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들꽃 같은 소녀, 섬을 닮은 선생님이 엮어가는 무공해 사랑

  • 김영아 자유기고가 paxpen@empal.com

    입력2007-08-08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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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외딴 섬 횡간도에 있는 초등학교는 선생도 한 명, 학생도 한 명뿐이다. 둘이서 토닥거리며 수업을 하고, 급식도 직접 만들어 먹고, 교실수업이 끝난 뒤에는 자연학습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참교육의 현장이 바로 이곳 아닐까.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전남 완도에서 뱃길로 2시간을 가면 해남 땅끝과 노화도 사이에 서울 여의도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3.54㎢) 작은 섬 횡간도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완도군 소안면 횡간리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섬이다. 주소에 완도, 소안도, 횡간도 3개의 섬이 들어가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오지인지 짐작할 수 있다.

    횡간도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350여 주민이 살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떠나면서 인구가 줄어 지금은 71가구 143명만이 섬을 지키고 있다. 그나마 남은 주민들도 대부분 고령이고,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딱히 먹고 살 만한 소득원이 없다 보니 지금도 주민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이 섬에 있는 공공기관은 파출소와 보건진료소, 그리고 초등학교 분교 한 곳이 전부다.

    이 섬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소안초등학교 횡간분교의 학생은 한 명뿐이고, 가르치는 교사도 한 명이다. 이런 초미니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나라에 휘몰아치고 있는 사(私)교육 광풍이었다.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학생들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을 서너 군데씩 순례하는 게 일상사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생 혼자서 독선생을 모시고 도란도란 공부하는 학교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도시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동안 달리기를 해도 1등, 시험을 봐도 무조건 전교 1등이 되는 학교라니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오지 학교에 와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수업은 어떤 식으로 할까. 급식도 한다는데 급식은 어떻게 이뤄질까. 궁금증을 안고 남해 먼 바다 외로운 섬 횡간도로 향했다.

    안개에 갇힌 섬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멀기는 멀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는데도 당일에 횡간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 8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꼬박 하루 24시간하고도 2시간30분이 더 걸린 것이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20분발 완도행 우등고속을 탔을 때 미리 알아봤어야 했다. 고작 하루 4번 운행하는데도 승객이라고는 단 2명. 동행이라고는 일찌감치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졸고 있는 70대 할머니뿐이다. 출발시각이 가까워지면 승객이 더 있겠거니 했지만 더는 타지 않았다. 버스 요금이 1인당 3만1000원이니 두 사람 합이 6만2000원. 기름값도 안 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출발시각이 되자 버스 기사는 아랑곳없이 차에 시동을 건다. 앞좌석의 할머니는 내내 죄 지은 사람처럼 기사에게 미안해했고, 적자가 날 버스회사를 염려했다. 완도 가는 고속버스가 이러니 거기에 딸린 섬 소안도와 이름도 생소한 횡간도는 오죽할까 싶었다.

    승객 두 사람을 실은 버스는 휴게소에 딱 한 번 들르고는 논스톱으로 5시간10분을 달려 완도에 닿았다.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횡간도로 들어가려면 원동항에서 하루 한 번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해남 땅끝으로 가 다음날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야 한다. 하지만 완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30분. 하는 수없이 터미널에서 내려 횡간분교 분교장 고생규(53)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이날 퇴직하는 통학선 선원 환송 회식이 있어 소안도 가는 배를 타고 있다며 이따가 소안도에서 만나 내일 아침 첫 배를 타고 횡간도로 들어가자는 게 아닌가.

    그가 일러준 대로 우선 셔틀버스를 타고 화흥포항으로 가 소안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20.8km 떨어져 있다. 뱃길로는 1시간 거리. 소안도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抗日의 땅 解放의 섬 소안도’라고 음각된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인구 3500여 명의 작은 섬에서 전국 면(面) 단위 가운데 가장 많은 20명의 건국훈장 서훈자를 배출했으니 소안도 주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섬사람 선생님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교문 바로 앞에 있는 선생님과 현지의 텃밭. 이곳에서 기른 채소는 두 사람의 점심 급식 식탁에 오른다.

    소안도에서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은 섬사람보다 더 섬사람처럼 보였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소박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이 섬마을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섬마을 이장님이라고 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전라북도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은 지난해 3월 교환교사를 자원해 소안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섬이 좋고 섬사람들이 좋아서 방학 때마다 다도해 섬들을 여행하다가 급기야 아예 섬으로 근무지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다시 ‘나홀로 학교’인 횡간분교장으로 발령이 났다. 외딴 섬에서 근무하다 보면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병을 앓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바닷가 순박한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겠다던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룬 듯해 섬 생활에 만족한다고 한다.

    소안도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해무(海霧)가 얼마나 짙게 끼었는지 시계(視界)가 10m도 안될 것 같았다. 선착장에 나가 땅끝에서 출발하는 횡간도행 배를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해남 땅끝항에서 출발했어야 할 배가 짙은 안개로 인해 출항을 포기했다고 한다. 8시30분부터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 선생님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 이리저리 전화를 걸더니 이윽고 우선 노화도까지 가는 통학선을 타고 가서 거기서 다시 사선(私船)을 빌려 횡간도로 들어가잔다.

    “이제 다 해결됐습니다. 하하, 부임한 지는 1년6개월밖에 안 됐지만, 제가 이곳 주민들하고 아주 친합니다. 아는 사람도 많고요. 다들 형님 동생 하며 지내는데 사정을 말했더니 태워다주겠다고 하네요.”

    통학선을 타고 노화도에 도착하니 선착장에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주민이 트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 트럭을 얻어 타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작은 포구로 향했다. 포구에는 엔진이 밖으로 노출된 작은 모터보트 크기의 배가 한 척 정박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배를 ‘쎄내기’라고 부르는데,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선외기’를 발음하기 편하게 부르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노화도에서 횡간도까지는 직선거리로 불과 1km. 하지만 안개가 짙어 횡간도는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잡기 힘들 텐데도 선장은 아랑곳없이 배를 전속력으로 몰아 안개를 뚫고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라던 섬이 15분을 달렸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다가 이 작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헤매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순간, 눈앞에 하얀 바위 절벽이 우뚝 나타났다. 횡간도 사자바위였다. 방향을 조금 잘못 잡긴 했으나 어찌됐든 횡간도에 닿은 것이다.

    선장은 천천히 배를 몰아 해안선을 따라가더니 잠시 후 목적지인 선착장에 내려주었다. 두 사람 다 옷과 머리가 흠뻑 젖고, 뺨에는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25분, 수업 시작 5분 전에 가까스로 도착한 것이다. 선생님은 행여 수업에 늦을까 걸음을 재촉한다. 그 걸음을 따라가려니 동네 풍광이고 뭐고 살필 겨를이 없다. 그리고 잠시 후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돌담 사이를 지나니 소안초등학교 횡간분교가 나타났다.

    들꽃을 닮은 아이

    학교 문이 열리고 정확히 8시30분이 되자 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인 4학년 1반 장현지 양이 교실에 들어섰다. 안개 낀 통학길을 30분이나 걸어서 등교한 현지의 머리와 눈썹에는 이슬방울이 하얗게 맺혀 있다. 함초롬히 아침이슬을 머금은 들꽃을 닮았다. 현지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선생님이 다가가 마른수건으로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아준다.

    시골티가 물씬 풍기는 새까만 섬 소녀를 떠올렸건만, 뜻밖에도 막상 대면한 현지는 이 섬에 잠시 소풍 온 서울 아이 같다. 알고 보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1학년을 마치고 귀농하는 아빠를 따라 이 섬에 들어왔다고 한다. 눈가에 언뜻 그늘이 보인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어린 현지에게 엄마 이야기는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다. 행여 누군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금세 표정이 싸늘해지면서 달아나버린다.

    그런데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 어째 수상쩍다 싶더니, 선생님 말로는 요즘 현지가 사춘기를 겪고 있단다. 지난달에는 아빠에게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아빠와 선생님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도 않고, 특히 현지네가 사는 웃개에서는 아예 먹통이 되는데도 말이다. 현지는 휴대전화로 누구와 통화하고 싶었던 것일까.

    교실 뒷벽과 사물함 위에는 현지가 그리거나 만들어놓은 미술작품들로 빼곡하다. 그 작품들 사이로 스케치북이 두 권 걸려 있어서 살펴보니 선생님과 현지가 일과를 마치고 이를 일지 형태로 정리한 일종의 일기였다. 이 스케치북에는 그날그날의 사건과 느낌을 적고 그것을 바꿔보게 된다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선생님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교실 한복판 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은 현지는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피아노 앞으로 가서 공연히 건반을 두드려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온 손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가보다.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번 본교로 통합수업을 받으러 가는 날. 현지는 친구들을 만날 즐거움에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렸다.

    선생님은 허허, 웃기만 할 뿐 그런 현지를 마냥 내버려둔다. 그러고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차를 준비한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친구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앞에는 커피, 현지 앞에는 녹차 잔이 놓였다. 커피를 마시겠다는 현지를 간신히 달랜 결과다. 아무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선생님은 현지와 마주 앉자마자 그날 아침의 무용담을 펼쳐놓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수업시간에 늦지 않게 돌아온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현지는 현지대로 집에서 있었던 일이며, 이제 세 살 된 사촌동생 효성이 이야기까지 두서없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종소리도 없이 수업이 시작됐다. 하긴 단둘뿐이니 따로 종을 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4학년 1반 교실 한가운데에 버젓이 책상이 놓여 있는데도 현지는 제자리에 가지 않고 선생님 옆자리에 가 앉는다. 선생님과 학생이 마주보거나 나란히 앉아 컴퓨터를 켜놓고 공부하는 게 이 학교의 수업방식이기 때문이다.

    첫 시간은 영어시간.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선생님과 현지가 영어 노래를 따라 부른다. 듣다 보니 현지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쉬는 시간에 칭찬을 해주었더니, 자기는 커서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단다. 그것도 탤런트. 그러고는 대뜸 “혹시 탤런트 최정원 아세요?” 하고 묻는다. 배우 최종원인 줄 알고 “그럼, 알지. 특이한 모자 쓰고 다니는 아저씨 말이지?” 했더니 현지는 금세 ‘소문난 칠공주’에 나왔던 최정원도 모르냐며 핀잔을 준다.

    2교시는 현지가 가장 싫어하는 수학시간. 문제 푸는 시간이 길어지자 현지가 연신 하품을 해댄다. 선생님이 말을 하거나 말거나 “그만하고 좀 쉬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수학공부가 어지간히 지겨운 눈치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그런 현지가 마냥 곱게만 보일 리 없는 법. 내년부터 본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현지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것이 스승의 마음이다. 선생님은 눈을 부릅떠보기도 하고 좋은 말로 어르기도 하면서 힘겹게 수업을 마쳤다. 현지는 선생님과 친해진 뒤로 간혹 이렇게 수업시간에도 응석을 부린다. 그런 날이면 선생님과 현지 사이에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현지와 선생님이 3교시 수업을 하는 동안 교실을 나와 잠시 교정을 둘러보았다. 교정은 교사 1명이 학생 1명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엄연한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단정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이게 다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는 선생님 솜씨다. 관목들이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고, 화단에는 수국, 시계꽃, 한련화, 글라디올러스 같은 계절 꽃들이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교

    넓은 운동장에도 잡초 한 포기 눈에 띄지 않는다. 올해부터 현지 독차지가 된 철봉과 구름다리도 새로 페인트 칠을 한 듯 흰색과 하늘색이 아주 선명했다. 다만 교사(校舍)가 낡아 두 동 가운데 한쪽은 아예 폐쇄해버렸고, 사용하고 있는 다른 쪽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다. 이 학교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교가 확정됐다. 1940년 6월8일 소안초등학교 부설 2년제 횡간간이학교로 처음 문을 열었으니 개교한 지 꼭 67년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백두산 줄기 받아 떨어진 이 섬

    아침 해도 밝구나 우리의 희망

    자랑도 그윽해라 새 일꾼의 싹

    거룩한 배달의 얼 이어 받아서

    새 나라의 본이 될 우리 횡간교

    올해가 지나면 아무도 부르지 않을 이 학교의 교가다. 한때는 이 교가를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우렁차게 합창하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합창소리가 가장 크게 울려 퍼졌던 시기는 학생 수가 가장 많던 1970년대. 개교 이래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점차 늘어오다 1977년 171명을 정점으로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1990년에는 학생수가 50여 명으로 줄면서 소안초등학교 횡간분교로 격하됐다. 이후에도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어 급기야 올해에는 현지 단 한 명뿐인 학교가 돼버렸다.

    역사가 오랜 만큼 이 학교는 횡간도 주민에게 학교 이상으로 각별한 곳이다. 열한 살 현지부터 70대 노인들까지 횡간도 사람들은 내남없이 이 학교를 모교로 삼고 있다. 자라면서는 배움터였고 놀이터였으며, 자라 어른이 되어선 학부형이 되어 다시 학교를 찾았으리라. 또한 먹고 살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 섬을 떠난 사람들에게도 이 학교 교정은 고향집과 함께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 돼주었을 것이다.

    4교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이 학교의 급식시간이다. 초등학교는 급식이 의무다. 이곳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날처럼 오후 수업이 없는 날에는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도 있지만, 현지는 관사에 가서 밥 먹는 걸 좋아한다. 시장도 없고 그 흔한 마트 하나 없는 이 오지에서 무슨 수로 매일 급식 반찬을 만들까 싶었으나 선생님은 금세 뚝딱, 하고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낸다.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현지는 횡간도 유일한 초등학생이라 친구가 없다. 그래도 선생님이 있고 자연이 있어 외롭지 않다.

    소라 된장국에 구운 생선 한 토막, 바닷가에서 현지와 함께 잡아 담근 게장, 갯바위에서 딴 톳과 파래 무침, 거기에 손수 가꾼 텃밭에서 따온 채소가 수북하다. 인스턴트 식품에 길든 도시 아이들 같으면 싫어할 수도 있는 반찬들이다. 그러나 현지는 그런 것들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선생님과 현지의 텃밭은 교문 바로 앞에 있다. 그 작은 밭에 별별 채소가 다 심어져 있다. 상추, 고추, 가지, 오이, 호박, 들깨, 옥수수, 방울토마토, 감자, 고구마, 당근 심지어 생강까지 있다. 이 텃밭 농사가 얼마나 잘됐는지 밭을 들여다본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장에 내다 팔아도 쓰것소”라며 한마디하고 가던 길을 간다.

    그런데 이랑 사이에서 고운 분홍 꽃을 피우고 있는 봉숭아가 이채롭다. 채소밭에 웬 봉숭아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현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줄 요량으로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맙소사! 고운 봉숭아물이 들어 있어야 할 현지 손톱에는 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게 아닌가. 작은엄마 화장대에서 매니큐어를 훔쳐 바르는 것을 보니 현지가 정말 사춘기인 모양이다.

    똬리 튼 유혈목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현지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됐다. 현지의 통학로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설거지를 마친 선생님도 채비를 했다. 평소에도 선생님은 자주 현지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현지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날에 집 앞 갯가에서 잡아온 게, 바지락, 고둥은 두 사람의 훌륭한 간식거리가 된다.

    횡간도에는 이곳 사람들이 웃개와 아랫개라고 부르는 두 개의 포구가 있다. 그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는데, 아랫개는 큰 동네여서 학교와 보건소, 파출소, 교회 등이 있고 이 마을에 대부분의 주민이 모여 산다. 현지가 사는 웃개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이다. 예전에는 1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현지네를 포함해서 달랑 3가구만 남았다.

    교문을 나서면 좁은 돌담 골목길이 나온다. 골목이 얼마나 좁은지 어른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다. 억센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돌담을 쌓았는데, 그 위로 담쟁이와 늘푸른잎 식물인 멀꿀덩굴이 무성하고 돌 틈 사이에 핀 인동꽃이 향기롭다. 돌담 너머의 섬마을 농가 안뜰엔 맨드라미, 봉숭아, 접시꽃과 함께 잎이 넓고 키가 껑충한 파초를 심어놓은 집이 많다.

    마을회관 앞에는 수령이 수백년은 돼 보이는 팽나무 두 그루가 마치 한 그루인 양 우뚝 솟아 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는 나무를 금실 좋은 부부에 빗대 ‘부부나무’라고 부르는데, 이 나무가 바로 횡간리 당산나무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한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돌이 하나 놓여 있다. 이 돌은 남도 지방의 오래된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돌(擧石)’이다. 정월 대보름날이나 팔월 한가윗날에 마을 청년들이 이 돌로 힘자랑을 하는데, 돌을 들고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면 어른 품값을 쳐주었다고 한다. 일종의 농경사회 성인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으니, 다시 저 돌을 들어 보일 누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마을을 벗어나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길 양쪽으로 밭과 논이 보인다. 그 풍경만으로는 어촌이 아니라 어느 농촌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현지와 선생님이 앞서 가고 그 뒤를 따르는데 갑자기 현지가 꺅, 하고 괴성을 지른다. 길가 논에서 뱀을 발견한 것이다. 달려가 보니 흔히 꽃뱀이라고 부르는 유혈목이가 똬리를 틀고 올챙이를 잡아먹고 있다.

    가뭄으로 논바닥이 타들어가면서 웅덩이에 우글우글 모여 있던 올챙이들을 녀석이 포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지와 선생님이 바라보고 있는데도 유혈목이는 태연히 식사를 마치고 사라진다. 이 섬에는 뱀이 많다. 특히 밤에 이 길을 가다 보면 뱀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변온동물인 뱀이 낮에 햇볕에 달궈져 따뜻해진 포장도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지는 이 길이 하나도 무섭지 않단다. 어린 소녀가 참 용감하다.

    조금 더 가니 가파른 고갯길이 나온다. 길 양편에 산이 있고, 길섶에는 들꽃이 무성하다. 해풍을 맞아 키는 우뚝 자라지 못했지만, 색깔은 더욱 선명한 섬말나리, 원추리, 까치수염, 인동초, 엉겅퀴, 용가시꽃, 타래난초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빨간 산딸기도 지천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 그런지 잠깐 땄는데도 한 주먹이다. 어쩌면 현지는 등하굣길 여기쯤에서 다리쉼을 하며 산딸기를 따 먹거나 봄에 삐비를 뽑았으리라.

    고개 마루에 오르자 저 멀리에 바닷가 웃개가 보였다. 바다가 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서너 채 가옥이 그림처럼 자리잡은 작고 아늑한 포구다. 현지는 일일이 손가락을 짚어가며 저기가 우리 집이고, 저기는 축사, 또 저기는 작업장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때, 어디선가 꿩 한 마리가 꿩꿩, 하고 우렁차게 울었다. 여기서부터 현지네 집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현지도 신이 났는지 한달음에 저만치 내달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섬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지는 닭 둥지부터 살폈다. 오늘은 닭들이 알을 다섯 개 낳았다. 현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달걀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는다. 그것을 보고 선생님이 “우와, 현지네 알부자네!”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이 있고 없고를 따져서, 알이 많으면 ‘알부자’고 알이 없으면 ‘알거지’라나.

    ‘완도에서는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완도는 여느 섬 지방에 비해 살림이 넉넉한 편이다. 바다가 잔잔하고 깊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김, 톳, 미역, 다시마, 전복과 같은 바다농사를 먼저 시작한 덕분이다. 그런데 같은 완도군이라도 횡간도는 그런 자연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유독 횡간도 주변의 물살이 빠를 뿐 아니라 해저가 암반층으로 되어 있어 김 양식도, 전복 양식도 쉽지 않다. 이 섬에서 김 양식을 하는 집이래야 현지네를 포함해 두 집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이 마을 사람들 가운데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의 주민이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는데, 전답이라고 해봐야 전체 논 면적이 0.07㎢이고 밭 면적은 0.4㎢다. 이 섬이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섬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까닭이다.

    그나마 현지네는 이 섬에서 비교적 살 만한 집에 속한다. 그게 다 한 집에 모여 사는 우애 좋은 현지 아버지 3형제가 힘을 합쳐 김 양식과 멸치잡이를 하고 돼지와 오리, 닭 등 가축도 많이 기르는 덕분이다. 융자를 얻어 배를 사고 시설투자를 하느라 아직은 융자금 갚기도 빠듯하지만, 3형제는 머지않아 부농이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현지네 가족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일을 열심히 한다.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중학교 1학년인 현지 사촌오빠 효민이는 멸치잡이와 김발을 준비할 때면 벌써 어른 한몫을 넉넉히 해낸다. 어린 현지라고 예외일 수 없다. 작업장과 집을 오가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어린 효성이를 돌보는 것도 현지 몫이다.

    세 살 효성이는 작은아버지 아들이다. 또래 친구가 없는 현지가 놀 만한 상대라고는 오빠 효민이와 효성이가 전부다. 그런데 조숙한 효민이는 현지를 꼬맹이 취급하며 놀아줄 생각을 안 한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게 효성이는 돌볼 대상이자 놀이친구다. 그러나 이날 현지는 효성이와 잠깐 놀아주고는 뭘 준비하는지 제 방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선생님 말로는 내일 통학선을 타고 소안도에 있는 본교로 통합수업을 하러 가는데, 그 준비를 하는 중이란다.

    통합수업은 학교 방침에 따라 보통 1주일에 한 번 매주 목요일에 이뤄진다. 횡간분교처럼 일대일 수업을 하는 학교의 경우 개별지도가 충실한 대신 또래집단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사회성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통합교육을 통해 그것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통합수업 가는 날

    다음날 아침 7시. 횡간도에서 구도를 거쳐 소안도를 운항하는 통학선에 올랐다. 이 배를 타고 횡간도에서 통학하는 학생은 중학생 4명. 선생님과 현지도 일주일에 한 번 이 배를 이용해 본교에 간다. 통학선에 오른 현지는 오늘따라 한껏 멋을 부렸다. 반지와 귀고리까지 했다. 사귀는 남학생이 있다더니 벌써부터 설레는 모양이다. 통학선은 구도에 들러 학생 몇을 더 태우고는 30분 만에 소안도에 도착했다.

    본교인 소안초등학교에 도착해서 현지는 곧장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갈아 신는 실내화가 횡간분교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분홍색 새 실내화였다. 그동안 아끼고 아꼈다가 오늘 본교 친구들 앞에서 새 실내화를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횡간분교에서나 본교에서나 현지가 4학년 1반인 것은 마찬가지. 도서벽지 섬 학교가 다 그렇듯이 이 학교도 한 학년에 1개 학급밖에 없으니 전 학년 학생이 모두 1반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살짝 교실에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었더니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며 우르르 몰려든다. 현지는 이 소동에도 아랑곳없이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 단짝 설희와 수다가 한창이다. 하긴 단짝 친구를 일주일 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는 또 얼마나 쌓였겠는가.

    그런데 몰려온 아이들 중에 묻지도 않았는데 현지와 승혁이가 닭살 커플이라고 귀띔을 해주는 녀석이 있다. 누가 승혁이냐고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아냐, 아냐’ 하며 한사코 고개를 흔들던 녀석이다. 나중에 승혁이를 따로 불러 넌지시 물어보았더니만 서로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고 교실에서 부딪쳐도 데면데면하다고 한다. 만나도 서로 말 한마디 못하면서 그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귀고리를 달고 새 실내화를 아껴둔 현지의 순수한 마음이 예쁘다.

    현지가 4학년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운동장에서 2학년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지 하나만 데리고 있다가 한꺼번에 20여 명의 학생을 가르치려면 적응하기 쉽지 않을 만도 한데도 선생님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싱글벙글이다. 이렇게 본교에 오는 날이면 선생님은 본교 선생님 대신 4학년을 가르치기도 하고, 이날처럼 다른 학년 수업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

    본교에서 통합수업을 하는 날은 하루가 훨씬 빨리 지나간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통학선이 출발하는 5시까지는 두 사람의 자유시간이다. 현지는 친구들 손을 잡고 최근에 생긴 마트로 쇼핑을 갔고, 선생님은 지난해 본교에서 근무할 때 사귀었던 소안도 사람들을 만났다.

    통학선을 타고 횡간도로 돌아오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 선생님이 교직에 몸담은 지도 어언 28년. 그는 요즘 틈만 나면 그동안 제자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다고 한다. 책으로 펴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정리한 것만 해도 A4용지 500쪽에 달한다. 그런데 학교 때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제자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학교 때 공부 못하고 말썽만 부리던 제자들이 꾸준히 연락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한 제자와 얽힌 20여 년 전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교실에서 학생 하나가 돈을 잃어버렸다. 대충 누가 훔쳤는지 짐작이 갔지만, 선생님은 내색을 하지 않고 ‘훔쳐간 사람은 내일 아침까지 교실 바닥에 돈을 떨어뜨려놓아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교실 바닥에 떨어진 돈이 없어서 은밀하게 용의자(?)를 불러 “너 선생님한테 할 말 없니?”하고 물었더니, 녀석이 “출석부, 출석부!” 하더란다. 아니나다를까 출석부 갈피에 1만원짜리 지폐가 끼워져 있었다고. 가난한 홀어머니 아래서 어렵게 살던 그 ‘출석부 소년’이 지금은 어엿한 대기업 직원이 되어 명절 때마다 인사를 온다고 한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선생님은 현지에게도 수학문제 푸는 법을 잘 가르쳐주는 유능한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 함께 놀아주고 때로는 어리광도 받아주는 선생님이고 싶어 한다. 살아가는 데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섬에서의 마지막 밤. 방송에서는 전국이 장마권에 들면서 이 지방에도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오랜 가뭄에 시달리던 횡간리 사람들은 이제야 좀 해갈이 될 모양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잔뜩 흐린 하늘에서 고대하던 비는 오지 않고 공연히 해무만 피어나 섬을 에워쌌다.

    “밤하늘이 참 예쁘지요?”

    저녁을 먹고 선생님을 따라 운동장에 나와봤더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말끔히 걷혀 있고 하늘의 별들은 낮게 내려와 있다. 어디선가 소쩍, 소오쩍 하고 소쩍새가 울었다. 가난한 섬에서 듣는 소쩍새 피울음 소리가 구슬프다.

    선생님은 오늘처럼 별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날이면 이렇게 텅 빈 운동장에 나와 이 섬이 들려주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단다. 그것은 파도소리, 바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가 어울려 빚어내는 횡간도의 노래였다. 지금쯤이면 현지도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 대신 이 섬이 들려주는 저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소안초등학교 횡간분교는 문을 닫는다. 어쩌면 앞서의 다른 섬 폐교들처럼 외지인에게 팔려 나가 육지 사람들을 위한 휴양시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쓸쓸한 바닷가 학교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교정에 열한 살 현지의 꿈이 자라고 있고, 그 꿈을 소중히 생각하며 지켜주고 싶은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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