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본 도쿄의 젊은 직장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우코탄멘(왼쪽)과 가게 메뉴판.
그 추위 속에서 20분가량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음식 주문대 앞에서 각자의 메뉴를 선정하고 표를 받은 후, 식권 판매대 옆에 놓인 포켓휴지를 하나씩 집어 들고 다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이 집은 매운 라멘(ラメン)으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게다. 그중에서도 모우코탄멘은 온통 빨간색 국물이다.
마침내 나도 자리를 잡았다. 옆에 앉은 일본인 고객들이 라면 먹는 모습을 보니 모두들 얼굴이 뻘겋고 연신 쏟아지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다. 주문을 기다리며 하나씩 챙긴 포켓휴지는 바로 그 땀을 닦는 데 쓰인다. 옆에 앉은 다카야마라는 20대 회사원에게 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땀을 닦으면서 “매우 맵지만 먹고 나면 왠지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먹게 된다”고 답했다. 겨울에 모우코탄멘을 먹으면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면서 마치 온천욕을 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다음날 저녁에는 도쿄의 고마바에 있는 ‘고이노보리(鯉のぼり)’라는 상호의 이자카야(居酒屋·일본식 선술집)에 갔다. 도쿄대학에 미리 와 있던 한국인 교수가 이 집에 매운맛과 관련한 꽤 재미있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2층 실내로 들어가니 과연 흥미를 자극할 만한 선전 패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죽음의 소스세트(Deathソスセット)’다. ‘매우 매운 기분을 제공한다’는 부제가 붙은 세트메뉴 설명에는 칠리페퍼를 재료로 만든 소스의 매운 정도에 따라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고 쓰여 있다.
그 아래를 보니 “가장 매운 것은 먹을 때에 주의하십시오. 믿기지 않는 매운 기분을 본점에서 느껴보십시오. 먹고 난 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본점에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매운 것이 좋더라도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흡사 경고문 같다. 얼마나 매우면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까지 붙였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바로 ‘죽음의 소스세트’를 시켰다.
그러나 세 가지 소스 어느 것도 내 입에는 그다지 맵지 않았다. 다만 칠리페퍼의 톡 쏘는 매운맛이 약간 자극적일 뿐이었다. 반면 함께 간 일본인 친구는 무척 맵다고 했다. 식당 주인 말에 따르면 ‘죽음의 소스세트’를 주문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고 한다. 다만 객기를 부리는 대학생들이 와서는 서로 경쟁이라도 할 양으로 주문을 해 누가 더 매운 것을 먹는지 시합을 한다고 했다.
모우코탄멘이든 ‘죽음의 소스세트’든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운맛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들이 즐겨 먹는 매운맛은 주로 칠리페퍼로 알려진 핫소스에서 나온다. 도쿄와 가까운 지바현 난소우 지방에 “고추를 먹으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매운맛을 경계하던 일본인들이다. 그러던 그들이 왜 갑자기 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했을까. 무슨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