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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 경위
본심 위원인 문학평론가 하응백씨, 소설가 정길연씨, 언론인 전진우씨(왼쪽부터)가 당선작을 가리고 있다.
3명의 본심 심사위원이 각각 9편 전체를 검토했으며, 9월27일 동아일보사 충정로사옥 6층 회의실에서 최종 당선작 3편을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허진구씨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실체를 밝힌다’를 최우수작으로, 김일홍씨의 ‘판문점’과 김상순씨의 ‘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를 우수작으로 뽑았다.
▼ 심사위원
본심 : 하응백(문학평론가) 정길연(소설가) 전진우(언론인, 전 동아일보 大記者)
예심 : 이상락(소설가)
▼ 심사평
[ 하응백 ] “특정 관점 아닌 작품의 완성도가 핵심”
예심을 통과한 작품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서술의 안정성과 구성력에서 단연 뛰어나며 논픽션이 갖춰야 할 장점을 고루 가졌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몇몇 특정 종교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고심을 해야 했다.
‘격암유록’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는 예언서다. 다만 남사고는 실존인물로 천문과 역술에 뛰어난 학자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영조실록 9년조에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격론을 벌이다가, 종교적인 관점을 벗어나 논픽션의 완성도만을 심사 기준으로 삼기로 재차 확인하고 이 작품을 최우수작으로 확정했다. 투고자와 독자 제위께서도 자유로운 관점에서 이 작품을 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정길연 ] ”거짓말의 시대, 진실이 갖는 힘”
거짓말에 몇 달째 온 나라가 시끄러워서인지 본심에 올라온 논픽션 응모작들을 읽는 느낌이 사뭇 별나다. 논픽션이란 허구를 배제한 글이 아닌가.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하고, 관점에 치우침이 없어야 하며, 정직해야 한다. 논픽션이 감동을 주는 건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짓말일 수는 없다. 좋은 소설에는 고금을 뛰어넘는 보편적 진리, 또는 진실이라고 하는 리얼리티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논픽션이 한 개인, 혹은 한 시대의 기록인 점은 확실하지만 사적인 고백에 그치거나 자기합리화에 머문다면 그것은 일기나 서투른 소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서 모두 다 진실인 것은 아니다. 몇몇 응모작에서 그런 한계가 보였다.
‘판문점’은 특수한 공간과 상황에 놓인 필자의 경험이 잘 살아 있고, ‘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는 우리의 의료현실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최우수작으로 올린 ‘격암유록의 실체를 밝힌다’는 우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의 발품과 노고가 설득력과 감동을 안겨준다. 이 거짓말과 감언과 이설의 시대에 위서(僞書), 즉 거짓책이 만들어지고 유포된 경위를 추적해 나간 점이 이채롭고 높이 살 만하다.
[ 전진우 ] ”치열한 성찰 있어야 울림과 감동 나온다”
본심에 올라온 9편 중 아깝게 선(選)에 들지 못한 6편의 작품에 대해 간략한 평을 하기로 한다.
‘사상과 인간-체험을 통해 본 1970년대 한국의 사상적 단면’(이광수)은 좌익수에 대한 사상 전향공작을 담당했던 법무부 소속 교정직 공무원의 기록이다. 냉전(冷戰)과 남북 대결, 독재가 뒤엉켰던 지난 시대가 낳은 ‘사상 전향(轉向) 공작’은 기록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를 기록한다면 ‘지난 시대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성찰이 있어야 했다고 본다. 그 점이 아쉬웠다. ‘로마통신-식당 살인사건’(손영란)은 유려한 문장과 감각이 돋보였으나 잘 빚어진 이야기 이상의 무엇을 찾기는 어려웠다. 삶에 대한 치열함이 녹아 있지 않으면 울림도 미약하지 않겠는가. ‘새끼 농사꾼 그리고 독학생’(이찬복) 역시 지나온 삶의 궤적을 잔잔하게 풀어냈으나 어떤 울림이나 감동을 전달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거머리를 닮았다’(김순실)는 무엇보다 필자가 아닌 제3자의 경험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흡인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논픽션보다는 소설처럼 읽힌 이유이기도 하다. ‘대륙에 백제의 고찰(古刹)이 있다’(김민)는 ‘중국대륙에서 우리 고대사의 흔적을 찾기 위한 기행’이란 흥미로운 소재를 다뤘다. 또한 우리 고대의 유적을 찾기 위한 필자의 노고가 생생히 전달된다. 하지만 필자의 노고에 비해 백제 신라의 흔적 찾기가 구체적 성과로 다가오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거제도 포로수용소’(한태일)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소재의 진부함을 뛰어넘는 데는 미흡했다고 본다. 특히 자신의 체험과는 상관없이 6·25전쟁 발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원고 말미에 ‘평화론’을 덧붙인 것 등은 오히려 논픽션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낙선한 분들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