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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6

홍옥임·김용주 동성애 정사(情死) 사건

철길 위에서 갈가리 찢겨 나간 ‘금지된 사랑’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홍옥임·김용주 동성애 정사(情死)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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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초의 국내파 의사인 세브란스의전 교수의 고명딸과 종로 큰 서점의 딸로 태어나 부호의 아들에게 시집간 여인. 20대의 아름다운 두 여성이 영등포역 인근 기찻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단순 사고사로 치부될 뻔했던 사건의 뒤에는 당대 조선 가족제도의 치명적 결함이 숨어 있었다. 부족할 것도, 원통할 것도 없어 보이는 두 여인은 어떻게 사랑했고, 괴로워했고, 끝내 죽음을 택했나.
홍옥임·김용주 동성애 정사(情死) 사건

‘동아일보’ 1931년 4월 10일자에 실린 홍옥임, 김용주 동성애 정사 관련기사와 홍옥임의 사진

1931년 4월8일 오후 4시, 세련된 양장을 곱게 차려입은 스무 살 전후의 신여성 두 명이 영등포역에서 하차했다. 두 손을 꼭 잡은 두 여인은 마치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얘, 인천 방향이 어디니?”

키가 조금 큰 여인이 지나가는 꼬마에게 10전짜리 백동전을 쥐어주며 물었다. 꼬마는 난데없는 횡재에 얼떨떨해서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두 여인은 꼬마가 가리킨 방향으로 철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밤 때늦은 봄눈이 내려, 철로 양편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개나리와 진달래 꽃잎 위에는 눈이 살포시 얹혀 있었다. 두 여인은 이채로운 봄 정취에 취해 두 손을 꼭 잡고 마냥 즐거워하며 걸었다.

40분 남짓 걸었을 때, 멀리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열차가 보였다. 두 여인은 서로 마주보며 생끗 웃었다. 열차는 점점 다가왔지만,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그냥 걸었다.

오후 4시45분,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질주하는 열차를 향해 몸을 날렸고, 인천발 서울행 제428호 열차는 영등포역을 2km 남겨두고 급제동을 걸었다. 열차가 내뿜는 굉음에 묻혀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두 여인의 몸은 쇳덩이에 부딪혀 갈가리 찢겨 나갔지만,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꼭 잡은 손만은 놓지 않았다.



의문의 철도 자살

제428호 열차 승무원을 통해 급보를 접한 영등포경찰서 경관은 시흥군 북면사무소 직원과 함께 즉각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두 여인의 시신에서는 신분증이나 유서 같은 신원을 알 만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호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두 여인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해줄 따름이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상당한 집안 여성임에 분명했다. 경관은 두 여인의 시신을 북면사무소 직원에게 인계해 가매장하도록 지시하고 곧장 신원조사에 착수했다.

보도할 만한 사건이 터지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던 신문기자들도 오랜만에 터진 ‘사건다운 사건’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 편집자였던 김을한은 훗날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오늘은 또 무엇으로 지면을 채우나’ 하고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외근 나갔던 기자들이 주워 가지고 온 기사는 역시 몇 건의 교통사고와 조그마한 화재(火災)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좀 싱겁기는 하지만 창경원 벚꽃놀이 사진을 커다랗게 내걸고 상춘객을 중심으로 지면을 꾸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영등포경찰서에 다녀온 기자가 내어놓은 짤막한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영등포역과 오류동역 사이 철도선로에서 묘령의 두 여성이 기차에 치여 죽은 사건이었다. 편집 상식으로 보면 잘해야 일호(一號) 활자로 2단짜리 기사밖에는 안 되는 사건이었지만, 간단하게 처리하기에는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옷도 잘 입었다는 꽃다운 두 여성이 함께 기차에 치여 죽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연히 발생한 교통사고 같지는 않았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필시 정사(情死)일 것이며, 정사의 이면에는 반드시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외근기자들에게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서 최근 집을 나간 젊은 여성의 실종신고가 있거든 모조리 적어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김을한, ‘사건과 기자(1960)’ 중에서)


사건 발생 당일 밤, 종로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에 각각 딸과 며느리를 찾아달라는 실종신고 두 건이 접수됐다. 창성동에 사는 스물한 살 된 여학생 홍옥임은 그날 오후 집으로 찾아온 친구와 함께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끊겼고, 동막(마포구 대흥동)에 사는 열아홉 살 된 주부 김용주는 그날 오전 병원 간다고 집을 나간 후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홍옥임의 집에서는 그녀가 아버지에게 남긴 유서까지 발견됐다.

사건 발생 당일 밤, 종로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에 각각 딸과 며느리를 찾아달라는 실종신고 두 건이 접수됐다. 창성동에 사는 스물한 살 된 여학생 홍옥임은 그날 오후 집으로 찾아온 친구와 함께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끊겼고, 동막(마포구 대흥동)에 사는 열아홉 살 된 주부 김용주는 그날 오전 병원 간다고 집을 나간 후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홍옥임의 집에서는 그녀가 아버지에게 남긴 유서까지 발견됐다.

홍옥임과 김용주는 동덕여고보를 함께 다닌 절친한 친구였다. 실종 당일 홍옥임의 집에서 함께 나간 친구가 바로 김용주였다. 이튿날 오전,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두 여인의 시신이 안치된 북면사무소로 달려갔다.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면사무소에는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의사와 경찰, 기자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가족들이 확인한 결과 두 여인은 예상대로 홍옥임과 김용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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