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시장 뒷골목에서 만나는 알리와 자라의 웃음꽃

  • 사진/글 이형준

    입력2007-08-07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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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테헤란 바자르의 골목에서 놀고 있는 해맑은 표정의 아이들.

    2001년 만들어진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작품 ‘천국의 아이들’은 우리에겐 생소하던 이란 영화다. 가난한 가정의 알리라는 초등학생이 여동생의 헌 구두를 잃어버린 후 남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낸 영화는, 사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소재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작품이다. 그러나 오빠와 여동생의 심리를 중심으로 가족과 이웃의 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화면이 이국의 많은 관객에게 가슴 뭉클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고민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테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덕분이다.

    영화의 무대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 동생의 분홍색 헌 구두를 수선해 오던 길에 허름한 식료품 가게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 화면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테헤란 남부의 재래시장 테헤란 바자르와 인접한 뒷골목 너셀을 중심으로 촬영됐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알리(아미르 파로크 하스미안)와 동생 자라(바하레 시디키)가 신발을 바꿔 신은 곳이나 남매가 살던 집, 등하교 길로 이용한 신작로, 신발을 잃어버린 식품점, 신발수선소까지, 촬영의 대부분이 좁고 긴 골목에서 진행됐다. 부호들이 거주하는 북부와 도심 일부도 군데군데 등장한다.

    영화 마니아조차 영화의 무대가 테헤란 변두리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이 도시의 빈민가는 구도심에 해당하는 올드타운에 자리잡고 있다. 도심 한복판 뒷골목에 가난한 이들의 삶터가 숨어 있는 것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살 만한 동네였다는 이곳은 감독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이기도 하다.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언제나 서민들로 붐비는 테헤란의 재래식 시장. 필자가 묵은 호텔 창문에서 본 테헤란 시내. 멀리 눈 쌓인 산맥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올드시티 골목의 오후. 비교적 한적한 테헤란의 신도심.(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영화의 주요 무대인 테헤란 바자르 뒷골목 너셀의 밤.

    사람이 배경, 정취가 무대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테헤란 도심의 공원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소녀들과 전통복장의 중년 여성.

    테헤란 바자르와 연결된 수많은 골목 가운데 하나인 너셀 골목은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도시에서 30년과 12년을 거주한 두 지인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찾아냈을 정도로 후미지다. 영화가 만들어진 뒤 흐른 6년의 시간은 이 빈민가 골목 분위기를 조금도 바꾸지 못했다. 이 지역이 테헤란의 발상지여서 보존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골목에서 신작로로 빠져나오는 어귀에는 마지디 감독이 다녔다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어 지금도 알리와 자라만큼 순수한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지만, 영화가 촬영된 학교는 다른 지역에 있다.

    골목의 어느 모퉁이도 청결함이나 화려함,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언제 방문해도 이방인을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주민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과일상점을 운영하는 주인도, 지금은 이발소로 업종이 바뀐 옛 신발 수선가게를 운영하는 주인도, 모두 같은 자리에 앉아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착한 사람들이 배경이 되고 인심 좋은 분위기가 곧 무대 구실을 하는 영화다 보니, 골목을 걸으면 그대로 영화 속을 걷는 기분이다.

    영화 무대를 안내해준 지인은 몇 해 전 부산국제영화제 운영위원회에서 마지디 감독을 찾아 인터뷰할 때 통역을 한 사람이었다. 그가 들려준 ‘천국의 아이들’과 관련된 숨은 이야기에 따르면,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각본을 썼고 그 배경지로 자신의 고향 골목을 골랐다고 한다. 애초에 감독은 영화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가난한 아이와 가족을 돕기 위해 설립된 구호재단의 도움으로 겨우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당시 감독이 재단으로부터 받은 금액은 4만달러. 그 적은 돈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몬트리올 영화제 3관왕을 비롯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파지르 국제영화제 입상 등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각국에 수출됐다. 그 수익이 투자액의 수백배에 달해 구호재단 역사상 최대의 대박 투자가 됐다는 것이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알리와 아빠(모하메드 아미르나지)가 부업으로 부잣집 정원을 손질했던 곳은 사이드어벗 지역이다. 테헤란 북부의 이 지역은 넓은 정원을 갖춘 주택들이 늘어선 부자동네다. 과거 이란을 지배했던 팔레비 왕조의 여름궁전을 비롯해 갖가지 호화 저택이 즐비한 이곳은 바자르 골목에 있는 집들과는 극과 극을 이루며 대조된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높이 쌓은 담장과 곳곳에서 번뜩이는 감시 카메라에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뒷골목 동네의 따뜻한 인간애와 푸근함을 찾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다.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영화에 등장한 식료품 가게와 그 주인.

    서울거리와 테헤란로

    영화에서 알리와 아빠가 부자동네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던 거리는 테헤란 도심지역이다. 알리 역을 맡은 아역배우가 실제로 살고 있던 올드시티 지역에서 부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도심을 통과해야 한다. 그 길목 어귀에는 한글로 된 간판이 걸려 있는 서울거리가 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맞바꾼 거리 이름. 영화 속 아빠와 알리는 한국과 이란 사이의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이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서울거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이동하면 양국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서울공원도 만날 수 있다. 영화의 무대는 아니지만 누구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와 각종 놀이시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서울문화회관이 건립돼 있어 가족 나들이객에게 인기가 높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제3세계 영화 혹은 중동 영화에 대한 세계인의 편견을 한방에 날려버린 작품이다. 그리고 그 힘의 8할은 배경이 된 테헤란 뒷골목의 사람 사는 냄새에서 나온다. 강남 테헤란로와 뉴욕 맨해튼이 그리운 당신이라면 그 거리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문득, 사람이 사람과 아울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에는 이 골목을 찾으라. 당신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사람 냄새가 그곳에 있다.

    ‘천국의 아이들’이 뛰노는 이란 테헤란

    시장통 골목에서 빵을 사들고 귀가하는 시민.(좌) 테헤란 도심의 서울문화회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우)

    여·행·정·보

    인천에서 테헤란까지는 이란항공 직항이 주1회 운항한다(9시간). 이란 국제공항에서 테헤란 중심부까지는 택시를 이용한다(30~40분). 테헤란 바자르와 북부 지역 사이를 오가려면 택시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의 경우 남녀가 이용하는 칸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한 후 승차해야 한다. 숙박시설은 대형 체인호텔 등 여러 곳이 있으며 치안도 안전한 편이다. 이란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며 공항 도착비자를 발급하지 않기 때문에 출국 전에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소요기간은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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