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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평시 신속결정작전 펼칠 기갑군단 창설하라

특명 “북한 급변 사태시 10시간 내 평양 점령!”

  • 특별취재반

한국군, 평시 신속결정작전 펼칠 기갑군단 창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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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평시 신속결정작전 펼칠 기갑군단 창설하라

오스트리아를 신속히 합병한 히틀러와 전격전을 창시한 구데리안, 구데리안에게 영향을 끼친 드골, 기갑전의 귀재인 로멜(왼쪽부터).

그러나 한국 육군은 서부전선에 있는 보병군단에 한 개씩 기보사단을 넣어놓았다. 즉 1군단에는 30기보사, 5군단에는 8기보사(8사단은 2010년을 목표로 기보사로 재편되고 있음), 6군단엔 26기보사를 두었고, 기동군단인 7군단은 수기사와 양기사로 편성돼 있다. 수도군단을 제외한 서부전선의 전 군단이 기보사단을 갖고(또는 ‘가질 예정’에) 있다

보병부대 지원하는 한국군 기갑부대

1군(11기보사)과 1군단(30기보사), 6군단(26기보사), 5군단(8기보사-2010년 이후)에 배속돼 있는 기보사단을 모으면 육군은 7군단과 같은 기동군단을 두 개 더 만들 수 있으니, 기계화보병 전력이 북한에 비해 미흡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 육군은 따로 포병군단을 만들지 않고, 군단에 포병여단을, 사단에 포병연대를 배속해놓았다. 그리고 독립된 유도탄사령부를 갖고 있어 포병군단이 없다고 하여 북한에 비해 포병 전력이 열세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북한 육군은 전차군단을 갖고 있으나 한국 육군은 없다는 점이다. 한국 육군은 전차부대를 보병부대와 기계화보병부대 지원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즉 보병군단을 돕기 위해 기갑여단을 배속시키고, 보병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기갑대대(3군 예하 사단)나 기갑중대(1군 예하 사단)를 배속시켜놓았다.

보병부대 작전 지원을 목표로 하는 전차부대는 전차 고유의 장점을 살린 작전을 하지 못한다. 전차가 갖고 있는 독특한 장점을 살려 작전하려면 기갑사단이나 기갑군단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육군은 전차가 부족해 이러한 부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반면 북한 육군은 오래전부터 820전차군단을 유지해오고 있다.



기갑군단(사단)과 기계화군단(사단)은 같은 기동부대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2대의 1의 비율로 전차가 장갑차보다 많으면 기갑군단이고, 1대의 2의 비율로 적으면 기계화군단이다. 한국군은 장갑차가 많은 기계화사단은 갖고 있지만, 전차가 많은 기갑군단은 갖고 있지 못하다.

기갑군단과 기계화군단 같은 기동부대는 보병군단보다 후방에 배치된다. 보병군단이나 보병사단에 100㎞는 머나먼 길이지만, 시속 60㎞로 달리는 기동부대엔 옆 마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동부대는 후방에 있다가 취약점이 발견된 쪽으로 벼락같이 치고 나가 100여㎞를 돌파해 일거에 전세를 뒤집는다.

기갑군단이나 기갑사단의 중요성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육군과 이에 대응한 미·영·불·소 육군의 경험을 통해 인정받게 되었다. 전차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4년 영국군 공병 중령인 스윈턴에 의해 개발됐는데, 스윈턴 중령이 전차를 개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보병 중심의 참호전이었다. 보병은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진격한다. 이때 상대 보병은 깊은 참호에 숨어 기관총을 쏴대므로, 돌격한 병사들은 고지에 이르지 못하고 대부분 고꾸라졌다. 상대가 돌격할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참호전을 타개하기 위해 독일군은 독가스까지 사용했으나 전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병사의 희생을 줄여보려던 스윈턴 중령은 무한궤도를 달고 있는 농업용 트랙터를 보고 참호를 건너뛰며 공격할 수 있는 ‘움직이는 토치카’ 개발에 착안했다. 그리고 신무기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이 무기를 식수를 받아놓는 ‘(물)탱크’로 불렀다.

가명이 본명이 된 ‘탱크’

그가 생각한 ‘움직이는 토치카’는 무한궤도 위에 쏟아지는 기관총탄을 막을 수 있도록 두꺼운 철판으로 방호를 하고 그 앞에 기관총을 달아 공격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스윈턴은 이러한 개념으로 개발한 무기에 ‘마크 1’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위장 명칭인 탱크도 사용되었다.

그 후 영국 육군은 마크 2, 3, 4를 개발했으나, 이들을 통칭 탱크라 했다. 가명으로 출발한 탱크는 본명이 된 것이다. 이 탱크가 일본과 한국에 들어와 고대전투에서 말을 이용해 만들어졌던 ‘전차(戰車)’로 번역되었다. 전차는 두꺼운 장갑(甲)을 한 기동(機) 무기이므로 ‘기갑(機甲)’이란 이름도 얻었다.

전차는 영국에서 개발됐지만 활용술은 독일에서 발전했다. 전차는 독일어로 ‘판저(Panzer)’인데,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격전(電擊戰)’이라는 뜻의 독일어 ‘Blitzkrieg(블리츠크리에그)’와 전차를 뜻하는 독일어 ‘Panzer’를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3S로 불리는 surprise(기습) speed(속도) superiority(우세)를 특징으로 하는 전격전은 구데리안(1888~1954)과 로멜(1891~1944)에 의해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국가에서 육군의 주력은 보병이었다. 구데리안은 보병이지만 기동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처음 구데리안은 차량을 이용한 기동을 생각했는데 이 부대는 아군 지역에서는 빠르게 기동하나 적지(敵地)에서는 방호능력이 없어 제대로 기동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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