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김현식 지음, 김영사, 440쪽, 1만3000원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김 교수님이 김일성 처가의 가정교사를 했다는 사실과 같은 선정적 내용을 부각시킨 언론의 서평을 잊고자 했다. 그보다는 우리 안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인 탈북 지식인의 개인사와 그 개인사에 용해되어 있는 우리와 우리 밖의 타자인 북에 대한 김 교수님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읽고 싶었다.
우리는 타자와 더불어 살기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안의 타자들도 우리에게서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 안의 타자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을 때, 타자를 우리 잣대로 이해하고, 성급하게 그들을 우리와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김 교수님의 책이 우리의 안과 밖에 있는 타자와 더불어 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넘어왔는가’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자존심과 인정투쟁이다. “내가, 평양에서 대학교수를 했다는 사람이”(354쪽)다라는 자존심, “평생 동안 언어를 연구하고 가르친 학자로서의 자존심”(418쪽)이 책에 절절하게 배어 있다. 이 책은 김 교수님의 인정투쟁을 위한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타자의 자긍심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김 교수님이 남(南)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발견된다. 김 교수님이 러시아에서 남으로 오기 전에 접촉한 한국의 정보요원은, “서울에 가시면 교수님은 당연히 남한 최고의 대학에서 일하시게 될 것”(16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 교수님이 남에서 들은 첫마디는,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34쪽)였다. 김 교수님의 자조처럼, 자신은 평양사범대학 교수가 아니라 “그저 수많은 ‘탈북자’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35쪽)다.
김 교수님은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매일같이 내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넘어왔는가”(39쪽). 피어린 자책의 목소리도 들린다. “내가 가족들에게, 또 보증을 서준 제자들에게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나는 미쳤었다. 나는 미치고 만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선택을 할 리가 없잖은가. 후회가 통한이 되어 가슴을 쑤셔댔다”(33쪽).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김 교수님은 자신의 과거에서 또 다른 자기를 불러낸다. 1946년 봄 함흥 영생중학교 학생으로 소련군과 김일성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던 기억, 목사가 돼야 한다는 어머님의 당부 등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게끔 한다. 개인사가 재해석되면서, 김 교수님의 우연한 선택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전환되고, “북한을 개방시키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사명이 된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이념의 포로인 셈이다.
김 교수님은 북을 타자화하면서 동시에 북 내부의 시선으로 북을 바라보려 한다. 탈북자의 정체성이 어느 하나의 방법론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책 곳곳에서 북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조국과 수령을 배신한 민족 반역자’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의 나를 키워준 북한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327쪽). 그럼에도 북에 대한 비판은 단호하다. 수령의 선물을 받았을 때 그토록 감동했던 김 교수님에게 북은 이제, “부익부 빈익빈, 부의 세습, 학벌 세습”(119쪽)이 이루어지는 “계급과 차별의 땅”(276쪽)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 땅에는, “원천적으로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계급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진정성
그러나 김 교수님은 북의 긍정적 측면에도 주목한다. 남쪽과 비교하면서 얻은 새로운 평가일 것이다. 김 교수님이 제시하는 사례가 김일성의 교육정책, 육아정책, 토지정책이다. 김 교수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11년이나 되는 보통 무료 의무교육은 정말 훌륭한 제도다. 남에 와보니 돈이 없으면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245~246쪽). “김일성은 150일간의 산전 산후 유급 휴가제를 두어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게다가 국가가 운영하는 탁아소와 유치원이 있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게 했다”(256쪽). “김일성이 가장 잘한 일은 토지를 공유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동네에 쓰레기장을 만들지 말라’는 식의 데모가 벌어진다. 조금이라도 나쁜 것은 우리 동네에 들어서면 절대 안 된다는 막무가내식의 데모 때문에 국가시책이 이리저리로 마구 흔들리는 것을 보면 역시 토지를 공유화한 김일성이 옳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246쪽).
김 교수님은 김일성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도 책 여기저기에 드러내 보였다. 김일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탈북자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인 듯하다. 김 교수님은 “만일 김일성이 살아생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좋은 점을 보았더라도 끝끝내 사회주의를 고집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시장경제가 인민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줄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246쪽)라고 답한다. 김일성은 적어도 “인민을 위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김정일은 “쌀밥에 고깃국은커녕 강냉이밥에 채소국도 못 먹여 인민들을 굶어 죽게 만들었”(434~435쪽)다는 평가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구별하려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문제 제기는 남한을 향한 것이다. “이토록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사회인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는 김 교수님은, 주로 교육 문제와 관련해 남한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처럼, “대학입학시험의 문제가 교과서를 벗어나지 않”(332쪽)아야 한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남한 교육의 기본이 “남보다 나를 위하여”이고, 북한 교육의 기본이 “나보다 남을 위하여”라는 대목에선 사범대학 교수의 통찰력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안의 타자 이해하기
남북에서의 경험을 아우르면서 김 교수님은 남북통일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려 한다. 언어학자로서 김 교수님은 철조망보다 말이 먼저 통일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남북 통일말 사전’의 편찬작업에 정열을 쏟기도 했다. 그가 바라는 통일은 “지난날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있”을 때, 그리고 “상대방의 것을 존중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427쪽) 통일이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개방과 남한의 대북정책의 수정이 필수적이라고 김 교수님은 생각하고 있다.
책의 대미를 장식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에서 김 교수님은 “개방하라”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의학과 농업, 그리고 영어를 통한 인재 교육에 한정하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은 남한 땅에서 차별을 느끼면서 “차라리 중국 조선족이라 말하고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게 서울의 현실”(418쪽)이라고 생각하는, ‘3등 국민’의 자서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많은 부분 가슴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북한 정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이야기나 김 교수님이 탈북한 이후에 북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자신감 있는 묘사 등이 언론의 평가와는 달리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의 시각을 결여한 과도한 북한 특수성론도 이 책의 약점일 수 있다.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 안의 타자가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갖는 가치는 소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