제점도 눈에 띈다.

    특히 아쉬운 점은 유방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상대방과의 대비를 통해 유방을 객관화하는 과정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사기’에 묘사된 홍문의 연회가 윤색됐다는 점은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했으므로 새로울 것 없지만, 항우의 선택이 자신의 동료라고 확신할 수 없는 항우 군단 구성원을 고려한 나름의 냉정한 판단이었음을 놓친 대목은 아쉽다.

    무엇보다 관중의 진 정권을 타도한 뒤 진 정벌에 참여한 반란군의 지도자들에게 봉건을 함으로써 과거의 분열 체제로 역사를 되돌렸다고 한 것은 항우에겐 억울한 이야기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연구에서도 이미 지적됐지만, 항우도 통일로 가는 과정이 대세라는 점을 체득했고, 그것을 위한 포석이 분봉(分封)의 이면에서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유방도 항우의 이러한 작업을 발판으로 해서 재통일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또한 유방의 천하에 대한 구상이 뛰어났던 것에 가려 전국시대부터 암암리에 전해내려온 초나라 중심의 통일에 대한 지향을 간과한 때문인지 항우의 능력을 전투력에만 국한시키는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 많은 이가 항우와 대조하면서 유방을 관찰하고 묘사해낼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처세술에 대한 집착

    최근 연구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내용이 결국 영웅담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역사학자의 저술이라면, 그것도 지적받아야 할 이유다. 보고자 하는 만큼 보인다고 할까. 유방을 둘러싼 남녀 관계와 같이 간간이 대중적 호기심을 유도하는 장치가 들어 있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스스럼없이 문학적 표현이나 과장을 통해 역사상을 재구성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 만점인 책임은 분명하다. 한편으론 저자가 수차 인용하고 있고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듯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에게서도 보이는 경향이지만 인간 군상의 처세술에 대한 관심과 집착, 이것이 일본의 인문학 저변에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구체적으로 주문하자면 반진(反秦)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알리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이 책에서는 지역 감정이 결정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관중에 진입한 이후 유방의 행동이 마치 변절처럼 비치기도 한다. 죽간, 목간 같은 최근 출토 자료의 가치를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들을 이용해 사회상을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유방 등장의 의미를 천착하지 않은 것은, 역사 전공자로서는 보물을 눈앞에 놓고도 놓쳐버린 셈이라고나 할까.

    역자는 고대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사 전공자로서 짧지 않은 분량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의미 전달이 애매한 부분이 서너 군데밖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공들인 번역이 눈길을 끈다. 고대사에서 늘상 부딪치는 까다로운 한자음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도 엿보인다. 다만 褒斜道의 발음은 포사도가 아니라 포야도임을 지적해둔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