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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北 국제금융기구 가입 ‘산 넘어 산’ ADB(아시아개발은행) 최대주주 일본 반대가 암초

  • 장형수 한양대 교수·국제금융 hzang@hanyang.ac.kr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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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프로세스’에 속도가 붙고 있다. 북한이 이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2·13합의의 핵시설 불능화 이행과 연계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받은 뒤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 저금리 차관을 얻어 경제발전의 ‘종자돈’으로 쓰려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선의 시나리오가 진행된다면 폐쇄국가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경로가 될 수 있는 루트다. 2005년 9·19합의와 올해 2·13합의 이후 학계와 언론은 이러한 방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그 구체적인 과정이나 다양한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이 부족한 반면,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차관도입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고 있다. 장형수 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관은 이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전문가다. 세계은행과 대외정책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했고, 2005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국가정보원에서 일했다. 향후 진행될 상황의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차관도입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본다.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2003년 4월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이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2002 국제 테러지원국 블랙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6월25일,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여 있던 북한 자금 2500만달러가 마침내 미국과 러시아 중앙은행을 거쳐 북한 계좌로 이체됐다. 그간 발목을 잡고 있던 장애물이 제거됨에 따라 2·13합의 이행의 계기가 마련된 순간이었다. 합의에 따르면 앞으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단을 받아들여 핵시설을 폐쇄(shutdown)하고 한국은 중유 5만t을 지원하게 된다.

‘2·13합의’의 마지막 단계인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disablement)를 위한 조건을 놓고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과 분야별 실무그룹회의에서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만 핵시설 불능화를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 제외’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러한 조치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 국무부가 1988년 북한의 KAL기 폭파사건 이후 북한에 내린 테러지원국 지정 조치는 북한의 국제사회 진입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 진입을 상징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제금융기구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의 상임이사는 미국 국내법에 따라 테러지원국에 대한 자금공여에 반드시 반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해 차관을 도입하려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필수적이다.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노력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로부터 재정지원은 끊겼고, 한중 수교로 북중 관계가 냉각됨에 따라 중국의 지원도 극히 제한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은 국제금융기구 관련 정보에 어두웠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말과 1998년 초에 IMF와 세계은행이 각각 출장팀을 평양에 파견해 국제금융기구 가입 관련 제반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시행한 일이 있다. 이때 북한측 관계자들은 전혀 새로운 사실을 듣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이해 부족은 2002년까지도 계속됐다는 여러 정황이 있다. 북한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특별게스트로 초청받고도 마지막 순간에 돌연 불참한 일, 미국 스탠리재단이 영국 런던에서 주선한 세계은행과의 비공식 접촉에서 보여준 북한 관리의 태도와 국제금융에 무지한 언급 등이 그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 어떻게 이뤄지나

하지만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추진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북한이 이미 상당한 관련 지식을 축적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002년 이후 매년 수백회로 급증한 북한 관리들의 서방권 연수 프로그램이 단적인 징후다. 북한 관리들은 올해 1월에도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과 국제금융기구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은 1978년 구 월남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자격을 승계했으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관계가 단절됐다가, 1993년이 돼서야 IMF, 세계은행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자금지원을 재개받은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이 국제금융기구와 관계정상화하기 3~4년 전부터 이미 다양한 형태의 연수, 세미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적 지원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그 조건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것보다 간단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대통령이 지정 해제 희망일 45일 전까지 ‘해제대상국이 지난 6개월간 테러지원 사실이 없고, 향후 지원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 된다. 이후 의회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해제는 발효된다.

의회의 이의 제기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사되기 힘들다. 물론 의회가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백악관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 본인이 ‘정치적’ 결심만 하면 매년 4월과 10월에 있는 테러지원국 지정과 관계없이 언제라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매년 4월과 10월의 테러지원국 지정 시점에만 해제가 가능한 것처럼 분석한 최근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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