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한국 대선 전방위 관찰하는 미국의 눈

대사관·CIA·싱크탱크 3각편대… ‘2002년 사태’가 반면교사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7-08-09 16: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2007년 여름, 대선 국면의 뜨거운 한철을 관통하고 있는 광화문과 여의도 정가 곳곳에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시선들이 날카롭게 움직인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며, 그의 정책은 무엇이고, 이는 한미관계와 동북아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예의주시하는 미국의 눈이다. 공식 조직과 비공식 루트, 외교부처와 정보당국, 싱크탱크와 퇴직 관료들을 아우르며 이뤄지는 미국의 한국 대선 관찰은 주요 캠프 참모들의 면면과 최근 한반도 이슈에 대한 각 대선주자의 견해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뻗어나간다. 5년 전, 10년 전보다 훨씬 정밀해진 초강대국 미국의 ‘한국 대선 신경망’을 해부했다.
    한국 대선 전방위 관찰하는 미국의 눈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주한 미대사관(왼쪽 건물).

    # 장면 1

    5월29일 오후 광주 5·18기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선후보 경제정책 토론회. 각 후보 지지자들이 빼곡히 메운 좌석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거대한 체구의 외국인이 눈에 띈다. 각 캠프와 당 관계자들은 물론 출입기자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며 메모를 하는 품은 언뜻 외신기자 같아 보이지만, 그의 신분은 미국 국무부 소속 외교관이다. 주한 미대사관 정무파트의 헨리 해가드 국내(한국)정치팀장. 국회와 정치권을 담당하는 그는 2007년 한 해 동안 대사관에서 가장 바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대목’이 왔기 때문이다.

    1972년생으로 서울에서 근무한 기간만 5년이라는 그는, 비(非)교포 출신 미국 외교관으로는 한국말을 가장 능숙하게 구사하는 데다 웬만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를 앉은 자리에서 줄줄 꿸 만큼 한국 정치에 밝다. 각 당 의원들은 물론 주요 출입기자들, 캠프 외교안보 참모들과도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폭탄주 술자리와 노래방 뒤풀이를 마다하지 않는, ‘전임자들에 비해 매우 정력적인 활동’을 1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 장면 2

    서울 종로구 세종로 32번지 미대사관 5층. ORS(Office of Regional Studies·지역조사과)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이 방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20여 명의 번역팀이 평시 3교대, 바쁠 때는 2교대로 근무하는 이 사무실 이름은 CIA(중앙정보부) 서울지부의 대외명칭이다. 일본어나 중국어 번역을 담당하는 이들도 있지만, 70% 가까이는 한국말로 발행된 각종 언론보도와 보고서 등을 실시간으로 영역해 버지니아주 랭리에 있는 CIA 본부로 보낸다. 매일 번역되는 원고 가운데는 조선중앙방송이나 조선중앙TV 등 북한의 관영매체 보도내용도 꽤 있다. 그러나 서울의 주요 동향, 특히 대선관련 뉴스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번역팀 외에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는 다섯 명 남짓한 ORS 소속 요원들은 한국의 정보당국자 등을 대면접촉해 얻은 정보를 암호화해 역시 CIA 본부로 타전한다. 이 가운데는 통칭 ‘CIA 한국지부장’으로 불리는 ORS 서울과장도 있다. 20여 명 안팎으로 알려진, 그러나 실제로 몇 명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비공개 요원들의 첩보수집 결과는 ORS와는 별도의 채널을 통해 본국에 전달된다. 같은 건물, 같은 사무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근무했지만, 이임한 뒤에야 그 신분을 ‘바람결에’ 듣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 장면 3

    지난 2월 하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대사, 국방부 차관보를 역임한 애시턴 카터 하버드대 교수,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사령관 등 쟁쟁한 거물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의 공식 방한 목적은 스탠퍼드대 예방외교연구소 차원의 학술활동. 그러나 실제로는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등 주요 대선주자나 그 캠프 참모들을 죽 ‘훑고’ 돌아갔다. 전·현직 정부 당국자들이나 서울의 전문가들 역시 이들의 접촉대상 리스트에 포함됐다. 한 캠프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예비역 한국군 고위장성의 말이다.

    “상당히 구체적인 질문이 많아 좀 놀랐다. 대선이 10개월이나 남은 때였는데도 단순히 ‘누가 될 것 같으냐’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캠프별로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위상 등과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하나하나 기록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묻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묻는 이도 답하는 이도 명확히 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정부나 정치권을 위해 한국 대선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Memorandum of Conversation

    한국 대선 전방위 관찰하는 미국의 눈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주요 대선주자들을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6월4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여의도 캠프를 방문했을 때.

    미국이 한국의 대선을 관찰하는 공식 메커니즘의 핵심 축은 단연 주한 미대사관이다. 외교관 신분을 가진 CIA 요원들을 포함해 모든 파견 직원들은 공식적으로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수집된 정보를 처리해 보고하는 경로는 자신의 상급부서를 원칙으로 한다. 조지프 윤 공사가 지휘하는 정무파트는 미 국무부로 전문을 보내고, ORS팀은 CIA 본부에, 재무부나 농무부 등의 파견 직원은 각각 자신의 부서에 보고하는 식이다.

    대사관에서 이뤄지는 정보수집의 최상층 경로는 당연히 대사 본인이 담당한다. 주로 주요 대선후보를 직접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6월4일 버시바우 대사는 아침 7시30분부터 한 호텔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만나 1시간30분이 넘는 긴 조찬을 함께했다. 통역과 배석자 한 명씩만 대동한 비공식 접촉이었다. 같은 날 오후에는 여의도에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캠프 사무실을 방문해 몇몇 캠프 참모와 함께 3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박 전 대표와는 2월에도 한 차례 만난 일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짧게 잡았다는 후문. 지지율 1, 2위 후보의 형평을 고려해 같은 날 만났지만, 똑같이 시간을 배분하면 두 번째 만나는 박 대표에게 ‘기우는’ 모양새가 될까 염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버시바우 대사의 주요인사 면담 스케줄이나 형식 조정 등은 조지프 윤 정무담당 공사가 담당한다. 서열 2위인 윌리엄 스탠튼 부대사나 서열 3위인 윤 공사 역시 공식·비공식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하지만, 후보 본인을 만나는 경우에는 가급적 사후에라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뒷말’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 까닭이다.

    이들 대사관 고위관계자들은 주요인사 면담이 끝나면 ‘MEMCON(Memorandum of Conversation·대화보고)’을 작성해 본국으로 타전해야 한다. 보통은 배석자가 정리하고 본인은 검토만 하지만, ‘매우 비공식적인’ 면담의 경우에는 직접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대화 내용 전문을 송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2쪽 분량의 간략한 보고서 형식이다. 대화 내용에 따라 보고서의 공개등급이 결정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국무부 한국과 → 힐 → 라이스

    조지프 윤 공사 휘하에는 국내정치담당, 국외정치담당, 군사담당 팀장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 대선 관찰의 핵심에 해당하는 국내정치팀은 해가드 팀장을 포함해 두 명의 국무부 소속 외교관과 세 명의 한국인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쉽게 말해 현장요원인 셈. 대선판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으며 여론조사 동향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후보별 핵심이슈는 어떤 결과를 나을지 예상하는 일이 모두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국내정치팀의 임무는 국회에서 NGO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이 넓지만,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한국 대선의 특징 때문에 상당부분 대선과 연결돼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상층부나 국내정치팀 모두 주요 주자의 사퇴, 탈당, 검증공방 등 대선과 관련해 중요한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보고서를 작성할 뿐, 일간이나 주간 등의 형식으로 정기 보고를 하지는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다만 여론조사의 경우 꾸준히 업데이트하는데, 이 경우에도 특정 여론조사의 ‘편향’을 우려해 장기적인 추세나 발표된 언론사 여론조사 등의 평균치를 사용하는 등의 주의를 기울인다.

    서울 대사관 정무파트에서 보낸 정보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이끄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국(EPA·East Asian and Pacific Affairs)으로 취합된다. 특히 성 김 한국과장은 서울에서 온 전문을 모두 숙지하는 것이 1차 업무에 해당한다. 한국과에서 가치를 선별한 고급정보는 힐 차관보에게 보고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신임을 받고 있는 힐 차관보는 차관이나 부장관을 거치지 않고 장관에게 직보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의 대선관련 이슈는 어지간해서는 장관실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전직 국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힐 차관보는 2004년 8월 주한미대사로 임명된 지 8개월 만에 차관보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 그는 대사관에서 함께 일했던 유리 김 당시 국내정치팀장, 성 김 당시 군사담당팀장 등을 모두 워싱턴으로 데리고 갔다. ‘따끈따끈한’ 한국 경험과 정보원을 가진 한국계 직원이 많은 까닭에 국무부 한국과가 직접 서울 사정을 탐색하는 능력도 이전 어느 대선 때보다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직접 경로로 파악하는 정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선후보 신상정보 축적하는 CIA

    대선관련 정보취합의 컨트롤타워 노릇을 하고 있는 힐 차관보 본인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요 대선후보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는 가급적 대선 상황 자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려 주의한다고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역시 ‘뒷말’을 우려한다는 것. 실제로 5월13일 워싱턴을 방문한 이해찬 총리와 힐 차관보의 대화기록을 살펴보면 북핵 문제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한미자유무역협정 등에 대한 언급으로 채워져 있을 뿐 정치현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ORS 간판을 단 CIA 서울지부는 ‘공식적으로’ 한국 대선관련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1970~80년대 CIA의 한국정치 관여가 큰 문제가 됐던 때문이기도 하고, 주재국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CIA의 공식 원칙 때문이기도 하다. 관계자들은 대사관 국내정치팀과의 정보교환조차 없다고 잘라 말한다.

    국방부 분위기는 국무부와 다르다?

    “제2의 ‘서산호 사건’을 우려한다”


    “가급적 대선에서 이슈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는 국무부 인사들에 반해 국방부 관계자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이는 대목이 눈에 띈다. 버웰 벨 사령관 등 주한미군 주요 지휘관들이나 펜타곤 관계자들의 발언 수위, 특히 노무현 정부의 대북인식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최근 들어 더욱 적극적인 까닭이다.

    여기에는 2·13합의 이후 한반도정책 논의에서 주도권을 잃은 국방부 등에 ‘남아 있는’ 강경파 인사들의 상실감이나, 국무부에 비해 노무현 정부 청와대와 껄끄러운 5년을 보낸 국방부 한국 담당자들의 특성이 작용하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가 역으로 무리수를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국책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미국 전문가의 말이다.

    “2002년 12월10일, 미국은 수출용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선박 서산호를 스페인 해군에 의뢰해 공해상에서 나포했다. 상황은 흡사 할리우드 영화장면처럼 시시각각 타전됐다. 그러나 그 미사일 수출 건은 국제법상 문제가 없었고, 미국은 결국 사흘 후 선박을 풀어주며 예멘과 스페인 정부에 사과해야 했다. 한국 대선을 엿새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은 콜린 파월 당시 국무부 장관과의 사전상의 없이 진행된 것이었음이 확인된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해프닝에 한국 대선 상황을 의식한 미국 군사·정보당국 내 강경파의 심중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로 대선판도를 뒤흔드는 ‘실책’을 저질렀다는 다급함도 한몫 한 듯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국내에 보도된 이후 오히려 ‘미국의 대선개입 징후’를 의심하는 지적이 바로 확산됐고, 반감도 거셌다. 국내여론을 움직이려는 섣부른 행동이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례인 셈이다. 미국 내 일부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고 생각한다면 이를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달라서, 대선캠프 인사들 가운데서도 적잖은 수가 ORS팀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ORS팀은 북한 문제에 정보 안테나를 맞추고 있지만, 서울의 안보 전문가나 전직 군·정보당국자 상당수가 대선 캠프에 몸담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상급부서는 다르지만 ORS와 정무파트 역시 주기적으로 합동브리핑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ORS가 대면접촉을 통해 수집한 비공개정보는 CIA 본부의 한국 담당자들에게 전달되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이나 한국 담당자들의 숫자 등은 보안사항으로 묶여 있다.

    ORS 번역팀이 실시간으로 작업한 신문·잡지·방송보도와 보고서, 문건 등의 공개정보는 CIA를 거쳐 국가정보국(DNI)의 OSC(Open Source Center·공개자료센터)로 통합된다. 과거 FBIS(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외국방송청취팀)로 불리던 OSC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는 미국 정부기관의 일정직급 이상 직원이면 누구나 인트라넷을 통해 접속할 수 있지만, 외부로의 반출은 금지돼 있다. 이는 보안 문제가 아니라 저작권 탓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 어느 나라 언론사도 CIA에 번역권을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내부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CIA 본부 내 한국 담당자들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ORS가 보내온 공개·비공개 정보를 주로 취합해 한국 내 주요인사의 BIO(Biography·신상명세)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작업이다. 대통령이나 부통령, 각부 장관 등이 한국측 인사를 접촉하는 경우 백악관 혹은 해당부처는 CIA에 이 BIO 보고서를 요청해 사전에 숙지한다. 한미 간에 주요 협상테이블이 열리는 경우 한국측 대표의 신상명세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주요경력 등 일반적인 사항도 있지만 비공개 정보원을 통해 취득한 ‘사적인’ 내용이나 인물평도 일부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보안법 위반 같은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사안은 주요 체크포인트라고 CIA BIO보고서를 접해본 경험자들은 말한다. 한국의 대선주자들, 특히 유력주자라면 지금쯤 만만치 않은 분량의 신상정보가 축적돼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CIA의 BIO와는 별도로 국무부 정보조사국(INR·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동북아팀도 주요 한국 인사들의 BIO를 작성하고 업데이트해 대선 동향파악 등 국무부 업무에 활용한다. 통상 3~4명으로 구성되는 INR 한국팀은 주로 주한미대사관의 보고와 공개자료를 중심으로 정보를 취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이 아니라 연구직인 이들은 한국 근무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하는 외교관들과 달리 장기간 한국이나 동북아만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깊이 있는 정보분석에 강하다는 평이다. 현재는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존 메릴 분석관이 팀을 이끌고 있으며, 1차 북핵위기 당시 한국과장을 맡았던 케네스 퀴노네스가 이례적으로 INR에서 EPA로 옮긴 케이스다.

    이렇듯 부처별로 외국 주요 인사들의 신상정보 수집이 이원적으로 진행되는 등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9·11테러 이후 ‘정보수집·활용의 효율화’를 내걸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이를 통합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다는 것이 중론. 한국만 해도 주한미공보원(USIS)이 서울에서 발행된 한미관계 관련 뉴스를 번역해 공보처로 보내고, ORS도 주요 보도를 번역해 CIA로 보내며, 주한미군 내 국방정보부(DIA) ‘Early Bird’ 팀도 군사 뉴스를 번역해 펜타곤으로 보내고 있지만, 이러한 중복번역을 해소하겠다는 논의 역시 지지부진하다고 미국측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비공식 루트’의 움직임

    지금까지 살펴본 공식 메커니즘과는 별도로 비공식적인 움직임도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국무부 한국과의 대선담당자가 분기별로 서울을 방문해 대사관의 정보보고가 타당한지를 이중으로 검증하고 있다는 설이 있으나, 한국과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 또한 한국과 이외의 국무부 직원들이 업무상 서울을 방문해 주요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선관련 동향이나 예측, 주요 안보 이슈에 미칠 영향 등을 체계적으로 체크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이들이 반드시 힐 차관보나 EPA에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 전직 국무부 관계자는 “특이동향이 있으면 보고하려는 정도의 생각으로 묻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한국의 국내정치 관련 정보를 수집하거나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주한미군 DIA ‘Early Bird’ 팀이 군사분야 뉴스만을 번역하도록 돼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군사정권 시절 주한미군 지휘관들이 한국군 전현직 장성들과의 친분관계를 통해 얻은 정보는 DIA를 통해 본국에 전달되어 서울의 정치변동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데 매우 긴요하게 활용됐지만, 지금은 단순한 여론 청취 수준을 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군인 출신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정계를 장악하던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은 최근까지도 개인적인 채널을 통해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취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기간 CIA 서울지부에서 일한 그는, 여야 정치인이나 핵심관료, 전문가들과의 개별접촉을 통해 국내정치를 관찰하는 것은 물론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려는 플레이에도 능했다는 평가다(‘신동아’ 1월호 ‘한국을 움직이는 미국의 손, 리처드 롤리스’ 기사 참조). 워싱턴 현지의 국방부 관료로서는 전례가 없는 그의 독특한 성향은 2002년 대선과정의 ‘뼈아픈 경험’과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군사협상에서 빚은 청와대와의 크고 작은 마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의 비공식 루트는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이다. 앞서 살펴본 스탠퍼드 예방외교연구소 인사들의 경우처럼 미국의 전현직 관료들은 퇴임 이후 싱크탱크에 몸담고 정부나 민주·공화 양당과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이 학술활동을 명분으로 대선캠프 인사들과 전문가들, 정치인들, 전현직 당국자들과 만나 얻은 대선관련 정보와 분석은, 이들이 작성하는 프로젝트 보고서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국무부의 경우 대사관 정보수집기능과 중복되어 의회로부터 예산을 배정 받기 어렵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외부에 대선관련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국무부와 주요 싱크탱크는 평상시에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 음양으로 정보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적인 인연을 배경으로 하는 정보수집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의미가 줄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주화 이후 정치과정이 투명해지면서 대부분의 사항은 언론보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 CIA의 BIO보고서나 INR, EPA의 분석보고서 역시 95% 이상 공개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국무부 관계자는 전한다. 대선후보를 대통령이 사실상 낙점하던 시절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으므로 실력자들과의 접촉이 의미심장했지만, 경선과 TV토론회가 핵심이 된 요즘 대선에서는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5년 전보다 정교해진 까닭

    대신 대선과 관련해 미국측 인사들을 접촉했던 한국측 인사들은, 이들이 공식, 비공식루트를 막론하고 가장 깊게 관심을 갖는 대목은 외교안보 이슈, 특히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대북정책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머무르지 않고, ‘누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구사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부분까지 파고든다는 것. 대선동향을 확인하는 전체적인 시스템은 물론 질문의 수준도 1997년이나 2002년 대선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 각 캠프의 견해는 무엇인지, 평화체제가 가속화된다면 이후 주한미군의 위상이나 규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정교한 질문들을 사전에 준비해 갖고 오는 식이다. 역으로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캠프의 공식 입장’을 답할 수 있는 대선주자나 캠프가 별로 없어 미국측 인사들이 “참모마다 대답이 다르다”며 갑갑함을 토로하는 정도라고 한다.

    현재 지지율 1, 2위를 모두 한나라당 예비후보가 차지하고 있고, 비공식 채널의 경우 상당부분이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하기에 정보수집 역시 한나라당 캠프에 집중되는 측면이 강하다. 안보분야의 전직 고위관료나 장성의 경우 대다수가 이명박·박근혜 캠프에 몰려 있기 때문.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들이 미국측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한 이유다.

    비공식루트에 해당하는 몇몇 미국측 인사에게서 “박근혜 캠프에 조금 더 안보관련 콘텐츠가 많은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해 이명박 캠프측 인사들은 “(그 쪽 사람들이) 좀더 ‘원론적으로 듣기 좋은 말’을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일축한다.

    “미군 번호판 차는 딱지도 더 끊는데…”

    미국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태도로 정보 수집에 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에는, 국무부와 국방부, 대사관을 막론하고 2002년 대선에서의 ‘실패경험’이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데 이론이 없다. 2002년 6월 발생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는 수개월간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그해 12월 대선에서는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10월 이전에는 대사관과 CIA, DIA, 국방부, 국무부 어디서도 이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조기경보’를 날리지 못했다는 것. 당시 관련대응에 관여했던 미국측 관계자의 말이다.

    “사건의 파괴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게 초기의 실수였다면, 이후 대응과정에서 패닉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일관한 게 두 번째 실책이었다. 사고를 일으킨 병사들의 선고공판 일정을 11월이 아닌 대선 이후로 조정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했는지는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사관과 국무부, 주한미군사령부와 국방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정확히 보고했다면 부시 대통령의 유감표명이 그리 늦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때의 경험에서 얻은 미국측의 교훈은 한마디로 ‘반면교사’다. 2007년 대선에서는 ‘미국’이라는 주제 자체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이슈가 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특정정당, 특정후보의 유불리를 떠나 아예 변수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이러한 미국측 분위기는 특히 국무부 관계자들에게서 또렷이 확인된다. 오랜 기간 세계 각 나라와 외교관계를 꾸려온 주무부처로서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최근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2·13 프로세스의 향후 일정을 놓고 한미 간에 빚어지고 있는 미묘한 견해차이가 대선 일정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 이전에 평화체제 논의 등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고자 하는 한국 정부에 비해, 관련논의 시점을 ‘올해 안에’ 혹은 ‘연말까지’로 길게 잡은 버시바우 대사와 힐 차관보의 최근 발언이 그것이다. 한국측이 공공연히 8월초 개최 희망을 내비쳤던 6자 외무장관 회담에 대해서도 미국측은 “라이스 장관의 중동출장 일정 때문에 곤란하다”며 9월초로 미룰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대선 과정에서 미국 변수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기를 기대하는 후보가 있다 해도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표는 2월 워싱턴 방문 당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면담을 추진했으나 불발에 그쳤고, 이명박 전 시장도 6월 딕 체니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려 했지만 성사가 안돼 아예 미국행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대사관측 관계자는 “이들 후보가 미국측 인사와 사진을 찍고 ‘미국이 인정하는 대선후보’로 입증 받기를 원한 것이라면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워싱턴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렇게 ‘센스’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 국무부에서 오랫동안 일한 한 인사의 말이다.

    “미국에 기대려고 해봐야 이뤄질 수도 없고, 도리어 손해만 볼 공산이 크지 않을까 한다. 미8군 번호판을 단 승용차는 딱지도 더 많이 떼는 도시가 서울이다. 21세기의 미국도, 21세기의 한국도 모르는 ‘옛 사람들’이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할까. 미국 대선에서 친한·반한이 별 변수가 못 되는 것처럼, 한국 대선에서도 친미·반미가 별 변수가 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