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여권 “안기부 자료 2000장… 박근혜·최태민 도청기록도 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7-08-09 15: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문건 일부 구절 임의로 삭제한 흔적
    • 문건 “1978년 박근혜 비서관 50억대 부산시 비리 연루” 당사자들 “팩트 틀리고 박근혜 억지로 갖다 붙여”
    • 문건 “구국봉사단 여성 간부, 박근혜에 청탁해 의원 됐다” 당사자 “중앙정보부가 시켜서 됐다”
    • 문건 “1978년 박근혜측이 부실 기업인 출국 도와” 박 대통령 보좌 채병률씨 “루머 정리한 수준”
    • 채병률씨 “최태민 수사 허위로 드러나 김재규 박살났다”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와 관련된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문서나 이명박 예비후보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거래 내역 등 개인정보를 담은 정부 자료가 잇따라 유출되면서 한나라당이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에 의한 공작정치 의혹을 제기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6월27일 오후 8시39분 여권 대선주자인 이해찬 전 총리의 홈페이지 게시판인 ‘해찬광장’에 ‘안기부’라는 필명으로 ‘崔太敏 關聯 資料’라는 A4지 17장 분량의 PDF 파일이 게시됐다. 최태민 목사의 출생과 성장 배경, 박근혜 후보를 만나게 된 과정, 구국여성봉사단 창설 이후의 각종 비리 혐의, 추문 등이 보고서 형식으로 상세히 기술돼 있었다. 이 게시물은 “이 자료는 월간 ‘신동아’가 2007년 6월호에서 보도한 최태민 목사(1994년 사망) 수사기록”이라는 설명과 함께 ‘신동아’ 기사 요지도 함께 올려놓았다.

    최 목사는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의 후원으로 구국봉사단 총재에 올라 기업체 등을 상대로 권력형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신군부 등에서 수사를 벌였으나 사실관계는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신동아’는 6월호에서 최 목사를 수사한 중앙정보부의 기록과 수사 담당자 인터뷰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이 전 총리 홈페이지 게시물인 ‘崔太敏 關聯 資料’는 7월2일부터 여러 언론에 일제히 보도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 총리측은 논란이 일자 7월2일 해당 글을 삭제했다.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7월4일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공격은 국가기관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근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에 공개된 박 전 대표와 가까웠던 최태민 목사의 수사보고서도 과거 중앙정보부의 실제 보고서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박계동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 및 네거티브 공작정치저지투쟁위원회 간사도 7월5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최태민 관련 자료의 보고서라고 하는 17장 분량의 문건들은 누가 보아도 1984년 안기부 시절에 만들어진 자료다. 이 자료를 정부의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다가 이해찬 전 총리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밝혔다.



    “신동아가 보도한 자료”

    박근혜 후보와 연관된 중정-안기부 자료가 유출된 것은, ‘신동아’가 6월호에 보도한 최태민 관련 자료, ‘신동아’가 7월호에 보도한 안기부의 박근혜-신기수 관련 자료, 이해찬 홈페이지에 게시된 최태민 관련 자료 등 3건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 직원이 이명박 전 시장의 처남 부동산 거래 내역을 조회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에선 자료 유출의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시중에 나도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정체불명의 괴문서가 국정원에서 보관하던 X-파일은 아닌지 국정원은 답해야 한다”며 국정원을 지목했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의 최태민 관련 자료에 대해 7월2일에는 “중앙정보부가 작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논란이 확산되자 김 원장은 7월12일 “최 목사 측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이를 고발했고 이에 따라 검찰이 수사협조를 요청한 만큼 현재 이 자료가 국정원에 보관돼 있는지와 이것이 외부로 유출됐는지 등을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의 게시물이 ‘신동아’가 보도한 자료라고 ‘신동아’를 적시하면서 여러 언론매체는 ‘신동아’에 사실 여부를 문의해왔다. 해당 게시물이 대선정국의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고 특별히 ‘신동아’를 직접 지목했기에 이 게시물의 제작경위, 내용의 사실관계를 취재했다.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의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이 자료는 ‘신동아’가 보도한 자료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신동아’가 보도한 자료에서 일부 구절을 임의로 삭제하는 등 사후에 손을 댄 흔적이 있다.

    예를 들어, 신동아가 보도한 ‘崔太敏 關聯 資料’의 6쪽 하단 문장은 “崔太敏은 그간~물의를 야기하여 오다가 10·26 사태 후 도피, 은신 중에도 朴槿惠와는 은밀리에 연락을 유지, 후견인역을 계속 자행”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 총리 홈페이지에 게시된 ‘崔太敏 關聯 資料’는 같은 6쪽 하단 문장에서 “崔太敏은 그간~물의를 야기하여 오다가 은신 중에도 朴槿惠와는 은밀리에 연락을 유지, 후견인역을 계속 자행”으로 되어 있어 ‘10·26 사태 도피,’ 부분이 삭제돼 있다. ‘崔太敏 關聯 資料’ 원본을 누군가 어떤 목적에 의해 재가공한 뒤 이 전 총리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기부가 1988년 재정리한 문서”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이해찬 홈피에 오른 최태민 관련 자료는 신동아가 2007년 6월호에서 보도한 자료와 차이가 난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리 홈페이지 ‘崔太敏 關聯 資料’의 원본 제작경위에 대해 “안기부가 1988년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를 이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70년대 말 김재규 부장 시절 중앙정보부는 최태민의 신원사항 및 비리혐의 문건을 수기(手記)로 작성했다. 중정 직원이 한자 한자 정성 들여서 정자(正字)로 쓴 기록이다. 그 분량이 방대했던 것으로 안다. ‘崔太敏 關聯 資料’는 중정의 이 최태민 문건 중 핵심 부분만을 1988년 안기부가 간추려 타이핑으로 옮겨 적어둔 것이다. 따라서 이 문건을 중정 문건으로 명명하거나 안기부 문건으로 명명해도 양쪽 모두 일리는 있다.

    1988년 당시 안기부가 도입해 쓰던 타이핑 기기에는 특별한 서체가 있는데 ‘崔太敏 關聯 資料’의 서체는 이와 동일하다. 예를 들어 문건 내용 중 ‘1. 身元 事項 ‘2. 非理 事實 ‘3. 具體的 非理內容’ 등 소제목은 본문 서체에 비해 아래위로 길쭉하게 늘여져 있다. 이것이 1988년 당시 안기부의 타이핑 서체다.”

    실제로 이 전 총리 홈페이지의 문건은 1쪽에서 최태민을 ‘76세, 1912년 5월생’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문건의 제작 연도가 1988년임을 짐작케 한다.

    이와 관련해 박계동 의원은 “7월6일 국정원을 항의 방문하는 자리에서 이 문건에 대해 질문했는데,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 시절 생산된 자료는 아니지만 국정원 보관 자료가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사실상 국정원 보관자료임을 간접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여당 관계자가 1988년 당시 안기부에 타이핑 기기를 납품한 것으로 지목한 모 외국계 회사측은 “1980년대 안기부에 우리 제품이 들어갔는지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안기부 퇴직자는 ‘崔太敏 關聯 資料’에 대해 “안기부의 공식 보고서는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체는 과거 안기부에서 일상적으로 썼던 것과 비슷한 듯하기도 하다. 6공 당시 안기부 직원이 안기부 사무실에서 안기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공식 보고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연월일을 표시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은 연과 월과 일이 떨어져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다 붙어 있다. 안기부는 문서 형식을 많이 따지는 조직이라 공식 문건이라면 그런 실수는 수정된다.”

    증언을 종합하면 ‘崔太敏 關聯 資料’는 중정 문건을 1988년 안기부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재편집해 제작한 문건이라는 얘기다. 이 문건이 2007년 대선에 끼칠 파괴력은 ‘진실성’과 ‘관련성’에 달렸다. 즉, 문건이 적시한 1970년대 최태민 비리가 2007년 현 시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한 것인지, 또한 최태민 비리가 박근혜 후보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의 문제가 그것이다.

    박정희의 최태민 친국(親鞫)

    ‘신동아’는 먼저 이 전 총리 홈페이지 ‘崔太敏 關聯 資料’의 전반적인 신뢰성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채병률(77) 실향민중앙협의회장은 최태민의 행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최태민 문제로 열흘간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채 회장은 자신과 최태민의 인연에 대해 “최태민은 원래 이름이 최태운인데, 1975년경부터 최태민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가 박근혜 후보와 함께 일하는 것을 시기한 사람들이 최태민이라는 가명을 쓰는 것을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래서 1977년 내가 직접 수원지방법원에서 개명신청을 해줬다”고 밝혔다.

    “자유당 시절, 나는 반공투사였고 최태민은 정보과 형사여서 가끔 만났다. 그가 여러 차례 결혼한 것, 종교인의 길을 걸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크게 오해를 살 일은 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그가 최면을 걸어 사람을 홀리는 사이비 교주라고 비난하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는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 직관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사기를 치고 여자 문제를 일으켰다면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

    ‘崔太敏 關聯 資料’ 문건을 본 채 회장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에 대해 조사했던 내용과 많이 일치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최태민 친국 뒤에도 김재규는 계속 최태민을 뒷조사했는데 그 내용도 문건에 첨부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건의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닌 부분도 많다”고 밝혔다. 특히 최태민의 범죄 사실을 적시한 부분은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최태민이 당시 권력 가까이에 있으니까 별별 루머가 다 나돌았다. 김재규와 최태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김재규 시절 중정은 그런 루머를 검증도 안 하고 무조건 정보 보고했고, 문건은 이를 그냥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김재규 얼굴에 통장 집어던져”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1970년대 후반 최태민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병률 실향민중앙협의회장.

    김재규 부장의 최태민 의혹 보고에 따라 1977년 9월경 박정희 대통령은 김 부장, 최태민, 박근혜를 모두 참석시킨 채 최태민을 친국한 바 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바 없다. 그런데 채 회장은 박 대통령의 최태민 친국의 구체적 상황을 처음으로 밝혔다.

    “당시 전국적으로 새마음갖기운동 성금모금이 있었다. 총 5억7000만원 정도 걷혔다. 당시 화폐가치로는 상당한 거액이다. 중앙정보부는 최태민이 이 돈을 횡령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김재규 부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것이 친국을 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친국 과정에서 최태민이 돈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성금은 상업은행(지금의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에 박근혜 명의로 고스란히 입금돼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그 사실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친국 도중 김재규의 얼굴에 통장을 집어던지며 ‘네 놈들이 도둑놈이니 남들도 그러는지 아냐. 조사를 하려면 똑바로 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김재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비약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때의 원한으로 10·26의 비극이 잉태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채 회장은 박 대통령의 친국을 직접 목격했는지, 혹은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답하지 않았다.

    채 회장은 “박근혜를 처음 만날 당시 최태민은 지하 사글셋방에 살고 있었다”는 한 월간지 보도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최태민은 당시 서대문구 송월동, 지금 관상대가 있는 자리에 살고 있었는데, 35평쯤 되는 단독주택으로 최태민 소유였다고 한다.

    채 회장도 최태민이 아주 깨끗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기업체나 기관에 구국봉사단 후원금을 받으러 가면 후원금 봉투와는 별도로 여비조로 얼마씩 넣은 봉투를 건네는 관행도 있었다. 최태민이 그런 돈까지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태민이 어느 정도 청탁에 관여하는 일도 있었는지 모른다. 당시 권력층과 선이 닿아 있거나 힘 있는 사람들에게 민원성 청탁이 들어오는 일은 수없이 많았다. 그런 청탁을 전부 다 거절한 청렴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나.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 미미한 액수였다. 최태민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정도의 큰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정축재를 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중앙정보부가 최태민을 샅샅이 뒤졌지만 처벌하지 못했고, 1980년대 신군부의 보안사 역시 1년여 동안 정밀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혐의가 없어 최태민을 풀어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채 회장은 본인이 인정하듯 박정희 대통령 및 최태민과 가깝게 지내 온 인사이며, 구국봉사단 운영의 세세한 부분은 알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증언만으로 최태민 관련 의혹이 모두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보검증위 등 한나라당 일각에선 최태민과 그 일가의 재산내역은 박근혜-최태민 관련설이 계속 쟁점화되는 이상 대선후보 검증 및 의혹 해소 차원에서 상세히 규명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인(私人)에 불과한 김재정씨가 이명박 후보의 처남이자 이 후보 재산관리인이라는 의혹이 일어 정치권 공세와 언론보도, 검찰수사 등 ‘3각검증’을 받고 있는 것과 여러모로 유사해 보이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어 ‘신동아’는 이 전 총리 홈페이지의 ‘崔太敏 關聯 資料’ 문건 내용의 진실성을 검증했다. 이를 위해 문건의 최태민 비리혐의 중 핵심 사안 세 가지를 추출했다. 이 세 가지 혐의는 문건에 있는 최태민의 다른 혐의와는 달리 ‘박근혜’라는 이름이 직접 거명돼 있어 박 후보와의 관련성이 높았다. 또한 내용에서도 대규모 관급공사 수주 개입, 정경 유착에 의한 부실 기업인 해외 출국 알선, 국회의원 공천 비리 등 다른 혐의에 비해 훨씬 더 위중했다.

    대규모 관급공사 수주 개입 의혹

    이 전 총리 홈페이지의 ‘崔太敏 關聯 資料’는 최태민의 ‘利權 介入’(이권 개입)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78.12.30 부산시가 시행하는 서면지하상가 건설공사(공사비 58억원) 업자지명에 개입, 공사능력이 없는 대현실업(주) (成社長)에 지정토록 하기 위해 朴槿惠 비서관 金○○으로 하여금 朴槿惠의 의도임을 憑藉, 부산시 기획관리국 및 건설국장에게 압력 작용하여 동사를 假認可者로 선정”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崔太敏 關聯 資料’에서 최태민의 부산 서면지하상가 수주 개입 의혹 부분.

    문건에서 거명된 관계기관과 당사자를 상대로 확인한 결과 1978년 부산시가 시행한 58억원대 서면지하상가 건설사업을 대현실업(주)이 맡은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부산시측은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은 보존연한초과로 폐기처분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崔太敏 關聯 資料’는 우선 기관명, 인명 등 기본적 사항에서 오류가 있다. 문건 내용과 달리 당시 부산시엔 ‘기획관리국’이 없었다. 다만 ‘기획관리실’이 있었다. 기획관리국은 기획관리실의 오기(誤記)로 넘어간다고 해도 문건은 피의자 격인 비리 의혹 기업의 대표 이름까지 잘못 기록했다. 문건은 이권 청탁 당사자를 ‘대현실업(주) (成社長)’으로 지목했지만 부산 서면지하상가 공사를 따낸 대현실업의 당시 사장은 손현수씨였다. 취재 결과 당시 서면지하상가를 놓고 대현실업과 경쟁한 기업체인 대화건설의 사장이 ‘성(成)’씨였다.

    “박근혜 아닌 내무장관이 도와줬다”

    손현수씨는 지병을 앓고 있어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대신 그를 이어 대현실업을 이끌고 있는 아들 손준섭씨로부터 당시의 정황을 들었다. 손준섭씨는 “‘청와대의 박근혜 담당 비서관이 부산시에 압력을 넣어 공사를 따냈다’는 문건 내용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1970년대 초 덕수궁 앞에서 덕수토산품백화점을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런데 1974년 신당동 중앙시장 내 성중지하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때 상인들의 요청으로 복구사업에 손을 대면서 지하상가가 수익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975년 지하철 1호선이 완성되면서 서울시는 주요 지하철역과 인구 이동이 많은 도심에 민자를 유치해 지하상가를 만들 계획을 내놓았다. 각 건설사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건설업체로서는 분양도 아니고 임대 분양을 해야 하는 지하상가에 매력을 못 느꼈다. 그러나 아버지는 비건설업계에서는 드물게 신청을 했고, 청계천 5가의 방산지하상가를 수주했다.

    이후 지방에도 눈을 돌렸다. 당시 부산 서면은 광복동이나 남포동에 비해 상권은 작았지만 아버지는 발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아버지는 1977년 내무부 장관이던 김정열씨의 도움으로 당시 박영수 부산시장을 만나 서면지하상가 필요성을 제기해 공감을 얻어냈다. 그렇다고 부산시로부터 바로 수의계약을 따낸 것은 아니다. 부산시장이 최석원씨로 바뀐 뒤 부산시는 서면지하상가 사업자 모집 입찰공고를 냈다. 그때 신청한 회사가 단 2곳이었는데 우리 대현실업과 대화건설이었다. 대화건설은 부산 향토기업이었지만 지하상가 공사 경험은 전무했다. 반면 우리는 이미 두 번이나 지하상가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부산시에서 도시계획심의위원회가 열려 심사를 했는데 13대 0으로 우리가 선정됐다.”

    박재우 당시 부산시 건설국장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청와대로부터 어떤 전화도 받은 적이 없으며, 당시 공개 입찰을 했는데 신청한 회사가 2곳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현실업이 서면지하상가를, 대화건설이 국제시장 지하상가를 나눠 맡아 공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지하상가는 완공된 후 시당국에 기부채납해야 한다. 대신 임대사업을 통해 건설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 부산시는 임대권리 기간을 일방적으로 20년으로 정했다. 그렇게 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우리는 부산시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고 결국 법원에서 우리의 손을 들어주어 임대기간이 33년6개월로 늘어났다. 대통령 딸을 동원한 청탁으로 공사를 따냈다면 소송까지 낼 정도로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갈등을 겪었겠는가” 하고 말했다.

    부실 기업인 출국 알선 의혹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崔太敏 關聯 資料’에서 부실 기업인 출국 알선 의혹 부분.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의 ‘崔太敏 關聯 資料’는 최태민의 ‘融資 斡旋’(융자 알선) 부분에서도 박근혜를 거론했다.

    “○ 78.1 초순 부실 금융실업인 조치 대상자 李○○이 경영하는 아시아중석(주)에 은행융자 알선 및 해외여행 제한조치 해제 주선을 조건으로 동사 회장직 취임을 내락하고 78. 12.18 朴槿惠 비서관 金○○으로 하여금 재무부 등 관계관에게 청탁, 李○○의 서독 헬텔사와의 중석가공 합작회사 설립추진을 위해 동인의 출국을 주선….”

    아시아중석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회사다. 광업진흥공사, 산업자원부 광업등록사무소, 한국광업협회 등에 수소문해보았지만 이들 기관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아시아중석과 관련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광업협회 이병헌 이사는 “중석이 호황일 때 그런 회사가 있었던 기억은 난다. 중석 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없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1978년 1월 이○○이라는 사람이 해외여행 제한조치 대상이었는지를 확인하기는 현재로선 어렵다”고 밝혔다.

    채병률 실향민중앙협의회장은 “아시아중석의 대표였던 이○○씨와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중석이 당시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이 서독 헬텔사와 합작계약을 체결하는 데 최태민이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이 부실 금융실업인 조치대상자였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는 게 그의 말이다.

    “당시 한국에선 중석을 캐기만 했지 가공할 능력이 없었다. 헬텔엔 가공기술이 있었다. 중석을 캔 후 4차까지 가공해야 비싸게 팔 수 있다. 이○○은 그 기술을 이전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에겐 돈이 없었다. 일본의 우에다로라는 햄 제조회사가 투자를 약속했다가 이를 어기는 바람에 이○○의 회사가 망한 것으로 기억한다.”

    채 회장에 따르면 이○○씨가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가 부실 금융 실업인 조회 대상에 올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는지 여부는 좀더 검증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시일이 오래 지난 일이어서 확인에 어려움이 따른다.

    국회의원 공천 비리 의혹

    이해찬 홈페이지 뜬 안기부 박근혜 문건, 허위·사후 가공 의혹

    ‘崔太敏 關聯 資料’에서 박근혜의 유정회 국회의원 공천 개입 의혹 부분.

    이 전 총리 홈페이지의 ‘崔太敏 關聯 資料’는 국회의원 공천비리에도 박근혜 후보가 연루된 것으로 기록했다. 이번엔 박근혜 후보의 당시 비서관이 아닌 박근혜 본인을 직접 거명했다.

    “신○○(43, 전 사무총장) ○維政會 국회의원 공천, 박근혜 총재에게 간청 공천 따냄 (사무총장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과시하기 위함) ○남편 張○○이 대학 운영자임을 기화로 접근. 상당한 액수의 돈을 최태민에게 바쳤다고 함.”

    취재 결과 박근혜-최태민이 운영해온 구국봉사단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신○○씨는 1979년 개원한 10대 국회 유정회 의원을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신씨는 “박근혜의 도움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의 지시로 국회의원이 됐다”고 주장했다. 신씨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신씨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뒤 박근혜-최태민에게 이를 덮어씌운 셈이 된다. 다음은 신씨의 말이다.

    “1978년인가 1979년 초인가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해서 약속장소로 나갔더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내게 ‘유정회 국회의원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다’며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 위가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당시 박근혜 총재에게 ‘구국봉사단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내가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고 부탁했던 게 아니냐”고 묻자 신씨는 “박 총재와는 행사장이나 사무실에서 가끔 보는 정도였다. 나는 몸이 아파 사무실에는 1주일에 하루 정도밖에 안 나갔다”고 했다. 또한 “중앙정보부로부터 국회 진출이나 최태민과 관련해 조사받은 적이 있냐”고 묻자 “나는 조사받을 만큼 잘못한 일도 안 했고, 중정으로부터 조사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구국봉사단 간부가 소속단체 측과 상의해 유력 공직인 국회위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또한 신씨가 구국봉사단 사무총장을 맡은 적이 있는 만큼 그가 박근혜-최태민과 상당한 교분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만일 그런 관계라면 신씨가 두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취재 결과 이 전 총리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崔太敏 關聯 資料’ 문건은 중앙정보부가 1차 작성하고 안기부가 재정리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사후에 가공됐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피의자 심문’이나 ‘계좌추적’ 등 검증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세간의 소문을 취합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문건은 최태민 비리혐의 부분에서 기초적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있고, 당시의 구체적 정황이나 당사자 증언에 비춰봤을 때 진실성이 떨어지는 대목도 있다. 또한 현재로서는 전체적인 진상 규명이 어려워 보였다. 최태민의 혐의와 박근혜 후보와의 연관성도 충분하게 입증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이 문건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한편 문건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신동아’를 거명했다. 문건 공개의 배후, 정치적 의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박계동 의원은 7월5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적으로는 박근혜 후보의 X-파일이 안기부에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근혜 캠프의 이혜훈 대변인은 “마치 국정원의 자료 유통을 지적하는 듯하지만 아주 교묘한 방법의 네거티브”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여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박근혜 전 대표와 관련된 안기부 자료는 2000여 장 분량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명박, 박근혜는 한방이면 간다. 자료를 갖고 있다”는 여권 고위 인사의 잇따른 발언 및 안기부 자료의 계속되는 유출사태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주장이다. 다음은 여당 관계자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이라는 특별한 신분과 그 상징성으로 인해 박근혜는 늘 정보기관의 주목 대상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는 김재규 중정 부장이 최태민-박근혜 의혹을 수집해 방대한 자료로 만들었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는 김종필 등 유신세력의 부활을 경계했다. 이 때문에 안기부도 박근혜 주변을 집중 조사했다. 안기부는 최태민의 유선전화를 도청해 박근혜-최태민 대화 내용을 기록한 자료도 작성한 것으로 안다.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이 박근혜의 성북동 집을 지어주고 영남대 공사를 수주 했다’는 의혹을 조사한 1984년 안기부 자료도 신동아에서 공개한 것 이상으로 많이 있다. 신기수 회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내 자필 사인이 들어간 진술서 외에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 신 회장의 자필 진술서, 진술조서만 해도 수백쪽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이 있다. 당시 별도팀을 구성해 조사를 맡은 C씨, J씨 등 안기부 직원 4명은 현재는 퇴직한 상태인데 이들의 신원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문제에 이어 박 전 대표가 정계에 진출한 이후에도 자료는 계속 축적돼온 것으로 안다. 총 분량이 2000여 장에 이른다고 해도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근혜측 “답변하지 않겠다”

    인터넷에 ‘崔太敏 關聯 資料’가 공개된 것 자체로 이슈화가 된 점과 여당 관계자의 ‘박근혜 X-파일 2000여 장’ 발언을 종합해보면, 향후 대선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한 무차별 폭로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옛 안기부 자료는 정치성만 짙고 순도는 떨어지므로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과거 자료 중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만일 자료 전체가 공개되고 그 내용이 사실관계나 연관성이 특정되어 입증될 경우엔 박 후보는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언론 보도의 양과 논조에 따라 자료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공격대상 후보의 지지율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박근혜 후보측은 ‘崔太敏 關聯 資料’ 등에 대한 ‘신동아’ 질의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