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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남은 ‘노아웃’

“노동당 해외정보·자금 배후 총괄” 김옥·장성택과 ‘反김정철’ 연합?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北 김정남은 ‘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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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구도에서 탈락해 전세계를 떠도는 낭인이 됐다.” 2001년 일본 나리타 공항 밀입국 해프닝 이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36)은 그렇게 각국 언론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이복동생인 정철(26), 정운(24)이 후계자 수업을 받는 동안 해외에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최근 들어 확인되는 그의 행보는 이러한 ‘정설’을 뒤집기에 충분하다. 5월 김 위원장의 심혈관 수술 당시 의료진과 동행입국, 이후 2개월 남짓 평양에 머물며 노동당 39호실 업무를 맡고 있다는 소식, 극적으로 권력핵심에 복귀한 장성택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나 김 위원장의 새 부인 김옥과의 오랜 인연….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 고영희 사망 이후 차츰 수위가 높아진 후계구도 세력다툼이 최근 들어 마침내 팽팽한 접전 국면에 이르렀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확인된다.


# 장면 1

北 김정남은 ‘노아웃’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불법 입국하다 적발돼 언론에 노출된 김정남. 당시 30세였다.

2003년 6월 초 평양 대동강변 의암동의 주택가 은덕촌. 김정일 위원장의 핵심 측근들이 모여 사는 이 최고급 빌라촌에서 한 고위장성의 생일맞이 저녁파티가 열렸다. 모여든 이들은 은덕촌에 함께 사는 군부 실력자들. 이들은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나지막이 “대장님 선물은 받았나?”라고 챙겨 물었다. 현장에 있었던 한 탈북 인사의 회고다.

“선물은 얼린 노루와 산삼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장군님’으로 불리므로 ‘대장님’은 분명 다른 사람일 터였다. 누구를 말하는지 궁금해 그중 친분이 있던 이에게 조용히 물으니 김정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5월10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군부 인사들에게 선물을 보낸 것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이들끼리 서로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언뜻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이 회고가 의미심장한 것은 그 시점 때문이다. 2003년 6월은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다 적발된 2001년 5월로부터 2년여가 지난 때로, 대부분의 내외신과 전문가들은 그가 ‘낭인 아닌 낭인이 되어 해외를 떠돈다’고 단정하던 시기다. 더욱이 이른바 ‘고영희 숭배’ 문건이 확인돼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탈락했고, 후계자는 정철 아니면 정운’이라는 정설이 확고해진 후의 일이다.

# 장면 2

2005년 말, 북한을 담당하는 한 정보기관은 김정남에 대한 정밀분석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간 주로 해외에 머무르던 그에 대한 각종 언론보도와 첩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였다. 결론은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고 볼 수 없으며, 향후 그를 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 이는 이전에 또 다른 정보기관이 청와대와 국회에 보고한 북한 후계구도 동향, 즉 “김정남은 완전히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과 전혀 달랐다.

의견이 엇갈렸지만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기관 간의 견해차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종합된 결론’을 주문해도 소용 없었다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 앞서의 정보기관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김정남에 관한 정밀 관찰 필요’를 주장하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장면 3

2001년 5월 김정남이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체포되어 전세계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받은 직후, 각국 정보당국에서는 그가 대학 졸업 이후 국가안전보위부 간부를 역임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국가안전보위부는 반당(反黨), 반체제 사건을 감시, 색출하는 사회통제기구로 주로 정치 사찰을 담당하는 일종의 비밀경찰. 2002년 6월 ‘오마이뉴스’는 국정원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의 직함은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라고 보도했다. 탈북 관료들에 따르면 김정남이 이 자리에 임명된 것은 1999년으로, 2001년 이후 해외에 주로 머물면서도 이 직함은 계속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서의 최고책임자인 부장과 차선임인 제1부부장이 불명확하다는 사실. 1987년 당시 부장이던 이진수가 사망한 이래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고, 이후에는 김영룡 제1부부장 중심으로 운영됐으나 그 역시 1998년 4월 숙청됐다. 근래 들어 부장은 계속 공석인 채 부부장 가운데 한 사람이 제1부부장으로 승진됐다고 전해지지만, 국가정보원은 그간의 관례와는 달리 신임 제1부부장이 누구인지에 대해 엄밀한 보안을 걸어두고 있다. 2006년 가을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타진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측 ‘비선(秘線)’ 인사들과 접촉한 리호남 북한측 참사의 뒤에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급 인사가 있다는 설이 파다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장면 4

‘신동아’ 7월호는 지난 5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의 심혈관 치료를 위해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입국하던 독일 의료진과 김정남이 동승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국정원 첩보보고를 보도한 바 있다. 이후 김정남이 계속 평양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6월 하순 입북한 EU(유럽연합) 의회 대표단 인사들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전한다.

“당시 김정남의 평양행은 단순히 김 위원장의 안부를 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예 평양에 정착하기 위한 것이었던 듯하다. 최근 그가 북한 노동당의 자금문제를 총괄하는 중앙당 39호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해외생활을 정리했다는 것, 중앙당에서 업무를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는 그간의 추측을 뒤집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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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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