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4만5600쌍이 결혼했고 12만4600쌍이 이혼했어요. 그중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던 노총각이 3만8000여 명이에요. 이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 집 일이 될 수 있고 내 형제의 일이 될 수 있는 거죠.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혼으로 고아가 생긴다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오 판사로부터 소개받은 판사는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손왕석(孫旺錫·52) 부장판사. KBS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두 명의 조정위원과 함께 부부의 주장을 귀담아 듣고선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탤런트 신구씨를 연상하면 된다. 손 부장판사는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을 재판 전에 소환해 분쟁을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한 달 평균 150쌍을 만난다고 한다.
공증비 누가 내느냐로 다퉈
6월30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가정법원 2층 민원실에 도착했다. 마침 이혼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부부가 로비에서 큰소리로 다투고 있었다. 공증에 드는 돈을 서로 내지 않으려는 다툼이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한평생 같이 살자던 부부가 ‘양육비와 자녀 면접교섭권을 적은 각서를 공증하자’고 합의하고는 정작 2만~3만원의 공증비를 누가 내느냐는 문제로 다투다니…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돈보다는 감정의 분쟁이리라. 이혼은 정말 전쟁보다 더한 전쟁일까.
서울가정법원 건물은 깨끗하고 산뜻했다. 일반 법원과 달리 판사실에 이르는 길이 개방되어 있었다. 10평(33m2) 남짓한 손 판사의 방에는 공기정화용 식물과 나무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서초동 법원 판사실 중에서 최고의 청정공간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이혼하려는 부부들에게) 판사를 만나는 단 몇 시간만이라도 머리를 식혀주고 싶어 나무를 많이 갖다놓았다”면서 “가정법원에 와서 인생을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판사생활이 내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어요. 형사재판을 할 때는 사악한 기운에 휘둘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사악함을 응징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적절한 형량을 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에 비해 민사재판은 형사재판보다 무게는 덜했지만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민사재판은) 법리와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를 따져 결론을 내리는 일종의 수학문제입니다. 형사재판에서는 답을 푸는 학생(판사)에 따라 결론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열 사람이 풀어도 답이 같아야 합니다. 전 가정법원이 좋아요. 짐이 좀 가벼워진 것 같아요.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니라 부둥켜안거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손 판사는 누구에게도 호인으로 비칠 인상이었다. 훤칠한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그는 맑으면서도 깊고 굵으면서도 선명한 음성을 지녔다.
▼ (가정법원이) 새 건물이라서 깨끗하고 좋아요.
“이 건물, 새로 지어서 환경이 좋긴 한데 가정법원으로는 별로예요. 본래 가정법원으로 지은 게 아니었어요. (가정법원은) 일반 법원청사와 분리해 지을 필요가 있어요. 법원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나게 지어야 합니다. 편안한 쉼터로 지어야 하는 거죠. (가정법원은) 고민을 해소하고 토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해요. 가령 이혼하려는 부부가 들어오다가 잠깐 앉아 ‘이혼을 꼭 해야 하나’ 하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벤치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정부에 요구하면 잠꼬대한다고 그러겠지만요. (가정법원에는) 부모 따라온 어린아이가 많아요. 그런데 법원이 차량으로 혼잡한 도로변에 붙어 있어 매우 위험해요.”
▼ 우리나라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3위라는데, 손 판사께서는 이혼율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 5년간 이혼재판을 전담했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