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에만 대형 경매회사들의 경매 3개가 잇따라 열렸다.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 옥션쇼 인 서울’ 전시 광경.
‘대한민국 트렌드 리더 1번지’ 청담동은 한국 소비문화의 각종 유행을 선도한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가장 먼저 실험되고 소비되는 곳이자 패션과 예술, 맛과 멋을 좇는 ‘트렌드 피플’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패션과 문화의 진원지답게 디자이너와 연예인, 예술가들이 모이고, 그 거리를 끼고 있는 골목골목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다.
청담동은 한때 ‘오렌지족’ ‘야타족’이라는 신조어를 생산하며 왜곡된 향락문화의 ‘배설구’이자 첨단 소비문화의 ‘진원지’로 비난과 환호를 한몸에 받던 압구정동과 인접해 있어 압구정동과 ‘이란성 쌍둥이’로 불리기도 한다. 압구정동의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피해 인근 청담동으로 진출한 트렌드 리더들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을 추구하면서 간섭받지 않고 은밀하게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청담동 주변이 새롭게 밀려드는 갤러리와 경매회사로 황금기를 맞고 있다. 이전에도 청담동 일대와 신사동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신생 갤러리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하고, 국내 메이저급 경매회사들이 몰려들면서 청담동 일대는 미술시장의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매회사 잇따라 강남 상륙
무게 중심의 가장 큰 이동은 우선 경매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9월 청담동을 비롯해 인접한 삼성동 코엑스, 신사동 도산대로 부근은 미술품 경매 바람으로 들썩거렸다. 서울옥션과 함께 양대 메이저 경매회사로 손꼽히는 K옥션은 청담동에 신사옥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강남 공략에 나섰다. K옥션은 9월18, 19일 가을 메이저 경매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근·현대 작품 200여 점과 해외 작품 150여 점, 고미술품 80여 점 등 출품작만 476점에 이르러 K옥션 김순응 대표는 ‘해머 프라이스(낙찰가)’를 외치기에 바빴다. 영원한 베스트셀러 박수근·김환기의 작품이 기세를 올렸고, 그밖에도 천경자·이우환·이대원·김종학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이 출품됐다.
신생 경매회사인 D옥션은 8월28일 도산공원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9월4일 첫 경매를 개최했다. 가구 수입회사 디오리지널을 운영하던 정연석 회장은 18층 규모의 엠포리아 빌딩을 짓고 지하 1, 2층에 3300여m2(1000여 평) 규모의 경매장을 갖췄다. 엠포리아 빌딩은 아트타워로 불러도 무방할 만큼 미술을 중심으로 한 복합 문화공간을 표방한다.
2개층 규모의 경매장과는 별도로 15, 16층은 ‘갤러리 엠포리아 서울’로 꾸미고, 1층부터 4층까지는 ‘아트 애비뉴’라 부르는 미술전문 백화점이 들어선다. 젊은 작가들의 200만~300만원대 저가 작품 거래를 비롯, 외국 갤러리가 입점해 아트숍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처럼 엠포리아 빌딩은 경매를 중심으로 한 고가의 미술품, 신진 작가들의 중저가품, 아트숍을 중심으로 일반 고객을 겨냥한 판화·포스터까지 종횡으로 미술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D옥션은 서울옥션과 K옥션의 쌍두마차로 운영되던 경매시장에 후발주자로 도전장을 냈다. 양대 경매회사와 차별화를 선언하면서 200여 점의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르누아르·샤갈·피카소·로댕·앤디 워홀·바스키아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첫 경매에서는 샤갈의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화가’가 9억7000만원, 뒤피의 ‘붉고 푸른 퀸텟’이 8억6000만원, 로댕의 조각 ‘입맞춤’이 7억7000만원, 르누아르의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은 안드레’가 7억원으로 해머 프라이스를 기록했다. 97.6%라는 경이적인 낙찰률에 거래 규모는 약 130억원대로 비교적 순항했다.
국내 최초, 최대의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또한 이에 뒤질세라 청담동 바로 옆에서 대규모 옥션쇼를 열었다. 미술시장의 호황을 선도하며 승승장구하는 서울옥션은 9월12∼16일 소더비, 신와옥션 등 국내외 유명 경매회사와 함께 ‘아트 옥션쇼 인 서울’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