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7-08-08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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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지민이 누나와 팔씨름하는 현빈이. 누가 이길까. 곁에서 응원하는 아이들 표정이 재미있다.

    나는 가끔 엉뚱한 욕심이 생긴다. 자식을 더 가지고 싶다는 욕심. 우리 집은 아이가 둘인데 나이 차가 많다. 큰아이는 스무 살, 작은아이는 열세 살이다. 아이들에게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고, 아이들이 농사일에도 나름대로 한몫을 하니 자식 덕을 톡톡히 본다. 그렇다고 이제 아이를 새로 낳기에는 나이가 많고, 입양을 하자니 선뜻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고민은 아내 역시 비슷하다. 조금만 더 일찍 산골로 왔다면 아이를 더 낳았을 거란다. 큰아이 탱이도 제 아래 동생이 하나쯤 더 있으면 했고, 작은아이 상상이는 누나랑 나이 차가 적었으면 했다. 식구마다 갖고 있는 이런 생각을 밥상머리에서 나누다가 일을 하나 벌이기로 했다.

    자식을 여럿 갖자!

    이름하여 ‘모내기 캠프’. 일정은 2박3일, 아이 친구들을 모아 모내기를 함께 하는 작은 캠프를 열어보자는 거다. 이왕 캠프라는 이름을 걸 바에는 좀더 그럴 듯한 구실이 필요하겠다. 캠프 기간만이라도 우리 식구가 추구하는 꿈,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반반으로 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모내기하는 데 네 시간, 그리고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데 네 시간. 주제는 청소년이라면 관심을 가질 ‘자기 사랑’ ‘연애’, 그리고 ‘평화로운 출산’으로 잡았으며 마지막 날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공부로 글쓰기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렇게 대강 틀을 잡고 아이들을 모았더니 이틀 만에 인원이 찼다. 마감을 했는데도 한사코 오겠다는 아이들로 예상을 넘어 아홉 명이 함께했다. 사실 더 받고 싶어도 방은 비좁고, 뒷간도 불편했다.



    ‘평화로운 출산’이라는 주제는 여기 이웃인 박경미(38)씨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그이는 흔쾌히 동의했고, 이 기회에 모내기 캠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단다. 이 다음에 산골자연학교를 꾸리는 데 경험이 된다고 하면서. 엄마가 한다니 이 집 아이인 현빈(11)과 채연(9)이도 함께 하겠단다. 이렇게 하다 보니 캠프 규모가 제법 커졌다. 나는 팔자에도 없는 열한 아이의 아비 노릇을 하게 생겼다.

    캠프 첫날. 가까이서 또 멀리서부터 아이들이 하나 둘 우리 집으로 왔다. 대전, 전주를 비롯해 서울, 봉화, 인제. 연령도 골고루, 아홉 살 채연이부터 스무 살 탱이까지. 남녀 성비도 어느 정도 잘 맞다. 여자가 여섯에 남자가 다섯.

    먼저 온 아이들은 우선 집둘레를 익히고, 우르르 앵두나무로 가 앵두를 따 먹고, 어울려 농구를 한다. 아이들이 다 오자, 캠프 안내에 이어 식사 조를 짰다. 먼저 캠프에 대한 간단한 일정 소개와 집 안내.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게 뱀 이야기다. 우리로서는 걱정되는 부분. 캠프 때 흥분하면서 보내다 보면 자칫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

    “뱀에 물리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좋을까?”

    산골 생활 경험이 많은 현빈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정신 차리면 안 물려요.”

    아이다운 답이다. 정환(14)이 답은 조금 합리적이다.

    “아빠가 그러는데요. 풀이 많아 땅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는 가지 마래요.”

    그러고 보니 시골에 사는 아이가 많아 다들 알 만큼 안다. 나쵸(15)와 명지(16) 이야기는 아주 걸작이다.

    “우리는 멧돼지가 땅을 하도 문대서 땅이 다 보여요(웃음).”

    “뱀 목덜미를 잡으면 못 물어요(배꼽 잡는 웃음).”

    도시에서 온 아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민지(15)는 조금 무섭다고 했다. 지민(15)이는 그렇지 않단다.

    “뱀을 많이 봤고요. 제가 뱀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렇구나. 산골에 사는 아이든 도시에서 온 아이든 나름대로 자신을 방어할 힘이 있지 않겠나. 아이들은 자연에 한결 가깝다.

    ‘자뻑’에서 ‘남뻑’으로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명지 품에 안겨 사과를 먹는 하늘이. 둘 사이가 엄마와 딸처럼 자연스럽다.

    이렇게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교육이 되고 또 안심이 된다. 그리고 우리 집만의 독특한 뒷간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는 모내기 준비에 들어갔다. 손모내기를 하자면 먼저 못자리에 모를 뽑고 한 움큼씩 모춤을 묶어야 한다. 언제나 시작이 중요하다. 논에 들어가보는 그 첫 시작. 논흙은 느낌이 특이하다. 자신이 있다는 아이부터 먼저 논에 들어간다.

    “어, 느낌이 이상해. 이런 느낌 처음이야!”

    일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논 체험이다. 발바닥 느낌도, 몸의 중심도 아주 색다를 수밖에. 아이들이 모두 논에 발을 담그자, 아내가 지금부터 할 일이 무언지 설명을 했다. 아이들은 못자리에 둘러서서 모를 뽑고 그걸 묶어 모춤을 만들었다. 묶은 모춤을 넓은 논에 듬성듬성 던져 넣고 일과를 끝냈다.

    저녁을 먹고는 자기 소개와 ‘자기 사랑’에 대한 주제 발표와 토론을 했다. 이 부분은 내가 진행을 맡았다. 마루방에 우르르 둘러앉아 눈을 반짝이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다 떨린다.

    되도록 아이들 말로 풀어 나갔다. ‘자기 사랑’과 관련해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자뻑’이다. ‘자신에 대해 뻑간다.’ ‘뻑간다’는 ‘자신에게 도취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자뻑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황홀한 기쁨이다.

    ‘아, 내가 이걸 다 하다니! 음, 나도 할 수 있구나! 역시 나는 훌륭해!’ 그러니까 단순한 자기 자랑과는 조금 다르다. 남과 견주는 자랑이나 남을 무시하는 교만함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자기 성장에 감탄하는 그런 기분. 자뻑은 나르시시즘과도 다르다. 나르시시즘이 병적인 자기 사랑이라면 자뻑은 건강한 자기 사랑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기쁨, 자기 존중감, 자기 충만감의 뿌리들.

    내 생각과 달리 아이들에게서 자뻑을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학교에서 받았던 경쟁교육과 따돌림의 영향이 컸다. 시험을 치고 나서 열 문제 가운데 아홉 문제를 맞히면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틀린 한 문제로 지적을 받고 심지어 틀린 만큼 매를 맞은 아이도 있단다. 또 또래 사이에서 자뻑을 하다가는 자칫 따돌림을 당하기 십상이라 한다.

    그렇게 공감대가 이뤄지면서 한두 명이 자뻑을 시작하니 차츰 분위기가 살아나고 다른 아이들도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내비치며 자뻑을 한다. 빙 둘러가며 아이들이 하는 자뻑을 들으면서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자뻑을 넘어 ‘남뻑’을 해보자 했다. 남뻑은 남에 대해서도 취하는 것이라고 즉석에서 말을 만들었다. 자신에게 취할수록 남에 대해서도 취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혼자만 잘나서는 결코 잘난 게 아니다. 내가 잘나듯 내 식구도, 내 친구도, 내 이웃도 잘나야 진정한 자뻑이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뻑보다 남뻑을 더 잘한다. 한 사람을 놓고 그 자리에 둘러앉은 사람 모두가 그 한 사람에게 좋았던 점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분위기가 한결 고조된다. 무엇보다 본인은 본인도 모르던 자기 장점을 알게 된다. 여러 사람에게서 남뻑을 받아보는 건 아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우리 집에 있는 동안은 모두가 우리 식구다. 우리 방식대로 하루를 지낸다. 우리는 일하고 나서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이튿날 일어나 먼저 태극권으로 간단히 몸풀기 운동부터 했다. 그리고 논으로 갔다. 논둑에서 아내가 모내기를 어떻게 하는지를 설명했다. 어제 한번 논에 들어가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논에 쉽게 적응했다. 모내기가 처음인 아이들은 서투르기 짝이 없지만 제 딴에는 모두 열심이다.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넘어질 듯 휘청휘청하는 아이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한 사람이 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워낙 여럿이다 보니 그래도 진도가 나간다. 논이 좁고 길어 사람이 우르르 들어서니 사람 반 모 반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게 두 시간 모내기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다시 논으로 내려와 모내기를 하고 아이들 집중도가 떨어질 때쯤 끝냈다.

    사람 반, 모 반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식사 준비를 하면서 밝게 웃는 현빈, 동영, 상상이. 그러나 설거지할 때는 서로 다투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평화로운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경미씨네로 갔다. 이 집은 우리 집에서 산길로 1km를 올라가야 한다. 산책 삼아 걷기 좋은 거리다. 나이 어린 친구들은 오르막 산길인데도 먼저 뛰어가 그 집 마당에서 신나게 논다.

    어디서 이야기를 나눌까 하다가 경미씨가 채연이를 낳았던 방에서 하기로 했다. 세 평 남짓 작은 방인데도 어른 아이 다 해서 열댓 사람이 앉을 수 있었다. 경미씨는 캠프에 온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먼저 물었다. 부모가 꾼 태몽과 자신이 태어난 과정을 잘 아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어디서 어찌 태어났는지를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잡히자 경미씨가 집에서 아이 낳은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들은 물론 남자애들도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저희들도 이 다음에 부모가 될 테니까….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논이 좁아 사람 반, 모 반이다. 모를 심으면서도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

    이야기를 끝내고 나오자, 경미씨 남편이 빵을 구워주었다. 아이들이 잘 먹는다. 밥보다 빵에 더 익숙한 음식 문화가 아닌가 싶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아내가 진행하는 ‘연애 토론’에 참여했다. 여자 아이들이 로망을 표현하는 데서 한결 구체적이고 솔직하다. 남자 아이들도 관심은 있지만 표현은 서툰 편이다. 그러고는 10시에 모두 잠자리에 들기는 했는데 아이들은 쉬이 잠들지 않았다. 삼삼오오 이불 속에서 수다를 떠느라고 더 늦게 잠들었단다. 전국에서 온 아이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아이들이 고맙다

    그 다음날은 마지막 모내기. 늦게 잤음에도 8시 전에는 다들 일어났다. 모내기도 한결 속도가 난다. 예정된 논에 모내기를 쉽게 끝냈다. 아이들은 자신들 실력이 늘어난 거에 대해 모두 뿌듯해한다. 또 한번 자뻑을 경험했다. 나로서는 아이들이 모내기하다가 빠진 곳이나 너무 성기게 심은 곳을 메울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우리 식구끼리 한꺼번에 모내기를 다 하자면 허리가 아프다. 그런데 이렇게 빠진 곳을 듬성듬성 때우는 거는 적당한 운동거리다. 새삼 아이들이 고맙고, 이렇게 아이들을 보내준 부모님들도 고맙다.

    논에서 올라와, 마지막 주제인 글쓰기. 먼저 왜 글을 쓰는지,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은지를 내가 설명하고 글쓰기를 했다. 아이 둘은 컴퓨터로 쓰고, 나머지는 밥상 두 개에 둘러앉아 공책에다가 연필로 썼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가 참 좋다. 또각또각, 똑똑똑. 숨소리조차 멎은 듯 열심이다. 하소연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 나는 시작이 어려워.”

    “나는 쓸 게 너무 많아 무얼 먼저 써야 할지 모르겠어.”

    점차 자리가 잡혀가며 속도가 난다. 나 역시 쓸 게 참 많다. 정말 오랜만에 여러 아이와 함께한 2박3일. 일도, 토론도, 사람 사이 관계 맺기도 다 쓸거리다.

    글쓰기가 끝나고 발표 시간. 발표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안 해도 좋다니까 채연이는 발표하기가 쑥스럽단다. 또 자신이 발표한 글에 대해 칭찬만 원하는 사람은 칭찬만 하고, 도움말까지 바라는 사람에게는 도움말도 주기로 했다. 그렇게 했더니 대부분 도움말까지 바란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성장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여기서는 아이들이 쓴 글 중 두 편만 옮겨보겠다. 먼저 민지(15) 글. 민지는 캠프 기간에 말이 별로 없어 조금 마음이 쓰인 아이였는데, 글로는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제목 : 자연과 사는 것

    이 세상에는 물건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다. 살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집에는 잡동사니가 꽤 많다. 말 그대로 쓸모없는 것이다. 세상이 보다 복잡, 다양해지면서 많은 물건이 생겨나고, 그래서 더 낭비를 하게 된다.

    탱이 언니 집에 와보니, 잡동사니가 없이 아주 깨끗했다. 물건이 많아 보이지 않아 사는 데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2박3일간 언니 집에 있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책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의 저자가 말한 ‘잡동사니의 냄새’가 나지 않는 듯했고 공기 순환(?)도 잘 되는 거 같았다.

    많이 소유하고 배치하는 것이 비록 잠깐 동안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것 같지만, 난 이곳에 와서 실질적인 것은 바로 자연의 힘을 빌려, 또는 서로 어우러져 그곳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사는 것이 진짜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니네가 새삼 부러워졌다. 전기가 끊어지면 살 수 없는 높은 시멘트 건물이, 우리 삶을 더 삭막하고 딱딱하게 만들어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 같다.


    아이가 우리 집 살림살이를 이렇게 본 건 우리로서는 너무 뜻밖이다. 새삼 우리 삶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 민지 발표가 끝나자, 명지는 민지가 이 다음에 정치가가 되면 좋겠단다.

    다음은 동영(13)이가 쓴 캠프 후기 글. 동영이는 여기 온 첫날 저녁부터 몸이 가렵다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캠프 내내 그러더니 다행히 마지막 날에는 가려움도 없어졌다. 자연 결핍에서 오는 일시적인 장애가 아닐까 싶다. 동영이는 글쓰기 시간에 글을 다 못 써, 나중에 집에서 마무리를 했다. 글이 길어 조금 줄였다.

    제목 : 시골촌놈? 도시촌놈!

    상상이네 집에 다녀온 지 1년 만에 다시 상상이네 모내기를 하러 갔다. 도시촌놈인 나에게는 시골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알레르기 때문에 감기 걸리고, 코가 막혀 밤에 잠 잘 때 입 헤~ 벌리고 자고, 숙면을 못하니 피곤하고…(ㅠ.ㅠ). 맨발로 다니는 시골 아이들이 나로서는 신기해 흉내(?)내보려 맨발로 다녀봤는데, 울퉁불퉁한 시골 땅이 도시의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와는 천지차이다. 거기다 풀독까지 올라 온몸이 근질근질, 수난의 연속이었다. 매캐한 도시 공기, 더러운 환경 속에서 살다, 갑자기 깨끗하고 순한 자연에서 생활하니, 내 몸이 적응을 못해서 말을 안 듣는 거다.

    논에서 물자라 수컷이 알을 등에 지고 가는 것도 보고, 듬직한(?) 물장군도 보았다. 갈수록 실력이 늘어 마지막 날에는 1시간도 안되어 논 하나를 다 메워 흐뭇했다. 또 모내기를 하며 자연과 한층 더 가까워지고 동화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모내기 하는 방법도 꽤 복잡했다. 모를 판처럼 직사각형으로 키운 다음, 뿌리째 뽑아 모춤을 만든다. 그걸 논에다 던져놓고, 하나하나 풀러 조금씩 뜯어가며 모를 논에다 박는다. 이때 사람의 사랑으로 모를 정성스럽게 박아야 모가 잘 자란다고 한다. 나는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정성을 다해 심었다.


    희망의 원천

    자뻑에 대한 토론도 재미있었다. 자뻑이 없으면 우리 생활은 우울해지고, 늘 기분이 나쁠 것이다. 또 남뻑은 남을 칭찬해주는 것인데, 사람들끼리의 교류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난 학교 다닐 때 남의 일에 자주 참견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참견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일을 지적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잘못된 점보다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칭찬해주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뻑과 자뻑, 이것은 희망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연애! 난 해보지 않았지만, 멋질 거 같다.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또 있을까? 흠, 난 ‘연애인’ 이라는 말을 창조했다. 멋지고 아름다운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 사전엔 없다. 나도 연애 한번 해보고 싶다. 사랑이란 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백 번도 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란다. 이러니 어찌 연애가 쉬울 수 있을까? 그러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 꼭 연애의 감정만 있으란 법 있나. 우정도 있지.

    시골이 이렇게 좋은 줄 알았더냐? 물론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과 함께 하며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 시골에 사는 것은 또 하나의 혜택이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시골촌놈이라 부르면 안 되겠다. 시골에 사는 자연인아! 우리 도시촌놈을 불쌍히 여기라!


    눈으로 마음을 읽는 아이

    아이가 여럿이다 보니 있는 둥 마는 둥 한 아이가 있고,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오는 아이도 있다. 이번 캠프에서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또 다른 아이는 다섯 살 하늘이다. 하늘이네는 우리 논에서 가깝다. 논에서 때 아니게 시끌벅적 소리가 나니 오빠 별이(7)와 소리 나는 데로 찾아왔나보다. 둘이서 큰 길을 나두고 논둑 풀숲을 헤치며 곧장 내려왔다.

    모내기를 끝내고 점심 먹으러 가자 하늘이도 우리 집으로 따라왔다. 밥을 먹기 전에 남자 녀석들은 농구를 한다고 바람을 일으키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데 하늘이는 그 곁에서 구경을 한다. 나로서는 저러다가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도 눈알을 굴리면서 꿈쩍도 않는다.

    밥상이 다 되어 밥 먹을 시간. 하늘이가 어디 있나 보니 어느새 명지 품에 앉아 밥을 먹는다. 정말 놀라운 아이다. 하늘이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으니 나는 5년째 이 아이를 지켜보았다. 어쩌다 마을에 큰일이 있거나 하면 하늘이는 아무에게나 잘 간다. 하늘이 어머니 말로는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는 게 매우 신기하다고 했다. 붙임성이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캠프 기간에 새로운 걸 알았다. 하늘이는 낯을 안 가리는 게 아니고 눈을 맞출 줄 아는 아이라는 걸.

    이건 아주 중요한 능력이지 싶다. 말하자면 생명력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캠프 기간에 우리 집에 있던 사람이 여럿이고, 이 가운데 하늘이가 익히 아는 사람도 제법 많다. 우리 식구는 물론 여기 사는 이웃 언니 오빠들도 다 안다.

    언뜻 생각하면 아이는 익숙한 사람 곁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도 하늘이는 그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명지 품에 안겨 밥을 먹었다….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한참을 두고 생각했다. 몇 가지 생각이 정리된다. 우선 하늘이가 내 품에 안겨 밥을 먹은 적이 두어 번 있다. 제 부모가 곁에 있는데도 그랬다. 그때를 돌아보면 아이는 나랑 눈을 맞추었다. 내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눈으로 알아본 거다. 그러니 그 눈빛을 믿고 스스럼없이 내게 다가온 거다.

    눈에 넣고 싶을 만큼 예쁜 아이. 한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듯 귀여운 아이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지자 아예 내 무릎에 앉은 거다. 눈이 맑으니 그 눈으로 상대방 마음을 빨아들인다고 할까. 명지하고도 그랬던 것 같다.

    명지는 집에서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 동물도 새끼라면 끔찍이 좋아한다. 먹여주고 안아주고 어루만져준다. 자기 안의 양육 본성을 동물 키우면서 잘 살리고 있는 아이다. 명지의 양육 본성을 하늘이는 한눈에 알아본 셈이다. 내가 몇 년째 보아온 명지의 장점을 하늘이는 한순간에 자기 힘으로 되살리는 게 아닌가.

    하늘이는 명지 품에 안겨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 반찬 달라, 저 반찬 달라한다. 그런데 그런 요구가 귀찮은 게 아니라 막 주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게 하는 힘이 있다. 날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 처지에는 가끔 성가시기도 하겠지만 오랜만에 어린 동생을 돌보는 명지는 행복한 모습이다. 하늘이를 통해 내가 새삼 배운 거는 눈 맞추기. 눈을 맞춘다는 거는 마음이 서로 흐른다는 거다. 시골에 살면서 이러저러한 손님을 치르지만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 만났을 때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눈 다음에는 대부분 눈을 바로 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허공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갈등과 충돌

    어쩌면 머릿속에 이야기가 너무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거나 너무나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을 때 그런 것 같다. 그러니 눈을 마주치며 상대방에게 말이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느낄 겨를이 없는 셈이다. 말을 나누면서도 이따금이라도 눈을 맞추어간다면 한결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우리는 그런 능력을 많이도 잃어버렸다. 말을 주고받는 만큼 눈을 맞추면서 살아가기. 그러자면 여유가 필요하다.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많은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이 쓴 캠프 후기를 보면 대부분 좋았다고 하지만 이면에는 약간의 갈등과 충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모두 제대로 다 봐줄 수 없었다. 아내는 식사 당번 조가 굴러가게 끼니를 챙기고, 모내기면 모내기, 토론이면 토론에도 참여하고, 집안 정리도 해야 했다. 나도 논에서 아이들이 모내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뒷배를 보거나 빠진 부분을 메워야 했다.

    이렇게 어른들이 전체를 챙기는 사이, 아이들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으리라. 게다가 아이들은 2박3일 일정이 끝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걸 아쉬워했다. 두 명만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하루 더 머물다 갔다. 이래저래 사람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휩쓸리다 보니…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모내기하다가 해인이가 가져온 수박으로 참을 먹는다. 등지고 수박 한 쪽 들고 논두렁을 가는 아이가 지민이다. 논에서 뒷정리하는 내 아내에게 참을 가져다준다고.

    사람이 모여서 어울리다 보면 무리 가운데 빛나는 사람도 있고, 무리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목소리가 크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약한 사람은 어떤가.

    이번에 어린아이부터 큰아이까지 모이니 아무래도 형과 누나들이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어린 아이들이 치였나 보다. 특히 상상이와 동영이 그리고 현빈이가 그랬다. 채연이는 오빠들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슬기롭게 잘 지냈음에도 세 남자 아이 사이에는 감정을 주고받는 정도의 신경전 같은 게 있었단다. 아내는 이를 사내 녀석들의 ‘수평아리 싸움’이라 했다. 수탉은 자기 영역 안에서는 군기를 확실히 잡는다. 수평아리가 자라면서 힘센 수탉이 되자면 힘과 지혜로 맞서 싸워야 한다. 사람도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여자보다 남자가 더 그런 본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우리 식구는 캠프 끝나고 한동안 이 문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특히 상상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경쟁하여 우두머리가 되기보다는 자기다움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현빈이와 경미씨를 만나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영이와는 전화로, 또 인터넷으로 소통을 했다. 결국 아이들 사이에 오해가 풀리고 서로 이해했다. 이 과정은 아이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한 공부가 되었다.

    새삼 오래전에 우리 식구가 공동체 생활을 할 때가 떠오른다. 한번은 비가 오는데 ‘일을 하자’와 ‘하지 말자’로 공동체 식구끼리 토론이 붙었다. 그 일이란 마을 빈집을 뜯어오는 일이었기에 비가 오면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도 일을 하자는 쪽의 목소리가 컸고 명분도 그럴싸했기에 그날 모두 비를 맞으며 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 어찌 되었는가? 앞장선 한두 사람 빼고는 모두 몸살이 나서 며칠 동안 일을 못했다. 몸이 약했던 나는 그런 자리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 일을 하지 말자고 하면 어쩐지 게으름을 부리는 것 같고 또 당장은 공동체에 도움이 안 되니까, 저절로 목소리가 잦아든다.

    그런 경험이 있었음에도 주도적인 분위기에 그냥 휩쓸렸다. 목소리 크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거기에 감탄하고 그런 아이들을 만난 거에 만족하면서. 그러는 사이에 치이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상상이는 초식동물에 가까운 온순한 성품이다. 하지만 몸이 약하다 보니 잘 지치는 편이다. 자신이 감당하기 벅찬 상태에서는 장점을 제대로 못 살리고 단점이 쉽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는 그런 자신을 알아 그동안 규모가 큰 캠프에는 스스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가 앞장서서 캠프를 꾸려 형과 누나들을 불러들였다. 상상이는 평소와 아주 다른 며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도 흥분하고 긴장한 며칠이었는데, 상상이는 오죽했겠나. 형과 누나들 사이에 끼이고 싶은 마음에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챙길 여유가 없었고, 때로는 자신이 힘들면 애꿎은 동생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던 것이다.

    약자를 위하여

    “빛나는 아이들아, 자뻑과 남뻑의 뿌리를 내려라!”
    김광화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에서 자급자족 농사

    정농회 회원

    저서 : ‘아이들은 자연이다’


    나 스스로 너무 강한 기운에 휘둘리는 걸 싫어하면서도, 정작 우리 식구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인 상상이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 걸 반성했다. 앞으로 이런 모임을 다시 하게 되면 작은아이 흐름에 맞추어야겠다고.

    세상의 주된 흐름은 강하고 빠른 걸 원한다. 그런 세상에서 작고 여리지만 자기 몫만큼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조금씩 익혀가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내가 ‘사람 공부’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나처럼 약한 사람들 이야기를 이 사회에 전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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