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미술계 양대 축 인사동 vs 청담동

인사동은 ‘화랑’ 청담동은 ‘Gallery’?

  • 윤태건 미술기획자 theton01@hotmail.com

    입력2007-11-08 18: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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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담동, 9월에만 3대 경매 통해 2000여 점 팔려
    • 럭셔리 갤러리 몰 ‘네이처 포엠 빌딩’ 눈길
    • 소호, 첼시 같은 아트밸리 꿈꾸는 청담동
    • 인사동, 갤러리 떠난 자리엔 술집·카페 들어서
    • 고미술과 貸館 화랑 중심으로 굳어지는 인사동
    미술계 양대 축 인사동 vs 청담동

    지난 9월에만 대형 경매회사들의 경매 3개가 잇따라 열렸다.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 옥션쇼 인 서울’ 전시 광경.

    거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명품 브랜드 숍, 자고 나면 생기는 독특한 스타일의 퓨전 레스토랑과 고급 카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한 발레파킹 문화, 바에 앉아 있다 보면 간혹 유명 연예인을 만날 수 있지만 호들갑 떨며 사인 공세를 해서는 안 되는 그들만의 영역.

    ‘대한민국 트렌드 리더 1번지’ 청담동은 한국 소비문화의 각종 유행을 선도한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가장 먼저 실험되고 소비되는 곳이자 패션과 예술, 맛과 멋을 좇는 ‘트렌드 피플’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패션과 문화의 진원지답게 디자이너와 연예인, 예술가들이 모이고, 그 거리를 끼고 있는 골목골목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다.

    청담동은 한때 ‘오렌지족’ ‘야타족’이라는 신조어를 생산하며 왜곡된 향락문화의 ‘배설구’이자 첨단 소비문화의 ‘진원지’로 비난과 환호를 한몸에 받던 압구정동과 인접해 있어 압구정동과 ‘이란성 쌍둥이’로 불리기도 한다. 압구정동의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피해 인근 청담동으로 진출한 트렌드 리더들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을 추구하면서 간섭받지 않고 은밀하게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청담동 주변이 새롭게 밀려드는 갤러리와 경매회사로 황금기를 맞고 있다. 이전에도 청담동 일대와 신사동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신생 갤러리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하고, 국내 메이저급 경매회사들이 몰려들면서 청담동 일대는 미술시장의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매회사 잇따라 강남 상륙



    무게 중심의 가장 큰 이동은 우선 경매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9월 청담동을 비롯해 인접한 삼성동 코엑스, 신사동 도산대로 부근은 미술품 경매 바람으로 들썩거렸다. 서울옥션과 함께 양대 메이저 경매회사로 손꼽히는 K옥션은 청담동에 신사옥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강남 공략에 나섰다. K옥션은 9월18, 19일 가을 메이저 경매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근·현대 작품 200여 점과 해외 작품 150여 점, 고미술품 80여 점 등 출품작만 476점에 이르러 K옥션 김순응 대표는 ‘해머 프라이스(낙찰가)’를 외치기에 바빴다. 영원한 베스트셀러 박수근·김환기의 작품이 기세를 올렸고, 그밖에도 천경자·이우환·이대원·김종학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이 출품됐다.

    신생 경매회사인 D옥션은 8월28일 도산공원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9월4일 첫 경매를 개최했다. 가구 수입회사 디오리지널을 운영하던 정연석 회장은 18층 규모의 엠포리아 빌딩을 짓고 지하 1, 2층에 3300여m2(1000여 평) 규모의 경매장을 갖췄다. 엠포리아 빌딩은 아트타워로 불러도 무방할 만큼 미술을 중심으로 한 복합 문화공간을 표방한다.

    2개층 규모의 경매장과는 별도로 15, 16층은 ‘갤러리 엠포리아 서울’로 꾸미고, 1층부터 4층까지는 ‘아트 애비뉴’라 부르는 미술전문 백화점이 들어선다. 젊은 작가들의 200만~300만원대 저가 작품 거래를 비롯, 외국 갤러리가 입점해 아트숍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처럼 엠포리아 빌딩은 경매를 중심으로 한 고가의 미술품, 신진 작가들의 중저가품, 아트숍을 중심으로 일반 고객을 겨냥한 판화·포스터까지 종횡으로 미술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D옥션은 서울옥션과 K옥션의 쌍두마차로 운영되던 경매시장에 후발주자로 도전장을 냈다. 양대 경매회사와 차별화를 선언하면서 200여 점의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르누아르·샤갈·피카소·로댕·앤디 워홀·바스키아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첫 경매에서는 샤갈의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화가’가 9억7000만원, 뒤피의 ‘붉고 푸른 퀸텟’이 8억6000만원, 로댕의 조각 ‘입맞춤’이 7억7000만원, 르누아르의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은 안드레’가 7억원으로 해머 프라이스를 기록했다. 97.6%라는 경이적인 낙찰률에 거래 규모는 약 130억원대로 비교적 순항했다.

    국내 최초, 최대의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또한 이에 뒤질세라 청담동 바로 옆에서 대규모 옥션쇼를 열었다. 미술시장의 호황을 선도하며 승승장구하는 서울옥션은 9월12∼16일 소더비, 신와옥션 등 국내외 유명 경매회사와 함께 ‘아트 옥션쇼 인 서울’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었다.

    미술계 양대 축 인사동 vs 청담동

    경매장, 미술 백화점, 갤러리 등이 들어 선 청담동의 대표적 아트타워 엠포리아빌딩.

    여기에는 국내 블루칩 작가는 물론 중견 및 신진 작가, 해외 작가 등 총 300여 작가의 작품 1300여 점이 선보였다. 단일 경매 행사로는 가히 ‘버라이어티’한 물량 공세로 최근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드는 경매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복안이다. 세계적인 블루칩 작가에 속하는 앤디 워홀, 웨민쥔,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품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대형 옥션쇼는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국내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소비문화에 색을 입히다

    특히 이번 옥션쇼는 메인 이벤트라 할 경매를 9월15, 16일 개최했다. 최근 1년 사이 3배 이상 가격이 오른 이우환의 ‘선으로부터’와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을 비롯, 박수근·장욱진·천경자 등의 작품이 선보였고, 앤디 워홀·리히터 같은 해외 작가의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또한 ‘옥션쇼’라는 타이틀답게 일반 경매에 그치지 않고, 김병종·사석원 등 인기 작가 50명의 작품을 개별 부스에서 아트페어 형식으로 경매에 접목시켜 갤러리 중심의 미술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소더비와 일본의 신와, 중국의 폴리옥션 등 해외 유명 경매회사가 행보를 같이하고 있는 것도 경매회사의 ‘거침없는 하이킥’을 보여준다.

    9월 한 달 동안 청담동과 그 주변에서 잇달아 열린 3개의 경매를 통해 2000여 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이 시장에 나왔으니 가히 ‘경매 축제’ ‘경매 전쟁’이라 할 만하다.

    청담동 아트밸리에 미술시장의 돈이 몰리는 것에 더해 몇 년 사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 아트펀드도 가세했다. 청담동의 터줏대감 격인 Two Park(박영덕, 박여숙) 갤러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아트펀드 한국미술투자’는 청담동에 전시장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청담동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경매회사와 아트펀드가 몰리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청담동의 후광 효과를 꼽을 수 있다. 청담동은 1970년대 중반 강남 개발 당시 저밀도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 ‘빌라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강 조망이 가능한 최적의 입지가 부각되고 명문 경기고의 인근 이전과 영동고 신설 등 교육 여건이 좋아지면서 부촌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4월30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단독주택 공시가격’에서 상지리츠빌카일룸 2차 618.2m2(187평형) 공시가격이 40억원을 넘어서면서 아파트 부문 2위, 청담빌라 267.7m2(81평형)가 21억원으로 연립주택 부문 5위에 오르는 등 부촌으로서 위상을 떨쳤다.

    하지만 같은 부촌이라도 청담동이 미술시장의 핵심 축으로 각광받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평창동, 한남동과 다르게 전통 부자보다는 신흥 부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데 있다. 또한 연예인, 디자이너, 문화예술인 등 트렌드 리더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청담동은 패션과 문화 트렌드의 발신지가 됐다. 갤러리 같은 고급 문화가 접목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런 배경이 미술시장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청담동이 미술시장의 핵으로 떠오르는 원동력이 됐다.

    “이전에는 미술시장의 주요 컬렉터들이 재벌가 부인 등 50, 60대 여성 중심이었죠. 몇 년 전부터 고소득 전문가, 벤처 사업가 등 40, 50대 남성 컬렉터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청담동 P갤러리 오너의 귀띔이다.

    ‘돈’을 따라 움직이는 게 미술시장의 속성인데 주요 고객들이 이미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컬렉터 층의 변화는 곧 미술시장의 주요 근거지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대표적인 화랑 밀집 지역인 인사동을 중심으로 형성돼온 화랑가가 청담동 주변으로 옮겨가면서 ‘중심 이동’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섣부른 결론은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청담동 지역이 인사동과 사간동 일대, 평창동 등 기존 갤러리가 밀집한 지역과 경쟁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비싼 임차료다. 일단 뭉쳐야 커질 텐데 이게 녹록지 않다.

    새로운 실험, 럭셔리 갤러리 몰

    미술시장의 특성상 갤러리들이 한 블록을 중심으로 집중 형성돼야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소호와 첼시에 밀집한 화랑가를 들 수 있고, 중국도 베이징의 ‘다산쯔(大山子) 예술구’를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다. 인사동과 사간동 일대도 그러하다.

    그러나 청담동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여서 자본력에서 취약한 중소 갤러리들이 옮겨가기엔 힘에 부친다. 매입할 만한 건물이나 땅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고 전시하기에 적당한 공간을 임차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분위기로 봐서는 청담동 인근에 자리를 잡아야겠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술계 양대 축 인사동 vs 청담동

    청담동에 밀려 빛을 잃은 인사동이 ‘인사동미술제’ 등을 통해 부활을 꿈꾸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인사동의 명물이 된 쌈지길.

    이런 상황에 때맞춰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갤러리 타워다. 이미 첼시에는 갤러리들이 빼곡히 들어찬 건물이 많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2, 3개 이상의 갤러리가 한 건물에 둥지를 튼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실속보다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1층이나 지하층에 번듯한 전시 공간을 차리는 데다, 갤러리 오너들끼리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는 눈치 보기가 극심해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이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대용 건물이 하나같이 멋대가리가 없고 천장이 낮아 2, 3층으로 올라갈수록 전시장으로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몰려오는 갤러리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 청담동은 이미 포화상태다. 국내 최초의 갤러리 빌딩은 이런 ‘탄생 설화’를 갖고 있다.

    네이처 포엠 빌딩은 청담사거리 조금 못미처 프라다, 구찌, 아르마니 등 수입명품 플래그숍이 즐비한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뒤로는 박여숙화랑이 십수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고, 화이트월갤러리·원화랑도 있다. 큰길 건너에는 카이스갤러리, 박영덕화랑, 쥴리아나갤러리 등이 청담동 아트밸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네이처 포엠 빌딩은 2005년 준공 당시부터 미화랑 등 갤러리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말까지 10여 개 이상의 갤러리가 입성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스러우나 특별한 브랜드가 없던 주거형 오피스텔이 럭셔리한 갤러리 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해외 갤러리 지점이 청담동에 첫선을 보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말 독일의 마이클 슐츠 갤러리가 이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프랑스의 오페라 갤러리 서울점 역시 같은 건물 1층에 들어설 예정이다. 국내에서 유이(唯二)의 해외 갤러리 지점이 한 건물에 ‘동거’하게 된 셈이다. 그밖에 이화익갤러리 강남 분점이 입점할 계획이다. 박영덕, 박여숙화랑이 주축이 된 아트펀드회사의 전시장인 갤러리 C도 지난달 8일 개관전을 연 바 있다.

    이처럼 해외 유명 갤러리 지점이나 강북, 또는 지방 갤러리들의 지점, 새로 개관하는 갤러리들이 한 건물에 뭉치면서 럭셔리 갤러리 몰이라는 새로운 유행에 도전하고 있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지만 청담동 일대가 미술시장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화랑 질서를 재편하는 데 한몫한 것만은 사실이다. 임차료가 비싸 상가 분양에 어려움을 겪던 건물주는 덕분에 희색이 만면하다고 한다.

    압구정동엔 없고 신사동엔 있다

    일반적으로 청담동 갤러리는 단지 행정구역상 청담동에 소재한 갤러리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는 갤러리아 백화점 사거리에서 청담동 사거리까지 대로변 수입 명품숍의 이면 도로에 흩어져 있던 갤러리를 들 수 있다. 이곳에 모인 갤러리들은 매년 청담아트페어를 개최하며 청담동 고급문화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청담동은 아니지만 인접한 신사동 도산공원과 가로수길 주변에도 갤러리가 여럿 흩어져 있다. ‘청담동 아트밸리’는 크게 이곳까지 아울러 지칭한다.

    인사동, 사간동, 평창동 등지의 갤러리들이 지근거리에 모여 있는 것과는 다르게 청담동, 신사동 일대의 갤러리들은 넓게 퍼져 있다. 차 없이 ‘뚜벅이’로는 종일 다녀도 몇 개의 갤러리를 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의도된 불편함조차 청담동 갤러리의 스타일이다. 거의 모든 미술관과 많은 갤러리가 관람객을 위해 일요일 개관, 월요일 휴관을 하지만 유독 청담동 갤러리들만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청담동은 강남권 아트밸리의 백미다. 터줏대감 격인 박여숙화랑은 1988년 당시만 해도 미술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청담동으로 이전, 이곳이 갤러리 존으로 변모하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박영덕화랑 역시 1993년 청담동에 문을 열고 청담동 아트밸리 형성에 한몫하고 있다. 가장 ‘청담동다운’ 갤러리로는 카이스갤러리를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가산화랑, 갤러리 미, 갤러리 PICI, 더 컬럼스, 샘터화랑, 유진갤러리, 이목화랑, 주영갤러리, 쥴리아나갤러리 등이 있다.

    압구정동은 청담동과 신사동 사이에 있다. 그러나 패션과 문화 거리의 원조인 압구정동에는 의외로 갤러리가 없다. 오히려 압구정동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청담동과 신사동에 고급 갤러리들이 분산되어 있다. 압구정동엔 갤러리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이 있고, 배후에는 현대아파트 대단지가 있다. 지은 지 오래된 낡은 아파트인데도 3.3m2당 3000만원이 넘는다는 부자 아파트촌이다. 그런 곳에 변변한 갤러리 하나 없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압구정동의 번잡함, 소란스러움으로 인해 고급문화의 대표 격인 갤러리가 자리를 잡기에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재는 그렇지만 10년쯤 뒤 압구정동의 한강변 아파트들이 일제히 재건축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청담동, 압구정동, 신사동을 잇는 아트밸리가 확실히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압구정동을 건너뛰고 신사동으로 가면 제법 많은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우선 ‘예술가의 거리’로 불리는 가로수길. 앤티크한 매장들과 곧게 뻗은 은행나무길이 제법 운치 있는 곳으로 패션·인테리어숍과 갤러리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최근에는 스타일리시한 카페와 바가 속속 들어서고 있어 보는 재미, 먹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이곳에는 청담동의 접근하기 어려운 부담스러움이나 압구정동의 소란스러운 번잡함과는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가 예술적 정취를 더한다. 가로수길의 대표적 화랑으로는 예화랑을 먼저 꼽는다. 그 외에도 최근 신축한 판화전문 갤러리인 SP갤러리와 어번아트, 청작화랑이 있다.

    같은 신사동이지만 가로수길과는 조금 떨어진 도산공원 주변은 ‘메종에르메스 도산파크’가 들어서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부터 ‘느리게 걷기’ ‘플라스틱’ 같은 카페가 자리잡고 있어 이미 트렌드세터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던 곳이다.

    에르메스는 매년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차세대 대표작가들을 선정, 후원한다. 후보작가로 선정한 3명의 전시 후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을 통해 미술계에서는 인지도가 매우 높다. 건물에 있는 전시장 내부를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디자인하고 수준 높은 전시를 꾸준히 열어 미술 관객을 유혹하고 있다. 주변에는 갤러리시몬 등이 있다.

    떠나는 대형 갤러리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 전통과 미래가 동거하는 거리 인사동. 해외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들르는 필수코스 중 하나인 인사동은 ‘숨 쉬는 과거’처럼 소중하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고도(古都)의 역사가 뒷골목 구석구석에 깨알같이 박혀 있다.

    장돌뱅이 시장터 같기도, 전통문화 전시장 같기도, 골동품 벼룩시장 같기도 한 인사동에는 전통찻집부터 스타벅스까지 어제와 오늘이 뒤섞여 있다. 인사동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통문관과 골동품 상점, 한복집, 표구상에서부터 ‘관광상품’이라곤 하지만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국적 불명의 키치스러운 전통(?) 공예품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인사동은 우리나라에서 갤러리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가로운 오후에 느릿느릿 인사동길을 걷다보면 고미술의 묵향이 코끝을 간질이다가도 금세 서양화의 오일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이처럼 인사동은 전통문화, 고미술의 정취를 느끼면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발 빠르게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서화에서부터 풍경화, 추상 작품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설치미술과 미디어 작품까지 한국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전에는 인사동과 ‘화랑가’가 동격으로 이해됐다. 100여 곳의 화랑과 수십여 곳의 고미술화랑이 집중되어 있어 아직까지 화랑 숫자로는 국내 최대다. 인사동 화랑가는 수요일에 오프닝이 몰리는 것도 특징이다. 화요일이면 새 전시를 위해 작품을 설치하는 광경, 수요일 저녁이면 여러 화랑이 전시 오프닝 행사를 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작가의 지인들이나 미술관계자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은 인사동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혹시라도 수요일 저녁에 인사동에서 약속을 할 경우 예약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오프닝 행사 뒤풀이로 웬만한 음식점들은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동은 상혼(商魂)에 밀려 갤러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메이저 갤러리들은 이미 오래전에 인사동을 떠나 인근의 사간동과 소격동, 평창동, 청담동 등지로 흩어졌다. 고급 커머셜 갤러리와 메이저급 갤러리들이 대부분 인사동을 떠나고 그 빈자리는 카페와 노래방, 술집으로 채워졌다.

    특히 대부분의 화랑이 대관(貸館) 화랑으로, 미술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럼에도 아직 꿋꿋하게 인사동을 지키는 화랑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한국 미술시장의 산증인이라 할 선화랑과 관훈갤러리, 고미술품 전문 화랑의 대표 격인 동산방·학고재가 버티고 있고, 뒤늦게 인사동으로 합류한 아트사이드갤러리도 있다. 특히 기업형 갤러리인 쌈지갤러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쌈지길’은 주말이면 나들이 나온 가족, 연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퇴색해가는 인사동 화랑가의 명맥을 잇고자 인사미술제를 열기도 했다. 올해가 첫해인 인사미술제에는 가람, 노, 동산방, 선, 학고재 등 12개 화랑이 ‘미술의 거리는 역시 인사동!’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세를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인사동 지역은 자연스럽게 고미술과 대관 화랑 중심으로 굳어지는 인상이다. 많은 갤러리가 이미 사간동 등지로 이전했고, 특히 최근 청담동, 신사동에 아트밸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술계 양대 축 인사동 vs 청담동
    윤태건

    1968년 서울 출생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삼성문화재단 연구원, 청담동 카이스갤러리 디렉터

    現 아트컨설팅 회사 ‘art bridge THE TON’ 대표


    인사동과 청담동의 미술 전시장을 비교해보면 인사동은 ‘화랑’, 청담동은 ‘갤러리’라고 불러야 제 맛이 난다. 인사동과 청담동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담동과 신사동을 잇는 아트밸리는 인사동 일대의 갤러리에 비해 진보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미술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청담동 인근으로 속속 자리를 잡는 경매회사와 아트펀드회사, 신개념의 갤러리 타워를 중심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갤러리들은 무게 중심의 이동을 확연하게 느끼게 한다. 또한 서울시의 패션과 예술분야 문화지구로 지정될 예정이어서 행정 지원과 인프라도 더해질 전망이다.

    이제는 아트 트렌드마저 청담동이 선도하게 될 것인가. 인사동과 청담동의 각축은 한국 미술시장의 내일을 가늠케 하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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