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단 1년 안 돼 전국대회 4강, 청소년대표 2명 배출
- 학교 운동장 없어 남의 운동장 빌려 연습
- ‘전술’ 대신 ‘틀’을 가르친다
- “4강 진출보다 페어플레이상 받은 게 더 값진 성과”
- 4-3-3 선진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축구’ 구현
- 체육특기학교 지정되는 게 가장 큰 바람
현역 축구선수 가운데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손꼽히는 호나우지뉴(FC 바르셀로나)의 말이다. 이 말처럼 오로지 축구를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한 고등학교 축구팀이 창단 1년도 채 안 돼 전국대회 4강을 차지하며 고교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돌풍의 주인공은 지난해 7월 창단한 서울 성지고등학교 축구팀. 2007 청주 직지배 우수고교초청축구대회 준우승, 제44회 부산MBC 전국고교축구대회 4강, 서울시 교육감배 고교축구대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18세 이하 국가대표를 2명이나 배출했다.
내로라하는 축구 명문고도 이루기 힘든 성적을 창단 1년도 안 된 팀이 해낸 것을 두고 축구인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성지고는 한때 방황하던 학생들과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뒤늦게 향학열을 불태우는 중장년층이 주로 다니는 ‘학력인정고교’, 이른바 도시형 대안학교다. 이 학교에는 운동장도 없어서 이곳저곳 남의 운동장을 빌려 연습해 이룬 성적이기에 놀라움을 넘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른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 그만뒀거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로 구성된 성지고 축구부가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을 일궈냈을까.
‘거대한 용광로’ 같은 학교
서울지하철 5호선 화곡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2분쯤 가다 보면 상가 건물들이 밀집한 도로변에 3층짜리 흰색 건물이 보인다. 성지중·고등학교다. 본래 강서구 종합사회복지회관이던 건물을 인수해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교실 크기도 제각각이고, 공간도 협소하다. 강당도 운동장도 없다.
이 학교의 전신은 구두닦이, 신문팔이, 넝마주이,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야학이다. 영등포에서 소규모 운송업을 하던 김한태 교장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길거리 청소년들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겨 1972년 영등포구 영중초등학교의 낡은 창고를 빌려 야학을 시작했다. 1978년에는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교남회관 지하로 옮겨 강서청소년직업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지금 사용하는 강서구 종합사회복지회관으로 이사한 것은 1981년. 이때 처음으로 교무실, 교실 등을 갖춘 학교 시설이 마련됐고, 이듬해인 1982년 성지중·고등학교로 개명했다. 1988년 완전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승인을 받았고, 2001년 도시형 대안학교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주간 1551명, 야간 375명 총 1926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골목길 같은 좁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마주친 성지중고 교정은 2000명 가까운 학생이 공부한다고 믿기 힘들 만큼 비좁았다. 축구부 담당인 함익주 선생의 안내를 받아 먼저 교장실로 들어섰다. 이 학교 교무실 출입문에는 ‘사랑방’, 교장실 문에는 ‘안방’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학생들이 제집 안방처럼 스스럼없이 드나들라는 뜻에서 붙였다는 게 김한태 교장의 설명.
“우리 학교는 거대한 용광로입니다. 제철소에 한번 가보세요. 부러져 못 쓰게 된 숟가락, 낡은 자전거 바퀴, 녹슨 고철덩이가 수북이 쌓여 있어요. 고철도 3000℃ 열로 녹이면 여러 가지 좋은 제품으로 탈바꿈해서 비싼 값에 팔려 나가지 않습니까. 용광로가 좋은 고철, 나쁜 고철 가려 받지 않는 것처럼 우리 학교도 다양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어 훌륭한 시민으로 길러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성지고 축구팀은 훈련을 자율적으로 하는 것도 특징이지만 학교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여기엔 연습장까지 찾아와 공부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헌신도 한몫했다.
이 학교에서 칭찬과 격려는 일상이 되어 있다. 새로운 학생이 입학하면 담임이 학생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하고 교장은 표창장을 준다. 3개월이 지나면 또 표창장을 주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졸업할 때가 되면 표창장이 그야말로 쌓여 있다.
운동장 찾아 삼천리
이처럼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이력을 가진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이기에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구심점이 필요했다. 김 교장이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축구팀 창단. 그는 어린 시절 축구공이 없어 짚신 두 짝을 동그랗게 말아 묶어 차면서 놀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 나가 밤샘응원을 한 축구광이다.
축구팀을 만들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고 무모한 짓을 한다며 비웃었다. 학교 내부에서조차 열악한 재정상태를 들어 만류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 김인배 감독과 창단멤버인 23명의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 강서구민회관에서 창단식이 열렸다. 국내 대안학교 최초의 축구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성지중고교가 그렇듯 성지고 축구팀에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모였다. 면면을 살펴보면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들을 방불케 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이현세의 만화. 야인 손병호 감독이 어깨가 망가져 야구를 포기한 주인공 오혜성을 비롯해 외팔이 최관, 혼혈아 하국상, 땅꼬마 최경도 등 도태된 야구선수들을 모아 지옥훈련으로 조련한 다음 프로야구 전승 우승에 도전한다는 줄거리다.
김인배 감독은 여러모로 만화 속 손병호 감독과 닮았다. 개성이 강한 전국 각지의 선수들을 모아 팀을 구성한 것도 그렇고, 그 팀을 조련하여 아무도 얕잡아보지 못할 강팀으로 키워냈다는 점도 닮았다.
전국 18개 고교에서 모인 성지고 축구팀 선수들은 그야말로 ‘외인구단’이다. 다른 학교에서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둬야 했던 선수,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던 선수, 큰 부상으로 운동을 포기하고 있던 선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벤치만 지키던 선수도 있었다. 김 감독을 따라 전학 온 선수도 몇 있다. 그래도 엔트리가 차지 않아 4명은 지금까지 전혀 선수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성지고 재학생으로 채워졌다.
어렵사리 선수를 모아 팀을 구성했으나 연습할 운동장이 없었다.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은 선수들을 데리고 무인도에 들어가 지옥훈련을 시켰지만, 김 감독은 연습할 운동장을 찾아 창단 후 5개월 동안 전국을 떠돌았다. 지금 사용하는 파주 운동장에 자리를 잡기까지 경기도 안산, 광명, 강원도 묵호까지 운동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할 형편이 아니었다.
현재 성지고 축구팀이 훈련캠프로 사용하는 파주시립 파평체육공원 운동장. 자유로를 따라 임진각 쪽으로 달리다가 적성 방면 37번 국도로 빠져 10여 분 가면 파평산 자락 쪽으로 파평체육공원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파주시와 5년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성지고 축구팀 전용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국대회 4강…모두가 울었다
선수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생활관도 이곳에 있다. 운동장에서 30m쯤 떨어진 건물 2개 동에서 숙식을 한다. 숙소에서 ‘밥 먹어!’ 하고 소리치면 운동장에서 들릴 정도다. 김 감독도 학생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이곳에 사택을 지어 가족 전체가 이사를 했다. 김 감독의 부인 장경숙씨는 자연스레 선수들의 어머니가 됐다. 선수들의 식단을 책임지는 것도 그의 몫. 냉동식품은 절대 쓰지 않고 매일 직접 장을 봐온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
운동장에선 40여 명의 선수가 여러 조로 나뉘어 왁자지껄 공 뺏기 게임을 하고 있다. 내일은 서울시 교육감배 축구대회 최종전이 있어 당연히 시합에 대비한 전술훈련이나 미니게임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한데 어울려 웃고 떠들며 공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김인배 감독은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전국대회 20회 우승을 이끌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국가대표를 지낸 이민성을 비롯해 여러 스타를 길러낸 고교축구 명장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몸 상태를 파악해 내일 시합에 선발로 내보낼 명단을 짜고 있는 듯했다. 전국대회 4강에 오른 소감부터 물어봤다.
“우승보다 값진 4강이죠. 전임 학교에서 스무 번이나 우승을 했지만, 이때처럼 기쁜 적은 없습니다. 4강에 오른 순간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성지고 축구팀을 전국대회 4강에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 감독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면 서너 배의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 학생들도 절실하게 하고 싶어 하던 축구를 했기 때문에 맹활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열정만으로 전국대회 4강 팀을 길러낼 순 없었을 것이다.
“처음 와서 보니 선수들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어요. 대부분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선수들은 자신감이 없고 팀의 사기도 형편없었다. 이런 선수들에게 경기 중의 실수를 지적하고 질책할 수는 없었다. 야단을 쳐서 나아질 것 같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를 야단치면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걷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대하고, 조금만 잘해도 크게 칭찬해줬다. 경기 중에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다독거렸다. 저녁에는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막상 시합에 나가면 이성을 잃고 행동해 퇴장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경기에서 3명이 퇴장당한 경우도 있었다. 상대팀 선수들이 시합 중에 “꼴통학교에서 무슨 축구를 하느냐”는 식으로 야유를 보내면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상대가 때리면 차라리 한 대 맞아라, 그게 이기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제44회 부산MBC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선 페어플레이상을 받을 정도로 선수들이 성숙했다. 김 감독은 이 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도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페어플레이상이 더 값지게 느껴졌다고 한다. 페어플레이상을 받았다는 것은 선수들이 비로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운동기계’는 없다
김 감독의 자율축구는 이렇게 가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하나씩 가진 선수들과 함께 시작됐다. 반복훈련과 엄격한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국내 체육계에서 ‘자율’이라는 말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요즘에도 학원 스포츠 지도자들의 선수 폭행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지 않는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선후배 사이의 구타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입식 반복훈련으로 인해 어린 선수들이 ‘운동기계’로 전락한다는 우려도 크다. 하지만 성지고 축구팀에서 주입식 반복훈련이나 지도자의 체벌, 선후배간 구타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성지고 축구팀 선수들은 하루 4시간의 훈련시간 외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아침 기상시간도 자기가 알아서 하고, 다른 축구팀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실시하는 아침 러닝도 없다. 선수 본인이 아침에 조깅을 할 것인지 산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잠을 조금 더 잘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요즘은 선수들 대부분이 일찍 일어나 아침운동에 참여한다.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알게 모르게 선수들 간에 선의의 경쟁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침운동은 대개 파평산 삼림욕장에서 하는데, 달리기도 하고 산책 삼아 천천히 걷기도 한다.
훈련방식도 특기할 만하다. 대부분의 고교축구 지도자는 공격과 수비 전술 몇 가지를 정해놓고 반복훈련을 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큰 틀을 정해주고 그 속에서 선수 개개인이 상황에 맞춰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유도한다.
“다른 고등학교 축구팀은 전체 훈련시간에서 체력훈련이 70~80%를 차지합니다. 축구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은 20~30%밖에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축구선수인지 육상선수인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나오죠. 반면에 우리는 축구공을 갖고 하는 운동이 80% 이상입니다. 그렇다고 체력훈련이 안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이 많아서인지 성지고 선수들은 볼 컨트롤과 볼을 빼앗기지 않는 키핑능력 등 볼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한마디로 개인기가 좋은 것이다.
전국대회 4강에 들어야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고교축구팀 감독들은 어떻게든 성적을 내기 위해 정형화된 팀 전술훈련을 반복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늘 선수들에게 정해진 전술에 의지하지 말고 창조적으로 플레이하라고 가르친다. 어릴 때부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축구를 해야 성인 선수가 돼서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은 자율축구가 어색하고,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해 찬스를 놓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김 감독은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는다. 실수를 통해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졌을 때 이겼을 때보다 더 살갑게 대해주고 시합 때도 가능하면 주문을 적게 하려고 노력한다.
“선수들이 감독을 무서워하면 안 됩니다. 무서워하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러다 보면 위축돼서 자신 있는 플레이를 못하게 되거든요. 실수하지 않는 아이들만 모아놓았다면 학교가 왜 필요합니까. 학교는 가르치는 곳입니다. 부족한 선수들을 훌륭한 선수로 키우는 것이 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죠.”
맨유처럼 싸운다
김 감독의 자율축구로 단련된 성지고 축구팀의 경기는 무척 재미있다. 개인기 위주 훈련 덕택에 개인전술이 뛰어나고, 포지션에 구애하지 않는 역동적인 플레이를 보여준다. 수비수의 활발한 공격 가담, 공격수들의 유기적인 변화는 여느 고교 팀의 전술과 확연하게 달라 보인다. 공격수들의 키가 작은 것도 특이하다. 체격조건을 많이 따지는 고교축구에서 175cm 남짓한 발 빠른 선수들이 상대 수비진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깜찍하다.
김 감독은 시합 때 주로 4-3-3 시스템을 쓴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등 세계적인 팀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스리 톱과 포백으로 이뤄진 4-3-3 시스템은 공수에서 모두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미드필더를 유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포기했을 정도로 실전에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선수 개개인이 상황에 따라 자기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으로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좌우 공격수들은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진을 혼란에 빠뜨려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수비수들도 상황에 따라 활발하게 공격에 가담해야 한다. 한마디로 선수의 창의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시스템이다. 김 감독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4-3-3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은 선수들이 배우는 과정에서부터 선진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려는 뜻에서다.
우승은 언제쯤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당장의 성적에 집착하지 않는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전통 있는 팀을 만드는 게 더 큰 소망”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어려운 여건에서 운동하는 성지고 축구팀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갖가지 사연, 갖가지 상처
현재 성지고 축구팀은 44명. 창단 초기 절대적인 선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성지고가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선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 감독의 독특한 훈련방식,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에 대한 소문이 선수들을 제 발로 찾아오게 했다.
선수 숫자만 보면 여느 학교 축구팀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체육특기학교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라 중학교 졸업생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모든 선수가 다른 학교에서 운동을 하다가 전학 온 학생들이다. 서울, 대구, 인천, 순천, 서산 등 전국 각지의 18개 학교에서 모인 선수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요즘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돈이 없으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성지고 축구팀에는 형편이 어려운 생활보호대상자가 8명이나 된다. 전액 장학생인 주장 동진이도 그중 한 명. 중앙 수비를 책임지는 3학년 동진이는 조용한 카리스마와 모범적인 생활태도로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민정호 코치는 “인성이 좋은 동진이가 후배들을 잘 이끌어 지금처럼 좋은 팀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주전 골키퍼 자훈이와 함께 18세 이하 국가대표로 선발된 주형이는 무릎 부상으로 1년여 동안 축구를 접어야 했다. 하마터면 선수생활을 포기할 뻔했지만 지금은 센터포워드로 활약하며 실력을 인정받아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대학 진학도 확정됐다.
대구에서 온 1학년 진현이는 팀내의 잦은 구타로 인해 축구에 염증을 느껴 한동안 축구를 그만둔 경우다. 성지고 팀에 먼저 합류한 단짝 친구 정섭이로부터 여느 축구팀에선 느낄 수 없는 가족 같은 팀 분위기를 전해 듣고 성지고로 달려왔다.
눈빛부터 예사롭지 않은 2학년 희갑이는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갔다가 부상으로 귀국했다. 지금은 재활에 성공해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데, 패싱과 발재간이 뛰어나 벌써부터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리더십이 뛰어나 내년 주장감으로 거론되는 2학년 상준이도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적이 있다. 수비수지만 머리가 좋아 임기응변에 능하고 패싱 능력은 물론 활발한 공격 가담으로 곧잘 헤딩골을 터뜨린다.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비디치와 AC밀란의 네스타 같은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전남 신안에서 온 영수는 예전 학교에서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관심 밖에 밀려나 있던 선수다. 183cm의 당당한 체구에 발재간도 좋아 내년 성지고 축구팀의 주전 센터포워드 자리를 예약해놓았다.
이렇듯 일곱 빛깔 무지개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 선수들이 또 어떤 기적을 창조해낼지 궁금하다.
아쉬운 무승부
다음날 오후, 서울시 교육감배 고교축구대회 최종전이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경기장엔 김한태 교장을 비롯해 성지고 교직원, 동문, 재학생 100여 명이 나와 응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시30분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는 올해 전국대회 결승까지 올랐던 강호 광운고. 리그 1위인 광운고와 2위를 달리는 성지고의 경기. 이미 1위와 2위 순위가 확정된 상태라 다소 싱거울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성지고 선수들은 경기 휘슬이 울리자마자 광운고를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객관적 전력이 열세라는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주장 동진이가 지휘하는 수비는 견고했고, 스리 톱인 도연이, 주형이, 진태가 끊임없이 광운고 수비진을 괴롭혔다. 오른쪽에서 도연이가 광운고 수비진을 흔들어놓는가 하면 왼쪽에는 진태가 있었다. 광운고 선수들은 당황했는지 실수를 연발하며 번번이 찬스를 내주었다. 전반 12분 희갑이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은 도연이가 순간적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파고들었다. 광운고 수비가 반칙으로 도연이를 제지하는 순간 휘슬이 울렸다. 도연이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국가대표 주형이가 침착하게 차 넣었다. 광운고는 전반 내내 성지고에 주도권을 내줬다.
10분 휴식 후 후반전이 시작됐다. 상대팀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연거푸 선수를 교체하며 반격에 나섰다. 이대로 질 수 없다는 리그 1위 팀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러나 성지고의 완강한 수비와 18세 이하 국가대표팀 골키퍼 자훈이의 선방으로 골은 터지지 않았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됐고, 경기는 어느새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성지고의 승리가 확정되는 듯했다. 그 순간 광운고의 슈팅이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동점골이 터진 것이다. 결국 경기는 1대 1 무승부.
경기가 끝나자 김한태 교장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아쉬워하는 선수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면서 “잘했어, 잘했어”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지고는 리그전으로 펼쳐진 이 대회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승점에서 앞선 광운고가 우승, 성지고는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태극마크를 꿈꾼다
창단 이후 성지고 축구팀이 거둔 성적은 46전 21승 15무 10패로 승률이 68%에 달한다. 이들은 창단 당시 목표로 했던 ‘축구를 통한 학교 구성원의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재학생들은 축구팀이 정규학교 강호들을 연파하자 성지고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됐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동문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학교는 36년 역사가 무색할 만큼 동문회조차 결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동문들이 이 학교 출신임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축구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동문들이 모여 동문회를 결성했고, 여의도에 사무실까지 마련했다. 대회 때마다 깃발을 만들어 와 응원을 하고, 음료수를 내놓고 선수들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성지고 축구팀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여전합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도 서울시에서는 체육특기학교로 지정해주지 않고 있어요.”
서울시는 정규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지고를 서울시 체육특기학교로 지정해주지 않고 있다. 특기학교로 지정되면 선수 확보에 유리할 뿐 아니라 교육청으로부터 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 불합리한 제도가 개선돼 성지고 선수들이 하루 빨리 더 나은 여건에서 운동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성지고 축구팀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교장과 감독의 소망대로 성지고 출신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