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부의 차이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담당했던 관료들은 남북 문제가 6자회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구도에 적잖은 불만을 갖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지금처럼 남북관계 행보가 북핵 문제 해결 행보보다 한발 뒤처져 따라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최근 “우리가 워싱턴이나 평양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며 정부의 주체적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때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다니는 몇몇 사람이 노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추진하는 ‘국제공조하의 6자회담과 이를 통한 4자회담’ 구도에 대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DJ정부 그룹들은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치부한다. 동교동이 남북정상회담의 선행에 방점을 찍고, 4자회담에 무게를 싣는 청와대와 정부의 기류에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을 수뇌로 하는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팀의 속내는 다르다. 언뜻 보기에 남북정상회담보다 복잡하고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4자회담에 매달리는 이유는 일반인에게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고려사항, 국제정세와 국내요인이 있다. 이 가운데 국제정세는 뒤에서 다시 짚어보기로 하고, 일단 국내요인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국내요인의 핵심에는 북한의 완강한 태도가 있다.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을 통해 5억달러라는 적지 않은 현금을 챙겼다(2000년 북한의 총수출액이 5억6000만달러였고 무역총액은 19억7000만달러였다). ‘현금거래의 추억’을 간직한 평양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정상회담에는 ‘윤활유’가 필요하다는 뜻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과의 회담으로 노벨상을 받은 만큼 남측의 ‘인사표시’가 당연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 ‘남측이 싫으면 그만두고 차기 정부로 이월하면 되니 급할 것 없다’는 느긋한 태도다.
그러나 2007년의 서울에는 2000년처럼 거액의 자금을 중개할 기업도, 오너 경영자도 없다.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이후 은행들도 불법행위에는 얼씬하지 않으려 한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관계자들이 사법처리를 받는 것을 목격한 공무원들도 복지부동이다. 현금을 컨테이너에 실어 인천-남포 정기 선박의 화물로 보내는 식의 경천동지할 공작을 전개할 간 큰 정보기관 요원은 별로 없다. 3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화상상봉 장비설치자금 40만달러 등 지금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현금이 지급되고 있지만, 합법과 불법행위는 분명 다르다. 현금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현금을 주고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6·15가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다.
대가 없는 정상회담을 평양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물 건너간 일이 된다. 식량과 비료 등 매년 반복되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남북회담의 지렛대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공식적인 경제협력 확대 차원의 보상을 제의한다 해도 김 위원장에게는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인다.
현재 외교안보팀을 이끌고 있는 송민순 장관은, 여러 견해가 엇갈리지만 기본적으로 외교관 출신이다. 외교관들은 본질적으로 북한 문제를 남북관계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 시각에서 모색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현재의 정보기관장 역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알아서 악역을 맡던 과거의 정보기관장들과는 다르다. 특히 정기적인 청와대 독대(獨對) 보고가 없는 정보기관장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청와대의 참모들 역시 정보기관을 통해서 비선(秘線)작업을 추진할 의도도 별로 없어 보이고, 남북관계를 다룬 경험이 부족해 공작 차원에서 일을 도모하기도 어렵다. 외교안보팀이 남북정상회담보다는 ‘국제적인 그림’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평양의 생각은?
2006년 하반기 들어 국정원과 여권의 실세그룹 일부는 청와대와 교감하에, 일부는 청와대와 상의 없이 평양에 최소한 다섯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6년 7월 이광재 의원 라인은 베이징에서 김일성의 외오촌 조카인 강관주 대외연락부장과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핵실험 이전이다. 안희정씨는 2006년 8월 옌지에서 리호남 등 북한 비선을 접촉, 정상회담을 상의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대미 압박에 주력하고 있던 터라 남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는 어려웠다. 부시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대북정책을 수정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평양은 한숨을 돌렸고, 남한에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핵실험 이후 냉랭했던 남북관계는 2·13합의 이후 자연스럽게 해빙무드로 전환됐고, 이 전 총리의 말처럼 남북대화의 핫라인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이 남한 정치인들의 평양 방문을 허용하기 시작한 게 이 무렵부터다. 남한을 제쳐두고 미국과 통하겠다던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미국과 통하고 남한과도 교류하는 통미통남(通美通南) 정책으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는 남한의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북풍(北風)’에 대한 필요성도 포함돼 있는 듯하다. 야당인 한나라당보다는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할 여권 주자의 당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기대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양을 방문한 많은 여권 국회의원이 2002년 대선과정의 재현을 역설했지만, 북측의 대남 분석라인은 한 자리에서 최소한 20년 이상을 지키는 베테랑들이다. 각종 방송뉴스와 6대 일간지를 꼼꼼히 스크린하는 것은 기본이고, 남한 내부에 구축된 각종 정보망으로부터 올라오는 정보보고를 통해 여의도 정가 사정과 국민여론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북한의 대남라인 인사들은 오히려 위험한 개입보다는 조용한 관망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27일 노동당 중앙당회의에서 “특사접촉 등 실무적 차원에서 정상회담 문제를 검토하겠으나 현재로선 회담으로 득 될게 크게 없으니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말라”는 유보적인 방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월 평양을 방문한 정세현 전 장관은 6·15 민족통일대축전의 환영연회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촉구했지만, 북한측 인사들은 동행한 남측 취재단에게 해당 연설내용을 기사화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마이크를 끄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후문이다. 정상회담에 대한 무관심을 극대화해 남측의 조바심과 무리수를 유도하기 위한 제스처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