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불붙은 美 대선戰 중간점검

힐러리 “나, 잘난 여자 아니에요” 오바마 “나, 앞만 보는 남자예요”

  • 최형두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 choihd@munhwa.co.kr

    입력2007-08-08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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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미국은 218년 동안 계속된 ‘백인 남성 대통령’의 집권신화를 깰 수 있을 것인가. 1년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가 벌써부터 화염을 내뿜고 있다.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여론조사 1위를 사수하고 있는 힐러리, 상원의원 2년의 정치신인임에도 대선 후보 모금액 1위를 기록한 오바마, 복병 고어…. 또한 민주당의 강세는 내년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한반도의 미래에도 직접적 영향을 끼칠 미 대선전을 중간점검했다.
    불붙은 美 대선戰 중간점검
    워싱턴 백악관 옆의 윌리아드 호텔. ‘로비스트’라는 말이 탄생한 이곳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고위인사, 주요 국가의 정치인, 그리고 유력 기업가가 즐겨 찾는 최고급 호텔이다. 지난 6월27일 이 호텔 대연회실에서 민주당의 대선 선두주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오찬 연설이 있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소개로 클린턴 의원이 연단에 오르자 수십 대의 TV 카메라가 저마다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고의 장소, 최고급 음식, 내로라하는 참석인사의 면면은 대선 예비후보 힐러리 상원의원의 초특급 위상을 잘 보여줬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국무장관이자 힐러리의 웰즐리 여대 동문인 올브라이트를 비롯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으로 지금은 친(親) 민주당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 Progress) 소장인 존 포데스타 등 클린턴 시절의 최고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는 신(新)미국안보센터(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라는 새로운 싱크탱크 그룹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소장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부회장 출신의 커트 캠벨 박사로,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그는 현재 힐러리의 안보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신미국안보센터를 아예 ‘힐러리의 싱크탱크’라고 부른다.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힐러리의 ‘특별 싱크탱크’라는 것. 이날 오후 행사에는 공화당 내의 이라크전 비판론자인 척 헤이글 상원의원이 연설에 나서 힐러리 의원의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힐러리, 여론조사 1위 고수

    같은 시간 민주당의 군소 예비후보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지사도 워싱턴의 ‘국가 방위군 기념관’에서 ‘국가정책센터’ 회원들을 상대로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리처드슨 지사를 취재 중인 카메라는 고작 2대. 1위 후보와 5위 후보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줬다. 힐러리의 화려한 오찬 연설장과 달리 리처드슨 오찬 연설장의 청중은 참치 샌드위치 도시락을 무릎 위에 놓고 먹고 있었다.



    윌리아드 호텔의 힐러리 의원은 연설 직후 1위 주자로서 몸조심을 하느라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지만 리처드슨 지사는 무슨 질문을 받든 주섬주섬 답을 했다. 리처드슨 지사는 “나는 다른 후보들만큼 돈은 없지만 풍부한 경험과 함께 분명한 계획도 있다”며 군소 후보의 비애를 토로한 후 “이란 문제에 관한 2차 TV토론 때는 톱 3 후보에게만 질문하고 내게는 아예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리처드슨이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 의회의 공화당 참모들은 “힐러리가 앞으로는 두 명의 빌 때문에 신경 좀 쓰일 것”이라는 농담까지 하고 있다. 대통령 재임시 백악관 인턴과 스캔들을 일으킨 남편 빌 클린턴과, 주지사로서 여성 부지사 희롱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빌 리처드슨을 함께 꼬집는 얘기다.

    리처드슨 주지사의 부통령 후보설(說)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는 하원의원을 거쳐 클린턴 행정부 시절 에너지부 장관, 유엔 대사를 거쳤고 뉴멕시코 주지사로 경험을 쌓았다. 더 큰 장점은 미국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남미계(Latino) 2세 출신에다 서부인(Westerner)이라는 대목이다. 이는 동부 명문대학 출신에 영부인, 뉴욕 상원의원이라는 배경 때문에 자칫 ‘동부 백인 특권층’으로 고착될 수 있는 힐러리의 이미지를 보완해줄 호재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때문에 리처드슨 주지사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진짜 목적은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리처드슨 지사도 그런 의중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민주당 진영 일부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6월28일 한 오찬 연설에 나선 리처드슨은 앞줄에 앉아 있던 전 백악관 비서실장이자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인 맥라티를 가리키며 “내가 이번 경선에서 맥라티가 두 번째로 선택할 인물이 돼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그날 오찬 연설을 마련한 팀 뢰머 전 하원의원도 맥라티가 힐러리를 지지하면서 리처드슨의 오찬연설에 참석한 것에 대해 “매우 좋은 포지션”이라고 치켜세웠다.

    흑인, 여성 대통령 OK!

    1위 후보와 군소 후보 사이에 미래의 협력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다소 한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각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민주당 내 1, 2위 후보간의 각축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7월초 아이오와주에서 벌어진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간의 전초전은 열기를 넘어 ‘화염’을 내뿜었다. ‘준비된 후보’라는 클린턴 의원의 구호에 맞서 오바마측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지도자’라는 컨셉트로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 클린턴으로부터 대통령직을 이어받는 것에 쐐기를 박으려 했다. 부시 부자가 대통령직을 나눠 가지며 나라를 분열시킨 것처럼 클린턴 부부의 권력승계 역시 부정적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 것.

    불붙은 美 대선戰 중간점검

    6월3일 후보 토론회에 나온 민주당 대선 주자들. 힐러리 상원의원의 왼쪽이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오른쪽이 오바마 상원의원이다. 오바마 의원의 오른쪽 인물이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7월4일 독립기념일 연휴 기간을 전후해 힐러리 의원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선거전에 긴급 투입했다. 아이오와주는 내년 1월14일 첫 당원대회(코커스)가 열리는 중요한 지역. 힐러리는 전국 여론조사에서 확실한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유독 이곳에서만 오바마 의원, 존 에드워즈 전 의원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힐러리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강한 반감에도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도를 바탕으로 견고한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오바마도 만만치 않다. 비록 연방 상원의원이 된 지 2년밖에 안 된 정치신인에다 흑인이지만 힐러리를 끈질기게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 대 오바마 구도는 이미 2008 미국 대선에서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뉴스위크’의 7월초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미국인은 여성 대통령후보나 흑인 대통령후보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 중 누가 되든 미국 정치사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겠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 때문일까. 지금 미국 대선전의 최고 관심사는 건국 이후 218년간 유지돼온 ‘백인 남자 대통령’ 기록이 내년 대선에서 과연 깨질 것인지 여부에 쏠려 있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 보자. 7월2일과 3일 미국의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흑인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과반수인 59%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 응답자의 86%는 ‘여성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고 밝혔으며, 58%는 미국이 ‘여성을 군 통수권자로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66%와 62%는 ‘흑인인 오바마와 여성인 힐러리가 각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 또 힐러리 대 오바마의 당내 경쟁에서 ‘힐러리(56%)가 오바마 (33%)를 2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고 응답했다. 후보별 호감도에선 힐러리(56%)가 오바마(54%)를 앞섰지만 간발의 차이였다. 주목할 점은 5월에 31%이던 오바마에 대한 호감도가 23%포인트나 급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의 ‘모금 태풍’

    이런 마당에 2/4분기 후원금 모금에서 오바마가 힐러리를 월등히 앞섰다는 보도가 나가자 힐러리 캠프뿐 아니라 선거전문가들도 충격을 받았다. CNN 등 언론은 “워싱턴 인사이더들이 민주당 후보 대세론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 대선에서는 선거 직전 연도 마지막까지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으고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선 사람이 당내 후보로 결정된다는 경험칙이 있다. 실제로는 예비선거가 실시되기 전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예비선거(Invisible Primaries)’에서 승부는 이미 가려진다는 것.

    그런데 이번 예비선거는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선 힐러리가 앞서지만 모금액에서는 오바마가 앞서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바마의 경우 2/4분기 모금액도 훨씬 많지만, 당내 예비선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도 힐러리의 모금액보다 절반가량 더 많았다. 모금 당시 지정된 목적에 따라 정치자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미국 정치자금법의 조문 때문에 당내 경선전에서 힐러리는 ‘실탄 열세’에 놓이게 된 셈.

    2/4분기 전체 모금액은 오바마 3250만달러(약 300억원), 힐러리 2700만달러이지만 이 중 당내 예비선거용으로 기탁된 돈은 오바마가 3100만달러인 데 비해 힐러리는 2100만달러에 그쳤다. 2/4분기 실적만으로 보자면 오바마의 실탄이 힐러리보다 1.5배나 많다. 두 사람의 분기별 모금실적은 사실 민주당 대선주자들로서는 기록적인 액수였다. 2004년 대선을 1년 앞둔 2003년에는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만 매분기 3000만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2003년 2/4분기의 경우 부시 대통령은 3510만달러를 모금했다. 미국에선 돈의 위력을 말할 때 ‘돈이 말한다(Money talks)’라는 표현을 쓰는데 선거처럼 돈이 막강한 위력을 떨치는 공간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미국 언론은 후보들의 모금액을 종전 선거 당선자의 같은 시기 모금액과 비교하면서 각 후보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오바마는 당초 선거자금 면에서도 힐러리보다 열세일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은 빗나갔다. 지난 1/4분기 지지자들의 소액 다수 헌금에 힘입어 오바마가 2560만달러를 모금한 것. 2600만달러를 모은 힐러리는 바짝 긴장했다. 연방 상원의원 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오바마가 이런 가공할 만한 성적표를 내놓자 선거 전문가들도 경악했다. 그런데 2/4분기 들어 힐러리를 큰 차이로 따돌리자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2/4분기의 오바마 모금액은 25만명의 소액 후원자가 냈다는 사실이다. 후원자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은 모금을 가능케 하며 폭넓은 ‘풀뿌리 선거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물론 돈이 모두 표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전 대선 때 민주당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나 무소속의 로스 페로도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돈이 있으면 TV 광고공세를 퍼부을 수 있다. 판세를 가르는 결정적인 지역에서 후보를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공세에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6800만달러 vs 4200만달러

    불붙은 美 대선戰 중간점검

    힐러리 상원의원의 유세지원에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2008 대선전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기선을 뺏기고 있는 양상은 정치자금 모금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민주당 빅3와 공화당 빅3 후보의 2/4분기 모금액 합계를 비교하면 6800만달러 대 4200만달러. 공화당의 경우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이 기간 중 1700만달러를 모금해 당내 1위를 차지했고, 지난 1/4분기 때 1위였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1400만달러,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주)은 1100만달러를 모금했다. 선거자금 모금에선 민주당이 공화당에 압승을 거둔 것이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지금까지 모두 3200만달러를 모금해 1700만달러를 썼고, 롬니 전 주지사는 4400만달러(본인 기부액 포함)의 모금액 가운데 이미 3200만달러를 사용했다. 롬니 전 주지사는 대선후보들 가운데 최고의 재력가로, 이번 분기에만 자신의 재산에서 650만달러를 선거자금으로 기탁한 바 있다. 한때 공화당내 지지도 1위를 달리던 매케인 의원은 지난 6개월간 모금액 2600만달러의 대부분인 2400만달러를 이미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케인 의원은 수중에 선거자금이 200만달러밖에 남지 않음에 따라 선거전략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7월10일 ‘USA투데이’와 갤럽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줄리아니 전 시장은 공화당원과 공화당 지지성향 유권자들로부터 30%의 지지를 받아 지난달보다 지지도가 2%포인트 상승했다. 아직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았지만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급상승세를 보이던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은 최근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당시 백악관에 수사 내용을 알려줬다는 등의 ‘과거사’가 언론에 폭로되면서 주춤하고 있다. 그는 6월보다 1%포인트 상승한 20%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선두권을 달려오다 이라크전 지지 소신 때문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달보다 2%포인트 떨어진 16%를 기록했다.

    아이오와·뉴햄프셔 대회전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듯, 미국 대선에도 전국 여론조사나 모금액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변이 생길 수 있다. 2004년 대선 한 해 전인 2003년 말까지 ‘보이지 않는 예비선거’에서 이긴 민주당내 경선후보는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였다. 하지만 그는 몇 주 후에 아이오와주에서 3등으로 처졌다. 당시까지 민주당 내에서는 하원 민주당 대표이던 딕 게파트와 버몬트 주지사이던 하워드 딘이 부동의 선두주자였다. 모든 전망은 두 후보의 각축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뒤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존 케리나 부통령 후보 존 에드워즈는 한참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두 선두 후보가 아이오와주 코커스(지방 당원대회)를 앞두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광고전을 집중적으로 벌이면서 유권자의 반감을 샀다. 이런 상황에서 케리 후보는 마지막 순간에 남은 정치자금을 몽땅 털어부으며 상황을 역전시켰고 곧 이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지미 카터(1976, 1980년), 월터 몬데일(1984년), 앨 고어(2000)도 아이오와주 당원대회 승리의 여세를 몰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물론 아이오와주에서 패하고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케이스도 있다. 1972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선 에드먼드 머스키 후보가 1위를 차지했으나 조지 맥거번이 후보로 지명됐고, 1988년에도 리처드 게파트 후보가 1위를 했으나 실제 후보 지명은 마이클 듀카키스가 따냈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지난 1992년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톰 하킨 후보에게 패배했으나 민주당 대통령후보에 당당히 지명됐다.

    뉴햄프셔의 승리도 후보들에겐 아주 중요하다. 사실상 무명이던 지미 카터 후보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거둔 승리를 계기로 민주당 후보로 확정돼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내년 1월14일과 22일, 8일 간격으로 각각 치러질 예정이다.

    이처럼 아이오와, 뉴햄프셔주는 미국 차기 대선의 향방을 좌우한다.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50개주 가운데 처음으로 치러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미 대선 후보에겐 반드시 쟁취해야 할 숙명의 고지다.

    클린턴 부부가 아이오와 공략에 나선 당일인 7월2일, 하필이면 2007년 2/4분기 후보별 후원금 모금결과 오바마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전국 여론조사 지지도 1위를 고수하면서도 유독 아이오와에서만 오바마, 에드워즈 후보와 격차를 벌이지 못하던 힐러리로서는 더욱 조바심이 나는 상황이었다.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을 동행하고 아이오와 유세에 나설 당시 힐러리는 이미 2/4분기 모금액에서 오바마에게 크게 뒤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세론을 굳혀야 하는 힐러리로서는 6개월밖에 안 남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자칫 망망대해의 미국 표밭을 표류할 수도 있는 상황.

    클린턴의 힐러리 지원작전

    힐러리 캠프의 전략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와 카리스마를 이용해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의 열의를 힐러리 편으로 돌려놓자는 것이었다. 클린턴을 통해 힐러리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대통령 자질론도 함께 심어주자는 계산이다. 백악관 시절 여성 인턴과의 스캔들 때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등장이 힐러리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힐러리 진영의 분석 결과는 위험보다는 이점이 더 크다는 쪽으로 나타났다. 힐러리도 남편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90년대가 외교, 안보나 경제의 성공시대였다는 점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우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무는 ‘힐러리가 누구인지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근 모금행사 때마다 “공화당의 공작을 무산시킬 최선의 후보”라거나 “2004년 대선 때의 케리 후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힐러리를 치켜세웠다. 또 “35년 전 내가 힐러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정신과 가슴이 최적으로 결합된 사람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 그대로”라고 강조했다.

    불붙은 美 대선戰 중간점검

    대선주자가 아닌데도 여론조사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앨 고어 전 부통령.

    힐러리의 참모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힐러리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유권자에게 심어주길 기대했다. 영부인, 상원의원이라는 화려한 면만 알려진 힐러리도 알고 보면 시카고 태생의 중부권 출신이고 그의 어머니도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각시키려 했다. 힐러리의 친정어머니는 10대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갖은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껏 쌓아온 지적이고 ‘부티’ 나는 힐러리의 이미지로는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 제약이 있고, 유권자의 부정적인 편견을 씻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선거 전문가들은 힐러리 캠프의 이런 전략에 대해 “출생지와 성장배경을 강조함으로써 ‘실용주의적 중서부 사람’ 이미지와 함께 미국 대선을 좌우한다는 ‘스윙 스테이트(부동층 주)’ 오하이오주 등의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클린턴 후보 캠프의 하워드 울프슨 홍보 디렉터는 “사람들은 그가 영부인 출신에 상원의원이라는 사실은 잘 알지만 그전에 그가 누구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고 새 홍보 전략의 배경을 설명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힐러리의 성장배경과 함께 아칸소 주지사 부인으로서 어린이들을 위한 정책에 앞장서고 영부인과 상원의원으로서 여성의 권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다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클린턴 부부는 또한 사흘간의 아이오와 캠페인을 통해 “(힐러리는) 바꿀 준비가 돼 있고 이끌 준비가 돼 있다(Ready to Change, Ready to Lead)”는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던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특히 7월2일 밤 수천 명의 지지자 앞에서 “2008년은 내가 유권자가 된 지 40년이 되는 해”라며 “힐러리는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투표하고 싶은 최고의 자질을 갖춘 후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힐러리보다 백악관의 의사결정 과정을 더 잘 파악하고, 여러분을 더 잘 배려할 사람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한 표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재임기간 중 힐러리가 영부인으로서 국정 경험을 충분히 했다는 사실을 유권자에게 각인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7월4일 대중 집회에서 클린턴 부부는 ‘이전, 그리고 미래의 대통령들’로 소개됐다.

    지지도 못지않은 반감

    첫 코커스에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오바마 역시 같은 기간 아이오와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잘해 나갈 준비가 돼 있는 유일한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빌 클린턴”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힐러리의 ‘바꿀 준비, 이끌 준비’라는 구호에 대해서도 “변화라는 말이 구호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나는 뒤돌아보는 것보다는 앞을 바라보는 일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20년 가까이 가족끼리 정권을 승계하는 일을 겪은 유권자들은 또 다른 부시, 혹은 또 다른 클린턴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스스로를 미래 정치의 일부로 여기면서 클린턴 시절은 분열의 시대 중 일부라고 묘사해왔다. 그에겐 민주당 전직 대통령 클린턴도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었다.

    오바마는 늘 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 초당파적인 정치를 강조한다. 그는 수백만달러짜리 TV 광고를 아이오와에서 처음 내보냈다. 그는 60초짜리 광고에 자신이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돈 많이 버는 직장을 포기하고 시카고로 돌아와 지역 활동가로 일한 과정을 담았다. 이 광고에는 하버드 법과대학원 시절 지도교수 로렌스 트라이브가 등장, “오바마처럼 똑똑한 사람이 월스트리트행 티켓도 포기하고 그의 모든 재능과 그가 배운 모든 지식을 지닌 채 지역공동체로 가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30초짜리 광고에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 함께 일한 공화당 주 상원의원이 출연한다. 존 매케인을 지지하는 커크 딜라드 의원은 “내가 오바마를 칭찬하는 이유는 내가 내케인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며 “그의 윤리의식, 독립성은 이 나라가 당파정치의 덫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바마 상원의원은 초당파적인 방식으로 깊이 있는 주제를 다뤄왔고, 특히 윤리적인 입법을 추구하며 어린이 보호, 노동자를 위한 세금 혜택, 건강보험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칭찬했다.

    힐러리·오바마 양강 구도 대세론에도 불구, 1년5개월가량 남은 대선까지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특히 힐러리는 높은 지지율만큼이나 뚜렷하게 나타나는 반감이 큰 장벽이다. 지난 6월말 CNN 여론조사에서 힐러리의 선호도는 51%, 반감은 44%로 나타났다. 당내 경선이 과열되고 공화당의 공세가 강화되면 힐러리의 인기가 떨어질 가능성도 여전하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힐러리가 워싱턴D.C. 변호사 시험에 떨어진 사실을 수십 년간 감춰온 사실 등을 들어 그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탓하고 있다. 또 클린턴 대통령의 아내였다는 경력은 큰 재산이지만 한편으로 부채이기도 하다. 힐러리는 최근 부시 대통령이 딕 체니 부통령의 전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의 징역형을 면제해준 사실을 공격하다 백악관으로부터 ‘위선적’이라는 역공을 당했다. 남편인 클린턴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날 140명을 사면했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경우가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 시절 힐러리의 국정 개입이나 이로 인한 정책 혼선 사례가 밝혀져 문제가 될 경우 ‘영부인’의 경력은 오히려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정황 때문에 부통령 출신으로 2000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앨 고어의 경선 출마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출마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지만 인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점을 지적한 영화 ‘불편한 진실’의 인기몰이 덕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오바마에 이어 3위에 오른 적도 몇 번 있다. 고어의 출마 여부를 둘러싼 주변 측근들의 말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어 자신도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힐러리는 反FTA 강경론자?

    6월27일 뉴햄프셔주의 한 방송사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 지지자의 29%가 고어가 출마할 경우 고어 지지로 돌아서겠다고 응답했다. 고어의 정치적 자산은 무엇보다 2000년 대선에서 전체 득표수에서는 부시 후보를 이기고도 논란 속의 플로리다주 개표 문제 때문에 ‘억울하게’ 낙선했다는 사실이다.

    한미관계의 최대 현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1990년대 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과정에서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에서 민주당의 반대에 봉착했다. 미시간 출신의 데이비드 비니어 원내총무가 반대세력을 결집시킬 정도였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하원에서 234표 찬성, 반대 199표로 어렵사리 NAFTA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공화당의 지원 덕분이었고 민주당 표만 보자면 찬성 102표, 반대 156표였다. 이후 미국이 체결한 여러 FTA에 대한 미 의회의 찬반 표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 6월29일 한미 간의 FTA협정 서명에 앞서 민주당 출신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이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NAFTA 조인 당시처럼 이번 한미 FTA 반대를 주도하는 민주당 핵심은 미시간 출신의 샌더 레빈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장이다. 민주당 선두주자인 힐러리 의원은 6월9일 미국 최대의 노조단체인 AFL-CIO(미 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 초청 연설에서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힐러리가 그 연설을 한 곳은 미국 자동차산업 본산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였다. 그는 “한국과의 굳건한 관계를 높이 평가하지만 이 협정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다”며 “한미 FTA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저해하고 우리의 무역적자를 높일 뿐 아니라 중산층의 일자리를 빼앗아 미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이 미국에 7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한 반면 미국 자동차의 한국 내 판매는 6000대에 그침으로써 130억달러에 달하는 대한(對韓) 무역적자 중 80% 이상이 자동차 부문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북핵 교본 ‘하드 파워’

    미시간주 출신 정치인의 반(反)FTA 정서는 이 지역 경제의 급격한 위축 때문이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오는 2008년 대선에서 5대호 주변의 경제 살리기가 경제 부문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오하이오주 같은 5대호 주변 지역은 2004년 대선 때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곳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배경과 정치적 영향력이 합쳐질 경우 처음부터 한미 FTA에 부정적이던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반응은 더욱 냉랭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제프리 쇼트 박사처럼 “클린턴 전 대통령도 대선 전에는 NAFTA에 부정적이었다. 막상 대통령이 돼 행정부를 이끌게 되면 힐러리 의원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측도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힐러리나 오바마 모두 그들의 정책을 엿볼 수 있는 교본이 있다. 미국 신안보연구소의 커트 캠벨 박사와 브루킹스의 마이클 오핸런 박사가 공저한 ‘하드 파워’다. 그 요지는 ‘북한이 핵 문제를 푼다면 베트남식 개방을 지원하자’는 제안. 만일 북한이 베트남식 모델을 거부하고 북핵을 고집한다면 강력한 경제제재를 동원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북한이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증가시키거나 해외로 팔 경우 정밀 폭격 같은 군사적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캠벨 박사는 힐러리 쪽에, 오핸런 박사는 오바마측의 정책을 자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이미 워싱턴 내에서 차기 민주당 대통령의 외교안보 교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바마 의원은 최근 ‘포린 어페어스’지 기고에서 “북한 핵 문제와 맞서는 과정에서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더욱이 그는 “우리의 첫 번째 방법은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공세적인 외교”라며 “이런 방법은 부시 행정부가 취할 수도 없었고 사용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공세적인’ 외교는 과연 무엇일까. 강성 보수파의 네오콘이 판치던 부시 행정부보다 오히려 민주당 정권이 북한 핵에 대해선 더 강경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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