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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남북정상회담 동행기

자부심, 부끄러움 솔직하게 드러낸 ‘유연한 北’

  • 신경림 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skyungrim@paran.com

신경림 시인의 남북정상회담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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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남북정상회담 동행기

노무현 대통령은 10월4일 평안남도 남포시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북한은 서해갑문을 맨손으로 건설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개성서 평양은 채 두 시간이 안 되는 거리였다. 소흥군 수곡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 내달리니 이내 평양이었다. 수곡휴게소에서는 성장(盛裝)한 미녀들이 나와 서서 우리들에게 북쪽에서 ‘단물’이라고 말하는 주스류를 대접했는데, 모두들 평양에서 뽑혀온 처녀라 했다. 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한 가지 특기할 대목은 지나는 터널마다 제대로 불이 켜져 있었다는 점이다. 작은 개울물 등을 이용한 소규모 수력발전시설이 많이 건설되어 전기사정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평양 시내에 다 와서 비로소 대통령 일행과 동행이 되어 시내로 들어갔다. 대동강을 건너는 3대 헌장탑 앞에서부터 환영 인파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중심지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인파는 완전히 거리를 뒤덮었다. 모두들 정장을 했고, 손에는 진홍·분홍·자줏빛 조화를 들고 있었다. 그 조화를 흔들면서 “겨레는 하나” “조국 통일” “만세” 등을 소리 높이 외친다. 펄쩍펄쩍 뛰는 사람도 있다.

뒤에 들으니 이날 나온 인원이 총 40만명이라 한다. 열렬한 환영이 고맙기는 하면서도, 이들이 20리, 30리 밖에서 일부러 모여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더러는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왔을 것이다.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으니 대개 걸어왔겠지. 화장실 시설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들었는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환영인파 사이를 지나는 시간이 길었던 것은 대통령이 환영 나온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환영에 답하면서 행렬 사이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환영회장은 4·25문화회관 앞 광장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도착해서 우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열 등 공식 행사가 다 끝나갈 무렵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로 왔다. 특별 수행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는 그의 얼굴은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잡는 그의 손에는 힘이 있었고, 카리스마보다는 친근감이 더 많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소탈하고 활기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행사를 마치고 특별 수행원 숙소로 정해진 보통강 여관으로 가면서 보니, 2년 전 남북작가대회에 왔을 때에 비해 궤도전차도 많아지고 행인도 많아져 거리가 훨씬 활기차 보였다. 고목이 다 된 아름다운 버드나무로 뒤덮인 평양은 곳곳에 호수가 있고 강이 흘러 마치 버드나무 숲과 호수 사이에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건물들은 거대하고 웅장하다. 그 벽에 크고 붉은 글씨로 가장 많이 씌어 있는 구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와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북쪽의 생활철학이요 삶의 가이드라인이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생활철학과 가이드라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화를 하고 화해를 하자고 온 것이니까.

이데올로기 예술의 한계

보통강 여관은 서해갑문으로 해서 호수처럼 되어버린, 버드나무가 줄지어 선 아름다운 보통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짐을 풀고 로비로 내려오니 가까운 호숫가를 산책해도 좋다고 호텔 경비원이 알린다. 이태 전 남북작가대회에 와서 고려호텔에 묵었을 때는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일절 허용되지 않았던 터라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데, 다만 다리를 건너 강 건너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단서를 단다.

떼를 지어 다리까지 200여m를 가니 거기에도 경비원이 서 있다. 다리 위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선선히 그러라고 한다. 북쪽은 그만큼 유연해진 것 같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30대 여인이 책을 펴 들고 지나간다. 무슨 책인가 보려 했지만 여인이 재빨리 책을 감추고 지나가는 바람에 보지 못하고 말았다. 얼마 뒤 한 학생이 역시 책을 읽으면서 가기에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까 표지를 보여준다. 주체사상에 관한 책이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곳도 날씨가 자주 변해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고 한다는 것이 안내원의 불평이었다. 오전에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쪽 인사들과의 좌담회가 있었다. 북쪽에서 나온 인사 가운데는 2005년의 작가회담 때 만난 장혜명 시인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는 먼저 그때 만들어진 6·15민족문학인협회의 활성화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작품과 작가의 교류를 더 확대하고 더 활발하게 하자면 자주 만나야 하는데, 금강산이나 옌볜 혹은 베이징에서만 만나다 보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서울이나 평양에서 다 같이 가까운 개성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의견에 그도 적극 찬동했다. 개성이라면 어느 쪽이나 하루로 일이 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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