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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경영을 묻다 | 마지막회

인간적 아웃라이어가 되어라 ‘채용’되지 않고 ‘초빙’될 지니

‘88만원 세대’ 공자, 한국 청년에게 고함

  •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인간적 아웃라이어가 되어라 ‘채용’되지 않고 ‘초빙’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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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가운데 자공은 사업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다. 재산을 불려 큰 부자가 됐는데, 사마천이 춘추전국시대 ‘재벌’ 열전을 서술하면서 자공의 자리를 마련해놓을 정도였다. 조금만 인용하면 “공자 제자들 가운데 자공이 가장 부유했다. 또 다른 제자 원헌이 쌀겨를 먹으며 달동네에 숨어 산 데 비해 자공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돈을 싸들고서 제후들을 방문했다.”(‘사기’ ‘화식열전’) 장사꾼으로서 자공이 돈 버는 재주는 공자도 인정한 터다.

공자, 말씀하시다. “자공은 타고난 부자가 아닌데도 재산을 잘 불리고, 계산을 하면 꼭꼭 들어맞는다니깐.”(子曰, “賜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논어, 11:18)

이렇듯 이재(理財)에 밝은 자공의 재능과, 그를 둘러싼 상업적 환경은 자연히 대화의 바탕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다음에서 보듯 상거래에 비유해 질문을 취하는 방식이 꼭 그렇다.

자공이 스승에게 여쭈었다. “아름다운 옥구슬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궤짝 속에다 감춰둬야(藏)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값을 구(求)하여 팔아야 할까요?”

공자, 말씀하시다. “팔아야지. 팔아야 하고말고! 다만 난 제값에 팔리길 기다리고(待) 있나니라.”(子貢曰, “有美玉於斯, ·#53800;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논어 9:12)



채용이냐, 초빙이냐

이 대화 속에 드러나는 공자의 ‘취업철학’을 좀 깊이 살펴보자. 자공이 서두를 뗀 ‘아름다운 옥구슬’은 공자를 은유한 것이다. 제자의 눈에 스승의 지혜와 재능은 마치 빛나는 옥구슬로 비쳤던 것이리라. 지금 자공은, 스승의 빛나는 재능이 사회에 쓰이지 않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동시에 여러 나라를 방문해서 평화사상을 설파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할 자리(직장)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 처신도 의아하다.

이에 혹시 스승이, 말씀으로는 참여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노자나 장자가 주장한 은둔 지향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고서 자공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궤짝 속에다 감춰둬야(藏)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값을 구(求)하여 팔아야 할까요?”라는 물음이다. 상인인 자공에게 세상만사 이치의 핵심은 그게 재능이든 재화든 ‘팔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스승의 응답이 묘하다. 공자는 거듭 ‘옥구슬은 팔아야 한다’라고 못을 박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제대로 값을 쳐줄 장사꾼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기다린다’(待)에 공자의 속셈이 들어 있다. ‘기다림’이라는 말에는, 직장을 얻는 것이야 천번만번 옳지만 그렇다고 헐값으로 아무에게나 몸을 팔 수 없다는 뜻이 깃들어 있다. 여기서 사제간 대화는 ‘팔 것인가, 말 것인가’의 차원을 뛰어넘어, ‘구하느냐(求), 기다리느냐(待)’의 차원으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러면 ‘구한다’와 ‘기다린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직장을 구한다’라고 할 적엔 직장이 목적이 되고 ‘나’는 그 수단이 된다. 즉 ‘구직’에는 자기 재능을 그 직장에 팔겠다는 조건이 전제돼 있다. 구직의 차원에서는 직장이 우선이고, 사람은 거기에 소용되는 수단이 된다. 요컨대 직장이 주체요, 사람은 도구다. 그렇기에 직장을 구하려 한다면 그가 가진 몸뚱이와 지식은 직장에 소모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좋은 값을 구하여 팔아야 할까요?”라는 자공의 교묘한 질문 가운데 ‘팔아야 함’은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구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배고픔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빙을 기다리지 못하고, 구직의 길로 뛰어드는 까닭은 육신의 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친 밥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어도 즐거움(樂)이 그 가운데 있나니. 의롭지 않은 재산과 명예는 내겐 한낱 뜬구름과 같도다.”(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논어, 7:15)

그러나 이런 안빈낙도의 삶이란 지나치게 높은 경지가 아닐까? 특히 화폐의 크기로 가치를 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친 밥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어도 즐거움(樂)이 그 가운데 있다”는 따위는 시대착오적인 말이 아닌가. 그런데 공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꼼꼼하게 계산을 해보면 구직이 아니라 초빙을 기다리는 길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면서 또 풍요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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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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