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상하이 2년 온몸 체험기

  • 윤수정 우먼센스 생활팀 기자

    입력2007-11-09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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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슈퍼마켓에서도 중국산이라면 퇴짜
    • 가짜 배터리, 가짜 미역, 가짜 달걀…
    • 택시 기사 “나만 천천히 달리면 사고 난다”
    • “교통사고? 죽지 않았으면 얼른 일어나서 가라”
    • 외국어 능통한 앵벌이, 열쇠보증금 받고 안 내주는 호텔
    • “돈 얼마나 있나” 묻고 처방, 시술 범위 달리하는 의사
    • 미치게 그리운 와이탄의 야경, 신티엔디 레스토랑, 그리고 마사지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필자는 원래 ‘상하이 예찬론자’였다. “중국은 더럽고 싸구려뿐이며 아무튼 후지다”는 사람들에게 “상하이는 다르다”고 맞서곤 했다. 중국 사람들은 만두나 샹차이(향채)가 들어간 음식만 먹는 줄 알았으나,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상하이엔 특급 바리스타가 뽑아낸 카푸치노가 있으며, 한국에 없는 해외 유명 브랜드숍이 즐비하고,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한국의 3분의 1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곤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일상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먼저 상하이를 떠올린 건 당연했다. 상하이의 한 대학에서 어학코스를 밟으면서 교민 자녀를 대상으로 영어 과외지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하루 5시간씩 주 5일 근무만으로 한국의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집 월세를 비롯한 체재비를 충당하는 것은 물론 골프 레슨까지 받고, 쇼핑에 외식까지 즐길 수 있으니 아예 상하이에 뿌리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짐을 싸서 귀국했다.

    “뭘 넣었는지 어떻게 알아?”

    느닷없이 ‘컴백홈’을 선언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기초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명품 잡화는 물론 자동차까지 ‘짝퉁’이 판을 치는 중국이라지만 가짜 달걀과 폐종이 만두, 석회가루를 넣은 두부가 만들어진다는 보도에, 고양이 고기로 꼬치구이를 만든다는 얘기까지 듣고는 더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홍콩 사람들조차 ‘Made in China’를 피한다는 사실도 중국 탈출을 부추겼다. 지난 8월 홍콩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슈퍼마켓에 함께 장을 보러 간 친구는 채소, 과일, 음료 같은 식품은 물론 샴푸, 치약, 세제 같은 공산품을 고를 때도 원산지 및 제조국을 꼼꼼히 살폈다. 홍콩에선 ‘Made in China’가 그야말로 ‘국산’인데 “공산품까지 그럴 필요 있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그 안에 뭘 넣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매장을 돌아보니 친구의 행동이 특별히 유난스러운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현지인들도 하나같이 제품 정보를 살피고,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것임을 크게 광고하는 진열대가 눈에 띄었다. 방송에서도 연일 중국(본토)산 물건을 두고 불거진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 정작 중국에 살고 있는 내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중국산 제품이 미덥지 않긴 했지만 같은 중국에서까지 이렇게 불신의 골이 깊은지 몰랐다.

    액체 세제 덜어가는 사람들

    중국산 ‘짝퉁’의 범위는 놀라울 정도로 넓다. 상하이에 정착하고 얼마 후에 휴대전화가 필요해 한국의 S사 A제품을 구입했다. 흥정 끝에 판매상은 “물건 값은 더 못 깎아주니 배터리를 하나 더 주겠다”며 선심을 쓰는 양 굴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표가 엉성했는데, 판매원 스스로 “가짜”라고 했다. 황당했지만 더는 별 소득이 없겠다 싶어 받아들고 나왔다.

    ‘진짜’라고 믿고 산 S사 휴대전화기와 ‘짝퉁’이 확실한 배터리를 함께 사용한 지 3개월여 만에 휴대전화 안테나가 부러지고 도장이 다 벗겨졌다. 필자의 관리 잘못을 탓할 수 있겠으나, 2003년 한국에서 구입한 휴대전화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배터리뿐 아니라 휴대전화 단말기마저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무렵, 주위에서 “가짜 배터리를 끼운 N사 휴대전화가 터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결국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미련 없이 버리고 M사의 휴대전화를 새로 구입했는데, 통화 중에 ‘지잉~’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예사고, 손끝에 전류가 느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상하이의 대형마트. 필자는 액체 세제를 덜어가는 사람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더 황당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E사의 배터리 6개들이 묶음을 사서 그중 하나를 자명종시계에 끼웠다. 그런데 시곗바늘이 꼼짝을 안 한다. 같은 묶음에서 다른 건전지를 꺼내 바꿔 끼우니 바늘이 움직인다. 말로만 듣던 가짜 배터리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는 ‘한국 C사 브랜드 가짜 미역이 유통되고 있으니 진짜와 꼭 비교하고 구입하라’는 안내문을 내붙일 정도이니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가짜가 있을까 싶다.

    장을 볼 때 골치 아픈 건, 가짜 속에서 진짜를 찾아낼 때만이 아니다. 진열한 물건의 80% 이상이 수입품인 고급 슈퍼마켓에서조차 복병을 만난다. 상하이에서 알고 지낸 한 주부는 슈퍼마켓에서 사온 뉴질랜드산 꿀이 담긴 병 뚜껑을 열었을 때 안전막(safety seal)이 없어 꺼림칙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포장이 제대로 안 된 꿀을 누군가 입을 대고 먹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중국의 대형마트에선 현지인들이 미리 준비해온 병에 액체 세제를 덜어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는 터라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도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섬유유연제나 샴푸를 사려고 제품을 들어보면 표시된 용량보다 가벼운 느낌이 드는데, 뚜껑을 열어 그 양이 줄었는지 확인해볼 수 없으니 정량 제품을 사들고 나오면서도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다.

    사람보다 차가 절대 우선

    친구: “뭐해? 얼른 건너!”

    필자: “저기, 저쪽에서 차가 오는데….”

    친구: “보행 신호 켜졌으니 어련히 멈출까. 얘가 중국 다녀오더니 이상해졌어. 어서 건너!”

    며칠 전, 보행자 신호가 켜진 다음 셋을 세고 건너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지키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는 내게 친구가 참다못해 한소리했다. 보행신호가 켜지면 자동차가 멈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이 믿지를 않는다. 상하이에선 엄연히 보행 신호가 들어와 있는데도 자동차들이 거리낌 없이 우회전을 하고, 직진 신호에 냅다 좌회전하는 차량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극도로 몸을 사려야 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선 좌회전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직진 신호 때 좌회전할 수 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피하라는 식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와 좌회전하니 우리나라의 ‘비보호 좌회전’ 표시는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천천히 달리면 사고 난다”

    중국의 교통법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경험에 비춰볼 때 중국은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곳이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날 만한 골목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손을 들고 멈춰달라는 신호를 보내면 ‘뭐하는 짓이야?’ 하는 시선으로 제 속력 유지하며 제 갈 길 가는 상하이의 운전자들….

    횡단보도가 있어도 전혀 보호받을 수 없으니 상하이 사람들은 굳이 횡단보도를 찾지 않는다. 악순환이라고 해야 할까, 무단횡단이 일상화되어 있다. 처음엔 어떻게 이렇게 무질서할 수 있나 생각하지만, 상하이에서 여름과 겨울을 겪고 나면 참을성의 한계를 뼛속까지 체감한다. 40℃를 넘나들고, 습도 80%에 이르는 무더위와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자동차들이 존중하지도 않는 횡단보도를 찾아가 보행 신호를 기다리기란,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해도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도로가 한산하다 싶으면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 차량, 그 속에 섞여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까지 걸러내며 무단횡단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러니 관광객이라면 괜히 현지인들의 무단횡단 대열에 끼지 말고,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접촉사고라도 당하면 몸 상한 것도 억울한데, 책임을 뒤집어쓰고 금전적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지 않았다면 얼른 일어나서 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필자가 상하이에 머문 2년 동안 지인 여러 명이 출장이나 휴가차 상하이를 방문했다. 그때 그들 대부분이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처음엔 택시비가 싸서 반색했다가 이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경험담을 털어놓곤 했다. 신호 무시, 차선 무시, 옆 차 무시에 번쩍이는 상향등은 기본, 경적은 늘 누르다가 가끔 손을 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난폭 운전 때문이다. 고가도로라도 만나면 더 가관이다. 진입로와 출구에서 먼저 들고 나려는 자동차끼리의 몸싸움이 치열하다. 그 광경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감고 기도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끼리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엔진이 터질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력을 내고, 깜빡이 켤 새도 없이 차로를 휙휙 바꾸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상하이 정착 초기, 필자가 “도대체 운전을 왜 이렇게 하느냐. 늦게 도착해도 좋으니 제발 천천히 가자”고 했을 때 택시기사는 한 수 가르쳐준다는 식으로 “모두가 빨리 달리는데 내 차만 천천히 달리면 오히려 사고가 난다”고 말하며 속도를 냈다.

    지하철 앵벌이, 소매치기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앵벌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깔끔하기만 한 상하이 지하철.

    시내 도로는 다이내믹하다. 막힌다 싶으면 중앙선을 휙휙 넘어 유턴하고, 중앙분리대로 막아놓아도 기어코 차 한 대 통과할 틈을 찾아낸다. 그러니 양쪽 차로가 꽉 막히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귀가 멍해질 지경이 돼도 택시기사는 절망하지 않고 느긋하다. 손님을 태울 때는 또 얼마나 적극적인지, 진행 방향의 반대쪽에서 택시 기다리는 사람을 발견하면 순식간에 중앙선을 가로질러 손님 앞에 차를 댄다.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고 나니 서울로 돌아올 즈음엔 황색 신호에 차를 멈추는 택시 기사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니, 왜 멈추는 거야, 그냥 가자고요, Go~Go!”

    고속도로는 마치 레이싱 경기장 같다. 땅이 넓으니 도로도 널찍해 웬만해선 정체 구간이 없는데, 이상하게 막힌다 싶으면 어김없이 50m 전방에 톨게이트가 있다는 신호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먼저 통과하겠다고 차를 들이밀기 때문.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자동차들은 출발 신호를 받은 레이서모양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이런 때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긴장하고 불안한 상태로 있으면 어깨가 뻐근해지고, 다리는 힘이 쭉 빠진 채로 차에서 내려야 할 것이다. 시속 150km 이상의 속력으로 차선을 지그재그 바꿔가며 달리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하는 건 2년여 쌓은 내공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국제도시답게 상하이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최첨단이다. 2003년 12월 베이징에서 지하철을 탈 때만 해도 역무원이 일일이 종이로 된 표에 펀칭을 하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 딴 세상이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자동매표기는 작동법이 영어로도 씌어 있어 원하는 목적지의 요금을 한눈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엔 안전을 위한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고, 다음 열차가 도착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모니터도 걸려 있다. 객차 안은 냉난방 시설이 잘 돼 있어 쾌적하고, 영어로도 안내방송이 나오니 서울의 지하철 사정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몇몇 아이가 등장하면 상황은 급반전된다. 어린아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뭣 모르고 동전을 쥐어주면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너도나도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통에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수 없을 정도다. 중국인 친구 말로는 앵벌이를 직업으로 삼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 구걸하면서 승객의 다리를 끌어안고 놔주지 않으니, 돈을 내주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다. 이런 아이들은 지하철뿐 아니라 외국인이 많이 몰리는 밤거리에 진을 치고 있다. 심지어 택시 타는 사람에게 구걸하다 택시가 출발하면 문을 잡고 같이 뛰기도 한다. 이쯤 되면 불쌍해 보이던 아이들은 두려운 존재가 된다.

    “Please, give me money”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이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지나가면 으레 전단지 뿌리는 청소년(늙수그레해 보이지만 대부분 10대 후반이다)들이 등장한다. 여행사, 마사지숍 등을 광고하는 명함 크기만한 전단지를 승객들에게 던지듯 나눠주고 유유히 사라지는 이들 역시 거리 영업(?)도 병행한다. 누군가 전단지를 받아주는 모습이 포착되면 우르르 몰려가 일제히 전단지를 내밀며 자기네 것도 받으라고 성화다. 외국인이나 관광객에게는 옷소매나 깃, 심지어 가방에도 적극적으로 찔러 넣는다.

    지하철 안에서 가방을 꼭 끌어안거나, 앞으로 멘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 다름 아닌 소매치기 때문이다. 상하이 소매치기는 아주 당당하다. 필자의 가방에 손을 넣는 순간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빼고 돌아서 걸어가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상하이에 놀러 온 후배의 가방에 한 아이가 손을 넣는 걸 보고 필자가 소리를 지르자 ‘영업 방해’가 불쾌하다는 듯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상하이에 있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중국인의 거짓말과 사기성 짙은 상술을 겪다보니 “지겨워, 지겨워”란 말이 입에 붙었다. 어느 날인가 대만인 친구를 만나려고 서울의 명동 격인 화이하이루(淮海路) 홍콩플라자 앞에 서 있을 때의 일이다. 20대 초반의 한 청년이 다가와 또박또박 얘기했다. “워 총 베이징 라일러. 워더 치엔빠오 띠울러. 수오이 시엔짜이 메이요 치엔. 으어쓸러. 게이워 이디얼 치엔바, 샤오지에.” 필자가 외국인임을 알아보고 단문으로 천천히 한 말은, “나는 베이징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지갑을 잃어버려서 돈이 없어요. 배고파 죽겠으니 돈을 조금만 주세요”다. 앵벌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분명해 보여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고 영어로 말하니 그의 대처법이 놀랍다. “Oh, excuse me. I came from Beijing. Please give me money.” 애써 외면하고 대만인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도 ‘영어로 구걸하는 청년’을 알고 있었다. 이 앵벌이 청년은 그 친구가 대만사람인 것을 용케 구별해내 대만어로 접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아름다운 상하이 야경.

    호텔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장소다. 한번은 상하이로 여행 온 지인들이 묵고 있는 관광호텔을 찾았다. 지인들에게서 프런트데스크에서 열쇠보증금을 받더라는 얘기를 듣고 이상했지만, 보증금이라면 어차피 돌려받을 돈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일행이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퍼뜩 ‘보증금’이 떠올라 돌려받았느냐고 물으니 모두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프런트데스크에 가서 보증금 얘기를 꺼내니 직원이 “아, 맞다” 하면서 내준다. 무려 500위안(약 6만5000원). 방마다 열쇠보증금을 받는 것이 호텔의 규정이라면 퇴실할 때 당연히 알아서 돌려줬어야 맞다. 직원의 뜻하지 않은 실수였을 수도 있으나 필자의 입에선 또 한 번 “지겨워, 지겨워”가 흘러나왔다.

    안겨준 건 특급 호텔도 마찬가지다. 옛 직장 동료가 취재차 상하이에 왔을 때 5성급 호텔에 묵었다. 냉장고 부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에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눈과 코를 심하게 자극하는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방안에 있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프런트데스크에 전화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한참 만에 메이드, 벨보이, 객실 매니저가 차례로 나타나 똑같은 질문만 반복했다. 맨 마지막에 나타난 부총지배인이 “아무도 안 다쳤네” 하며 빙긋 웃을 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악취는 냉매가 터진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옛 동료는 호텔의 대응 방식에 분통을 터뜨리며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중국에서 오래 살 거라 생각하던 나는 행여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그럴 수 없었다.

    여행차 중국에 잠깐 머물고 가는 사람들은 가격 흥정하는 재미에 쇼핑을 즐긴다. 그러나 중국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값을 한참 깎고서 물건을 사도 ‘바가지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깎아도 기분 나쁜 흥정

    상하이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학교 안에 각기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하는 과일 노점상이 두 군데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유학 와 있는 학생들 사이에 아주머니는 종종 바가지를 씌운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보통 같은 업종이 나란히 영업할 경우 손님을 더 끌어들이려고 가격인하 경쟁을 하는데,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바가지를 씌운다니…. 일부 유학생은 학교 근처 장사꾼들이 자신들을 ‘봉’으로 생각한다며 불쾌하다고 했다. 나보다 1년 먼저 유학 온 한국인은 아저씨가 주인인 과일가게에서 사과 3개를 사면서 4위안 달라는 걸 3위안만 받으라며 흥정한다. 고작 한국 돈 150원도 안 되는 걸 갖고 그렇게 흥정해야 하나 싶어 그냥 4위안 주고 가자고 하면,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언니, 중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려면 물건 값을 한국 돈으로 계산하는 습관부터 버려요. 여기선 1, 2위안이 작은 돈이 아니란 말이죠. 2위안이면 버스를 타고, 주먹만한 만두도 두 개나 먹을 수 있어요. 원하는 곳을 가거나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란 말이죠. 그리고 저 아저씨, 유학생들 상대로 장사하니까 ‘얘가 중국 물정을 얼마나 알겠나’ 하면서 가격을 아예 높게 부른다고요.”

    이 학생은 그날 오전에 자신의 중국인 친구가 같은 사과를 3위안에 사는 걸 보았기 때문에 3위안만 받으라고 흥정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난 모르는 일, 어쩌라고?”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소위 ‘짝퉁시장’에서는 ‘제값’이 얼마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관광객들은 처음엔, 한국 물가와 비교해 싸게 샀다고 좋아하지만 이내 같은 물건을 더 싼 값에 산 사람이 나타나고, 그보다 더 싼 값을 부르는 장사꾼을 만나면 누구나 바가지를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에 젖는다. 그나마 교민들이 많이 구입하는 품목은 적정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어 대략 거기에 맞춰 구입하면 크게 손해 본 건 아니라고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도 50위안(약 6500원)이 적정선인 면 티셔츠를 “특별히 150위안(약 2만원)에 주겠다”며 선심 쓰는 듯한 표정을 짓는 상인이 있으며, 내 입에선 어김없이 “어우, 정말 지겹군요. 나 여기 살아서 가격 다 알아요”가 나온다.

    중국 상인이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얘기를 듣고 온 한국인 관광객 중엔 부르는 값의 5분의 1, 8분의 1만 받으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있다.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사면 바가지를 쓰는 것이 틀림없지만, 터무니없이 깎으려고 덤벼서도 안 된다. 중국인 상인과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 종종 감정싸움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중국인들은 애초에 높은 값을 부르는 이유가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깎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린다. 짝퉁은 짝퉁일 뿐이고 제값도 모르면서 깎아봤자 싸게 샀다고 볼 수 없으니, 사고도 찜찜한 ‘짝퉁시장’은 결코 권하고 싶지 않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한국산 양반김(왼쪽)과 중국산 가짜 양반김, 초코파이를 흉내 낸 중국 제품과 ‘짝퉁’ 소주까지 중국에서는 못 만드는 가짜가 없는 듯하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쩌라고(쩐머빤)’와 ‘몰라(부즈다오)’다. 갈 길이 바쁜데 잔돈이 없다며 “어쩌라고”만 되풀이하던 끝에 결국은 “잔돈 가져가고 싶으면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고 작은 단위로 바꿔오라”던 택시 기사. 수리한 바로 다음날 또 고장 난 자전거를 다시 손봐달라고 하니 뒷짐 진 채 “나는 모른다, 어쩌라고?” 하는 자전거포 주인. 중국인의 이런 태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늦여름, 망고스틴을 고르면서 직원과 나눈 대화다.

    “잘 익은 것 좀 골라주시겠어요?”

    “어디 보자, 이건 썩었고, 이건 괜찮고, 어라 이것도 썩었네….”

    “썩은 건 골라내야 하지 않아요? 썩은 걸 사가게 두면 안 되잖아요.”

    “어쩌라고요?”

    상하이 대형마트엔 냉동식품을 넣어 이동할 때 쓰는 보랭백을 판다. 그런데 가격표는 물론 바코드조차 찍혀 있지 않아서 전에 구입한 보랭백을 가지고 들어가면 계산 안 된 물건으로 오인받을 염려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냉동식품을 사려고 보랭백을 들고 마트에 갔더니 안전요원이 불러 세운다.

    “보랭백은 보관함에 맡기시죠.”

    “네? 냉동식품을 사서 바로 담으려고 하는데요.”

    “안 됩니다. 계산원은 새로 구입하는 것으로 볼 거예요.”

    “녹을 염려가 있는 물건을 담으려고 산 보랭백을 못 쓰게 하면 어떻게 해요? 이미 계산된 물건이라는 표시를 해주시면 되잖아요.”

    “그럼, 이 비닐에 담아가세요.”

    “그럼 보랭백을 사용할 수 없잖아요.”

    “저더러 어쩌라고요?”

    집에서 쓰던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아파트 관리소 직원을 불렀으나 원인을 모르겠다며 보일러 회사에 전화해보란다. 하지만 보일러 회사에서도 자기네는 모르는 일이라며 가스 회사에 물어보라고 했다. 가스 회사도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바람에 결국 부동산과 중국인 집주인을 닦달해 사흘 만에 보일러를 고쳤다.

    학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다닌 어학 코스의 오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12시. 그러나 유학생을 관리하는 사무실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시간이라 용무가 있는 학생은 수업 중에 나와 사무실에 들르든지 2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문 닫을 시간이면 기다리던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무를 끝내버리는 은행, 코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 수다를 계속하는 통신사 직원, 영수증과 잔돈을 집어 던지는 우체국 아가씨…, 그들 표정에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씌어 있다.

    시키지 않으면 안 한다

    처음엔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지만, 얼마 전부터는 나도 “그럼 난 어쩌라는 건데?” 하고 응수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중국 사람들이 “몰라” “어쩌라고?”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게 때론 내 탓일 때도 있다. 중국은 한국이 아니란 사실을 망각한 채 ‘말 안 해도 알겠지’ 하고 요구사항을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니 중국 사람이 그 깊은 뜻을 알 리 없다. 중국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중국에서 한국음식점을 하는 지인의 경험담이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개성 있는 숍들이 모여 있는 타이캉루.

    “영업이 끝나면 청소를 하는데, 매일같이 너는 주방, 너는 화장실 이런 식으로 구역을 정해 청소 지시를 해야 한다. 한 사람이 늘 같은 장소를 맡아 하는데도 매일같이 지시해야만 청소를 한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청소 지시를 한 다음 최종 점검을 하는데 홀 한구석이 지저분했다. 그 구역을 늘 맡아 청소하던 직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오늘은 지시를 안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청소 지시를 할 때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우고 없었던 것. 다른 직원들이 모두 청소할 때 자신도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아니면 청소를 해야 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을 기계에 비유하는 게 적절하진 않지만 중국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작동시켰을 때 입력된 일 외엔 하지 않는 기계가 연상된다. 중국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큰 식당에 가면 종업원 여럿이 나란히 벽에 붙어 서 있지만, 손님들이 뭘 요구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물 따르는 일, 음식 나르는 일,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는 일, 입구에서 인사하는 일 등으로 종업원의 임무가 세분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객지에서 병이 나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상하이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돼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학교 내 병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의사의 가운은 지저분했고, 한쪽 구석엔 간호사의 것으로 보이는 스타킹이 널려 있었다.

    교민들이 이용하는 병원은 좀 낫다. 교민을 위한 병원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중국인이 다니는 병원에 외국인을 진료하는 ‘국제부’가 있다. 통역 서비스나 외국 의료진의 진료를 받을 수 있어 교민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시설이 훨씬 좋은 대신 진료비가 몇 배 비싸다. 이곳에서도 외국인이 ‘봉’인 셈이다. 의사가 진료 중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고는 환자의 대답에 따라 처방과 시술 범위, 그리고 비용을 달리한다.

    같은 어학코스를 밟은 한국인의 경험담이다. 아들이 귀가 아프다고 하여 ‘국제부’에 데리고 갔더니 ‘귓속에서 뼈가 자라고 있으니 수술을 해서 제거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중국에서 수술받기가 두려워 아이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비인후과 진단 결과 귓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뼈’의 정체는 딱딱한 귀지였다.

    수인성 전염병, 머릿니

    상하이엔 한국 의료진이 있는 병원도 있다. 교민이 많이 이용하는데 얼마 전엔 한국 약을 안 쓰고 중국 약을 쓰면서 진료비를 비싸게 받는다는 소문이 돌아 교민사회가 시끄러웠다. 중국 의료법에서 수입약을 쓸 수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를 규정하고 있어서 거기에 따를 뿐 부당한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병원 측의 해명이 있고서야 잠잠해졌다. 필자가 귀국길에 오를 준비를 할 무렵, 베이징에 있는 주중 한국대사관 정무공사가 복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돌연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가깝게 지내던 교민들은 남 일이 아니라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열악한 의료시설보다 더 두려운 건 미덥지 않은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드는 환경오염과 위생불량, 이상기후다. 여름이면 이웃 주민이 사나흘씩 안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뒤에 만나면 장염으로 고생했다는 얘기를 한다. 나도 여름마다 장염에 걸렸다. 아파트 수영장에서 놀고 난 아이들 사이엔 수인성 전염병이 돌고, 그 무렵 학교에선 “머릿니가 번지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가정통신문을 각 가정에 보낸다. 월 임차료가 2000달러(약 200만원)선인 아파트, 연간 학비가 2만달러(약 2000만원)선인 국제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아도 겨울이면 감기를 피하기 어렵다. 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집안에 온돌이나 단열재가 없어 연일 온풍기를 틀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마구잡이로 배출되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산업시설의 매연 때문에 아이들은 폐질환을 앓기도 한다. 교민 가정에서는 냄새 나는 수돗물 대신 연수기나 정수기로 걸러낸 물을 쓴다. 물론 낡은 아파트에 살았던 필자는 냄새 나는 물로 샤워도 하고, 양치질도 했다.

    발목 붙잡은 상하이의 매력

    이렇게 불만이 많으면서도 2년이나 상하이에 머무른 건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워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고, 싼값에 맛있는 음식 골고루 먹어보고, 한국의 4분의 1 가격에 마사지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뿐인가, 와이탄의 야경은 정말 끝내주고, 유럽풍 건축물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즐비한 흥산루, 갤러리와 작지만 개성 있는 숍들이 모여 있는 타이캉루와 모간산루, 이름값 하는 굉장한 규모의 슈퍼브랜드몰, 시원스러운 공간 활용이 돋보이는 명품 백화점 플라자66은 갈 때마다 새로웠다. 어눌하지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맛있어요?” 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던 신티엔디 레스토랑의 종업원은 지금도 그립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동타이루 골동품 거리의 소품과 중국 스타일의 앤티크 가구점은 통째로 들고 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귀국길을 서두르느라 치파오(여성용 중국 전통 의상) 한 벌 맞춰 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국말을 전혀 몰라 진땀 빼던 나를 “내 큰딸”이라 부르며 “괜찮다, 천천히 해라” 격려해주던 중국인 선생님, 집 관리는 물론 통역 노릇까지 마다하지 않던 부동산중개소 직원, 내 입에 맞을 만한 음식들을 친절하게 골라준 중국인 친구, 영어과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 만으로 나를 ‘선생님’ 대접해준 아파트 경비 아저씨까지, 가슴 따뜻한 그들이 있었기에 2년여 상하이 생활이 가능했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니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와 바이주(白酒·고량주) 생각이 간절하다. 필자는 곧 서울시내 ‘정통 중국식’을 내세운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상하이에서의 그 맛이 안 난다”며 불평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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