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北 국제금융기구 가입 ‘산 넘어 산’ ADB(아시아개발은행) 최대주주 일본 반대가 암초

  • 장형수 한양대 교수·국제금융 hzang@hanyang.ac.kr

    입력2007-08-09 12: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13 프로세스’에 속도가 붙고 있다. 북한이 이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2·13합의의 핵시설 불능화 이행과 연계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받은 뒤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 저금리 차관을 얻어 경제발전의 ‘종자돈’으로 쓰려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선의 시나리오가 진행된다면 폐쇄국가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경로가 될 수 있는 루트다. 2005년 9·19합의와 올해 2·13합의 이후 학계와 언론은 이러한 방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그 구체적인 과정이나 다양한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이 부족한 반면,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차관도입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고 있다. 장형수 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관은 이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전문가다. 세계은행과 대외정책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했고, 2005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국가정보원에서 일했다. 향후 진행될 상황의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차관도입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본다.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2003년 4월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이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2002 국제 테러지원국 블랙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6월25일,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여 있던 북한 자금 2500만달러가 마침내 미국과 러시아 중앙은행을 거쳐 북한 계좌로 이체됐다. 그간 발목을 잡고 있던 장애물이 제거됨에 따라 2·13합의 이행의 계기가 마련된 순간이었다. 합의에 따르면 앞으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단을 받아들여 핵시설을 폐쇄(shutdown)하고 한국은 중유 5만t을 지원하게 된다.

    ‘2·13합의’의 마지막 단계인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disablement)를 위한 조건을 놓고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과 분야별 실무그룹회의에서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만 핵시설 불능화를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 제외’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러한 조치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 국무부가 1988년 북한의 KAL기 폭파사건 이후 북한에 내린 테러지원국 지정 조치는 북한의 국제사회 진입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 진입을 상징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제금융기구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의 상임이사는 미국 국내법에 따라 테러지원국에 대한 자금공여에 반드시 반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 차관을 도입하려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필수적이다.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노력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로부터 재정지원은 끊겼고, 한중 수교로 북중 관계가 냉각됨에 따라 중국의 지원도 극히 제한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은 국제금융기구 관련 정보에 어두웠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말과 1998년 초에 IMF와 세계은행이 각각 출장팀을 평양에 파견해 국제금융기구 가입 관련 제반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시행한 일이 있다. 이때 북한측 관계자들은 전혀 새로운 사실을 듣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이해 부족은 2002년까지도 계속됐다는 여러 정황이 있다. 북한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특별게스트로 초청받고도 마지막 순간에 돌연 불참한 일, 미국 스탠리재단이 영국 런던에서 주선한 세계은행과의 비공식 접촉에서 보여준 북한 관리의 태도와 국제금융에 무지한 언급 등이 그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 어떻게 이뤄지나

    하지만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추진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북한이 이미 상당한 관련 지식을 축적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002년 이후 매년 수백회로 급증한 북한 관리들의 서방권 연수 프로그램이 단적인 징후다. 북한 관리들은 올해 1월에도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과 국제금융기구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은 1978년 구 월남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자격을 승계했으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관계가 단절됐다가, 1993년이 돼서야 IMF, 세계은행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자금지원을 재개받은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이 국제금융기구와 관계정상화하기 3~4년 전부터 이미 다양한 형태의 연수, 세미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적 지원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그 조건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것보다 간단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대통령이 지정 해제 희망일 45일 전까지 ‘해제대상국이 지난 6개월간 테러지원 사실이 없고, 향후 지원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 된다. 이후 의회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해제는 발효된다.

    의회의 이의 제기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사되기 힘들다. 물론 의회가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백악관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 본인이 ‘정치적’ 결심만 하면 매년 4월과 10월에 있는 테러지원국 지정과 관계없이 언제라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매년 4월과 10월의 테러지원국 지정 시점에만 해제가 가능한 것처럼 분석한 최근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2004년 5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오히려 관건은 미국 의회보다는 일본의 태도다. 일본 정부는 생사(生死)가 밝혀진 자국민 8명 외에도 추가로 5명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고,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기 내에 북핵 문제에서 외교적 성과를 목표로 하는 부시 행정부에 있어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는 최우선 조건에 해당한다. 이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분위기가 성숙되면 미국은 일본을 적극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삭제하더라도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실제로 가입해서 자금지원을 받기까지는 난관이 많다는 논리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기구 가입은 향후 6자회담에서 협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미국, 일본의 주요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이후 상황이 예상처럼 풀려 나가는 경우,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차관 도입을 통해 국제사회에 복귀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이제부터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이후의 상황’을 시나리오 형태로 예측해봄으로써,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상황전개 시나리오는 편의상 주로 일본과 북한의 가상적인 태도를 대비해 구성했다.

    일본과 중국 상임이사의 격돌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직후 IMF에 가입 신청을 한다. 저개발국에 대한 저금리 차관을 가장 많이 공여하는 세계은행에 가입하려면 IMF 가입이 전제조건이기 때문. 세계은행은 우리에게 낯익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와 다소 생소한 IDA(국제개발협회)로 구성돼 있다. IBRD는 기본적으로 ‘은행’이기 때문에 차관 금리가 5~7% 수준이지만 저개발국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빌릴 수 있는 차입조건보다는 금리가 훨씬 낮다.

    반면 IDA 차관은 이자가 없다. 0.5~1.0%의 취급수수료만 지급하면 상환기간 30~40년의 자금을 빌릴 수 있다. IDA 차관의 현재가치를 계산해보면 액수의 60~70%를 공짜로 주는 것과 같은 매우 양허(讓許)적인 조건이다. 한국이 북한에 보내는 ‘쌀 차관’ 지원보다도 좋은 조건이다. 이 때문에 세계은행의 차관은 북한에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IMF도 한국이 외환위기 당시 지원받았던 긴급차관제도 외에,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2~3%의 저금리로 빈곤국의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차관공여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IMF 가입과 함께 IBRD와 IDA에 동시 가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다.

    북한의 가입 신청을 받은 IMF는 이에 대한 심사를 상임이사회에 회부한다. IMF 상임이사회는 규정에 따라 북한 가입 심사를 위한 공식적인 절차에 돌입할 것인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을 벌이게 된다. 회의석상에서 일본측 상임이사는 “북한은 개방·개혁을 통해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할 의사가 전혀 없고 아직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의 IMF 가입은 심사할 가치도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반면 중국측 상임이사는 IMF 규정을 제시하며 “시장경제제도 도입과 핵무기 포기는 IMF 가입의 전제조건이 아니며, 안정적인 국제통화질서를 유지할 의사가 있는 모든 국가에 가입이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상임이사회는 북한의 가입 신청을 공식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실태조사와 가입 협상을 담당할 출장팀을 빠른 시간 안에 평양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그 구체적인 준비과정에서도 일본측은 출장 실태조사 항목에 외환보유고와 예산 세부항목 등 가능한 한 민감하고 까다로운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견제를 이어 나간다.

    IMF는 1997년 말 북한을 방문했던 팀과 체제전환국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이코노미스트들을 모아 북한 출장팀을 급조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이들의 지식과 정보는 매우 빈약하다. 1997년 말 북한 출장 이후 IMF 내에 구성됐던 북한연구그룹이 유명무실해졌기 때문. 한편 북한은 한국계 혹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관계자가 IMF 출장팀에 포함되자 비자 발급을 지연시키면서 신경전을 펼치기도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IMF에 가입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기본적으로 협조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미국 투표권 16.8%, 한국은 1.33%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IMF 출장팀은 북한의 국민소득, 예산, 국제수지, 협동농장 등 경제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IMF 통계치의 상당수는 북한 관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개념이어서 실태파악에는 상당한 애로가 발생한다. 더욱이 배급제의 붕괴와 중앙집중적 통제시스템의 일부 이완으로 북한 당국자들 역시 자국의 경제사정에 대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번의 출장에도 상황진전이 없자, IMF 출장팀장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종 경제실태조사보고서를 작성해 상임이사회에 제출한다. 어차피 정확한 경제지표를 알아내는 것이 IMF 출장팀의 절체절명의 임무는 아니었고, 이것이 북한이 IMF에 가입하기 위한 필수조건도 아니며, 단지 북한의 암담한 ‘실태’를 상임이사회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IMF 출장팀은 가입 희망국이 사전에 해야 할 행정적인 조치에 대해 북한측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IMF 출장팀의 최종 보고서를 제출받은 상임이사들은 총회에 북한 가입 건을 의제로 제출할 것인지를 놓고 다시 격론을 벌인다. 일본측 상임이사는 “출장팀의 자료조사에 북한이 협조하지 않아 통계치가 부실하다”고 주장하며 “북한 가입 건은 총회에 넘기지 말고 다음 상임이사회에서 재심의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측 상임이사는 “1991년 구 소련 해체로 소련의 일부였던 체제전환국들이 IMF에 가입할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반박한다. 일국의 통계작성 능력은 단시간에 향상되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 북한을 IMF에 가입시킨 후 통계작성 능력 향상을 위한 대대적인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 이러한 주장은 결국 상임이사회를 통해 관철되기에 이른다.

    신규회원국 가입을 결정하는 총회는 통상 별도의 회동을 갖지 않고 6주간의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데, 총 투표권의 3분의 2 이상을 보유하는 가입국이 투표에 참가해(IMF 총회 투표권은 각국의 할당금 비율에 따라 정해진다) 행사된 투표권의 과반수 찬성이면 가입이 확정된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전체 투표권의 16.8%를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상임이사회의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IMF 출장팀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미국측 상임이사실에서 전화가 오면 IMF 직원들이 늘상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외에 난상토론을 즐기는 영어 잘하는 일부 서유럽 상임이사들도 발언권이 세다. IMF 투표권이 1.33%에 불과한 한국은 아쉽게도 호주 상임이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IMF 상임이사회에 전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라서 북한의 IMF 가입은 미국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북한은 국제금융기구 가입 문제를 북핵 시설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이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종식의 상징으로 간주해왔다. 북미 간 관계정상화와 핵 폐기 과정에 큰 돌발변수가 발생하지 않은 덕분에, 백악관은 북한의 IMF 가입에 대해 승낙 신호를 보낸다. 이후 일사천리로 이어진 총회절차를 통해 북한의 재정상(財政相)과 조선중앙은행 총재는 미국 워싱턴에 날아가 IMF 협정문에 최종 서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평양의 관계 당국자들은 ADB의 경우 가입심사 절차나 자금지원 조건이 IMF보다 덜 까다롭다는 소문을 듣고 반색한다. ADB는 저개발국의 빈곤 감소라는 설립 목적에 가장 충실한 국제금융기구이기 때문에 IMF와 사이가 좋지 않은 우즈베키스탄 같은 국가들에도 경제개발차관을 상당액 제공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북한은 비슷한 시기에 ADB에도 가입을 신청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ADB의 최대주주는 다름 아닌 일본. 미국과 동일한 투표권(12.9%)을 보유하고 있고 ADB 운영에 있어 발언권이 가장 세다. 게다가 ADB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총투표권의 4분의 3이 필요하다. 이는 IMF나 세계은행보다 까다로운 의결 조건이다. 미국이 찬성한다 해도, 최악의 경우 일본과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자금지원을 많이 받는 국가들이 반대한다면 북한의 가입은 봉쇄된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종식 관철 이후에도 북일 간에 납치자 문제를 두고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북한의 ADB 가입은 계속 지연되고 국제사회의 본격 진입 행보는 상대적으로 더뎌질 수밖에 없게 된다.

    통계 제출의 숨바꼭질

    비록 ADB 가입에는 실패했지만 IMF와 세계은행 가입에 성공한 북한은 이들 기구에 저금리 차관 도입을 타진하기 시작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려면 회원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특히 국민소득, 국가재정, 국제수지 등에 관한 통계 제출과 IMF 협정문 제4조에 따른 정책협의는 모든 회원국의 기본 의무사항이다.

    IMF와 회원국은 정책협의 과정을 통해 경제정책을 조율하며 ‘정책권고’의 형태를 통해 회원국의 정책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책권고’는 IMF 협정문상 회원국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IMF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려는 회원국은 이를 상당부분 수용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이 IMF로부터 긴급자금지원을 받았을 때의 상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세계은행, ADB의 차관에도 IMF만큼 까다롭지는 않지만 일정한 자금지원조건이 설정된다. 국제사회는 IMF와 세계은행, ADB 등 국제금융기구와의 정책협의 및 자금지원 조건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에 적잖은 딜레마를 던진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전면 거부하면, 비록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은 돼 있지만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있는 이란·시리아·수단처럼 본격적인 자금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선군(先軍) 조선’의 자부심 강한 관리들과 정책협의를 위해 마주 앉은 국제금융기구 실무책임자는 협의 전 과정에 걸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실무자 처지에서는 자기가 담당한 국가의 업무에서 무엇이든 진전이 있어야 인사고과에 도움이 되게 마련. 북한은 오히려 국제금융기구 총재에게 재정상과 조선중앙은행 총재 명의로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내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무책임자 OOO는 연례정책협의나 차관공여 협상시 종종 아국을 매우 무시하는 언동으로 아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차관공여 여부 등으로 위협하면서…강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이에 OOO의 교체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서한이 전달되는 것은 해당 실무자 처지에서는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회원국으로부터 공식적인 불만이 제기되면 국제금융기구 수뇌부는 어떤 형태로든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북한이 가입절차를 마치자마자, IMF와 세계은행은 본격적인 실태조사 출장팀을 즉시 평양에 파견한다. IMF는 거시경제통계, 외환, 재정, 무역, 조선중앙은행 통계 등을 작성하고 세계은행은 농업, 교육, 보건, 교통, 통신, 전력 등 부문별 실태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IMF와 세계은행의 각 상임이사회에 제출된 실태조사보고서는 북한측 당국자들의 현대적 통계개념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지적하며 “의미 있는 북한통계 작성을 위해서 북한 관리들을 미국 워싱턴에 있는 IMF와 세계은행 연수원에 초청해 통계작성 기법에 대한 집중연수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를 심의하기 위해 열린 IMF 상임이사회에서 중국측 상임이사는 북한이 자국의 통계를 산정할 능력이 생길 때까지 충분한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고 이 기간 에는 불충분한 통계도 수용하는 ‘유예기간’을 둘 것을 주장해 관철한다.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같은 동구 체제전환국가들도 IMF 가입 이래 5~7년이 지난 후까지 이자율, 통합재정수지, 중앙은행 통화계정 등에 대한 개념교육과 통계표 작성을 지도받은 바 있다는 게 그 근거였다. 또한 대부분의 저개발국은 기술적인 지원이 이뤄져도 불편한 교통이나 제도 미비 때문에 정확한 실상 파악이 극히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정도 작용했다.

    당초 항간에는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통계 제출의무가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쏟아져 나왔지만, 일련의 과정과 국제관례 덕분에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후에도 상당기간 통계 제출 문제는 북한에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IDA 차관, 최대 4억6500만 달러

    통계 작성과 제출 문제가 일정부분 해결된다 해도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은 남아 있다. 양허성 차관공여를 희망하는 회원국은 IMF, 세계은행과의 정책협의를 거쳐 빈곤감소전략보고서, 국가지원전략, 기본정책문서 등을 공동 작성하고, 이를 최소한 1년에서 3년간 이행한 후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양호한 이행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야만 북한은 선진 채권국들의 모임인 ‘파리클럽’의 공공채무 경감 프로그램을 적용받을 자격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1970년대 서방은행권으로부터 무리하게 도입한 차관을 갚지 못해 낙인찍힌 ‘채무불이행국’ 지위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자금지원은 인프라 건설 등 자금집행에 시일이 많이 걸리는 ‘프로젝트 차관’과 단기간에 자금집행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차관’으로 나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면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므로 ‘시장경제의 신속한 도입과 과감한 개혁·개방’을 조건으로 대규모의 프로그램 차관이 신속히 제공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과연 이러한 차관 조건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북한의 경우 1인당 소득이 매우 낮아 IBRD의 차관은 상당기간 도입할 수 없다. 가입 후 최소 5~10년간은 무이자로 지원하는 IDA 차관만 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처음 타진하던 10여 년 전에는 1인당 소득이 낮을수록 차관액수가 컸지만, 현재는 저개발국에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는 IDA, ADB 등에서도 ‘실적기준배분제도’에 의거해 1인당 소득이 낮은 국가보다 국제금융기구의 실적 평가 등급이 높은 국가에 자금을 더 배분하고 있다. 북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한편 IDA의 경우, 북한이 실적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아도 연간 지원받을 수 있는 최대치는 2006년 기준 4억6500만 달러다. 이 정도 금액은 북한 당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자금지원은, 액수의 크기보다는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국제금융기구의 ‘인정(endorsement)’ 그 자체가 더 의미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자격’을 획득한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차관 못 받을 경우, 북한의 대응은?

    BDA 문제가 난항을 거듭하는 동안, 항간에는 평양이 2500만달러밖에 되지 않는 BDA 예금에 집착하는 이유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동결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금융제재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한 미국과 달리 북한은 BDA 제재가 시행되자마자 심각성을 깨달았던 듯하다. 북한은 제재 즉시 외환거래 은행을 러시아, 베트남, 몽골 등 ‘안전지대’로 대피시키고 금융제재 해제에 외교역량을 집중했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북한의 국제금융 지식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핵 폐기가 이루어진다면, 여기에 북일관계 정상화도 성사된다면,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은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상당한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본격적인 차관도입은 그리 만만치 않다. 만일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은 했지만 차관도입이 지연되고 차관 액수도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북한은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까.

    북한의 처지에서는 핵 폐기에는 응분의 경제적 보상이 뒤따라야 하므로 이를 위해 별도의 대북 경제지원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경수로를 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그 전례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장형수

    1960년 부산 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브라운대 박사(경제학)

    국가정보원 북한분야 국가 정보관, 세계은행·대외경제 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現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저서 : ‘통일대비 국제협력과제: 국제금융기구 활용방안’ ‘국제협력체 설립을 통한 북한개발 지원방안’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국제사회에 먹혀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KEDO는 여러 나라가 자금을 분담해 경수로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만든 과도기적 기구였으며, 북한이 일단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이상 북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다자간 공적자금지원은 국제금융기구와 주요 원조공여국들의 협의체인 ‘대북한 원조조정그룹’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맞대응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과 같은 최선의 시나리오를 거쳐 북한이 적극적으로 국제사회 진입과정을 밟아 나갈 때, 과연 한국의 역할은 무엇이며 우리는 각 단계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제는 그 구체적인 과제를 정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앞에서 본 국제금융기구 관련 상황전개 시나리오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는 옛말이야말로 앞으로의 상황과 관련해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속담이 아닐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