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盧 정부, 北 핵보유선언 후 ‘美 핵우산에서 한국 삭제’ 요청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7-08-09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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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중생 사망사건은 대선 게임’ 美, DJ 정부 발언에 쇼크

    노 대통령, 럼스펠드에 직접 요청해 전작권 받아갔다

    盧 “협상하자”에 럼스펠드 “문은 이미 열렸다”

    盧 정부, 감군(減軍) 결과에 책임져야

    (한나라당 집권해도) 전작권 재협상 불가능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천진난만

    북한, 6자회담에서 한국을 ‘주니어 파트너’로 절하

    남북 군사력, 핵·생화학무기 빼면 한국 우위

    미국의 한국 대선 개입은 선풍기에 손 넣는 행위

    주둔비·환경오염 논란, 주한미군은 억울하다

    미국 스파이 사건은 황당한 억지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미국방부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전담하는 국(局)을 신설하고 책임자에 한국통인 리처드 롤리스 아태담당 부차관보를 내정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가 롤리스에게 더욱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일보’ 2006년 12월4일)

    “한국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장관을 대신하고 대통령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신동아’ 2007년 1월호)

    “롤리스는 지난 4년간 한반도 문제를 총괄하는 아태담당 부차관으로 용산기지 이전, 해외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 전시작전권 이양 등 한미 간 주요 군사현안을 총괄해왔다.”(인터넷신문 ‘뷰스앤뉴스’ 2007년 4월6일)

    부차관 퇴임 직후 이틀간 인터뷰

    리처드 P. 롤리스(Richard P. Lawless)가 2002년 미 국방부 부차관보로 발탁된 뒤 2007년 7월14일 현재까지 한국언론재단의 기사검색시스템(KINDS)에는 그와 관련된 기사가 1177건 등재돼 있다. ‘익명의 미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신동아’는 2007년 1월호에서 “롤리스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장관급인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능가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롤리스는 미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Assistant Under Secretary of Defence of U.S.·일부 언론에선 ‘차관보’로 번역하기도 함)이 된 뒤로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략 전체를 수립해왔다. 그는 지난 7월6일 부차관직을 퇴임했는데 얼마간의 휴식기간을 가진 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특별보좌관을 맡아 앞으로도 한미동맹 등 미군의 동아시아 전략을 계속 주관할 것으로 알려졌다.

    롤리스의 퇴임 및 장관 특별보좌관 재임용은 일본에서도 관심 사안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아시아에 있는 미국 동맹국들과의 관계 관리를 위한 새로운 직위를 신설하기로 결정했으며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을 새로운 직위를 수행할 첫 인물로 결정했다. 아시아 정책을 위한 국방부 장관의 특별보좌관 직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중국의 군사적 급성장에 의해 초래된 아시아 지역의 불안정한 안보상황에 따라 일본, 호주,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설치될 예정이다.”(일본 ‘요미우리신문’ 2007년 7월6일)

    롤리스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이해당사국 언론의 중요한 ‘취재원’이 돼 왔으나 특정 언론사와 개별 인터뷰를 한 적은 없다. 그러던 그가 장관 특별보좌관으로 복귀가 예고된 상황에서 잠시 공직에서 물러나 있던 기간에 ‘신동아’와의 단독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에서 한미동맹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 미국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성이 있고, ‘신동아’가 그간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고 한반도 문제를 심층보도한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었다. 인터뷰는 그가 부차관직에서 물러난(7월6일) 직후인 7월8, 9일 양일간 각각 5시간씩 총 10시간에 걸쳐 미국 워싱턴DC 인근 메리어트 호텔에서 이뤄졌다.

    한반도 현안에 대한 정책 결정권자의 직접 설명은 군사·외교적 기밀 등의 이유로 그간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국내에선 한국 정부 당국자에 의한 정보와 시각만 주로 전해졌다. 한국의 안보 현안은 미국 등 주변국과 긴밀히 연관돼 있음에도 주요 협상 파트너인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국 당국과는 어떤 ‘온도차’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따라서 한반도 현안에 대한 롤리스와의 인터뷰는 독자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한국의 안보 현안을 보다 균형 있게, 보다 진실에 접근해서 바라보는 데 필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대목은 그의 영어 표현을 함께 실었다.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2005년 10월21일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이 윤광웅 국방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37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미국 국방부 조직은 어떤 이유로 개편했나.

    “모든 아시아 업무가 국방부 차관보실의 한 부서로 모아졌다. 이 부서가 바로 아태안보담당실(Office of Asian and Pacific Security Affairs·APSA)이다. 이전에는 아태 지역 업무를 아프리카, 중동 지역과 함께 국제안보국에서 다뤘는데 2006년 10월 아태지역을 별도의 국으로 승격시켰다.”

    ▼ 그런 조직 개편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주겠나.

    “한국은 이번 아태안보담당실 신설로 두 가지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우선 한국은 동북아의 일국이 아니라 대(大)아시아(Greater Asia)의 일원으로 대접받게 된다. 그리고 아태안보담당실의 한국 담당부서는 국방부 조직 내에서 상위 기관의 일부가 될 것이며, 이것은 미국 정부 내에서 한국 담당 부서의 지위와 위상이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전작권 전환과 한반도의 운명

    2005~07년 한국을 이념논쟁으로 달군 바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2007년 6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됐다. 김관진 한국군 합참의장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6월28일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전환하기 위한 단계별 이행계획서에 서명했다. 이 계획서에 따르면 전작권은 2012년 4월17일 오전 10시를 기해 한국군으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한반도 전구 전투사령부 기능을 맡는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한국 합참 주도의 전구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전투사령부로 분리된다. 일부 언론은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동북아 기동군 형태로 재편을 완료하게 되며, 동북아 분쟁이나 중동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됐다”고 보도했다. 작계 5027-04에 따르면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군 69만여 명, 함정 160여 척, 항공기 2000여 대가 오도록 돼 있지만, 전작권 전환 이후엔 작계 5027-04가 폐기되며 따라서 유사시 증원병력 규모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의 미래 안보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전작권 전환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중 어느 쪽의 선(先)제의나 주도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국내에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일부에선 한국측 제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측에선 미국의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롤리스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10월 럼스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에게 ‘전작권 전환 협의’를 먼저 제안한 것이, 한국이 2012년 전작권을 받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이때까지만 해도 전작권 전환 개념을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노 대통령이 먼저 제안해오자 럼스펠드가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논의가 급진전됐다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의 급진전은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차원을 넘어서는 사안이었다는 얘기다. 이후 미국은 “빨리 가져가라”며 한국에 2009년 전환을 요구했고 한국은 오히려 “전환 시기를 늦춰달라”고 하다가 최종적으로 2012년으로 결정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3월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비해 독자적 작전기획 능력도 확보해야 한다”면서 전작권 전환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도 제기해 언론은 이날 연설을 ‘노무현 독트린’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10월1일 국군의 날 연설에서도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스스로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이라며 전작권 전환 문제를 사회적 어젠다로 끌어올렸다.

    ▼ 2002년 이후 미 국방부의 한국 정책엔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우선 2002년 내가 국방부 임무를 맡을 무렵 이미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라는 협정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이 협정에 따라 미군 기지들을 합병해 수를 줄였고 일부 시설들은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이 협정을 개선해 개정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2)을 만들고 싶다고 한국측에 밝혔다. 단순한 기지 반환 대신 한강 이북의 모든 미군 병력을 평택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대신 한국도 훨씬 넓은 토지를 보다 신속하게 반환받을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 미 국방부가 2002~05년에는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에 주력한 듯하다. 용산기지 반환이나 평택기지 건설 협상도 그 일환이었는데.

    “한국과 미국이 쌍방의 앞날을 위해 가치 있고 유용한 동맹관계를 이루자면 동맹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2002년 초에 느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지 합병 같은 이슈도 있었지만 구조적 문제점도 있었다. 변화의 핵심은 한국 사람들에게 달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한국민은 한미동맹 구조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랬다. 한국민의 시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동맹관계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여겼다.”

    “노 대통령과 그 측근이 먼저 제의”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지난 6월14일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가운데)과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오른쪽) 등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이 경기도 파주 에드워드 미군기지 내 지하수에서 떠올린 폐유라면서 불을 붙여보이고 있다.

    ▼ 2002년 대선 당시 한국에서 반미(反美)감정이 크게 일었고 불평등한 한미동맹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미 국방부 측은 그 무렵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 전환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는 것인가.

    “우리는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한국 방위 분야(conventional defense)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파트너 노릇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이 방식이 옳았다고 느끼게 됐다. 그리고 통제권 이양을 가속화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변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한미동맹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 같았다. 우리는 한국 국민의 이런 요구에 미국이 반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 그렇다면 2002년부터 곧바로 전작권 전환 협상을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 동맹의 주도권을 잡게 되는 핵심 이슈가 전시작전권이라는 점을 우리는 2002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먼저 해결해야 할 다른 사안들이 있었다. 용산기지 반환이나, 대한민국 전역의 미군기지 재배치 등과 같은 묵은 이슈를 선결할 필요가 있었다. 용산기지 문제는 이미 12년 동안이나 양해각서에 오르내렸다. 그래서 보다 큰 문제들을 논의하기 전에 이런 문제들을 먼저 마무리해야 했다. 이에 대해선 한국측도 완전히 동의했다. 한미 양국은 2002~05년 이런 기존 문제들을 협상해 해결해 나갔다. 이를 위해 2002~05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열었다.”

    ▼ 미국은 용산기지 이전 등 기존의 난제가 해결된 뒤, 염두에 두고 있던 전시작전권 전환 이슈를 먼저 한국에 제의한 것인가.

    “FOTA 협정을 모두 마친 후 한국측은 협상 내용을 승인받기 위해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일단 최초의 FOTA 협정 문제가 해결되자 한미 양측은 전시작전권 문제를 꺼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먼저 제기됐다. 우리는 ‘미국은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우리가 지난 3년간 이 문제를 준비해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미 열린 문을 다시 열려고 하시는군요’라고 말했다(After we finished all of the FOTA agreements and after the ROK took them to the national assembly for approval. At that point the issue of OpCon was raised by the ROK government by President Rho and others. At that point we said we´re ready to discuss it and secretary Rumsfeld said, “Don´t you understand we´ve been preparing for this for the last three years. You are pushing at an open door).”

    전작권 전환 이슈를 노무현 대통령측이 먼저 제의했다는 데 대해선 여러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진보 진영에선 ‘미국의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전작권을 가져온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며, 보수 진영에선 ‘한국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먼저 요청했다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을 쏟아낼 것이다.

    “盧, 주겠다니 좋아하더라”

    롤리스는 “럼스펠드 장관이 ‘문제없다. 우리는 이 사안을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하니까 노 대통령이 아주 좋아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FOTA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는데, 한국측에선 향후 진행될 협의에 대해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SPI(Strategic Policy Initiative)였다는 것.

    ▼ ‘개념’ 차원에 머물러 있던 전작권 전환 이슈가 한국측의 제안에 따라 구체화해 신속히 실행에 옮겨지게 됐다는 뜻인가.

    “FOTA에서도 한미동맹의 미래 구조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FOTA의 보고서에도 기재된 사항이다. 10년 후 동맹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한미연합개념계획(Joint US-Korea think piece conceptual plan)도 그중 하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지난 수년간 비공식적으로 전시작전권 문제와 관련 이슈들을 논의해왔지만 전작권 이양을 실행하지는 않았고, 이양 방식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았다.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개념’에 대한 논의는 했다. 물론 청와대는 이 사실을 알았다. 내가 알기로는 노 대통령도 이런 보고를 받고 대단한 아이디어니 당장 실시하자고 했다고 한다(We were discussing the OpCon issue but we had made no decisions to actually transfer it or begin discussing what the transfer would look like. No decision has been made but we discussed it the concept so that was out there. And of course the Blue House knew about this and I think Rho Mu Hyun was told about it and he said its a great idea lets do it now).”

    ▼ 노 대통령과 럼스펠드 장관은 이전에도 한미동맹의 성격변화와 관련해 중요한 얘기를 한 적이 있나.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 처음 방미했을 때 블레어하우스(Blair House)에서 럼스펠드 장관을 만났다. 이 면담에서 노 대통령은 ‘FOTA에서 구체적 목적, 일정표, 용산기지 반환 등에 대해 합의가 이뤄져 기쁘다. FOTA의 로드맵 이행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랬기에 2005년 10월 우리가 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는 ‘우리는 FOTA에서 정해진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러한 교감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한국, 2012년부턴 스스로 지켜야”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7월8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메리어트 호텔에서 인터뷰하는 리처드 롤리스.

    ▼ 2012년 전작권이 한국군에 전환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기존의 작계가 폐지되는데, 한국에선 이것이 한국의 방위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당장 유사시 미군 병력, 항공기, 전투함의 증원 규모가 불투명해졌다. 벨 주한미군사령관도 전작권 전환 이후에는 미군의 증원병력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한국으로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미연합사가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신 한국군 전구사령부가 생길 것이고 미군은 이 사령부를 지원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 한국측은 ‘2012년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우리는 ‘2009년이면 이런 일들을 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결국 한국이 2012년 3월을 제안했고, 우리는 그렇다면 2012년 4월이 어떻겠냐고 했다. 2월 김장수 한국 국방장관이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타협을 보게 됐다.

    한국은 전작권을 이양받은 뒤에는 전쟁을 주도적으로 치르겠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실질적인 작전계획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 한국인에게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미국이 한국에서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 북한을 훨씬 앞서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공격을 스스로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미국은 계속해서 ‘연장된 억제력’을 한미동맹체제 아래서 제공할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으로 이해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전작권 전환에 대해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은 못마땅하다는 태도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우리가 집권하면 미국과 전작권 전환 시기를 늦추는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듯하다. 노 대통령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전작권 전환은 이제 ‘차기 정권도 되돌려 놓지 못하는’ 단계까지 가버린 것이다.

    “재협상? 아주 아주 달갑지 않다”

    롤리스는 “전작권 전환 합의는 양국의 최고위층 선에서 동의가 이뤄졌다. 현재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다.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은 아주 아주 달갑지 않다. 이미 동의가 잘 되어 끝난 문제다(No, we consider this to be an agreement reached at the highest level between our two governments. Right now we have no willingness and we would be very very reluctant to reopen this discussion. We think we have a very good agreement)”라고 일축했다.

    한강 이북 모든 미군부대의 평택 이전,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 등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정책과 맞물려 있다. 이와 관련,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2005년 노 대통령은 이를 염두에 둔 듯 “분명한 것은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될 가능성에 대해 미 국방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 한국에선 한강 이북의 주한미군 부대가 일제히 평택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2005년 베이징의 2차 6자회담에서 겪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첫 회담이 끝나고 나서 북한의 한 고위급 대표가 내게 오더니 ‘우리는 한강 이북의 미군이 한강 남쪽의 새로운 곳으로 기지를 재배치하고 있는 상황을 조심스레 잘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재배치한다니 당신들은 기쁘겠다’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번 재배치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전투에 임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해 미국이 한반도에서 그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이 별로 안 좋다. 당신네 미국 사람들, 너무 교활하다’고 하더라.”

    “주한미군의 동북아 개입? 걱정 말라”

    ▼ 북한이 평택 이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정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주한미군 2사단이 15개의 캠프로 분산 배치돼 있고, 그 대다수 캠프는 고층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미 2사단의 각 캠프는 일단 남쪽으로 물러나서 합친 뒤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너무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는 탓에 신속하게 전투에 임하기가 어렵다. 현재 상태로 전투를 하게 된다면 정말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재배치를 통해 평택으로 캠프들을 미리 집결시켜놓으면 유사시 북한군에 맞서 전투를 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또한 평택에는 해군이 이용할 수 있는 항만이 있고, 인근 오산에는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나를 공군기지가 있다. (육해공이 신속하게 연결되므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검토는 2001년 럼스펠드 장관의 지시로 시작됐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렇다. 미국은 충분히 부유하거나 강력하지 않아서 독일, 한국, 일본 등 각각의 지역 방위만을 담당하는 분리된 주둔 군대를 둘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공군과 육군이 언제 어디로든 전투를 하러 떠날 준비가 돼 있도록 하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이다.”

    ▼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한국에선 일종의 피해의식이나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주한미군이 필요에 따라 한국을 떠나서 한국 방위 목적이 아닌 동북아 다른 나라와의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에 대한 피해의식(한국 방위력의 약화)이나 우려(미국의 군사동맹국인 한국이 국제분쟁에 개입될 가능성)인데.

    “그건 그렇지 않다.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개별 부대 단위로는 한반도를 떠나서 다른 지휘관 휘하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지휘본부는 한국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아시아에서의 전투를 위해 날아다니는 부대가 된다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주한미군은 영원히 한국에 있을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전략적 유연성은, 세계 도처에 주둔한 미군이 유사시에 한반도로 집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만일 독일에 여분의 미군이 존재한다면 전략적 유연성 개념 아래 이 부대가 유사시 한국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3만명의 미 해병대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그들은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의해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오는 것이다.”

    ▼ 주한미군사령관을 향후에도 4성 장군급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책임감을 보여주기 위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4성 장군의 지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균형자되면 동맹 못해”

    롤리스는 한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감군(減軍)에 대해 미국측의 시각을 소개했다. 그의 뉘앙스에는 ‘한국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받으면 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하고 자주국방의 책임이 한층 커지는데 감군을 한다니?’라는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

    ▼ 노무현 정부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감군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노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이미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면서 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한국이 병력을 감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의 결정이 아니라 한국의 결정이다.”

    전시작전권을 갖게 될 한국군의 감군 추진에 대해 롤리스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거듭 언급했다.

    “2020년까지 약 3분의 1의 병력 감축을 발표했다.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한반도 전쟁 발발시 주도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이런 판단이 옳은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건 한국의 책임이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한국은 지금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으며, 감군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So if they´re the leading partner they have to decide if that´s the right thing to do. That´s their responsibility, not ours. So the important point here is that they´re the leading role so they have to take the responsibility and consequences for their decision).”

    노무현 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일부 언론은 “한미동맹과 동북아 균형자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비판한 바 있다. 롤리스는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혼란스럽고 천진난만한 개념”이라면서 “일본과 중국 사이의 조정자로서 행동하는 한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균형자라는 것은 우리가 정말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이다. 이는 두 가지 가운데서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인데 우리는 그 양쪽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양쪽이 미국과 중국인가? 아니면 미국과 일본인가? 일본과 중국 사이의 조정자로서 행동하는 한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측에 ‘균형자(balancer)’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는 한미동맹을 평형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평형대 위에서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앞으로도 그 기준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더라. 이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천진난만한 개념이다. 우리는 우리가 균형자라는 개념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알지 못한다.”

    최근 6자회담 등의 결과로 북한은 중유를 공급받는 대신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기로 했다. 영변 원자로에 대해서는 봉인, 불능화 등의 조치가 남아 있다. 이를 북핵 문제 해결의 신호탄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

    ▼ 북한 문제에 있어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전략적인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고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이 동원된다. ‘당근’이 꼭 돈일 필요는 없다. 북한을 인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6자회담 등 북한과의 협의과정에서) 우리는 한국을 동등한 지위의 파트너로 만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은 모든 대화에서 항상 한국을 ‘하위의 파트너(junior partner)’로 대접하려 하기 때문이다.”

    “北, 영변 폐쇄 후에도 핵 보유국”

    ▼ 북한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가.

    “북한은 언제나 자신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등한 파트너가 되고, 대신 한국은 하위의 파트너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6자회담이 좋은 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할 때 북한은 ‘이 회담에는 단지 두 협상자(북한과 미국)만이 존재한다. 한국과 중국은 일종의 하위 레벨 참가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아니다. 한국 역시 당사자 중 하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은 ‘우리는 핵무기 보유국이다’라고 강조했다. 6자회담에 참여하는 6개국 중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은 ‘핵 보유 4개국’이라는 것이다.”

    ▼ 영변 핵시설이 폐쇄, 봉인, 불능화의 단계를 거치더라도 북한이 이미 개발했다는 핵무기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문제가 남는다.

    “영변의 핵시설을 폐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도 필요한 사전 신호다. 북한은 핵 물질 추가 생산을 기꺼이 포기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개발해놓은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등을 5개국이 만족하는 수준에서 검증될 수 있도록 공표하는 것이다. 북한은 2005년 9월 합의에 의거해 완전하고 증명할 수 있는 신고를 하는 데 동의했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 제조시설, 저장시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신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처지에서는 매우 중대한 결정이다. 핵심은 북한이 얼마나 정확하게 공표할 것인가인데 아직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 그렇다면 현재의 쟁점인 영변 핵시설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가.

    “북한은 계속 핵 보유국임을 주장하면서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영변 핵시설이 해체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 북한의 신형 미사일은 얼마나 의미 있는 수준인가.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북한 미사일 위협을 과대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그 어떤 국가라도 우리의 미사일 방어망 안에서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의 신형 미사일을 언급하는 속내는 북한을 밀어붙여 미사일방어체제를 개발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쎄…그럴 수도 있다. 사실 과거에는 몇몇 국가를 사주해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 배치하게끔 한 적이 있다. 한국에도 제한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패트리어트(PAC-3)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탄도미사일 방어체제가 시급하지 않다고 보는 한국이 안타깝다. 우리는 비록 시험단계이지만 신형 미사일로 한국이 북한에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양국은 서로가 느끼는 위협의 정도에 대한 차이를 존중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위협, 한국은 안 느껴”

    ▼ 한국이 북한 미사일을 그다지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나.

    “내가 한국에 PAC-3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한국측은 ‘미사일 세일즈 목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건 민감한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가 느끼는 위협을 한국은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이상하고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사고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There maybe a different sagobangshik).”

    ▼ 북한 군축평화연구소 한성렬 대리소장은 7월4일 영국 런던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미군 철수 및 북한과 미국의 핵 폐기를 위한 동시적 조치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철수와 북핵 폐기를 연계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어떻게 보나.

    “우리는 지금 한반도 비핵화의 중간단계에 와 있을 뿐이다. 한 소장의 얘기는 ‘주한미군 철수가 곧 북한의 비핵화’라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 최근 미 국방부가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 조사한 것으로 안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재래식 무기로 전쟁을 한다면 한국이 북한을 방어하고 격퇴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이 지원한다면 한국은 보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길 것이다.”

    ▼ 그 말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전쟁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북한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겠나.

    “결과를 말하기 어렵다. 화학무기는 매우 애매하고 교활하다. 북한이 화학무기를 쓴다면 서울시민들을 목표로 할 것이다. 화학무기 사용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며,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에 대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 동북아에서 군비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군사력 팽창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한반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는 듯한데.

    “중국은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이는 직간접적으로 한국,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주변 이웃국가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한국과 같은 나라는 중국이 군사력을 키워 나갈 때 그것을 자국을 향한 위협으로 보지 않고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만 본다. 그것은 한국이 동맹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는 흥미로운 상황이다.”

    반미감정이 증대하는 동시에 안보에서의 대미(對美) 의존도도 여전히 높은, 한국의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받아들여졌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귀국(貴國)이 주둔하는 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뭘 하든 개의치 않는다. 단 미국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더라. ‘중국은 성장하고 있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많이 괴롭히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귀국(貴國)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다’라고. 정말 이상한 생각이라고 느꼈지만, 우리는 그런 의견에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 한국에서는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 영토에 욕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중국은 이웃 국가의 국경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중국이 북한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면, 이는 중국이 북한 정권이 괴멸해 힘의 진공상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중국이 북한에 엄청난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인내심이 고갈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핵을 개발하고 실험하는 국가다. 북한의 이런 현실이 중국에 안정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신뢰관계가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롤리스에 따르면 2002년에 이르러 한미관계는, 미국 정부가 판단하기에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에서 반미감정이 절정을 이뤘지만, 당시 미국 정부도 한국측의 대응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2002년 한국 대통령선거를 앞둔 6개월, 즉 2002년 7월부터 12월까지였다. 그 기간에 한미동맹은 정치적으로 공격되고 이용됐다. 6월13일 58번 국도에서 발생한 두 소녀의 비극적 죽음 이후 미국은 그 사건이 미칠 파장을 줄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동맹을 지키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There was no defense of the alliance by the Kim Dae Joong government). 그런 매우 정치적인 한미동맹 반대 및 반미주의 때문에 미국 사회와 의회는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 및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다. 이런 기존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미국에선 이러한 나쁜 감정들이 2002년 말 한국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됐다.”

    “DJ 정부와 상의하면서 충격 받아”

    롤리스는 김대중 정부 말기의 반미감정이 미국에서 반한(反韓)감정을 걷잡을 수 없이 증폭시켰으며, 한미동맹에 성격적 변화를 초래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미국 TV 프로그램에서 나타났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일요일 밤의 한 프로그램은 오랜 시간을 할애해 한국에서 반미, 반(反)한미동맹 감정이 끓어오르는 상황을 보여줬다. 그리고 2명의 주한미군 장군의 인터뷰로 끝을 냈다. 미국 국기가 불타는 가운데 주한미군사령관이 울기 시작했다. 이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이어서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수많은 미국인이 미 의회로 전화를 걸었고, 의회측은 정부로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가 왜 한국에 있는가’라는 의식의 물결이 일게 된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 2002년 당시 여중생 사망사고로 인해 반미감정이 증폭됐을 때 김대중 정부가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보다 구체적인 얘기를 들려달라.

    “당시 세 가지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 우선 반미와 반한미동맹 움직임 자체가 충격이었다. 두 번째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6개월 동안 김대중 정부가 한미동맹관계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세 번째로는, 우리가 김대중 정부의 국방부나 외교부와 그(여중생 사망사건 및 반미감정) 이슈에 대해 상의할 때 그들이 ‘이건 대선 정국에서 늘 있는 정치 게임이다,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반박했다. ‘당신들은 정치 게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미국민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당신들이 별문제 아니라고 여겨도 당신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우리 두 나라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다’….”

    롤리스에 따르면 당시 충격을 받은 미국측이 미군기지 재배치, 전작권 전환 등 한미동맹의 중요한 변화(FOTA 프로세스 등)를 2002년 12월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 부담분 증액 문제, 주둔비용을 기지이전 비용으로 전환하는 문제, 주둔비용을 쓰지 않고 금융기관에 예치해 이자소득을 발생시켰다는 문제, 이전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처리 문제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롤리스는 이에 대한 미국측 시각을 명확하게 전했다.

    ▼ 버웰 벨 사령관은 한미 양국은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용을 50 대 50으로 분담해야 공평한 수준이라며 한국측 분담금 인상을 요청했다. 한국은 2006년엔 38%, 2007년엔 41%를 분담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선 50%면 한국 부담이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데.

    “우선 벨 사령관이 말한 50%는 미군이 한국 주둔에 드는 총 비용의 50%가 아닌,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NPSC)’ 중의 50%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여기엔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고용비용, 건설비용, 병참비용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전체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에서 NPSC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한국이 NPSC의 50%를 분담한다 하더라도 전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80%는 미국이 부담하고, 한국은 20% 정도 부담하는 수준이다.”

    ▼ 벨 사령관은 “한국이 분담금을 공평하게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기지 재배치 계획을 재검토하는 방안을 포함해 미 정부에 회계 관련 조치를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벨 사령관은 주한미군으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의 전투태세를 유지시킬 의무가 있다. 이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임무인데,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최상의 전투능력을 갖추는 수준까지 미군의 수를 감축할 수밖에 없다. 가령 벨 사령관의 처지에선 10명의 주한미군이 9 정도의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보다는, 9명의 주한미군이 최상인 10 정도의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벨 사령관은 한반도 밖으로 병력을 조금도 빼내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군의 대응태세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일부 미군을 다른 곳으로 빼내서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이 막으면 집으로 갈 수밖에…”

    ▼ 한국이 내놓은 수천억의 방위비 분담금을 주한미군이 부대 운영에 사용하지 않은 채 금융기관에 예치해 이자소득을 거뒀다는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민들이 ‘우리가 낸 돈을 주한미군이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려면 세심한 답변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논란은 벨 장군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는데, 이에 대해 한국측에선 이의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주한미군이나 국방부 당국은 보유계좌에 어떠한 이자도 챙긴 적이 없다. 주한미군 보유계좌는 한국 납세자들이 제공하는 자금이 낭비되거나 오용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보호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자금들은 오용되거나 낭비된 적이 없다.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의 당초 안에는 기지의 폐쇄·통합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부터 평택으로의 통합 작업이 이뤄졌다. 기존 기지에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는 데는 돈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어 개정된 LPP2에 의거해 쓰지 않은 돈이 한국에 반환되지 않았던 것이며, 우리는 이 돈을 평택기지의 신규 시설물 설치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평택에 추가 부지를 제공할 때까지는 이 돈이 묶여 있어야 했다. 이 스케줄이 예정보다 1년 이상 지체됐고, 이에 따라 우리는 2003~06년 이 돈을 집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대부분의 필요한 땅을 받았으며 막사 등 공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자금은 두 곳의 지원으로 구성된다. 한국 정부와 미 의회다. 이 둘은 모두 같은 계좌로 자금을 제공한다.”

    ▼ 한국의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최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미 2사단 평택 이전 비용에 사용하는 것은 LPP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시설 건설에 사용한다는 것은 한미 양측 간에 합의된 사항이다. 수십 년 동안의 비용 분담과 관련된 기존의 방식과 일치한다. 2사단 재배치에 드는 비용은 LPP2에 의해 사용될 수 있다. 한국측이 내는 분담금을 사용하지 못하면 우리는 주한미군을 적절히 재배치하는 데 드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한국측에서 ‘한국이 제공한 돈은 평택기지 시설 건축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면 미군은 현재 위치에 그대로 있거나(이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들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벨 장군이 우려하고 있는 바다.”

    ▼ LPP2는 주한미군 재배치 편의만을 배려한 것인가.

    “LPP2 하에서 한국 정부는 더 많은 기지를 보다 신속하게 되돌려 받게 된다. 부산의 캠프 하얄리야 부지는 아주 값비싼 땅인데 2010년으로 예정됐던 반환시기가 2008년으로 앞당겨진다.”

    “반미감정 확산 위해 환경문제 이용”

    ▼ 한국 국방부는 “한국에 반환되는 주한미군 기지 28개 가운데 23개 기지의 환경오염을 치유하는 데 276억~1197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면서 “이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밝혀 한국의 국회, 언론, 시민단체 일각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가 위촉한 모 교수는 오염 치유에 6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상당수 언론은 “국회 조사단이 반환 기지 한 곳을 현장 조사한 결과 땅에 윤활유 폐유가 흥건했고 지하수에 두꺼운 기름띠가 떠 있었다”고 보도했다.

    “기지 반환 절차에 있어 우리는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정신 및 문구를 충실하게 준수해왔다. 이 협정에 따르면 벨 사령관은 즉각적인 인명상의 중대한 침해가 없는지 등에 관한 미군정화기준(KISE)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는 기지 반환시 매번 이 기준을 자발적으로 초과해 협조했다. 문제는 KISE가 환경보호와 관련된 한국 법의 기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법은 최근에 제정되어 산업지역이 아닌 주거지역에 있어서는 그 규정이 무척 엄격하다. 우리는 KISE를 초과 준수하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기준에 맞춰 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기준은 전세계 미군기지에서 거의 유사하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한국민들은 한국 방위를 위해 많은 미국인이 자녀들을 한국에 (주한미군으로)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 반환되는 미군 기지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봐줬으면 한다. 한국인들이 주한미군 기지가 그처럼 많이 오염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인은 못 살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많은 주한미군이 수십 년간 생활하면서 임무를 수행해 왔다는 의미도 된다.

    또한 오염의 정도, 오염 치유 비용, 오염의 원인에 대해 의아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반환되는 한 기지의 경우 주변이 도시화되어 차량정비시설 등 오염유발 업체들이 인접해 있다. 더욱이 반환되는 기지들은 6·25전쟁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곳들이다. 용산기지도 우리가 오기 전에 일본군이 40년간 점용했고, 이전에는 청나라 군대가 사용했다. 어느 시점의 상태로 되돌려놓으라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 하지만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가 반미정서를 촉발하는 또 다른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지적도 있다.

    “반환된 토지가 환경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굳이 논쟁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주둔군지위협정에 근거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만 하겠다. 우리는 한국 영토를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해왔다. 우리는 몇몇 그룹이 현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한미동맹에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환경 이슈를 이용하고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단체들에게 한미동맹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단체들은 기꺼이 환경 문제로 한미동맹을 망쳐놓으려고 한다(I believe that some groups are making use of this issue and politicizing this issue to embarrass the current government and create problems in the alliance. Because most of these groups are for which an alliance is not a priority. They are willing to damage our Alliance over this issue).”

    ▼ 한국 국회와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최근 ‘미국 스파이’ 논란이 일었다.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등이 한국의 국가정보를 수집해 미국에 유출했다는 의혹이다.

    “내가 아는 한 사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얘기다. 나는 이 사안의 핵심을 백성학 회장과 관련된 법률사건으로 이해한다. 나는 백 회장과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이고 진정한 애국자다. 그는 여러 면에서 한국의 경제 기적을 만든 성공 스토리 그 자체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특정한 진술을 하고 자신의 처지를 과장함으로써 보상을 받으려 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가끔 오해가 생기고는 한다. 한국말로 하자면 ‘지나쳤어요’.”

    “나는 정통보수…네오콘 아니다”

    ▼ 미국 스파이 논란 과정에서 한국 검찰은 롤리스 당신을 비롯한 주한미군, 주한 미대사관과의 관련성 여부를 조사하기도 했다. 일부 한국 언론은 당신과 관련이 있는 US아시아 한국지사가 한국의 국가정보 유출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얘기다.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억지인 듯하다. 미국이 이 회사를 이용해야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상이다. 한국은 우리의 동맹국이고 우리는 매일 대화하고 싶은 한국의 고위관리들과 대화할 수 있다. 나는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어떠한 비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미 간의 문제는 너무 오래되어 고착화한 결혼생활 문제와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매일처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왜 우리가 추가적 정보를 제공할 제3의 누군가를 필요로 하겠는가.”

    ▼ US아시아가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발견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는 말인가? 나도 들었는데 미국이 2002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라면 말도 되지 않는 얘기다.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선거에 관여한다는 것은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에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US아시아 한국지사를 맡았던 배영준 사장은 “나는 그런 문서를 본 적도 없고, 내 이름이 들어갔다는 것을 들은 적도 없으며, 그런 행동을 한 적도 없다. 그런 문서가 발견됐다면 문서 작성자가 내 동의 없이 회사와 내 이름을 임의로 집어넣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서 작성자가 본인을 과시하기 위해 제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롤리스는 국내 일각에서 미국 ‘네오콘’을 대표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신보수주의자를 뜻하는 네오콘은 국내에선 특히 부시 행정부를 중심으로 한 ‘급진 보수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롤리스는 “내가 알기로 미국에서 네오콘은 급진 진보주의 성향에서 보수주의로 ‘전향’한 인사를 뜻한다. 인종적으로는 유대인 보수주의자를 지칭한다. 나는 아일랜드 출신이며 14세 때부터 보수주의 간행물 ‘내셔널리뷰’를 구독한 ‘일관된’ 정통 보수주의자이지, 네오콘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2006년 10월17일 ‘동아일보’는 미 국방부의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2005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외(SCM)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재확인하는 공동합의문 조항 삭제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공동합의문에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 조항이 포함돼 왔었다. ‘동아일보’는 “한국 정부가 핵우산 조항 삭제를 제의하자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번 SCM의 공동합의문을 내지 말자’고 답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 측은 ‘핵우산 조항과 상관없이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니 일단 핵우산 제공을 삭제해 북한을 설득하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선언을 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NSC 측은 “핵우산이라는 용어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방안을 실무 수준에서 검토한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거부하려 한 것이 아니며 미국에 제의하지도 않았다”고 ‘동아일보’에 반박했다.

    동아일보 보도 내용에 대해 롤리스에게 확인을 구했다. 롤리스는 신중하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2005년 서울에서 SCM 합의문을 냈다.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가 만들었다. 그런데 합의문 문구의 일부 부분이 변경 제안됐다. 항시적으로 사용되던 문구지만 북한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미국측)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항시적으로 사용했던 대로 조항을 쓰느냐, 아니면 합의해 주지 않는냐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합의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자가 귀국한 뒤 롤리스 측은 “이 정도 말한 것도 ‘비보도’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미간 주요 현안을 다루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롤리스가 비보도 요청을 해올 경우엔 받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독자의 알권리 충족을 위한 일이었지만, 롤리스 측이 요청해온 몇 가지 비보도 사항 중 단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한 셈이다. 이 부분은 롤리스에게 유감을 표해야 할 일이다. 롤리스는 이미 보도된 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고 신중하게 답변한 정도이고, 그의 실수나 고의로 초래된 일은 아니므로 그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된장찌게 즐기는 ‘한국통’

    롤리스는 한국과 4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1960년대 미 정부의 한국 담당으로 발탁된 뒤 그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푸에블로호사건,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 등을 경험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2002년부터 미 국방부에서 한미동맹 등 대(對)한국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그는 워싱턴DC 근교 자택 부근의 단골 한정식집에서 된장찌개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신동아’는 2007년 8월호에서 『‘미 국방부 ‘아태총괄’ 리처드 롤리스 독점 인터뷰’ 盧 정부, 北 핵보유 선언 후 ‘美 핵우산에서 한국 삭제’ 요청』 제하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리처드 롤리스는 “‘2005년 10월 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재확인하는 공동합의문 조항 삭제를 요청했다’는 2006년 10월17일자 ‘동아일보’ 보도를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2005년 서울에서 SCM 합의문을 냈다.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가 만들었다. 그런데 합의문 문구의 일부 부분이 변경 제안됐다. 항시적으로 사용되던 문구지만 북한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롤리스는 “盧 정부, 北 핵 보유 선언 후 美 핵우산에서 한국 삭제 요청”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바 없고 이 때문에 ‘신동아’도 기사 제목에 인용부호(“ ”)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롤리스가 본인의 육성으로 기사 제목과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으므로, 그의 정확한 발언 내용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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