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IA 한국지부가 배출한 전설적인 인물로는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이 있다. 1970년대 CIA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박정희 정권의 핵 개발 계획을 알아내는 큰 공적을 세웠다. 박정희 정권의 한 관계자로부터 핵 개발과 관련한 극비 자료를 통째로 입수해 본국에 보고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한국 정보를 수집하는 미국의 IO(Information Officer)는 CIA의 ‘블랙’, ‘화이트(활동국의 정보기관에 신상이 알려진 스파이)’만 있는 게 아니다.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전세계에 배치된 미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정보부대가 획득한 인간정보, 영상정보를 취합한다. 국무부의 정보조사국(INR)도 한국 정보를 취합한다. 그뿐인가. 미 국가정찰국(NRO)은 자체적으로 첩보위성을 운용해 사진정보와 통신정보를 수집해 CIA와 국가안보국(NSA)에 제공한다. NRO는 출범 후 30여 년 동안 그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은 비밀기구. 1961년 설립됐지만 1992년에야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그 존재를 시인했을 만큼 비밀리에 운영돼왔다.
CIA, DIA, INR, NRO, NSA…
세계 각국의 정보를 흡수하는 통로로는 NSA를 빼놓을 수 없다. ‘정보의 블랙홀’이라고 할 만한 NSA는 전세계에 걸쳐 하루 30억통의 전화를 훔쳐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 설립된 NSA는 ‘No Such Agency(그런 종류의 기관 없음)’ ‘Never Say Anything(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이라는 수사에서 알 수 있듯 1990년대까지 그 실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NSA는 유선전화, 휴대전화, 팩스, e메일, 전보, 항공기의 전파를 가리지 않고 수집한다. ‘에셜론’은 통신정보를 획득한 뒤 각국의 사전(dictionary)에서 뽑은 키워드(keyword)로 정보를 분석한다. 당신이 e메일로 “미국을 폭탄(Bomb)으로 공격하겠다”는 편지를 쓴다면 NSA 주도로 이뤄지는 ‘에셜론’이 걸러낼지도 모른다. 때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학교 연극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had ‘bombed’ in a school play)고 말한 여학생이 에셜론 디렉토리에 폭탄 테러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이름과 전화번호가 등재됐다는 얘기도 있다.
NSA는 한국에도 SUSLAK(Special U.S. Liaison Advisor-Korea)으로 알려진 거점을 갖춰놓았다. SUSLAK은 한국의 통신감청 부대 777부대에 자금과 첨단 감청 장비를 제공하고 북한에서 획득되는 신호정보를 함께 분석한다. 북한발 정보의 분석력은 민족, 언어상의 이점으로 777부대가 더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밖에 9·11테러 이후 행정부 내 각 부처에 분산된 대(對)테러 기능을 통합해 세워진 매머드 조직인 미국 DS(국토안보부), 연방법 위반행위 수사와 공안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FBI(연방수사국), 항공 및 위성사진 기술문제를 담당하는 국방부의 화상지도작성국(NIMA)도 핵심 정보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듯 분야별로 운영되는 미국의 정보기구는 공식적으로 총 16개에 달한다. 각각의 기구는 고유의 업무목표와 수행능력, 자신들만의 문화, 신조를 갖고 각개약진해왔다. 실제로 운영되는 정보기관의 숫자는 45개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각 기관에서 수집된 한국 등 세계 각국의 정보는 워싱턴의 행정부 혹은 싱크탱크 관련 인사를 비롯해 CIA, DIA, INR, NRO 등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간다. 한국어 아랍어 중국어 파르시어(이란) 파쉬투어(아프가니스탄) 우르두어(파키스탄)를 구사할 수 있는 IO가 특히 주목받는다는 최근 소식은 이들 기관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신경망을 뻗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가히 ‘제국’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