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 김준기 미술비평가, 경희대 겸임교수 artpd68@naver.com

    입력2007-11-08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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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미술이 세계를 강타했다. 장샤오강, 웨민쥔, 팡리쥔 같은 ‘블루칩’ 작가의 작품은 세계 경매시장에서도 최고가에 거래된다. 전문가들은 중국 미술의 힘을 중국 사회의 독특한 변화에서 찾는다.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재된 현대 중국을 온몸으로 경험한 작가들이 작품의 독창성과 깊이를 더했다는 것.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도 ‘지나친 시장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중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 본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지난 봄 중국 베이징에 있는 대규모 미술문화단지인 다산쯔(大山子) 798 지역을 방문했다가 뜻밖의 전시를 만났다.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1980년대에 그린 작품이 대거 출품된 것이다. 인민복을 입은 현대 중국인 가족사진을 잿빛으로 그려내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드러낸 장샤오강(張曉剛)의 초기 작품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그것은 언뜻 초기의 피카소가 비치는가 싶더니, 서구의 모더니즘 작품에서 보이는 반(半)추상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요즘의 작품 분위기도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저변의 맥락을 접고 봤을 때 쉽사리 출품작들과 작가를 연관시키기 어려웠다. 한 작가의 초기 작품이 동시대 중국 현대미술과 이렇게 간극이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변화의 폭이 큼을 의미한다.

    필자는 그 생소한 느낌을 좇아 ‘오늘날 독특한 스타일로 자리 잡은 중국의 현대미술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중국 현대미술이 한국의 미술시장에 등장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고 보면 이런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중국의 현대미술을 잘 모른다. 단지 아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작품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엄청난 미술시장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돈방석에 앉은 중국 미술

    이러한 지적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우리에게 소개되는 중국 현대미술의 지층이 그만큼 얇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동서양의 문화 교류를 주도하며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축적한 나라다. 그런 중국의 미술문화 지층이 얇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전근대와 근대의 중국, 그리고 현대의 중국은 매우 분절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확실히 중국 현대미술의 지층은 얇다. 그 근거는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중국 현대미술은 199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 미술이다. 1980년대를 거치며 성장한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은 1세대부터 현재 3세대 작가까지 굵직한 비엔날레를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행사와 담론의 장에서 중국 작가들의 위상을 높였다.

    중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리셴팅(栗憲庭)은 중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세 시기로 분류한다. 문화혁명기를 거치며 정신적 상처를 받은 1세대, 냉소적인 2세대, 급변하는 사회체제에 둘러싸인 3세대가 그것이다.

    천안문사태와 정치 팝

    오늘날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작가들은 중국 팝아트의 선구자 왕광이(王廣義), 장샤오강, 팡리쥔(方力鈞), 웨민쥔(岳敏君)이다. 3세대 류예, 류샤오둥(劉小東), 쩡하오(曾浩), 쩡판즈(曾梵志), 지다춘(季大純) 등도 급부상 중이다.

    중국 역시 20세기 초반에 서구화를 통해서 근대화가 진행됐다.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 집권 이후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문화혁명(1966~1976)을 겪으면서 잠재해 있던 예술적 표현은 개혁개방을 맞아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왕광이를 필두로 하는 이성회화파와 장샤오강을 중심으로 한 생명지류파 등이 활약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1989년 2월에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중국/아방가르드(China/ Avant-Garde)전’은 1985년 이후에 벌어진 중국아방가르드 미술의 집결판이었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사태는 이 흐름을 뒤바꿔놓았다. 사회에 대한 냉소와 조롱이 뒤섞인 중국의 현대미술은 이 시기 이후 정치적 팝과 냉소적 사실주의 경향으로 변했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중국인의 가족사진을 잿빛으로 그려내는 장샤오강. 그의 작품 ‘세 동지’는 2007년 3월 뉴욕 소더비 아시아 컨템포러리 경매에서 최고가인 19억7800만원에 낙찰됐다.

    1996년에 벌어진 원명원사태는 천안문사태의 미술 버전이다. 반체제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하던 원명원을 강제 해산하면서 국내외로 흩어진 작가들은 이 시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작품의 경향도 각자의 개성을 찾아서 다원화됐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이들은 국제적인 미술시장의 대가로 급성장했다. 수십명에 달하는 블루칩 작가가 등장하면서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은 중국작가들’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진입한 중국 사회의 모순은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사회에 대한 냉소와 자조를 담을지언정 그 에너지를 비판적 메시지로 잇는 예술 본연의 가치보다는, 작품을 현금과 맞바꾸는 교환가치에 무게를 두는 현상이 생겼다.

    그러나 소수 작가의 상업적 성공과 중국 현대미술의 변화는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보아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필요악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예술적 발언으로 세상과 대면할 수 있는 폭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판이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데 있다. 앞으로 중국의 현대미술이 시장지향의 동어반복으로 지속될 경우(이미 그렇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더 이상 중국 현대미술을 아방가르드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큰손 컬렉터들의 힘

    중국 현대미술을 이렇듯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미술시장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굴러가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시장과 분리해서 얘기할 수 없다. 2000년대 들어서 세계 미술시장은 활황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의 미술시장 또한 IMF 체제를 넘어서면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비해서 중국미술의 급부상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하다.

    경제분야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신흥부호가 늘어나면서 미술시장으로 흘러든 자본의 힘이 중국 현대미술을 일약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미술시장은 2006년 한 해 동안 157개 경매회사를 통해 1조9944억원 상당의 작품이 거래됐다고 한다.

    베이징올림픽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서 미술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성장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시장은 13억 인구의 경제력과 화교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는 것이 세간의 분석이다. 또한 이들의 미술작품 컬렉션 문화가 근간에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인의 문화 가운데 서화골동 취미는 수천년을 이어온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프라가 온전하게 현대미술에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중국 현대미술시장은 중국 사회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조금씩 노출되기 시작하던 1970~198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해외진출이 본격화하면서 미술시장이 성장해 현재는 500~600개의 화랑이 거대도시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3년경부터는 해외 경매시장에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등장하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 예로 2005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웨민쥔의 작품이 당시 추정가의 10배를 상회하는 가격인 55만4000달러에 판매됐다. 1990년에 비해 100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이듬해 3월 뉴욕의 소더비 전문 경매에서는 장샤오강의 ‘대가족’이 100만달러 정도에 거래되면서 스타 예술가로 등극했다. 이후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은 상승과 조정을 거치면서 안정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들어 쟝샤오강의 회화작품이 우리 돈으로 19억~21억원에 낙찰될 정도다. 현재 중국 현대미술시장 규모는 약 4조원이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막대한 자본과 두터운 컬렉터 층을 뒀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특정 스타 작가에 의존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무릇 문화의 힘이란 종(種)의 다양성에서 오는 법. 시장의 소비지향이 더욱 다양한 갈래의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성숙한 단계에 이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사회가 현대미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짝퉁’이 판치는 중국 사회라고는 하지만, 벼룩시장에서 장샤오강의 회회작품을 거의 똑같이 베껴 그린 작품을 발견했을 때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스타 작가에 대한 지명도나 선호도가 높다는 얘기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장샤오강의 작품 ‘동무 No. 120’.

    바로 이 점이 중국 현대미술의 허점이기도 하다. 작품을 사회적 소통의 언어로 삼아 문화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여력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인다. 대중의 기호가 워낙 뿌리 깊게 서화골동 취미에 박혀 있다 보니 현대미술을 가지고 예술에 대해 깊고 넓은 소통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국내외에서 각광받는 문화상품으로서의 현대미술 작품, 짧은 시간 안에 수십 배의 수익을 보장하는 화폐 증식 도구로서의 현대미술 작품에 열중하는 저 광풍이 현대미술의 저변을 확장하는 순기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게 더 유의미한 기대일 것이다.

    비단 중국 미술시장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워낙 급격하게 성장한 시장이라서 그 위험성은 더욱 크다. 자칫 문화적 성숙은 뒷전이고 문화산업으로서의 회화 운운하는 천박한 풍토가 앞설까 걱정이다. 남의 나라 걱정까지 하는가 싶어 듣기 거북해할 일이 아니다. 전지구화시대, 특히 향후 가장 빈번하게 교류하며 살아가야 할 이웃나라의 이야기이니만큼 우리의 얘기이기도 하다.

    중국 현대미술은 전지구화가 본격적으로 문화영역을 뒤흔들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정체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정치·경제 블록으로서 아시아에 대한 담론은 전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더욱 뚜렷한 입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시아성(性)이라는 것이 워낙 그 폭이 넓고 한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담론의 실효성에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서구화=근대화’라는 등식을 깨기 위한 또 다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Think Global, Act Local

    그것은 아시아의 단일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라기보다, 다양한 가치의 차이 속에서 유동하는 정체성을 포착해내는 게 핵심이다. 서구화, 자본주의화, 후기식민주의, 냉전구도의 종식과 신제국주의 흐름 등 세기말의 징후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의 쟁투 속에서 중국 현대미술은 아시아의 새로운 정체성이라는 화두와 함께 새로운 세기의 문명을 견인하는 문화적인 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세계체제 속의 중국 현대미술이 어떠한 태도로 응대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로컬리티(locality)’이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로컬리티의 재발견을 통해서 전지구화에 응대하는 예술적 실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전지구화는 동시대의 제반 영역에 걸쳐 자본과 권력의 체제 변화는, 물론 개인 삶의 질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는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다. 무차별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가속화하는 전지구화에 대한 대응전략인 지역성. 그 지역성에 대한 예술적 성찰이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함의 가운데 하나다.

    한발 더 나아가서 전지구화를 부정하는 소극적인 대응이 아니라 스스로 지역적 가치를 재발견해내는 것이 이들의 장점이다. 중국은 전지구화에 대한 대응개념을 아시아성에서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적 자산과 삶의 지평 속에서 찾는다. 아시아라는 허구적 개념을 지역 또는 지역성이라는 화두로 접근해 단일성을 발견하지 않고 오히려 ‘아시아의 지역성’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해체하는 국면으로 가는 것이다.

    지역성이 드러나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전략이야말로 비(非)서구를 지칭하는 거대한 허구인 아시아를 해체함으로써 아시아를 근본적으로 재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시선은 반세계화를 넘어 차분하게 자신들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아시아와 서구,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분연히 일고 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글로컬리즘(glocalism)’이라는 절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 대안으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견인하는 예술전략’이 제시됐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이 언명은 지역과 세계의 유기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세계화의 위계화 전략이 숨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성을 성찰하는 예술에 집중함으로써, 예술 영역에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강조하는 새로운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변방에서 세계적인 흐름으로 급부상한 중국 현대미술의 변화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예술이라는 제도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문화권력을 형성하며, 그 함의는 어디까지 진정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글로벌한 시장경제 체제로 급속히 편입한 베이징과 상하이의 변화는 20세기 중국의 수십년 세월을 뛰어넘는 가파른 사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 미술의 급부상이 단순히 정치·경제적인 배경만을 가지고 있고, 다른 비평적 논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마뜩잖은 일이다. 다수의 작가가 팔리는 그림에 초점을 맞추면서 진보적인 예술운동으로 출발했던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정신이 퇴색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1990년을 전후로 일어나기 시작한 중국 현대미술의 흐름은 매우 강력하게 동시대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정치적 팝 아티스트’로 불리는 왕광이의 ‘대비판-워홀’.

    앞선 세대들이 천안문사태라는 피의 역사를 통해서 진일보한 예술적 소통을 일궈냈다면, 이후의 세대들은 훨씬 더 자유분방하게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이미 국제적인 문화 거점 도시로 성장한 베이징과 상하이에 해외의 인적, 물적 인프라가 쇄도하는 형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가단위 정체성을 넘어서는 예술적 소통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로컬리티의 문제를 강조하게 된다. 중국 현대미술 1세대 작가들만큼이나 그 후배 세대 작가들도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려냄으로써 독창성을 획득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미술문화 풍토와 비교할 때 사뭇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추상회화라는 서구적 전통을 답습하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 현대미술을 일궈 나가는 중국의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다. 서구식 모더니즘과 다른 길을 걸어왔으니 당연히 포스트모던 운운하는 것도 다소 민망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로컬리티가 곧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왕광이나 쑤이젠궈(隋建國) 같은 중국 아방가르드 1세대 작가들뿐만 아니라 탕마오훙(唐茂宏), 롱마치 프로젝트(Long March Project)와 같은 3세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전지구화와 로컬리티의 이슈를 관통하는 이들의 작품은 동시대의 문명과 시대정신을 대면하는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대표적인 작가인 왕광이는 중국 근대미술의 전형성을 이룬 대중적인 이미지를 페인팅으로 전환한 중국판 팝아트로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었다.

    왕광이에서 롱마치 프로젝트까지

    그는 ‘중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목판화의 칼맛’이라는 독창성을 평면회화와 입체작품으로 번역한 독특한 스타일로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정치선전화의 이미지들을 그려낸 ‘대비판’ 연작은 예술과 민중, 예술과 권력, 프라다, 보이스 등의 텍스트를 내세워 중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 기류를 표현하고 있다. 흑백의 대립과 삼원색을 이용한 선정적인 색면 구사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속성을 그대로 옮겨놨다. 대량복제 가능한 이미지를 붓질그림으로 전환하거나 화면 위에 숫자를 배열하는 방법 등 낯설지 않은 팝아트의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성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시각기호의 조합에 그치지 않고 예술가의 사유와 성찰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붓을 들고 웅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 작업인 ‘유물론자’ 연작은 중국의 근현대를 일군 이데올로기의 잔영을 반영하고 있다. 간결하고 힘 있는 이 입체작업 연작은 스타일 자체만으로도 매우 독창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아울러 자신들의 역사로부터 나온 영웅적 아이콘을 비판적으로 재성찰해 시대정신의 소통형식 가운데 하나인 미술의 쓰임새를 잘 잡아낸 작품인 셈이다.

    10대 이후부터 굴곡진 중국의 현대사를 체험하면서 살아온 작가는 어린 시절의 수감생활과 현장 노동자생활 등을 거치는 등의 구체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민감한 감성을 길러왔다. 사회의 격동을 체화한 그의 작품이 오늘날 국경을 넘어 찬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중국 사회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격정에 찬 삶으로부터 나오는 예술적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이상적인 미적 감성을 담은 그리스 고대 조각에 중국인민복을 입혀 동시대적 지평 속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확보하는 쑤이젠궈의 ‘옷주름 연구’ 연작은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언어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작가는 중국 근현대사의 상징인 인민복을 권위주의와 내정시대의 산물로 보고 그것을 예수나 마르크스 등의 역사적 인물들에게 입히는가 하면, 그리스 고대의 조각들, 예를 들어 원반 던지는 사람에게 입힘으로써 자신들의 문화 속에 존재하는 단절의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거대한 크기의 붉은 공룡을 철창 안에 가두는 입체 설치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작품들 또한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 중국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는 그의 작품이 서구화한 감성과 인식 영역의 상징적 도상들과 자신의 문화권에서 나오는 한정적인 로컬리티를 결합한 결과라는 점에도 오늘날 중국 현대미술이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상하이 작가 탕마오훙의 작업은 자국의 역사와 삶, 자연 생태를 담은 아이콘은 물론 인터넷 환경에서 만나는 카오스적인 이미지들을 조합해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그의 5채널 프로젝션 애니메이션 작업은 스스로 만든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이미지들을 채집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각각의 화면에는 현대 소비사회의 기호들, 전통회화 이미지에서 차용한 이미지들, 문화혁명을 연상하게 하는 의상과 상황들, 매우 극단적인 양상의 파격적인 성적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화면 전개는 단선적인 반복을 기본 원칙으로 하지만, 각각의 장면이 담고 있는 충격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상황들 때문에 매우 다층적인 시각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빠른 속도의 전환과 반복을 통해서 이미지의 혼성과 변용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중국의 서남부와 항저우, 상하이에서 살아온 한 예술가의 로컬한 감성과 그 속에 자리 잡은 국가 단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이미지의 혼재 양상도 들여다볼 수 있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현대미술은 정치적 팝과 냉소적 사실주의 경향으로 변했다.

    대장정 행로를 따라 퍼포먼스를 벌인 롱마치 프로젝트의 영상작품인 ‘아방가르드여 안녕히’는 앞사람의 어깨를 잡은 사람들이 거리와 실내를 뒷걸음질하는 퍼포먼스다. 이 작품은 진보, 즉 아방가르드가 함의하는 ‘앞으로 나아간다’에 반하는 퇴보를 통해 전지구화 시대에 대한 역설의 로컬리티를 사유하도록 한다. 이러한 해석은 이 그룹의 대표작이자 그룹의 이름이기도 한 장정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로컬의 맥락 때문이다.

    양쪽으로 가는 지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중국공산당의 대장정 루트를 따라 곳곳에서 갖가지 퍼포먼스를 벌이며 동시대의 삶의 지평 속에서 예술소통을 모색하는 프로세스아트를 수행했다. 프로젝트에는 중국 내의 작가와 큐레이터는 물론 해외 미술인들까지 참여했으며, 한 작가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자신의 등판에 장정 루트를 새기는 문신 퍼포먼스를 진행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은 베이징의 예술거리인 다산쯔에 롱마치 스페이스를 열어서 전시, 포럼, 국제교류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서울 전시에서 향후 10년 동안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구 위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섭된 거대도시는 개발과 번영의 그늘 아래 소외의 구역을 획정했다. 농촌인구가 도시에 유입함에 따른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밀한 도시에 적응하기 위한 고층빌딩은 종교보다도 더 엄숙한 현대인의 물신(物神)으로 자리 잡았다.

    사무실, 백화점, 아파트 등 현대도시의 공간은 인간을 배치하고 지배하는 메커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현대도시의 건축물들은 하나의 구조체다. 예술가는 거대도시의 구조에 파편으로 존재하는 낱낱의 서사들을 엮어서 상황을 집약한다.

    예술가들은 메트로폴리탄의 배리(背理)를 비판적으로 밝혀낸다. 도시 단위의 삶을 예술적 실천으로 끌어들이거나, 예술적 취향을 보편적 질서와는 다른 맥락에서 작품에 담는 것이다. 예술가는 거대도시의 구조 속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행위주체다. 구조는 행위자 개인을 억압하는 거대한 틀로서 존재한다. 이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예술가는 구조적인 억압에 유연하게 타협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산업화된 시선의 정치를 거부하면서 구조의 이면에 깔린 모순을 들춰내거나 구조적 모순의 저변에 존재하는 사회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근대사회 이전 인물과 풍경을 그렸던 화가처럼 현대의 삶과 도시의 모습을 담아낸다. 계층 간의 격차나 도시와 농촌의 차별을 읽어내기도 한다. 세계의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사람과 돈과 물질의 교류가 재편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메트로폴리탄의 막대한 권력은 예술가에게 매우 급박한 현실인식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현실 인식

    중국 현대미술의 3세대 작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젊은 작가 장딩의 사진 작업들은 빠르게 첨단 자본주의 거대도시로 변해온 상하이의 이면을 담고 있다. 중심가를 축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외형을 갖춘 상하이의 뒷골목에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다. 상하이는 현재 국제적인 시장경제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혼돈 속에서 삶의 길을 찾으려는 떠도는 영혼들의 집결지로 변해가는 중이다.

    뒷골목엔 외형의 차이만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도시의 이면에는 도시와 농촌 간, 부자와 빈자 간의 차이로 가득 찬 이율배반이 담겨 있다. 도시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퇴적돼 있다. 장딩의 렌즈가 포착한 이미지들은 이런 문제에 섬세하게 접근한다. 구인광고와 구직광고의 빛바랜 종이조각들은 거대도시의 배리를 증거하는 기념비적인 오브제들로 장딩의 렌즈에 포착됐다.

    양첸중은 흔들리는 상하이의 시선을 담아내는 작가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상하이. 상하이의 도시구조와 시민의 삶은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역동적이다. 예술가들의 활동 반경 또한 마찬가지로, 상하이비엔날레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대규모 화랑가가 생겨나 시장을 형성하는 중이다.

    양첸중은 근래 들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하이 작가다. 영상, 사진,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 현대인의 삶과 도시의 면면을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설치와 뉴미디어의 매체 특성을 이용해 사물을 재현해서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도시와 현대인의 욕망을 은유하면서 대상이나 인물의 실체를 뒤집고 비트는 적극적인 의미 독해를 시도한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신흥 부자군과 베이징올림픽 특수로 중국 미술 시장은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그의 ‘라이트 박스 2005’ 같은 작품은 독특한 방법으로 가로등과 같은 조명을 사진 작업으로 끌어들인다. 카메라 셔터를 장시간 노출해놓고 있으면 어둠 속의 건물이나 도로와 같이 고정된 사물들은 고스란히 그 형체를 드러내는 반면에 움직이는 불빛은 선을 남긴다. 그는 지지대를 이용해서 카메라를 매단 막대 끝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펜을 설치하고는 도시의 야경을 향해 셔터를 열어놓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다. 이 드로잉 사진은 마치 야경 위에 네온사인이 펼쳐진 것 같은 매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도시의 야경을 끌어들이는 낯선 블랙유머다.

    베이징의 젊은 작가 리휘의 작품 세계는 다른 차원의 형상을 합성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게 특징이다. 두 대의 군함이 충돌하는 장면을 연출해서 한국의 분단 상황을 암시하는 교량을 만든 뒤 통일 이후에 부서진 충돌지점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아크릴 패널로 만든 자동차 내부에 공룡의 골격을 새겨 넣어 문명과 자연,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을 같은 공간 속에 묶어둠으로써 양가적(兩價的) 요소간 갈등과 공존을 이야기한다.

    두 대의 차량 앞부분을 이어서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운전이 가능하도록 한 ‘리뉴잉 지프’는 양가적 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작업이다. 세계화의 질주 속에서 양쪽으로 가는 자동차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양쪽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국 사회를 은유한 것이다. 또한 그의 작업은 세계화와 지역성이라는 화두를 함의하고 있다. 그의 양쪽으로 가는 자동차는 양극의 갈등과 공존이라는 21세기 지구촌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07년 5월의 베이징은 한국인들의 방문으로 분주했다. 다산쯔 페스티벌과 베이징아트페어라는 두 가지 큰 행사를 기점으로 한국 화랑들이 중국에 문을 열었다. 이 화랑들의 개관기념전 덕분에 한국미술계 사람 다수가 베이징에서 만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부의 문화정치

    다산쯔 798 지역을 비롯해 지우팅(酒廳), 이수청(藝術城) 등에서 몇 해 전부터 일기 시작한 미술열풍은 최근 국제 화랑들의 진출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베이징이 동아시아의 미술 집결지가 된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시장의 힘 때문일 것이다.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과 더불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 근저의 힘으로 작용했다. 중국 정부의 전격적인 문화정치도 한몫 거들었다. 이미 베이징 현대미술계의 주요 공간이 된 아라리오 베이징을 비롯해서 표화랑, 아트사이드갤러리, 금산갤러리, 구아트센터 등의 한국 화랑이 진출해 있다. 화랑뿐 아니다. 안창홍, 박성태 등 중견 작가들이 베이징에 작업실을 차렸으며, 경희대학교 미술대학도 북경작업실을 열어 젊은 작가들의 진출 기회를 만들고 있다.

    베이징에 대한 한국미술계의 환호는 몇 가지로 분석된다. 시장의 잠재력이 워낙 큰 데다가 중국 정부가 좋은 조건으로 문화예술단지를 키우고 있어 비즈니스 환경이 좋다는 점, 인건비와 물가가 싸서 작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데 매우 유리하다는 점, 늘어나는 국제교류의 요청 속에서 베이징이 동아시아 국가 도시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국제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등이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에는 아직 체계적인 미술 시스템과 담론이 뿌리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미술을 활용해 문화정치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그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게다가 직접적인 식민지를 경험한 적이 없는 중국 역사의 정체성이 매우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 예로 2006년 상하이비엔날레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엔날레의 주제는 ‘하이퍼 디자인’이었다. ‘디자인과 상상력, 일상생활 실천, 미래역사 구축’의 3개 섹션에 속한 출품작들은 예술과 디자인을 넘나드는 탈(脫)경계의 메시지를 담았다. 미술과 디자인을 매개하며 궁극적으로 예술과 생활 간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전략. ‘미술과 디자인, 디자인과 산업, 삶과 생산’을 탈경계의 지경에서 재검토해보겠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과 각성이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상하이비엔날레는 시각언어 게임의 장을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예술에서 숭고를 찾고 디자인에서 실용을 찾는 이분법을 넘어 지평융합의 시대정신을 탐색해보겠다는 기조. 이는 중국 현대미술이 서구식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분법 구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상하이비엔날레는 서구식 석조 건물인 상하이미술관 건물 외벽 코너에 중국 전통의 건축물을 설치하고, 그 뒤로 첨단의 색유리로 치장한 고층 빌딩이 보이는 극적인 연출로 시작됐다. 당나라 시대 포광쓰(佛光寺)의 기단과 기둥, 그리고 지붕을 떠받치는 공포(·#53836;包)를 재현한 구조물로 자신들의 주제의식을 명쾌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구도 아래서 서구화와 근대화를 동일시해온 상하이, 첨단의 자본주의 도시로 가파르게 질주하고 있는 상하이라는 도시의 모습을 절묘하게 압축한 ‘하이퍼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아방가르드 정신의 회복

    20세기 미술은 물질형식의 기능을 발현하기 위해 화폐와 교환 가능한 물건으로 귀착했다.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이런 미술의 쓰임새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이런 변화는 미술계가 상품교환의 장을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데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근대성의 발현으로 형성된 미술시장은 유력한 장치로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만든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술관은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할 뿐,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시장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작품의 생산과 향유를 매개하는 중간 고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막 미술시장의 근대적인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 바깥 나라들의 미술은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 공공적 의제에 대한 공론을 형성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적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발견하는 일, 예술노동의 사회적 교환방식을 재구조화하는 일,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탈근대적 통합가치 속에서 맥락화하는 일 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시각의 예술생산과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은 여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폭력과 갈등을 중재하고 조절한다. 예술적 실천을 통해서 새로운 소통을 만들고자 하는 현대미술의 흐름 앞에 중국 현대미술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자못 궁금하다.

    21세기의 포스트모던한 예술 지형에서 중국 현대미술이 할 역할에 대해 역설적인 함의를 기대한다. 가령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프로파간다 미술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새로운 공공미술과 만나서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상황을 기대한다.

    굴곡진  현대사  담은 세계 미술시장 신성 (新星)
    김준기

    1968년 강원 평창출생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건너간다’ ‘리얼링15년’ ‘아시아의 지금’ 등 전시 기획

    現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저서 및 논문 : 논문 ‘새로운 공공미술과 예술공론장’ 등


    큐레이터 리자 아마디에 따르면 중국작가들은 실력과 동아시아적인 정신세계의 매력, 서양과 다른 독자성 등 시장에서의 흥행요소를 갖췄다고 한다. 국제적인 컬렉터가 힘을 쓰고, 유럽의 미술계가 환호하며, 해외 화교와 자국의 거대자본까지 거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현대미술은 시장의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지나치게 부각하다 보면 정작 무엇이 중국의 현대미술인가 하는 난감한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미술이란 상품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이고, 담론이고, 지식이다. 오늘날 세계의 예술은 공공성과 자율성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세계체제에 노출된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특정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미술시장의 광풍을 넘어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자국 미술 역사과정에서 아방가르드라고 불렀던 미술을 문화상품의 등록상표로부터 진정한 전위정신이 깃든 예술로 되돌려놓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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