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기무·헌병 개입 논란 ‘국방부 대변인 성폭행 사건’

군 수사기관 과잉 개입? ‘문민 대변인’ 과잉 피해의식?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7-11-10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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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소-사표제출 종용-피의자 조사 누군가 조율?
    • 육군 보직인 대변인에 임명된 공군 출신에 대한 반감?
    • 원만치 않았던 안 대변인과 기무부대·헌병대 관계
    • 일반 공무원 사생활인가, ‘군 관련’ 사안인가
    • 군 수사기관 직무 범위 논란 일 듯
    • 군 수사기관 “우린 합법적으로 임무 수행했을 뿐”
    기무·헌병 개입 논란 ‘국방부 대변인 성폭행 사건’
    지난해 6월27일 인터넷에 ‘국방부 관계자가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던 안정훈 예비역 공군 준장이었다. 며칠 뒤 이 사건은 검찰에 의해 정식 기소됐다.

    기자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재판과정을 줄곧 지켜봤다. 안씨가 국방부 대변인 임명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국방부 대변인은 이전까지 육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공군 출신인 그의 발탁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또 공군사관학교출신, 전투기조종사가 주류인 공군에서 비공사, 비(非)조종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장성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재판은 사실관계가 명확해 보이던 기소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최초 기소 죄명은 강간치상이었는데, 재판 도중 준강간치상으로, 다시 준강간미수치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준강제추행 혐의만 인정했다. ‘강간치상’과 ‘준강제추행’은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범죄의 경중(輕重)이 하늘과 땅 차이다. 법원의 판단이 맞다면 검찰은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를 한 셈이다.

    사건의 배후?

    법정에서 국방부 직원인 피해자 A씨는 2006년 6월19일 밤, 안씨가 함께 술을 마시다 흑심을 품고 자신에게 약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어떻게 성폭행을 당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물론 성폭행이라고 추정할 만한 여러 근거를 제시하긴 했지만 1·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본 기사는 성폭행 사실 여부를 밝히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은 생략한다).



    1·2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구토를 했을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젊은이들과 시비가 일어 싸움을 했고, 안씨가 A씨를 모텔에 데리고 간 뒤, 더 이상 구토물이 묻지 않도록 옷을 벗기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안씨의 주장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그 후 아무 일이 없었다”는 안씨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순간 욕정이 생겨 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추행당한 직후 A씨가 깨어나 황급히 옷을 입고 나가는 과정에 안씨가 추가적인 강압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제 의도는 없다고 봤다.

    현재 검찰과 안씨 모두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검찰은 여전히 안씨의 성폭행을 주장하고 있고, 안씨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1심과 2심 재판 당시 안씨는 기자에게 “재판이 끝나면 사건의 배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비록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용산 근처에 있는 그의 오피스텔을 찾았다.

    안씨는 “나는 결코 추행한 적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추행이라고 하니까 그 부분은 받아들이고, 억울한 부분은 대법원 상고를 통해 밝히려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느끼고 겸허하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지 변명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은 오해로 빚어진 일로, 당사자끼리 오해를 풀면 해결될 문제였는데, 군 수사기관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기 직무범위를 넘어 개입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며 “재판이 끝난 후 그 부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수사기관이 직무 범위를 넘어선 일에 개입하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군 수사기관이라면 기무사와 헌병대를 말한다. 안씨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이 사건 재판 기록을 입수해 검토하고, 관계자들과 접촉해 확인 취재했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

    기무·헌병 개입 논란 ‘국방부 대변인 성폭행 사건’

    2006년 평택사태 때 안정훈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군의 진압봉 휴대 문제로 군과 갈등을 겪었다.

    재판 기록과 관련자 진술을 종합하면 사건 당일부터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가 이 사건에 관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의 그날 새벽’이 지난 직후인 6월20일 아침, 안씨는 ‘A씨가 출근하지 않아 직원들이 여러 차례 전화했는데 받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 직원 B씨를 보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A씨의 집까지 찾아갔던 B씨는 “몇 시간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나오지 않고, ‘몸이 아파 쉬겠다’는 말을 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보고했다. 안씨는 법정에서 “전날 만취했던 게 부끄러워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법원에 제출한 변론서에서 “6월22일 아침, 장관에게 일일보고를 하는데 장관이 뜬금없이 ‘개인적인 일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며칠 전에 발생한 자신에 대한 청와대 투서사건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지 A씨와 관련된 일인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날인 6월23일 아침에 장관으로부터 ‘여직원과 무슨 일이 있지 않았느냐’ ‘빨리 해결을 보도록 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윤광웅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참모로부터 그런 사건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신중하게 살펴보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누구로부터 보고를 받았는지, 정확히 언제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안씨에게 ‘빨리 해결을 보도록 하라’는 말을 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안씨는 또 “장관실을 나오자 장관 측근으로부터 ‘군 수사기관에서 장관에게 보고한 것 같다. 군 헌병수사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장을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조사본부장도, 수사단장도, 대변인실을 담당하는 수사과장도 만나지 못했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같은 시각, 국방부 대변인실을 담당하는 기무부대 직원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으나 C씨는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C씨는 7월20일경 만났을 때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C씨가 6월20일부터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 A씨는 법정에서 “6월20일 B씨 외에 집에 찾아온 사람이 있느냐”는 피고인측 변호사의 질문에 “저녁에 국방부 100기무부대 직원인 C씨가 기무부대 여군 장교와 함께 찾아왔다”고 진술했다. A씨는 “직원이 하루 결근하면 기무부대에서 집까지 찾아오는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C씨가 사건내용을 알고 왔는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봐 지난 밤 일을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기무부대 “첩보 수집이었을 뿐”

    여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기무부대원이 여군 장교를 대동하고 집까지 찾아간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다, A씨가 “C씨가 사건 내용을 알고 왔는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해서”라고 진술한 걸 보면 C씨가 이미 6월20일 저녁에 사건의 정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C씨보다 먼저 A씨의 집을 찾아갔던 사무실 직원 B씨는 사건 내막을 전혀 모른 채 돌아갔다.

    기무부대 소속인 C씨가 이 사건에 계속 개입했다는 것은 A씨의 동료직원인 D씨의 법정증언에서도 드러났다. D씨는, 국방부 내에서는 6월20일에 A씨와 전화통화를 하며 사건의 개략적인 내용을 들은 유일한 직원이다. 그런데 D씨는 “그날(6월20일) 저녁인지 다음날인지 C씨가 와서 ‘A씨와 통화한 사람이 당신밖에 없으니 무슨 일인지 말을 해봐라’ 해서 ‘모른다’고 했더니 ‘알 만큼 알고 있으니 말하라’고 했다. 내가 ‘그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이야기하면 말하겠다’고 하니까 C씨가 ‘모텔 이름과 병원에 가서 진단서 끊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병원에 간 것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A씨가 병원을 찾아가 진단서를 끊은 것은 6월21일이다. C씨가 저녁에 A씨 집을 찾아간 다음날인 21일에도 A씨와 연락을 취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C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담당하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당연히 첩보를 수집했을 뿐이다. 나는 A씨 이야기도 들었고, 안씨 이야기도 들었다. 두 사람에게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수집한 첩보 내용을 당사자인 안씨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안씨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미리 손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야 섭섭할 수 있겠지만 첩보내용을 그에게 알려주면 내가 불법을 저지른 게 된다. 내 임무는 첩보를 수집해 상부에 보고하는 것까지다. 그 이상 관여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A씨와 D씨의 진술내용에 대해서도 “진술 일부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조금 바뀌었다. 사람의 기억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기무·헌병 개입 논란 ‘국방부 대변인 성폭행 사건’

    군 개혁을 놓고 현역 군인과 민간참모 간의 갈등이 심했다. 국방부 청사.

    이에 대해 안씨는 “나는 6월23일까지 C씨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첩보의 생명은 정확성이다. 예민하고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정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C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당초 강간치상이라 주장했던 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준강제추행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처음 첩보를 입수한 기무부대에서 정확한 첩보를 상부에 제공했다면 안씨와 A씨 모두 지금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기무부대측은 “우리가 상부에 강간치상으로 보고했는지 확인하고 하는 이야기냐”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정확한 첩보보고 내용이 뭐냐고 묻자 “현재로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기무부대 관계자는 “우리에게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첩보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우리는 첩보를 보고할 뿐, 그것을 보고 조사를 지시하건 어떻게 하건 그건 지휘관(장관) 몫이다. 따라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휘관이 지는 것이지 우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 사건에 대해 기무부대에서 단순한 첩보보고에 그친 게 아니다. 대책회의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현황뿐 아니라 향후 방안까지 논의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C씨는 “내가 아는 한 그런 적 없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어려움 처한 국방부 직원 도왔을 뿐”

    국방부 조사본부(헌병대)도 이 사건에 관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안씨는 변론에서 “6월23일 A씨가 고소한 직후인 오후 2시30분경 홍보관리관실을 담당하는 국방부 조사본부 중령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중령은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과 수사관을 연결해 주었고, 두 사람은 ‘A씨가 강간치상으로 오늘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며 ‘국방부와 장관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사직서를 내라’고 조언했다. 내가 이에 동의하자 금세 인사계장이 사직서를 가지고 왔다. 이들은 또한 ‘경찰에 가서 무조건 혐의를 시인하고 반성한다고 해라. 절대 여자를 자극하면 안 된다. 합의만 하면 쉽게 끝나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안씨가 이들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용산경찰서 형사들이 국방부 앞으로 찾아왔고, 안씨는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에 가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A씨는 법정에서 고소 경위를 설명하면서 “국방부 조사본부에 신고하자 (그쪽에서) ‘경찰에 해야 된다’고 해서 경찰로 갔는데, 그때 여 수사관(E씨)이 동행했다. 너무 충격이 커서 조사본부에 전화해 ‘힘들다’고 했더니,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여 수사관을 보내주어 같이 갔다”고 진술했다.

    고소장 접수 단계에서부터 조사본부가 관여한 것이다. A씨의 법정진술을 보면 단순동행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소장을 접수할 때 A씨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동행했던 여 수사관 E씨가 대부분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A씨는 “처음 경찰서에 가는 것이어서 너무 떨려 같은 여자인 여 수사관에게 미리 이야기를 다 했다”고 진술했다.

    정리하면, 조사본부는 6월23일 오전에 A씨의 고소를 적극 돕는 한편 안씨에게는 사표를 제출하라고 권해 곧바로 용산경찰서에서 임의동행으로 조사받게 한 것이다. 안씨측 변호인인 이재만 변호사는 “성폭행사건이라 하더라도 고소인 조사를 한 당일에 피의자를 불러 조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안씨 같은 고위공직자는 출두절차를 밟는 데만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고소하는 날 사표를 쓰게 하고, 이를 알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경찰이 찾아온 것은 누군가 조율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조사본부가 안씨에게 사표를 권유한 것도 의문이다. 안씨는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조사본부는 내게 ‘장관과 국방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사직서를 쓰라’고 하고는 정작 며칠 후 총무팀에서 사직서를 수리하려 할 때는 반대했다. 형사사건에 관련돼 있으니 사직서를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경찰수사가 종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무총리실에 피의자에 대한 징계를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사유를 보면 “피의자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수사 요청한 사실을 알고 국방부에 사직서를 제출해 도망 또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을 요한다”고 되어 있다. 사표 제출이 구속영장 청구의 사유가 돼 결과적으로 안씨의 방어권을 포기하게 만든 셈이다.

    이에 대해 조사본부측은 “우린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일을 처리했다. 우리는 장관의 지시를 받고 사건의 내용을 파악했을 뿐이다. A씨의 주장과 안씨의 주장을 그대로 장관에게 보고했다. 안씨에게 사표를 종용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안씨가 먼저 사표를 내겠다고 말했다. 또한 A씨의 고소를 도왔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 A씨가 심신이 지친 상태여서 착각한 것 같다. 여 수사관은 A씨의 주장을 듣기 위해 경찰조사 때 동석했을 뿐이다. 대신 진술하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조사본부의 다른 관계자는 “A씨를 도와준 것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일을 당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왔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에서 조금 도와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 기무부대와 헌병대가 이 사건에 관여했다고 추정되는 사실을 몇 가지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안씨는 사건 직후 100기무부대 소속 C씨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동향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출입 여부를 확인하는가 하면 운전병과 비서에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상시 그와 가깝게 지내는 후배 장교들에게 그의 근황을 캐물었으며, 과거에 그가 잘 가던 술집 위치를 묻고 함께 가보자고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안씨와 가깝게 지낸 후배 장교들도 안씨의 주장이 일부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

    “터무니 없는 소리”

    A씨의 법정진술 중에도 관련 증언이 나온다. A씨는 “여직원이 결근을 하면 기무부대원들이 항상 찾아가는가”라는 피고인측 변호사의 질문에 “증인(A씨)이 안 나올 사람이 아닌데 안 나오고 전날 술을 마셨다고 하니 (C씨가) 운전병을 불러 물어보았는데 (운전병이) ‘(저녁식사 장소에) 내려주고 왔다’고 했기 때문에 몰랐을 리가 없다”고 진술했다.

    그밖에도 안씨는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자신이 곧바로 구속되지 않자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이 전화를 걸어 “왜 구속하지 않느냐? 언제 구속할 거냐”고 압박하는가 하면, 시경 고위간부를 통해 용산경찰서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담당 형사는 자신은 압력 전화를 받은 적이 없으며, 수사과장 역시 그런 압력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조사본부 관계자 역시 “터무니없는 소리다. 국방부 직원이라면 누구나 사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서에 문의전화를 했을 수는 있지만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직무 범위의 한계

    이상과 같은 기무부대와 헌병대의 관여는 군 수사기관의 직무 범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기무사 홈페이지에는 기무사 임무에 대해 ‘군사보안’ ‘군 방첩’ ‘군 및 군 관련 첩보수집 및 처리’ ‘특정범죄 수사’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범죄 수사’의 경우 군인 및 군무원에 대해 수사를 관장할 수 있다. 민간인의 경우 군사기밀 누설, 군사지역 내 간첩죄,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죄 등에 대해 수사를 관장할 수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의 임무 역시 국방부와 그 직할기관 및 부대에 근무하는 군인 또는 군무원에 대한 수사 및 예방, 군 관련 주요 사건·사고에 대한 접수 처리와 분석 및 대책수립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들이 관여할 직무범위는 군인과 군무원에 한정되어 있고, 민간인의 경우 국가안보 또는 군사기밀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안씨와 A씨는 둘 다 군인이나 군무원이 아니라 국방부라는 행정조직에서 근무하는 별정직 일반 공무원이다. 게다가 성폭행이든 준강제추행이든 군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형사사건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 개입할 근거는 전혀 없다”고 안씨 변호인은 주장했다.

    반면 기무부대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기무부대측은 “결코 안씨 개인의 사건이 아니다. 그는 장군 출신의 국방부 대변인으로 군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추문이 알려지면 군 기강이 문란하다고 생각하지, 군과 관계없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군 관련 사안이다”라고 설명했다. 기무사측은 “국방부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군 관련’ 사건으로 적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기무부대 법무 관련 팀의 견해”라며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이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기무부대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기무사 홈페이지에 명시된 ‘군 및 군 관련 첩보수집처리’ 조항을 보면 이 사건이 거기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군 전투력 저해 요인을 조기에 파악해 척결하는 한편, 군 저변의 실상 및 애환을 정책에 반영토록 하고 유형 전력 극대화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군이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의 수집 분석이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며 이는 군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또한 각종 첩보 수집을 통해 북한의 움직임과 국제정세 변화를 예의 주시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도발에 항상 대비하고 있다.’

    조사본부의 관여 역시 ‘군 관련 주요 사건 사고에 대한 접수 처리와 분석 및 대책수립’ 임무에 해당되는지 명쾌하지 않다. 이에 대해 조사본부 관계자는 “우리의 임무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아 국방부 직원에 대해 감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 역시 장관의 지시 아래 이루어진 합법적인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육군 보직?

    당시 국방부에 근무한 한 고위 관료는 “안씨가 2005년 11월 국방부 대변인으로 임명될 때부터 육군 출신 인사의 반대가 심했고 이후에도 계속 견제가 있었다”며 “기무사와 조사본부가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 배경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육군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는, 핵심 보직인 대변인은 육군의 몫인 만큼 육군 출신이 계속 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며, 안씨가 내정된 상태에서도 육군 출신 인사들이 장관을 찾아가 “장관이 해군 출신인데 대변인까지 공군 출신을 쓰면 육군 중심인 국방부가 일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안씨도 지난해 기자와 만났을 때 “청와대와 군의 갈등에 끼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당시 그는 2006년 평택사태 때 진압봉 문제로 “현역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고 했다.

    “당시 합참에서 장관 재가를 받았다면서 군이 진압봉을 휴대하고 평택으로 간다는 발표문을 가져와 내게 발표하라고 했다. 군인이 2m 진압봉을 들고 평택에 갔다가는 제2의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호도될 가능성이 높았다. 국무총리실, 청와대 관계자들과 상의한 끝에 진압봉은 가져가지 않는 것으로 이미 의견을 모은 상태였다. 그래서 합참의 발표를 미루고 평택기지 이전사업단장과 상의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군이 진압봉을 휴대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진압봉을 소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기자들이 의아해하며 ‘확실하냐’고 물어왔다. 나는 확실하다고 했다.”

    그러자 합참의장실에서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상희 합참의장은 ‘군에 대한 경계 장비와 운영은 합참 소관인데, 왜 함부로 결정을 바꿔 발표했느냐’고 질책했다. 내가 ‘국무총리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과 상의 끝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하자 의장실에 있던 누군가가 ‘청와대 그놈들이 다 빨갱이인데 그놈들과 코드를 맞춰?’ 하고 소리쳐 참석자 모두 놀랐다.”

    안씨는 “장관에게 최종적으로 다시 확인해서 결정하자. 진압봉을 소지하는 것으로 결정되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진압봉 휴대를 둘러싼 문민보좌진과 현역들과의 갈등에 윤 장관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진압봉을 가져가기는 하되 지급하지는 말고 창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이다. 안씨는 “합참의장으로서는 자기가 결재까지 받은 사안이 틀어진 것이니 엄청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이후 주변에서 ‘역시 육군 출신 대변인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내부 문서 유출사건

    안씨와 기무부대, 헌병대의 평소 관계도 원만치 않았다. 정보 수집이 주임무인 기무부대와 헌병대의 직원들이 기자들과 음성적으로 접촉해 국방부 내부 정보를 유출한 사례가 몇 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안씨가 간접적으로 기무부대와 헌병대에 경고를 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국방부에 근무했던 고위 관료는 “국방부는 현역군인이 많은 조직이기 때문에 이들의 비밀누설 차단과 예방을 명분으로 기무부대가 국방부 내에 상주하면서 첩보수집과 군인 등에 대한 감시를 일상화했다. 이들의 월권 사례도 여러 건 있었다”고 주장했다.

    “직원들로부터 ‘장관실에 보고하고 나면 기무부대 요원들이 찾아와 장관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 확인하려 한다’는 불만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래서 기무사 요원들의 월권행위가 군내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판단한 내가 기무사령관에게 과도한 활동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A씨도 법정에서 “저는 국방부 직원이고, 그 사람(기무부대 요원)의 업무가 그런 일이니 찾아온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만났다”고 진술한 걸 보면 국방부 내에서 기무부대 직원들이 일반 공무원을 상대로도 첩보수집 활동을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006년 5월 발생한 문서유출사건은 기무부대와 조사본부 업무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당시 국정홍보처는 각 언론의 논조를 분석한 문서를 정부 부처에 돌렸다. 문서엔 K신문이 좌파 성향으로 분류돼 있었다. 이를 본 K신문 국방부 출입기자가 국방부 홍보실에서 작성한 문건인 줄 알고 대변인인 안씨에게 항의했다. 안씨가 경위를 파악해보니, 기무부대 C씨와 조사본부 F씨가 문제의 문서를 무단 복사해 수첩에 끼워둔 것을 기자가 본 것이었다. 내부 문서를 임의로 유출한 셈이었다. 두 사람은 기자실 동향을 파악해 소속 부대에 보고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안씨는, F씨에 대해서는 2주간 기자실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조치했고, C씨에 대해서는 구두로 경고조치했다.

    이에 대해 F씨는 “당시 문서는 비밀문서도 아니고 내부 문서도 아니었다. C씨의 경우 담당 직원이 복사해주었고, 나도 (직원에게) 이야기하고 복사한 것인데 출입을 금지해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안씨의 과잉반응이었다는 주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방사가 기무부대 직원의 출입을 막은 적이 있는데, 당시 기무사는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모든 조직을 동원해 수방사를 압박했다. 지금도 기무무대와 헌병대에는 피지원 부서가 정보기관을 컨트롤하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안씨에게 문서유출사건에 대해 묻자 “그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기무부대와 조사본부가 내게 적대감을 갖고 있던 차에 이 사건이 터지자 무리하게 관여한 것 같다. 실제 사건 발생 후 C씨가 F씨에게 ‘내가 대신 복수해줬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씨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나. 어이가 없다. 삼류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안씨의 과대망상이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삼류소설에나 나올 이야기

    안씨가 정말 성폭행을 한 건지, 군 개혁을 둘러싸고 현역군인들과 민간인 참모들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기무사와 헌병이 현역들의 정서에 동조해 과욕을 부린 것인지, 아니면 군 수사기관의 적법한 임무수행에 대해 안씨가 과잉반응을 하는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명확히 밝혀질 것 같다.

    기무사와 헌병대가 변화와 개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적절한 행동이나 월권이 이 사건으로 표출된 건 아닌지 하는 의혹도 남는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제기된 기무부대와 헌병대의 직무 범위에 대한 논란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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