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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Asia-신동아 특약

민주국가 지도자들의 독재자 다루기

  • 글·월터 C. 클레멘스 Jr.| 보스턴대 정치학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

민주국가 지도자들의 독재자 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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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과의 협상을 고민하는 미국의 딜레마는 외교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는 더 큰 선(善)을 위해서 민주국가 지도자들이 테러와 폭정을 일삼는 독재자들과 마주하고 협상을 해나가야 하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이런 고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구소련과 리비아 등을 두고 이 같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이때의 경험은 북핵(北核)이라는 난제를 마주한 미국과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 최근 저서 ‘Getting to Yes in Korea’를 통해 이 문제에 천착한 관련 전문가의 글을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민주체제가 독재정권을 상대로 협상을 벌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며, 정말 유용하고 필요한 일인가? 그렇다면 민주국가 지도자들은 그들의 상대를 직접 만나서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협상을 통해 단순한 기술적 안보협정 수준 이상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가 때로는 위협적인 독재정권을 억누르기보다는 포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독재자 대부분의 생각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고, 평화를 촉구하는 유권자의 압박을 아예 무시해버린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독재자가 조약에 서명을 한다 해도 상황만 허락한다면 언제라도 그 조약을 파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신중하면서 좀 더 희망적 시각의 분석가들은 위의 질문에 대해 제한적 의미로 “그렇다” 라고 답한다. 즉 생존을 비롯한 기타 안보 문제가 걸려 있다면, 민주주의 국가 못지않게 독재정권 또한 무기 및 기타 협정 체결 및 준수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경고에 동의한다. “신뢰하되 검증하라(Doveryai no proveryai).”

‘상황이 변해도 그대로?’

사실 미국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악당’들과 대화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예외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 독재정권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사실상 모든 협상 가능성을 배제했다. 이전에 보여줬던 대(對)러시아, 중국, 리비아 정책과는 달리 미국은 과거의 사슬을 끊고 바깥세상과 손을 잡고자 하는 북한 내 세력을 찾아내 이들을 지원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2009~10년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는 북한에 다음과 같은 프랑스 격언을 생각나게 해주었을 것이다. “상황이 더욱 변할수록, 상황은 더욱 그대로다(Plus 괶 change, plus c’est la meme chose).”



미국과 러시아 간 군축 및 기타 안보 문제에 관한 협상은 1940년대에 시작됐고 21세기까지 계속됐다. 양국 협상은 1950년대 말에야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1963년과 1964년에 몇몇 제한적인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이는 1968년 핵확산 금지조약(NPT)으로 이어졌고, 1970년대 대탄도탄 요격 미사일 및 기타 전략적 무기 조약, 1987년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1990년 유럽 재래식 무기 감축 조약, 그리고 1991년과 1993년에는 두 개의 전략 무기 감축 조약이 체결됐다.

10년 넘게 으르렁대며 싸움과 협상을 되풀이하던 미국과 리비아는 2003년 리비아의 대량 살상 무기 포기를 담은 합의안을 타결했다. 미국과 영국 및 국제단체의 시찰단이 리비아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과 화학무기 및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에 나섰다. 2005년 5월2일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였던 스티븐 래더메이커는 핵확산방지 검토회의에서 리비아의 선택은 “지금과 같은 핵확산방지 규범이 지배하는 세상에 핵확산방지조약 준수 국가가 되는 것은 결코 늦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리비아는 그 결정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1981년 중단됐던 미국과 리비아의 외교 관계는 2006년 복원됐다.

공화당 및 민주당 지도자 대다수는 구소련과 맺은 무기 관련 조약을 승인하는 반면, 고위급 공화당 의원들은 북한과의 거래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1994년의 ‘기본 협정’이 2002년에 파기됐을 때 공화당 일각에서는 “이미 경고했던 것이다”며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협정을 체결할 때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주요 요인들은 다음표에 정리돼 있다. 구소련과 리비아의 경우 대부분의 요인이 군축 협정 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했거나 적어도 중립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소련과 리비아의 경우와는 달리 같은 요인도 북한의 군축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봉쇄와 포용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은 구소련에 대해 포용보다는 봉쇄 정책을 택했다. 하지만 구소련과 유럽 국가들은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냉전체제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58년 미국과 구소련은 광범위한 문화 과학 분야 교류를 시작했다. 미국은 구소련의 독재적이면서도 때로는 위협적인 정권에 대해 완화하고 변형시킨다는 대 원칙 하에 봉쇄 정책과 포용 정책을 병행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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