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일상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먼저 상하이를 떠올린 건 당연했다. 상하이의 한 대학에서 어학코스를 밟으면서 교민 자녀를 대상으로 영어 과외지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하루 5시간씩 주 5일 근무만으로 한국의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집 월세를 비롯한 체재비를 충당하는 것은 물론 골프 레슨까지 받고, 쇼핑에 외식까지 즐길 수 있으니 아예 상하이에 뿌리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짐을 싸서 귀국했다.
“뭘 넣었는지 어떻게 알아?”
느닷없이 ‘컴백홈’을 선언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기초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명품 잡화는 물론 자동차까지 ‘짝퉁’이 판을 치는 중국이라지만 가짜 달걀과 폐종이 만두, 석회가루를 넣은 두부가 만들어진다는 보도에, 고양이 고기로 꼬치구이를 만든다는 얘기까지 듣고는 더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홍콩 사람들조차 ‘Made in China’를 피한다는 사실도 중국 탈출을 부추겼다. 지난 8월 홍콩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슈퍼마켓에 함께 장을 보러 간 친구는 채소, 과일, 음료 같은 식품은 물론 샴푸, 치약, 세제 같은 공산품을 고를 때도 원산지 및 제조국을 꼼꼼히 살폈다. 홍콩에선 ‘Made in China’가 그야말로 ‘국산’인데 “공산품까지 그럴 필요 있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그 안에 뭘 넣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매장을 돌아보니 친구의 행동이 특별히 유난스러운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현지인들도 하나같이 제품 정보를 살피고,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것임을 크게 광고하는 진열대가 눈에 띄었다. 방송에서도 연일 중국(본토)산 물건을 두고 불거진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 정작 중국에 살고 있는 내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중국산 제품이 미덥지 않긴 했지만 같은 중국에서까지 이렇게 불신의 골이 깊은지 몰랐다.
액체 세제 덜어가는 사람들
중국산 ‘짝퉁’의 범위는 놀라울 정도로 넓다. 상하이에 정착하고 얼마 후에 휴대전화가 필요해 한국의 S사 A제품을 구입했다. 흥정 끝에 판매상은 “물건 값은 더 못 깎아주니 배터리를 하나 더 주겠다”며 선심을 쓰는 양 굴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표가 엉성했는데, 판매원 스스로 “가짜”라고 했다. 황당했지만 더는 별 소득이 없겠다 싶어 받아들고 나왔다.
‘진짜’라고 믿고 산 S사 휴대전화기와 ‘짝퉁’이 확실한 배터리를 함께 사용한 지 3개월여 만에 휴대전화 안테나가 부러지고 도장이 다 벗겨졌다. 필자의 관리 잘못을 탓할 수 있겠으나, 2003년 한국에서 구입한 휴대전화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배터리뿐 아니라 휴대전화 단말기마저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무렵, 주위에서 “가짜 배터리를 끼운 N사 휴대전화가 터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결국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미련 없이 버리고 M사의 휴대전화를 새로 구입했는데, 통화 중에 ‘지잉~’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예사고, 손끝에 전류가 느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