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직격 인터뷰

“대통령 참모들, 포용력 없고 내편 네편 가르는 흑백논리 빠져 있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7-11-12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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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질이냐 사퇴냐? ‘인사권자의 결정’이랄 수밖에…

    청와대 고위관계자, 사실 확인 없이 헛소문으로 압박

    언론의 경질설 보도에 ‘올 것이 왔다’ 생각

    골프 회동, 야당 의원이면 어떻고 여당 의원이면 어떤가

    총선 출마설은 허황된 억측



    법무장관이 법논리 펴면서 ‘어떤 사람’의 기분 고려할 순 없어

    참여 정부, 업적 많지만 언론 정책 실패로 과소 평가

    검찰은 정치권에서 해결할 문제 개입 말아야

    국가경쟁력 연구하는 재단법인 ‘행복세상’ 설립 추진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직격 인터뷰
    ‘김폴레옹’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성호(金成浩·57) 전 법무부 장관은 단구(短軀)이지만 꽉 찬 느낌을 준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세월을 밀어내는 동안(童顔)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진기자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에 앞서 잠시 창가에 서서 포즈를 취했는데, 여간 멋쩍어하는 게 아니다. 많이 해봤을 텐데도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김 전 장관은 9월초 재임 11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악머구리 끓듯 하는 장관 인사의 가벼움이야 새삼 논할 거리가 못 되지만, 정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고 대선이 코앞에 닥친 터라 법무부 장관 교체는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교체의 주 원인으로 장관과 정권의 코드 불일치를 꼽는 데 주저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짬짜미라도 한 듯 한결같은 논조였다. 요지는 김 전 장관이 기업의 불법성을 문제 삼지 않는 듯한 친(親)기업적 발언과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대한 소신발언으로 ‘찍혔다’는 것. 청와대 참모진과의 불화설은 싸움 관전평이 주 임무인 언론의 구미에 딱 맞는 ‘양념’이었다.

    7월 하순 사의를 표명한 김 전 장관은 후임자의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뒤로하고 9월16일부터 27일까지 러시아와 스위스를 다녀왔다.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한다. 러시아에서는 기업들의 도전 정신과 CEO들의 성취 의지, 발전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스위스에 가서는 IMD(국제경영개발원)와 WEF(세계경제포럼)를 방문해 세계 발전의 추세와 미래의 물결을 보고 왔다.

    “많은 나라가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앞만 보고 뛰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러시아도 뛰고…. 중국은 뛰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날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내부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성장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게 아닌가 싶어 답답했습니다. 국가경쟁력을 살펴보면 몇 가지 부문에서 상당히 뒤져 있습니다.”

    ▼ 이번에 해외여행 갔다 오신 게 앞으로 추진할 사업과 관계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좀 관계가 있지요. 재단법인 ‘행복세상’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관 퇴임시 직원들이 선물을 주지 않습니까. 종전에는 행운의 열쇠 같은 걸 준 모양인데, 이번엔 ‘김성호의 행복세상’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선물로 줬어요. 이를 바탕으로 ‘행복세상’이라는 법인을 만들려는 겁니다. ‘행복세상’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스위스를 방문한 것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기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어요. IMD에서는 인재를 많이 양성하고 있더라고요. 세계 1, 2위를 다투는 대학원 과정도 갖추고 있고. 내가 당장 그런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트랙에 선 선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행복세상’은 그의 향후 삶의 행로와 관련된 것이기에 나중에 얘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궁금증이 생겨 말 나온 김에 설명을 더 해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 직원들이 ‘행복세상’을 선물한 것은 법무부에서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한마디로 국가경쟁력 제고지요. 국가경쟁력을 높여 없는 사람과 약한 사람, 모르는 사람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포함해 모든 국민이 다함께 잘사는 사회로 가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거죠.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 일자리를 누가 창출합니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도 할 수 있겠지만, 핵심 주체는 기업이지요. 그러려면 기업이 무한경쟁사회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죠. 제가 꿈꾸는 ‘행복세상’의 화두가 법치, 경제, 안전인데, 그중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할 생각입니다.”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직격 인터뷰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은 언론에 경질설이 보도될 때 ‘올 것이 왔구나’ 느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는 뛰고 중국은 나는데, 우리는 트랙에 선 선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유하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정부가 창의력과 시장경제는 도외시하면서 반칙과 불법에는 오히려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든지, 노동 유연성을 지나치게 저해하는 법률을 유지한다든지, 하루가 멀다 하고 갖가지 규제로 기업활동에 칼을 들이댄다든지… 도대체 정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법 가능한 정책도 내놓는 기구가 절실하다고 느낀 거죠. 주변에서 내 진심과 노력을 알아주는 분이 많이 계셔서 격려해주고 동참이나 지원을 약속해줘 내가 그동안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민간연구소를 차리겠다는 것이다. 물러난 직후 인터뷰를 했다면 달랐을 텐데, 지금 김 전 장관의 얼굴은 여유롭고 평온하다. 보기엔 좋지만, 기자로서는 불만이다. 그런 인상에서는 자극적이거나 격정적인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에 비춰 아는 까닭이다.

    ▼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만, 많은 국민이 궁금해 하던 점을 여쭤보지요. 딱 잘라 말해, 경질입니까, 사직(辭職)입니까.

    “글쎄요. 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법무장관직을 소신껏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법무행정이 바람직한 궤도로 들어섰지요. 시스템도 잘 돌아가고 있는 차에 언론에서 내 거취를 두고 몇 차례 보도를 했지요. 그래서 임명권자께 선택의 폭을 넓혀드리기 위해 사의를 표명한 거죠. 세상에 100% 이거다 할 만한 일이 많겠습니까. 경질이냐 사퇴냐 굳이 묻는다면 ‘인사권자의 결정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참여정부’ 들어와 장관 물러나는 문제로 몇 개월 전부터 그토록 시끄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언론이 키운 면이 있긴 하지만.

    “저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꼭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

    그는 6월 중순 ‘동아일보’가 경질설을 첫 보도한 지 한 달여가 지난 7월28일 청와대에 들어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 그 자리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임명권자와 나눈 얘기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적절치 않지요. 고위공직자가 그만둔 다음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임명권자가 싫어하는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공직을 떠난 다음에 이런저런 얘기, 특히 인사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정도로 정리해주시죠.”

    ▼ 먼저 사의를 밝히신 거죠?

    “그것은 뭐 자연스럽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네요.”

    ▼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를 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거죠?

    “(웃음) 예. 대화를 하다보면… 누가 딱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나오는 경우가 있지요.”

    ▼ 항간에는 청와대 참모진과의 갈등설이 돌았는데요. 일부 참모는 김 장관과 직접 부딪쳤다는 얘기도 있고요.

    “내가 꼭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면에서 견해 차이도 있었고. 그러나 이것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아무튼 저는 국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일하고 판단의 기준이 늘 국민이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가짐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입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표현이 세 차례나 나왔다. 구체적으로 말 안하면, 말하는 사람은 품위를 유지해서 좋지만 듣는 사람은 갑갑하다. 그의 처지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직격 인터뷰
    ▼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직접 김 장관에게 비리 의혹을 확인했다면서요? 저는 그런 비리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말씀하시다시피 비리 사실이 없었으니까 그것은 뭐….”

    ▼ 아니, 그건 제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고요.

    “뭐 대화 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뭐 특별한 게 없었으니 그것을 두고 제가 이렇다저렇다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 제가 궁금한 건 청와대 참모들이 장관을 경질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냐는 겁니다. 이런저런 걸 들이대며 장관을 압박한 게 아니냐….

    “그건 그쪽에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거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이미 다 정리하고 나온 처지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옳지 않아요.”

    “내겐 자리 유지할 권리 없어”

    ▼ 상당히 분개하셨던 걸로 들었는데요.

    “그렇게 썩 마음에 달가울 리는 없지요. 그런데 장관은 임명직입니다. 평생 하는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일을 해오면서 언젠가 그런 시기가 올지 모른다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또 공직자의 자세죠. 인사권자가 언제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니 받아들이는 게 맞지요.”

    청와대측이 김 전 장관에게 들이댔다는 소문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 7월 그가 춘천지검 순시차 강원도에 갔을 때 김진선 강원지사, 모 민영방송사 사장과 함께 P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는데, 그때 민방 사장이 그의 앞에서 지갑을 꺼내는 장면을 민방 노조가 촬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김 장관은 강원도에서 골프를 친 적이 없었다. 관련자들이나 해당 골프장측에 알아보면 금방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김 장관은 청와대측에 대해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느냐”며 상당히 불쾌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뒤따른 소문에 따르면 민방 노조가 김 장관과 닮은 사람을 김 장관으로 착각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그는 기자가 계속 파고들자 “그 문제는 그 정도로 해두자”며 웃음으로 덮으려 했다.

    ▼ ‘골프 치면서 뭘 받지 않았냐’고까지 물어봤다면서요?

    “그것도 그냥 둡시다. 허황된 얘기니까. 소문이라는 것은 늘 날 수 있죠. 그 소문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확인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쨌든 허황된 얘기를 두고 이러니저러니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김 전 장관은 “미래지향적으로 얘기하자”며 또 웃었다.

    ▼ 대통령 중심제에서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과의 관계는 중요하죠. 그들이 중간에서 업무를 조정하지 않습니까. 유난히 이 정권에서는 386참모들에 대한 말이 많았습니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간혹 그들과 부딪쳤을 법도 한데요. 청와대 비서진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요.

    “글쎄요. 제가 직접 부딪치기야 했겠습니까. 밑의 실무진과 얘기가 있었겠지요. 물론 장관 마음대로 정책을 결정할 순 없지요. 의견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죠. 그런데 다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견해 차이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의사소통은 그런 대로 잘됐습니다. 저는 그저 묵묵히 소신대로 일했습니다.”

    ▼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한 얘기인데요. “김 장관 사퇴가 어떤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는 사실무근이다.” 이게 사실인가요.

    “글쎄요. 뭐 표현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지 않습니까. 내게 자리를 유지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아마 바꾸시려나 보다”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직격 인터뷰
    ▼ 장관께서 사의를 표명하기 훨씬 전에 청와대는 이미 후임자 인선 작업에 들어갔죠. 현 장관도 만났고 다른 분도 만나 의사를 타진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 점을 보면 장관의 사의와 상관없이 청와대에서 이미 교체 방침을 굳힌 거지요?

    “청와대에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제가 말할 게 아니지요.”

    ▼ 사전에 전혀 언질이 없었나요.

    “인사할 때 당사자에게 미리 언질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나도 언질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을 비우고 언제든지 인사권자가 결정하면 따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겁니다.”

    ▼ 아까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언론에 경질설이 나올 때쯤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렇죠. 그런 보도가 계속 나오니까 아마 바꾸시려는가보다 생각했죠. 따로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언론보도를 보고 그런 움직임이 있나보다 싶었죠.”

    김 전 장관이 정권과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게 된 계기는 이른바 ‘친기업적 발언’이었다.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하는 기업은 형사처벌을 면해야 한다” “불법파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등의 발언으로 노조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소신 발언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다소 길게 설명했는데, 요점은 이렇다.

    “내가 장관 될 당시 분식(粉飾)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돼요. 따라서 그것 때문에 언제든지 당할 운명이거든요. 분식회계를 바로잡으려면 일단 드러내야 하는데, 그러면 검찰이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가만히 두지 않거든요. 조사나 수사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악순환이죠. 고치지 못하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거죠.

    내 말의 뜻은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거죠. 기업이 고백하면 처벌하지 않겠다, 이후로는 투명한 회계를 하라는 얘기죠. 그것을 친기업적 발언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얘기일 뿐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재벌을 편드는 게 아니고요. 전체적인 경제 수준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물론 다른 정부 부처 사람들과 견해가 다를 수 있겠죠.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내가 기업의 규제 완화만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인들도 경제적인 차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명경영, 상생경영이 다 그런 거죠.”

    ▼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부패 척결에 매진한 특수부 검사 출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기업회계의 투명성, 즉 투명경영을 강조해온 사람입니다. 부패 척결도 주장하고. 그 발언은 장관이 되고 나서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닙니다. 검사 재직시 공직비리나 기업비리 사건을 많이 다뤘습니다. 그런 수사를 하면서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사정을 잘 알게 됐지요. 물론 악덕 기업주도 있지만,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강요에 따라 불가피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주도 많습니다. 정치권의 강압적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피해자 위치에 있는 기업에 대해선 상당히 관대하게 처분했습니다. 예컨대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기업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면 알 것입니다. 물론 매수(買收)형이라고 생각되는 기업주는 구속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인은 입건도 하지 않았어요. 기업의 그런 현실을 수사를 통해 너무 잘 알기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어떤 기회를 주지 않으면 끊을 수가 없어요. 새롭게 출발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거죠.”

    “법무장관으로서 법논리에 충실했을 뿐”

    또 하나의 ‘코드 불일치’ 발언은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관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조항을 들어 노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에 제동을 걸자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된 선거법 9조에 위헌(違憲)요소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6월1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답변해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호재로 삼아 노 대통령을 몰아붙이는 한편 법무부 장관 교체 반대를 외쳤다.

    ▼ 국회에서 대놓고 대통령의 방침과 다른 의견을 내놓은 것은 각료로서 지나친 언행이 아니었습니까.

    “대통령 탄핵사건 때 헌법재판소가 이미 선거법 9조는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국법질서와 실정법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헌재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사안을 위헌일 수도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거지요. 그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정치인이나 정치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대통령까지 포함해―위헌이라 주장하거나 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그 조항을 유지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죠. 제 답변에 대해 대통령도 크게 개의치 않은 것으로 압니다.”

    ▼ 그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 쪽에서 무슨 얘기를 듣지는 않았나요.

    “실무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한테 직접 뭐라 한 적은 없습니다.”

    ▼ 공교롭게도 장관의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그 문제로 야당과 맞서는 상황에서 그런 발언을 했기에 논란이 일었지요.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적절한지 아닌지 말이죠.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법무부 장관이 법적 근거도 없이 위헌이라고 답변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장관으로서 책임 있는 답변이 아니지요. 물론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면 장관은 따라야 할 의무가 있죠. 하지만 그것은 결정이라기보다 의견이니까.”

    ▼ 행정부 수장으로서 방침을 세운 것 아닙니까.

    “학문적인 문제죠. 무슨 정책 집행이 아니잖아요. 학문적인 문제에 대해선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지요. 실정법을 집행하는 장관이 법을 아무렇게나 끼워 맞춰 설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렇게밖에 답변할 수 없어요. 헌재가 결정을 바꾸기 전엔 실정법을 존중해야 하는 거죠, 법무부 장관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국회에서 그 발언을 할 때 이미 마음을 비운게 아니냐고 추측할 만도 합니다. 그 문제가 정치쟁점이 된 상태에서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내놓았으니까요.

    “나는 가능하다면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일하고 싶었어요. 그간 직원들과 함께 추진해온 ‘법질서 바로 세우기’ 등 여러 과제를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기자들, 개별 접촉한 적 없다”

    ▼ 정책상 과오가 있거나 비리가 발견된 것도 아닌데, 대선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 주무장관인 법무부 장관을 굳이 바꿔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요. 다른 장관들은 그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인사권자의 결정이니 저한테 물어보지 마시고 바꾼 쪽에 물어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 짚이는 바가 없습니까.

    “추측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나간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도 않고요.”

    ▼ 장관께서 모르면 누가 압니까.

    “장관 같은 고위공직자는 퇴임 후 지켜야 할 금도가 있어요. 아무 이야기나 막 하고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지부동. 여간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수양의 산물이든 법조인의 습성이든, 원칙주의자임에 분명하다.

    ▼ 심지어 청와대측은 논란이 한창일 때 언론을 통해 “김 장관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얘기까지 했는데요.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므로 할 말이 없습니다.”

    ▼ 왜 그런 얘기가 나왔다고 보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 당시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신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어요.”

    ▼ 김 장관이 개인 이미지 관리와 인기에 신경 쓰는 것 아니나며 청와대가 불안해하고 불쾌해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직무를 열심히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평가를 해주신 거라면, 그런 차원의 이미지 관리라면 대단히 고마운 일입니다. 장관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것을 그런 식으로 비판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열린 정부가 아니라 닫힌 정부”

    그가 정권에 밉보였다는 근거로 꼽히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과의 골프 회동설이다. 6월3일 박 의원과 골프를 쳤는데 그 자리에서 내년 총선 출마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지역구가 경남 남해인 박 의원은 그의 동향(同鄕) 선배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소문이었다. 그날 그가 함께 골프를 친 사람은 박 의원이 아니라 한나라당 법사위원장 안상수 의원이었다. 어쨌든 이 소문 덕분에 그는 하루아침에 한나라당과 유착한 장관이 됐다.

    ▼ 야당 의원과 골프 친 것 때문에 ‘오해’를 받으셨지요?

    “잘 기억도 안 나요. 골프 칠 때는 야당 의원도 있고 여당 의원도 있죠.”

    ▼ 박희태 의원과 쳤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면서요?

    “그쪽도 같이 칠 수는 있겠죠. 누구인들 같이 못 치겠습니까.”

    ▼ 그 탓에 한나라당과 가깝다는 말이 청와대 쪽에서 흘러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 없습니다. 뭐, 내년 총선에서 특정 야당 정치인의 지역구를 물려받는다는 둥 고향에서 출마한다는 둥 다 허황된 억측입니다. 전혀 근거가 없어요.”

    ▼ 전혀 생각이 없습니까.

    “검사나 장관으로 있으면서 선거를 염두에 두고 일한 적이 없거든요. 불구문달(不求聞達· 명예나 영달을 추구하지 않는다)이라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각자가 잘하는 일을 하면 돼요. 나는 수사나 행정 쪽에는 자신 있어요. 하지만 정치는 아직 생각한 적 없습니다.”

    ▼ 노 대통령이 내년 총선 출마를 권유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요.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도 있는 얘기 아닌가요. 그게 뭐 큰 의미가 있나요. 어차피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인데.”

    ▼ 성향상 한나라당과 가깝다는 평이 있습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적도 없고 정치를 한 적도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맡길 일이지 나 스스로 어느 쪽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 대통령 참모들에 대해 장관으로서 느낀 문제점을 말해주시겠습니까.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열심히 추진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생각을 포용하지 못하는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어요. 그만큼 순수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민주화운동 과정에 흑백논리의 행동양식이 있었거든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가치, 뭐 이런 게 발전적으로 승화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열린 정부가 돼야 하는데, 자신들의 이념이나 목표만 옳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닫힌 정부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점 때문에 언론과의 관계도 실패하지 않았나 싶어요. 발전적 긴장관계 또는 공존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탓에 일을 많이 하고도 실제 업적보다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지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현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사람이라 닫힌 문을 열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검찰은 의혹해소기관 아닌 수사기관”

    ▼ 한나라당은 김 장관 경질에 대해 “소신 언행에 대한 보복인사이고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논평했는데, 어떻게 봅니까.

    “후임 장관 인사청문회도 잘 마무리됐고, 다 끝난 문제 아닙니까. 어떤 정당의 정치적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 내가 의견을 내는 것도 적절치 않고요. 그 정도 하고 넘어갑시다.”

    그가 7월12일 춘천지검을 순시하면서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명박씨 관련 수사에 대해 한마디 한 것도 논란을 일으켰다. “김재정(이명박 후보의 처남)이 고소를 취소하면 수사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게 요지였다.

    ▼ 검찰총장이 적극적 수사 의지를 내비치고 일선 검찰에서 열심히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수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검찰은 수사기관이지 의혹해소 기관이 아니지요. 수사기관은 늘 기소를 전제로, 기소가 가능한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하는 게 원칙입니다. 명예훼손죄는 친고죄잖아요. 친고죄는 적법한 고소가 있어야 수사와 기소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고소가 취소되면 검찰의 공소권이 없어지죠. 기소할 수 없는 경우에는 수사를 안 하는 것이 옳지, 진상규명 차원에서 수사를 계속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밝힌 겁니다.”

    ▼ 지나친 법논리 아닌가요. 국민적 관심사인데….

    “검찰은 국민적인 관심사를 해결해주는 기관이 아닙니다.”

    ▼ 검찰은 고소 취소 후에도 계속 수사하지 않았습니까.

    “다 범죄 혐의를 전제로 수사했지 혐의가 없는데도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수사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하여튼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발언이 또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거죠.

    “뭐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 사건은 법논리 딱 그대로인데.”

    ▼ 장관 말씀을 들어보면 논란이 된 발언 하나하나가 다 정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청와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거나 심기를 건드린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까.

    “코드나 심기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옳지 않은 얘기를 할 수는 없는 거죠. 법무부 장관이 법논리를 펴면서 이것 때문에 어떤 사람의 기분이 어떨까 하는 점까지 고려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대선후보 관련 수사를 두고 검찰 수뇌부와 달리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는데요.

    “검찰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덕목은 ‘공정(公正)’입니다. 공정성을 의심 받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요. 정치적으로 해결할 분야에 검찰이 휘말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검찰 수뇌부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FBI 같은 전문수사기관 있어야”

    ▼ 정치적인 사건은 검찰 수사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본래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은 과장이 심하고 사실 여부를 가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면이 있거든요. 그런 것을 일일이 사법적 잣대로 재는 것은 좀 위험하죠. 공정성을 잃을 수 있거든요. 즉 언론에 보도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수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어떤 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건 검찰이 자제해야 해요. 물론 범죄혐의가 뚜렷하거나 고소가 있다면 수사해야겠지만.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다 교과서적인 얘긴데, 그걸 말하는 게 이토록 어렵네요.(웃음)”

    ▼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의 비리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놓고 막상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자 정치검찰이 어떻다는 둥 왜 수사를 확대하느냐는 둥 반발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보셨습니까.

    “정당이 하는 일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요. 정치인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죠. 검찰은 수사할 근거가 있으면 하는 거죠. 없으면 안 하는 것이고.”

    법무·검찰 개혁은 ‘참여정부’의 중요한 개혁과제 중 하나였다. 초대 강금실 장관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개혁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용두사미 내지는 구두선이 됐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김 전 장관의 의견을 들어보자.

    “현 정부의 개혁방향은 대체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 큰 어려움을 겪어 의도한 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면은 있지요. 예를 들어 사법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공직부패수사처 설립이나 검·경수사권 조정은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고요.”

    ▼ 공직부패수사처는 애초 검찰이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진척되지 않았죠.

    “검찰이 처음엔 좀 반대했죠. 기소권까지 갖는 강력한 기구를 만들려 했거든요. 이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등이 한자리에 모여 법안에 합의했습니다. 검찰로서는 수사기능을 다른 기관과 공유한다는 것이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죠. 그런데 급변하는 사회·경제 현상에 맞춰 수사를 하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하거든요. 지금의 검찰 조직과 인사체제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FBI처럼 소수정예로 구성된 전문적인 수사기관을 만들어 효율적인 수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 검찰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문지기가 스스로를 감시하기 힘들 듯 수사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준수하는지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법률적인 판단이나 기소는 검사의 도움을 받더라도 전문적인 수사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범죄에 대해.”

    ▼ 기소권은 없는 거죠?

    “갖지 않습니다. 결국 검사의 지휘를 받는 기구인 셈이죠. 영장이나 기소로 통제받는 거죠.”

    ▼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공직부패수사처가 설립되면 국회의원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행이 통 안 되더라고. 아무리 통과시켜달라고 부탁해도.(웃음)”

    ▼ 장관 재임 중 중점적으로 추진한 업무나 내세울 만한 성과라면 어떤 게 있습니까.

    “불법과 반칙이 있는 곳에 처벌과 손해가 있다는 원칙, 불법집단행동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통한 법질서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전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법제를 정비했습니다. 기업 관련 법제도 개선했고요. 외국인 정책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를 만들어 새로운 외국인 정책을 수립하고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을 만들어 국제화시대에 대비했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방문취업제를 도입했고요. 이민행정콜센터도 만들고 ‘세계인의 날’도 지정했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문화적으로 동화할 수 있는 정책을 5년에 한 번씩 수립하도록 틀을 짜놓았어요. 외국인과 결혼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권력형 비리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부”

    ▼ ‘참여정부’의 국정운영과 개혁의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미FTA라든가 부동산, 부패 척결, 지역균형 발전 등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과감하게 추진한 점은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역대 정부 중 참여정부가 권력형 비리에서 가장 자유롭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재벌이나 기존 관료 조직 등 이른바 기득권층과의 연결고리가 약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부가 그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포용력이나 유연성이 부족해 실제 업적보다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가 선진강국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시급할까요.

    “국가경쟁력이지요. 이제 FTA 등으로 경제는 시장이 지배하는 시대가 옵니다. 국가의 임무는 치안 유지나 국경 관리에 국한되고요. 이번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 가서 보니 2007년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29위더군요, 55개국 중에서. 중국은 15위고요. 우리의 경제국력이 세계 12위인데 왜 이럴까. 그 원인을 가만히 분석해 보니 규제 분야에서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사관계가 몇 등인지 아십니까. 꼴찌인 55위입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일부 산업 분야와 인터넷 등 IT 쪽으로는 잘 발전해 있습니다. 그런데 노사관계, 경제 규제, 기업 회계 면에서 몹시 취약합니다. 이런 점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죠.”

    김 전 장관의 검사 관운(官運)은 평범한 편이었다. 갖가지 대형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최고의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검사장에 오른 데서 만족해야 했다. 차관급인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에 임명될 때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않았다. 검사로서는 끝난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에 올랐으니 과연 인생 새옹지마다.

    “한직 돌다보니 좋은 점도 있어”

    김 전 장관은 검사 재직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에 대해 묻자 몇 가지 수사사례를 들었다.

    “1996년 서울지검 특수2부장 시절 태아 성감별을 해주는 의사들을 구속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신생아 성비(性比)가 1994년 기준 여아 100명당 남아 115.5명이었어요. 셋째아이의 경우 여아 100명당 남아 205.9명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났죠. 넷째는 더해 100명당 237.7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매년 전체 여아의 8.9%인 2만9000여 명이 중절수술 등으로 태어나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죠. 성감별로 그렇게 된 겁니다. 그 수사로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감사공문을 받기도 했어요.”

    그밖에 서울지검 동부지청장 시절 상습적인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죽인 여성을 불구속 기소한 일,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당시 전동차 내장재가 가연성 소재로 된 점을 확인해 납품업체 대표들을 구속하고 전국 전동차 내장재를 교체하는 계기를 만든 일 등을 꼽았다. 또 장관 재임 중에는 모교인 부산 거제초등학교 학생 32명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몇 차례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검찰이 유난히 인사에 민감한 조직이라 그런지, 검사들에게 인생의 위기를 물어보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을 때를 꼽는 사람이 많다. 김 전 장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00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지낼 때입니다. 어떤 기초단체장을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권력 고위층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검찰 상부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아 검사장 승진도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힘들게 검사장 승진은 됐지만, 계속 한직으로 돌아다녔어요. 참 어려웠던 시절이지요. 그때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항상 자신의 직을 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택의 문제죠. 나는 불이익이 예상되더라도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그냥 했어요. 한직을 돌다보니 좋은 점도 있더군요. 서예를 배웠어요.”

    그는 삶이 고단할 때마다 서예를 통해 심신을 추스른다고 밝혔다.

    “바쁜 자리에 있으면 서예를 못해요. 서예하는 동안엔 잡념이 없어지고 편안해져요. 또 서예엔 나쁜 말이 하나도 없어요. 다 좋은 글귀죠.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니 ‘한고청향(寒苦淸香)’이니 하는 말들을 다 서예하면서 배웠지요.”

    가슴에 품고 있는 사생관을 묻자 ‘처렴상정(處染常淨)’을 꼽았다. 장관 퇴임사에도 등장한 말로,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 후배검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검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정무사(公正無私)입니다. 검사가 아무리 권위를 갖고 군림하더라도 사적인 이해관계로 얽혀 공정성을 잃어버리면 신뢰를 잃게 됩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같이 되는 거죠.”

    ▼ 어릴 때 꿈꾸던 인생과 실제 인생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어린 시절에야 누구나 장밋빛 인생을 그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가시밭길도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도 있더군요. 중요한 건 삶의 순수성입니다.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설사 내가 바라던 어떤 지위에 오른다 해도 만족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늘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뭐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싱그럽게 살겠다는 얘기도 하면서.”

    바둑 지고 나서 절에 처박혀 바둑공부

    그의 삶을 이끈 원동력으로 전력투구와 승부욕을 꼽을 수 있다. 뭐든지 한 가지에 빠지면 어느 수준에 오를 때까지 몰입한다. 바둑이 그랬고 당구가 그랬고 서예가 그랬다. 사법고시 합격도 승부사 기질 덕을 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그가 아마 5단의 바둑 고수라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바둑에 얽힌 일화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가 바둑을 배운 건 대학 1학년 때다. 어느 날 자칭 15급인 학생이 바둑을 두자고 했다. 이전까지 바둑을 둬본 적 없는 그는 두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 들은 다음 대국을 했다. ‘당연히’ 그의 말(馬)은 거의 다 죽었다.자존심이 상한 그는 방학 때 바둑판과 바둑책을 들고 절에 들어갔다. 한 달간 바둑만 두다가 하산했다. 다시 그 친구와 붙었다. 그 친구는 자신은 8급이 됐으니 너무 수준 차이가 난다며 상대해주지 않으려 했다. 겨우 설득해서 두었는데 깨끗하게 설욕했다. 여세를 몰아 더욱 매진한 그는 졸업할 때쯤 1급 실력을 갖췄다. 대학 졸업 후 사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바둑을 중단했고 바둑 둘 때의 집중력으로 2년 만에 합격했다.

    김 전 장관은 당분간 ‘행복세상’ 홈페이지 운영과 법인 만들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변호사 개업은 생각지 않고 있다. 퇴임 후 믿을 만한 친구들이 경영하는 중소기업 몇 군데와 법률자문계약을 맺었다. 그 수입으로 법인 운영과 사무실 유지비를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 다시 여쭤보겠는데, 총선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까.

    “당분간 이 일만 하려 합니다.”

    ▼ 만약 정치권의 ‘콜’이 있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런다 해도 지금으로선 별 생각이 없습니다.”

    ▼ 한나라당에서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여튼 나는 이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가 “오늘 너무 점잖게 질문한 것 같다”고 돌려치자 그는 “속에 든 것을 다 빼먹으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허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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