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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러시아 학자들의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

“과대망상증 중국,‘문명 훔치기’ 자충수까지…”

  • 권재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onfetti@donga.com

남북한, 러시아 학자들의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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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러시아 학자들의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

남북한,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고구려는 봉건 중국 왕조들에 얽매인 존재가 아니라 그와 당당히 맞서 동방의 정국을 움직인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며 “이런 고구려를 두고 속국이니 지방정권이니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김일성대 역사학부의 고고학 강좌장(학과장)으로 고구려성 전문가인 남일룡(60)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에서 이뤄진 고구려성 발굴 성과를 종합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진행한 고구려성곽 유적발굴과 연구 성과’였다.

남 교수는 평양 일대에 집중된 대성산성과 안학궁성, 청암동토성, 청호동토성, 고방산성과 황해도 황주성, 휴류산성, 태백산성, 장수산성 등의 발굴을 토대로 고구려성의 축조 시기, 해당 군현의 이름, 고구려성의 특징을 소개했다.

특히 고구려성의 특징으로 △돌로 쌓은 산성 △치(雉·성벽 밖으로 돌출해 적군에게 측면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 구조물)와 옹성(甕城·성문 주변을 ㄷ자 형태로 구축해 적군에게 포위공격을 가할 수 있는 구조물) 등 독특한 성 축조방법의 창조 △평시용 평지 왕궁성과 전시용 방위산성의 이중 도성제 도입 △여러 성을 연결한 방어체제로서 전연성(前緣城), 종심성(縱深城), 위성(衛城), 해안성(海岸城) 방어체제의 구축 등을 꼽았다.

그는 “고구려에 쳐들어온 한·수·당나라를 비롯한 외래 침략자들은 튼튼한 성 방어체계와 이를 토대로 용감히 싸운 고구려 사람들에게 참패를 면치 못했다”며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려는 시각에 맞섰다.



역시 고구려성 전문가로 남 교수와의 첫 만남을 뛸 듯이 기뻐한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중국의 고구려 침탈과 동북공정’ 발표문을 통해 ‘고구려사=중국사’라는 중국 측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서 교수는 먼저 중국의 논리를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영토) △고구려는 독립국가가 아니고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주권)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인은 모두 중국 땅으로 들어갔다(인구)는 3가지 범주로 묶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 대해 “고구려가 존속한 705년간 중국에선 35개국이 명멸했는데, 그렇다면 고구려가 그 수많은 나라 중 도대체 어느 나라의 속국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필두로 반론을 제기했다. △중국인 스스로 고구려를 해동삼국으로 부른 점 △중국의 어떤 정사(正史)에도 없는 고구려본기가 한국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는 점 △광개토태왕비문에 중국의 천자와 같은 뜻의 ‘천제의 아들(天帝之子)’이라고 밝힌 점 △독자적 연호를 쓴 점 △천자만의 특권인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낸 점 등이었다.

강력한 주권국가 발해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이란 논문에서 △발해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됐다’고 밝힌 점 △일본의 역사서 ‘속일본기’에 ‘발해는 옛 고구려’라고 밝힌 기록 외에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기록을 공개했다.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이 세운 정안국이 981년 송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 옛 땅에서 살던 발해 유민”이라고 밝힌 점과 송나라가 그 답서에서 “정안국은 본래 마한(고구려의 별칭) 종족”이라고 밝힌 점이다. 송 교수는 이를 통해 발해의 고구려계승성이 건국 시기부터 멸망 이후까지 계속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송 교수는 발해의 문물제도에서 당나라 문화는 후대에 영향을 준 것이고 말갈 문화는 기층민의 문화인 반면 와당 문양, 불상 양식, 온돌 등의 고구려 문화요소는 초기에서 후기까지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해는 고구려 전통문화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전동철(45) 교수도 ‘발해는 강력한 주권국가’라는 발표문에서 발해를 중국의 속국으로 보는 중국 측 견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대륙의 맹주로 자처하던 강대한 당나라와 맞서 승리한 긍지와 자부심, 당당한 자세에서 국가 창건을 선포한 발해 건국의 기본세력인 고구려 유민들은 처음부터 독자적인 강대국 건설을 지향했으며 짧은 기간 내에 강력한 주권국가를 일떠세웠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발해국왕들이 ‘하늘의 자손(天孫)’의식을 표명했고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으며 △‘황상’을 칭했고 △황제국의 관직제도인 ‘3사(태사, 태부, 태보) 3공(태위, 사도, 사공)’ 도를 운영했고 △726년 당나라와 제휴한 흑수말갈을 징벌하고 732년 장문휴의 당의 등주를 공격한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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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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