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8-08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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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도 지구촌 실험실에선 ‘장수’에 관한 숱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선충의 수명을 6배나 늘리는 데 성공했으니 조만간 인간의 수명도 700세까지 늘어나지 않을까. 젊음을 유지하면서 수명도 늘어난다면 그건 금상첨화. 인류의 꿈인 수명 연장과 노화 지연에 관한 대단한 실험들, 그리고 그 가능성.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늙는 것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세기에 이뤄진 의학의 발전 덕분에 인류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났지만, 사실 그것은 인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인간의 최고 수명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의학이 덜 발달하고 평균 수명이 30여 년에 불과했다던 먼 옛날에도 100세 넘게 장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수를 누렸다고나 할까. 인간의 타고난 수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늘어난 것 같지 않다. 여전히 120세 정도가 최고 기록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삼천갑자동방삭’처럼 절대적인 수명이 늘어나는 것인데 말이다.

    젊게 더 오래 사는 법

    또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10~20대의 젊음을 유지하면서 늙어가는것이지, 지금처럼 기운 빠진 늙은 육신으로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다. 현재 늘어난 평균 수명은 젊음을 연장시킨 것이 아니라, 늙음을 연장시킨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과학은 노화와 장수 쪽으로는 아직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과식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적절히 스트레스를 가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명상하고, 술이나 담배처럼 몸에 해로운 것을 피하면 노화와 장수에 보탬이 된다는 일반적인 믿음을 간간이 확인시켜 주는 결과를 내놓는 정도다.



    1990년 의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는 노화를 설명하는 생물학 이론이 무려 300개가 넘는다고 말한 바 있다. 노화에 관한 연구가 일관된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단편적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노화와 장수의 비밀을 밝히려는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하다. 사람은 왜 늙는 것일까. 젊게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1980년대 초, 마이클 로즈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중에 노화를 다룬 고전적인 실험도 있었다. 그는 진화의 관점에서 노화 이론들을 실험을 통해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실험은 아주 간단했다. 그는 시험관에 초파리를 키웠다. 초파리가 알을 낳으면 그 알을 수거해 다시 새 시험관에서 부화시켰다. 초파리를 배양하는 사람들이 으레 매일같이 하는 일이었다.

    초파리는 한 세대가 거의 2주에 불과하므로 짧은 기간에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는 초파리를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쪽 집단에서는 맨 처음 낳은 알들을 수거해 부화시키고 그 초파리들이 자라면 마찬가지로 맨 처음 낳은 알을 수거해 다시 다음 세대를 부화시켰다. 다른 한쪽 집단에서는 가장 나중에 낳은 알들을 골라서 번식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후자 집단의 평균 수명이 암컷은 33일에서 43일로 약 30% 증가했고, 수컷은 30일에서 44일로 약 13% 늘어났다. 후자 집단의 초파리들은 더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후손을 남길 수 있으므로 수명이 늘어났다.

    로즈의 이런 실험은 그전까지 주로 이론상으로 논의되던 노화와 수명 연구에 경험적 증거를 제공한 거의 최초의 사례였다. 로즈는 노화의 진화 이론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그전까지 생물학자들 중에는 자동차 같은 기계 장치가 오래 쓰면 쓸수록 점점 고장 나는 부품이 많아져서 결국 폐기해야 하는 것처럼, 생물의 노화도 나이가 들수록 손상된 것들이 점점 쌓이면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자동차를 많이 쓸수록 더 빨리 낡는 것처럼 몸도 많이 쓸수록 더 빨리 늙는 것일까. 몸의 활동은 세포 수준에서 보면 각종 생화학 반응들을 토대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생화학 반응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면 더 빨리 늙지 않을까. 큰 동물에 비해 작은 동물은 체적에 비해 표면적이 넓으므로 신진대사가 더 활발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세균은 영원히 산다

    그렇다면 작은 동물이 더 빨리 늙는 것일까. 곰 같은 동물은 겨울잠을 잘 때 신진대사가 느려진다. 그러면 그만큼 더 수명이 늘어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몸의 활동이 어떻게든 노화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동물의 수명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프리카 코끼리의 수명은 60년, 개의 수명은 34년, 집쥐의 수명은 2.5년이다. 지렁이의 수명은 6년이고, 재갈매기의 수명은 41년이다. 흡혈박쥐의 수명은 20년이다. 큰 동물이 작은 동물보다 더 오래 사는 듯하다.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2005년 당시 부부 나이가 205세여서 기네스북에 오른 미국인 허버트 브라운씨와 매그너 여사.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물에 사는 히드라는 늙지 않는다. 단세포 생물로 가면 아예 노화와 수명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기회만 생기면 둘로 나뉘어 한없이 증식하는 세균은 영원히 산다고도 할 수 있다. 다세포 생물의 몸에서도 늙지 않는 세포들이 있다. 생식세포가 그렇고, 줄기세포가 그렇다. 그런 세포들은 장기간 열심히 일할수록 손상이 축적되어 노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다.

    물론 그 이론들이 아예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이론들은 자유 라디칼, 그중에서도 이른바 활성산소라고 하는 유해 물질이 DNA와 단백질을 비롯한 세포 성분들을 손상시켜서 동맥 경화, 관절염, 암 등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퇴행성 질환에 관여한다고 본다. 많은 연구 결과는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활성산소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킨다. 미토콘드리아 손상은 당뇨병,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호흡을 깊게 하여 호흡 수를 줄이면 장수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호흡을 적게 하면 산소 공급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미토콘드리아의 활동도 줄어들고 활성산소의 생산량도 줄어들며 신진대사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단편적이다. 생식세포처럼 활성산소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도 있다. 그것이 바로 노화 이론이 수백 가지나 되는 이유이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여 널리 알려진 엘리 메치니코프는 장내 세균이 유해 물질을 생산해 노화를 일으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산균을 열심히 먹어서 장내 세균을 억제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을까. 그 이론은 지금도 광고를 통해 계속 설파되면서 소비자에게 혹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

    노화는 적어도 다세포 생물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 모든 현상을 일관적으로 설명할 일반 이론이 없을까.

    마이클 로즈는 진화 관점에서 보면 해답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추론했다. 그는 초파리가 번식 연령이 되어 알을 낳고 나면 그 초파리 개체가 받는 자연선택의 강도는 약해진다고 보았다. 이미 후손이 생겼으니 알을 낳은 개체가 어찌 되든 자연은 관심을 덜 보인다는 의미다.

    번식 뒤 노화?

    자연선택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주시하면서 해로운 돌연변이를 지닌 개체들을 솎아낸다. 하지만 개체가 이미 번식을 끝냈다면 감시가 좀 느슨해질 수도 있다. 양육을 하거나 돕는 개체가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그 개체는 해로운 돌연변이가 쌓이고 몸에 손상이 축적돼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번식이 일어난 뒤에 노화가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벨상을 받은 피터 메더워 같은 학자는 그 견해를 지지했다. 아니면 해로운 유전자들이 발현되지 않고 있다가 말년에 발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 조지 윌리엄스 같은 학자가 주장한 이 견해는 한 유전자가 여러 방면으로 복합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유전자가 번식이 이뤄질 때까지는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만 번식이 끝난 뒤에는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면 자연선택은 그 유전자를 선호할 것이다. 가령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성적 성숙을 자극하지만, 나중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따라서 에스트로겐 관련 유전자들은 윌리엄스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일 수 있다.

    로즈는 메더워의 이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실험이 윌리엄스의 이론을 지지한다고 보았다. 전자가 옳다면 초파리의 번식 시기를 늦췄을 때 해로운 돌연변이들의 영향이 심하게 나타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번식 시기를 늦추자 오래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장수 유전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즉 자연선택이 심하게 작용하는 시기를 늦추자 초파리의 수명이 늘어난 것이다.

    수명과 번식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1950년대에 메이너드 스미스는 초파리의 암수를 격리시키거나 불임으로 만들면서 번식과 수명이 상관관계가 있는지 조사했다. 그러자 번식을 적게 하거나 불임인 초파리가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은 어떨까. 최근에 미국에서 결혼한 사람에 비해 독신으로 사는 사람의 수명이 더 짧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독신자는 식생활이 불규칙하고 정신적으로 위안도 덜 받고 해서 더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초파리와 정반대인 셈이다. 그래도 사극을 보면 젊은 환관보다 늙은 환관이 등장하는 쪽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거세(去勢)나 금욕(禁慾)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오랜 속설이 아니던가.

    스티븐 어스태드는 마이클 로즈의 고전적인 연구에 자극을 받아서 노화의 진화 이론이 포유류에도 들어맞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자연선택이 극심하지 않은 곳에 산다면 동물도 좀 느긋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지 않을까. 동물원에서 보살핌을 받는 동물들이 자연 상태의 동물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듯이, 같은 동물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곳에 살면 더 오래 살지 않을까.

    진화적으로 말하면 포식자 같은 위험 요인이 많은 환경에서 살면 장수하는 데 에너지를 투자할 여유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생물들은 빨리 성장하고 빨리 번식하는 전략을 택하기 쉽다. 그러나 상황이 정반대라면?

    어스태드는 미국의 주머니쥐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온갖 위험 요소가 있는 육지에 사는 주머니쥐와 포식자가 거의 없는 섬에 사는 주머니쥐를 비교했다. 예상대로 환경이 좋은 섬에 사는 주머니쥐는 육지 주머니쥐에 비해 25~50% 더 오래 살았고 노화 속도도 훨씬 느렸다. 반면 번식률은 떨어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느리게 사는 전략

    마이클 로즈의 실험은 일찍 혜택을 제공한 뒤 해를 끼치는 유전자들을 인위적으로 없애는 방법이었다. 번식 혜택을 더 늦게 제공하는 유전자들을 선택하면 그 유전자들이 해를 끼치기 시작하는 시기도 그만큼 더 늦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혹시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인위적인 현상인지 자연적인 현상인지를 떠나 현재 여성의 초경 연령은 빨라지고 첫 출산 시기는 늦어지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종의 자연 실험인데 그것이 수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파악하기가 좀 까다로울 듯도 하다. 동물들에게서는 출산율 저하와 번식 시기의 지연이 수명 연장과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타나고 있으니, 혹시 인간도 그렇지 않을까.

    마이클 로즈가 집단유전학적 방법으로 초파리를 실험하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장수에 관련된 유전자를 탐색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로즈의 실험은 장수가 번식 시기 및 노화와 관련된 현상이며, 한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관여하는 복합적인 현상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장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도 혹시 있지 않을까.

    마이클 클래스와 톰 존슨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1988년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냈다. 예쁜꼬마선충은 길이가 1mm에 불과하고 수명이 2~3주에 불과한 아주 작은 벌레다. 그들이 발견한 돌연변이 유전자는 선충의 수명을 무려 65%나 늘렸다.

    이어서 1993년 신시아 캐넌 연구진은 선충의 수명을 두 배로 늘리는 ‘daf-2’와 ‘daf-16’이라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캐넌은 이 유전자가 호르몬과 관련된 연쇄적인 생화학 반응들을 촉발한다고 말한다. 그후 여러 연구진은 그 생화학 반응이 열, 스트레스, 중금속, 자외선, 미생물 저항성, 항산화 작용에 관한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그래서 캐넌은 ‘daf-2’ 유전자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고 말한다. 캐넌은 선충의 수명을 현재 6배까지 늘려놓았다.

    이 연구 성과를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캐넌의 연구는 초파리와 생쥐 연구에 적용된 바 있고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예쁜꼬마선충과 인간의 유전체는 둘 다 완전히 해독되어 있으며, 둘은 유전자의 약 50%를 공유한다. daf-2 유전자는 인간의 인슐린 수용체,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라는 호르몬의 수용체를 비롯한 세 가지 수용체 유전자와 비슷하다. Age-1 유전자는 인간 세포의 표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수용체 유전자와 비슷하다. 또 daf-16 유전자는 전사인자를 만드는데, 그 전사인자는 포유동물 세포의 인슐린과 IGF-1에 조절되는 전사인자들과 비슷하다.

    700세까지 산다고?

    1996년 안드레이 바트케는 정상보다 수명이 50% 더 늘어난 생쥐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서 다른 연구진이 비슷한 생쥐들을 찾아내거나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냈다. 이 생쥐들은 저마다 다른 호르몬 계통에 이상이 있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IFG-1이라는 호르몬을 만들도록 자극하는 또 다른 성장 호르몬이 없거나 그 호르몬에 반응을 안 한다는 점이었다. IGF-1은 세포 분열과 성장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두 호르몬은 정상적인 발달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역설적으로 바트케의 ‘수명이 긴 생쥐’는 몸집이 보통 생쥐의 절반에 불과하다. 성장을 대가로 긴 수명을 얻은 듯하다. 성장 호르몬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며, 그래서 근육과 뼈가 약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기존 상식이었다. 그래서 노화 억제를 위해 성장호르몬을 주사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의 생쥐들은 성장호르몬을 못 만드는 돌연변이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몇 가지 다른 중요한 호르몬도 만들지 못했으며, 불임인 개체도 많았다. 그래서 바트케는 성장호르몬 주사가 장수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론을 편다.

    이 돌연변이 생쥐들은 백내장, 관절염 같은 노화에 따른 질병에 덜 걸리며, 세포를 배양해 실험했을 때 열이나 산화제 같은 스트레스에 저항성이 더 강했다. 따라서 예쁜꼬마선충과 생쥐의 노화 억제와 수명 연장 방식은 유사성이 아주 많다.

    이런 유사점들에 초점을 맞추면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선충의 수명이 6배 늘어났으니, 인간의 수명도 약 700세로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캐넌은 지극히 낙관적이다. 그는 아예 ‘일릭서(Elixer·불로불사약)’라는 이름의 제약회사까지 설립했다. 캐넌은 논문과 인터뷰에서 노화 과정이 유연하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점이 자기 연구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노화 과정은 쓸수록 닳는 자동차의 노후화 과정과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명이 늘어난 예쁜꼬마선충은 늙은 단계가 연장된 것이 아니라 젊은 단계가 연장된 것이다. 즉 노화가 지연된 것이다. 그것은 노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들의 발병 시기도 그만큼 늦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수명을 연장시키는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노화와 수명 연장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 연구는 이제 겨우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인슐린은 수명 및 노화와 어떤 관계일까. 인슐린은 피 속의 포도당 농도를 조절하는 구실을 하니까 혹시 식단과 노화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자는 노화와 장수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이지 해답은 아니다. 앞으로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엉뚱한 질문이겠지만 그런 연구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굳이 진화생물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대 문명이 인류가 일찍이 접하지 못한 유별난 환경이라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온갖 영양물질과 합성물질을 첨가한 음식, 어디에서나 접하는 각종 오염물질, 운동 부족, 항생제를 비롯한 온갖 약물,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관계 등. 이런 유례없는 색다른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명을 연장시킬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 어쩌면 불합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물은 진화를 거치면서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존과 번식 양쪽에 배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생존에 더 많이 투자하고 위험한 환경에서는 번식에 더 많이 투자하며, 번식을 끝내거나 양육 의무를 다하면 급격히 늙는 경향은 그런 적응 양상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생물학적 적응 양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회가 안정되고 풍족해지자마자 번식보다는 생존 쪽에 자원을 더 많이 배분하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수명 연장의 꿈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인구 증가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출산 연령대는 급격히 높아졌다. 평균 수명 증가 속도도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삼박자가 고루 들어맞는 셈이다. 거기에다가 노화 현상을 늦추기 위한 운동, 음식, 약 등 갖가지 방안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이 추세가 노화가 지연되고 절대 수명이 연장되는 쪽으로 이어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아직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수명을 연장하는 자연 실험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노화의 진화 이론이 말하듯이, 번식을 늦추어 자연선택의 강도를 약화시킴으로써 말이다.

    그렇다면 치매, 관절염, 백내장 같은 노화에 따른 질병의 발생 빈도도 낮아지고 발생 연령도 늦어질 텐데 말이다. 마이클 로즈 같은 과학자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보다 그쪽을 선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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