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이 자필로 서명해 국회에 보낸 군 사법개혁법안 의견서.
군 사법개혁법안은 국방부 직속으로 고등군사법원과 지역군사법원, 고등검찰단과 지역검찰단을 설치하고, 평시의 관할관 제도와 심판관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군 사법개혁법안은 작성 당시부터 군 내부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 12월 김장수 장관은 육군참모총장, 박흥렬 육군총장은 육군차장, 송영무 해군총장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김은기 공군총장은 공군차장이었으니 그때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혁법안의 핵심은 군 검찰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지금의 군 사법 제도를 규율하는 ‘군사법원법’은 군 검찰부를 장성급이 지휘하는 부대 안에 두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장성은 지휘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군 검찰관의 고유 업무에 개입하게 돼, 군 검찰관은 공정한 사건 집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군 사법개혁을 추진하게 된 한 이유였다. 이 때문에 군 사법개혁법안은 군 검찰부를 장성급 부대장 밑에 두지 말고 국방부 장관 밑에 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군에는 헌병, 기무, 군 검찰 세 개의 사법 조직이 있다. 이 가운데 헌병과 군 검찰은 각군 밑에 있는 조직이고, 기무만 각군보다 상위 기관인 국방부 직속 기구다. 비교하자면 헌병은 경찰청, 기무는 국가정보원, 군 검찰은 검찰청 격인데, 경찰청은 행정자치부의 외청, 국가정보원은 대통령 직속,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으로 있다. 국방부 장관을 대통령, 각군 본부를 부처로 본다면, 군 사법기관의 배치와 정부 사법기관의 배치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군 검찰, 기무까지 장악 가능
군 사법개혁법안대로 군 검찰부를 국방부 직속으로 하는 것은, 검찰청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하자는 것과 유사하다. 검찰청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면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사회를 개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선진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조차 검찰청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검찰의 독립성’ 때문이다. 검찰청은 대통령이라고 하는 정치인의 시녀가 되는 것을 피하면서 동시에 대통령의 통제를 받아야 하니 법무부의 외청으로 나와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구도다.
검찰청과 법무부는 사실상 한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와 군 검찰은 같은 일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방부의 주 임무는 대통령을 대신해 나라를 지키는 3군을 관리하는 것이지,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이 아니다. 물론 군 검찰부를 국방부 장관 직속으로 하면, 군 검찰관은 장성급 부대장의 비리도 자유롭게 수사할 수 있게 돼, 군은 한층 맑아질 것이다. 반면 장성급 부대장들은 기무사라고 하는 시어머니에 이어 군 검찰이라고 하는 또 다른 시어머니로 인해 심리적 위축을 느끼게 된다.
국방부 장관 직속기구가 되면 군 검찰은 헌병은 물론이고 기무사에도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병과 기무만 해도 군에서는 무서운 호랑이인데, 그 위에 군 검찰이라는 또 한 마리의 호랑이가 생기는 것이다. 헌병과 기무를 거느린 호랑이는 단숨에 최고 권력기관이 된다. 군은 적과 싸우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기구이므로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힘을 써야 하는데, 시시비비를 따지는 법률 전문가가 실제적으로 군을 이끄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비록 군인 출신이라 해도 대통령을 대신해 군을 통제하니 정치인으로 봐야 한다. 군 검찰이 국방부 장관 직속이 되면 대통령과 그 측근은 국방부 장관을 통해 군 문제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게 된다. 군 검찰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현상과 함께 군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군의 독립성을 강조해왔는데 왜 군이 정치의 영향을 받는 쪽으로 선회해야 하는가. 군 비리를 척결하는 방법이 군 검찰을 국방부 장관 직속으로 두는 것뿐인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
지금의 군 사법개혁은 대통령 민정수석실과 국방부 내 사법기구인 법무관리관실이 중심이 돼 추진했다. 2004년의 각군 본부는 물론이고 합참까지 이 개혁법안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국방부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 반대다. 국가가 무너질 것 같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리면 군은 국가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필요에 따라 적군과 적국의 주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행위는 물론이고 아군 대부대를 투입하기 위해 아군 소부대를 적군에게 먹잇감으로 던지는 작전도 구사한다. 때로는 영창이나 교도소에 수감된 범법자에게 ‘목표를 달성하면 석방해준다’는 임무를 줘, 위험한 전투에 투입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잘못된 쪽으로 터져나온 실미도 부대 사건(1971년)이다.
왕조시대 임금은 큰 전투에 출전하는 장수에게 지휘용 도끼인 부월(斧鉞)을 내렸다. 부월 하사에는 적군을 정벌하라는 뜻과 함께 부하들에 대한 징벌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그는 이기기만 하면 작전을 잘못해 부하를 사지에 몰아넣은 것과 부정부패를 한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면책을 받을 수 있었다. 왕조시대 부월이 지금은 대통령이 장성 진급자에게 수여하는 삼정검(三精劍)으로 변모했다.
군 사법권을 정치인인 장관에게 맡김으로써 장관과 장관을 등에 업은 대통령 측근들이 군 업무에 깊이 개입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강군을 만드는 길인가. 아니면 지금의 군 사법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고쳐 지휘관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강군을 만드는 길인가. 군에 몸담은 적잖은 사람들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밖에서 안보를 흔드는 행위라면, 지휘관의 활동범위를 위축시키는 군 사법개혁은 내부에서 안보를 흔드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有口無言인 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
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은 국방부 직원과 3군 장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 의견서에 서명한 것일까. 아니면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음에도 청와대의 지시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한 윤광웅 전 국방장관처럼 시키니까 마지못해 서명한 것일까. 이들의 진심을 알고 싶어 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답변을 보내주지 않았다. 곤혹스럽게 된 것은 중간에서 질의서를 전달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국회에 그런 의견서가 전해진 사실을 어디에서 알아냈느냐? 우리 사정을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며 매우 난처해했다. 오직 한 기관으로부터 답변이 왔다. 2004~5년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함께 군 사법개혁을 추진한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의 답변이었는데, 여기에는 ‘군 사법개혁법안은 입법부에서 논의 중이므로 언론사에 특정 의견을 공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사료된다’고 씌어 있었다.
법무관리관실은 ‘할 말이 없다’는 의견이라도 밝혔는데, 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은 이러한 답변조차 보내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구무언(有口無言). 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이 소신과 내부의견을 수렴해 의견서에 서명했다면 절대로 이 질문을 피해가지 않았을 것이다. 국방부 장관과 3군 총장이 서명한 이 의견서는 훗날 우리 군 수뇌부가 군의 중립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정치의 시녀가 되겠다고 한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