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너와 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팀장 khmzip@donga.com

    입력2007-08-07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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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동서양의 차이를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인 ‘생각의 지도’.

    나는 양손잡이다. 연필을 쥐거나 밥을 먹을 때는 오른손을, 가위질할 때는 왼손을 쓴다. 아니, 정교하게 오려야 할 때는 왼손을, 대충 오려도 되면 오른손을 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네 살 위인 언니가 가위질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얘, 이상해!”라고 외쳤다. 듣고 보니 나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바늘귀에 실을 꿸 때, 귤껍질을 깔 때, 뭔가를 집어들 때 늘 왼손이 먼저 나갔다.

    그런데 매일 한방에서 뒹구는 자매인데도 언니는 왜 “얘, 이상해!”라고 하기 전까지 내가 양손잡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우리는 같은 부모 밑에서 똑같은 밥을 먹고 사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심한 눈길로 보면 ‘차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스펀지’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베트남 관련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와 반대로 한다’가 문제였다. 네모 칸에 들어갈 정답은 ‘사과를 깎는다’였다. 사과와 칼을 주고 껍질을 깎아보라고 하면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은 칼날이 안쪽으로 향하게 해서 시계 방향으로 껍질을 깎는 반면, 베트남 사람들은 칼날이 바깥쪽을 향하게 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깎는다. 베트남 사람이 나와서 직접 시연을 하는데 한눈에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눈에는 칼날을 바깥쪽으로 해 밀듯이 사과를 깎는 베트남식이 위험해 보이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칼날을 사람 쪽으로 당기듯이 사과를 깎는 우리식이 매우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다르다’ ‘틀리다’ ‘차이’



    우리가 주로 혼동해 쓰는 말 중에 ‘다르다’와 ‘틀리다’가 있다. 어린 학생들도 “생각이 달라요”라고 할 것을 “생각이 틀려요”라고 말하곤 한다. 옳고 그름의 정답이 있는 중에 오답을 의미하는 ‘틀리다’와 차이를 의미하는 ‘다르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몰라서’는 아닌 듯싶다. 그 뿌리에는 나와 다른 ‘차이’를 곧 ‘오답’으로 여기는 배타성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앞의 사과 깎기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차이는 존재하되, 오답은 없다.

    생각해보자. 동양인은 가족을 나타내는 성을 앞에 쓰고 나를 가리키는 이름을 뒤에 쓴다. 서양의 방식은 그 반대다. 동양식 주소는 대한민국에서 시작해 내가 사는 동네 번지수를 마지막에 쓴다. 서양에서는 반대로 국가명이 주소의 마지막에 온다. 날짜를 표기하는 방식도 정반대여서 해외여행 때마다 입국기록 카드에 몇 번씩 날짜를 고쳐 쓰곤 한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오래전부터 많은 교육학자, 역사학자, 과학철학자, 심리학자가 수수께끼처럼 생각했던 의문이 있다. 왜 고대 중국에서 연산과 대수학은 발달하고 기하학은 발달하지 못했을까? 그 같은 질문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현대의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수학과 과학을 잘 하는데도 그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건 왜 서양이 더 두드러질까? 범죄가 발생하면 왜 동양인은 먼저 상황을 탓하고, 서양인은 범인을 탓할까? 왜 동양에서는 침술이 발달하고 서양에서는 수술이 발달했을까? 왜 서양의 유아는 동사보다 명사를 더 빨리 배우고, 동양의 유아는 명사보다 동사를 더 빨리 배울까?

    미시간대의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생각 차이가 어디에서 기원하며, 이러한 차이들이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두 문화 사이의 국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자 했다. 그도 한때는 사람들이 문화에 상관없이 동일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지각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양에서 온 많은 제자와 접촉하면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고 과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연구결과를 담은 것이 ‘생각의 지도’(김영사)다.

    문화권이 다르면 사고 과정도 다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동서양의 ‘차이’로 인식했던 것들을 보다 정교하게 입증해주는 여러 실험이 등장한다. 중국과 미국의 네 살과 여섯 살 아이들에게 하루 일과를 회상하게 하면 양쪽 모두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서술 방식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드러난다. 즉 미국 아이들이 중국 아이들에 비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3배 정도 더 많이 하며, 중국 아이들은 그날 있었던 많은 사소한 사건을 간단명료하게 기술하는데, 미국 아이들은 자기에게 중요했던 몇 가지 일만 천천히 기술한다. 미국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자주 언급하지만 중국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자기 개념을 말해준다. 즉 동양인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상호의존성’이 강한 반면, 서양인은 집단과 나를 분리시키는 독립성에 더 의미를 둔다.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시야가 넓다는 가설도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일본과 미국의 대학생이 참여한 실험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물속 장면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20초가량 두 번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의 여덟 장면은 초점이 되는 물고기가 한 마리 있고 각각 수중 동물, 수초, 자갈, 물거품 같은 배경은 다르다.

    이 화면을 보여준 뒤 피실험자에게 자신이 본 것을 기억해보라고 하면, 미국과 일본 학생 모두 초점이 되는 물고기를 언급하는 건 같은데, 일본 학생이 배경 요소들을 훨씬 많이 기억해낸다. 즉 일본 학생은 “음, 연못처럼 보였어요”라고 전체 맥락을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미국 학생은 “송어 같은데 큰 물고기가 왼쪽으로 움직였어요”처럼 초점이 되는 물고기 자체를 먼저 언급하는 식이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사물은 같으나 배경을 달리해 보여주고 기억하는 정도를 측정했다. 미국 학생들은 배경에 관계없이 사물을 찾아내지만, 일본 학생은 원래의 배경과 함께 제시될 경우에만 정확히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양식 사고는 개별 사물을 주변 배경에 고착해 기억하는 반면, 서양식 사고는 개별 사물을 주변 환경에서 떼어내어 기억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의 차이다.

    범주를 중시하는 서양과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의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아이들에게 닭, 소, 풀을 보여주고 그중 2개를 하나로 묶어 보라고 하면, 미국 어린이는 동물과 식물의 분류체계에 따라 소와 닭을 하나로 묶지만, 중국 어린이는 ‘소가 풀을 먹는다’는 관계적 이유를 들어 소와 풀을 하나로 묶는다.

    사용하는 언어와 관련한 흥미로운 차이도 발견된다. 동양의 언어는 맥락을 중시하고 서양의 언어는 행위자를 우선한다. 상대에게 차를 더 권할 때 중국식 어법은 “더 마실래(Drink more)?”지만 미국인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한다. 중국인은 이미 ‘차’를 마시는 상황인데 굳이 ‘tea’를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미국인은 차를 ‘마시고’ 있기 때문에 ‘drink’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생각의 지도’는 이런 수많은 실험과 실생활의 사례들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니스벳 교수는 옳고 그름의 경쟁에서 승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차이가 수렴될 것이라는 기대로 결론을 맺는다.

    이미 서양인은 명상, 요가, 침술 같은 동양적인 것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동양인 역시 서양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점점 더 서구화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중국 어머니들에게 ‘자녀에게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지만, 10년이 지난 뒤 같은 질문을 했을 땐 ‘독립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앞서가는 것’이라는 대답이 월등하게 많았다. 이것은 미국 어머니들의 태도와 동일하다. 이처럼 동서양의 차이는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한쪽을 흡수하는 형태가 아니라 두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해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고 니스벳 교수는 ‘문화 차의 미래’를 예측한다.

    지난 달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를 읽으며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문득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생각의 지도’가 떠올라 출간된 지 여러 해가 지난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들었다. 남녀의 차이와 동서양의 차이 중 어느 쪽의 차이가 더 클까?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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