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들꽃 같은 소녀, 섬을 닮은 선생님이 엮어가는 무공해 사랑

  • 김영아 자유기고가 paxpen@empal.com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2/6
섬사람 선생님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교문 바로 앞에 있는 선생님과 현지의 텃밭. 이곳에서 기른 채소는 두 사람의 점심 급식 식탁에 오른다.

소안도에서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은 섬사람보다 더 섬사람처럼 보였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소박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이 섬마을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섬마을 이장님이라고 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전라북도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은 지난해 3월 교환교사를 자원해 소안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섬이 좋고 섬사람들이 좋아서 방학 때마다 다도해 섬들을 여행하다가 급기야 아예 섬으로 근무지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다시 ‘나홀로 학교’인 횡간분교장으로 발령이 났다. 외딴 섬에서 근무하다 보면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병을 앓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바닷가 순박한 섬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겠다던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룬 듯해 섬 생활에 만족한다고 한다.

소안도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해무(海霧)가 얼마나 짙게 끼었는지 시계(視界)가 10m도 안될 것 같았다. 선착장에 나가 땅끝에서 출발하는 횡간도행 배를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해남 땅끝항에서 출발했어야 할 배가 짙은 안개로 인해 출항을 포기했다고 한다. 8시30분부터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 선생님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 이리저리 전화를 걸더니 이윽고 우선 노화도까지 가는 통학선을 타고 가서 거기서 다시 사선(私船)을 빌려 횡간도로 들어가잔다.

“이제 다 해결됐습니다. 하하, 부임한 지는 1년6개월밖에 안 됐지만, 제가 이곳 주민들하고 아주 친합니다. 아는 사람도 많고요. 다들 형님 동생 하며 지내는데 사정을 말했더니 태워다주겠다고 하네요.”



통학선을 타고 노화도에 도착하니 선착장에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주민이 트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 트럭을 얻어 타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작은 포구로 향했다. 포구에는 엔진이 밖으로 노출된 작은 모터보트 크기의 배가 한 척 정박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배를 ‘쎄내기’라고 부르는데,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선외기’를 발음하기 편하게 부르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노화도에서 횡간도까지는 직선거리로 불과 1km. 하지만 안개가 짙어 횡간도는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잡기 힘들 텐데도 선장은 아랑곳없이 배를 전속력으로 몰아 안개를 뚫고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라던 섬이 15분을 달렸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다가 이 작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헤매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순간, 눈앞에 하얀 바위 절벽이 우뚝 나타났다. 횡간도 사자바위였다. 방향을 조금 잘못 잡긴 했으나 어찌됐든 횡간도에 닿은 것이다.

선장은 천천히 배를 몰아 해안선을 따라가더니 잠시 후 목적지인 선착장에 내려주었다. 두 사람 다 옷과 머리가 흠뻑 젖고, 뺨에는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25분, 수업 시작 5분 전에 가까스로 도착한 것이다. 선생님은 행여 수업에 늦을까 걸음을 재촉한다. 그 걸음을 따라가려니 동네 풍광이고 뭐고 살필 겨를이 없다. 그리고 잠시 후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돌담 사이를 지나니 소안초등학교 횡간분교가 나타났다.

들꽃을 닮은 아이

학교 문이 열리고 정확히 8시30분이 되자 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인 4학년 1반 장현지 양이 교실에 들어섰다. 안개 낀 통학길을 30분이나 걸어서 등교한 현지의 머리와 눈썹에는 이슬방울이 하얗게 맺혀 있다. 함초롬히 아침이슬을 머금은 들꽃을 닮았다. 현지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선생님이 다가가 마른수건으로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아준다.

시골티가 물씬 풍기는 새까만 섬 소녀를 떠올렸건만, 뜻밖에도 막상 대면한 현지는 이 섬에 잠시 소풍 온 서울 아이 같다. 알고 보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1학년을 마치고 귀농하는 아빠를 따라 이 섬에 들어왔다고 한다. 눈가에 언뜻 그늘이 보인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어린 현지에게 엄마 이야기는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다. 행여 누군가 엄마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금세 표정이 싸늘해지면서 달아나버린다.

그런데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 어째 수상쩍다 싶더니, 선생님 말로는 요즘 현지가 사춘기를 겪고 있단다. 지난달에는 아빠에게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아빠와 선생님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도 않고, 특히 현지네가 사는 웃개에서는 아예 먹통이 되는데도 말이다. 현지는 휴대전화로 누구와 통화하고 싶었던 것일까.

교실 뒷벽과 사물함 위에는 현지가 그리거나 만들어놓은 미술작품들로 빼곡하다. 그 작품들 사이로 스케치북이 두 권 걸려 있어서 살펴보니 선생님과 현지가 일과를 마치고 이를 일지 형태로 정리한 일종의 일기였다. 이 스케치북에는 그날그날의 사건과 느낌을 적고 그것을 바꿔보게 된다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선생님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교실 한복판 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은 현지는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피아노 앞으로 가서 공연히 건반을 두드려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온 손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가보다.

2/6
김영아 자유기고가 paxpen@empal.com
목록 닫기

교사 한 명, 학생 한 명… “둘이라서 외롭지 않아요”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