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박용인
“어서 오십시오. 자,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40대쯤의 사내는 안내인 같다. 앞장서 걷는 사내의 뒤를 따라 윤기철과 정순미는 건물로 들어섰다.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넓다. 그러나 불을 환하게 켜놓았지만 인기척이 없어서 대리석 바닥에 셋의 발걸음소리만 울렸다. 사내가 멈춰 선 곳은 복도 오른쪽 방이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연 사내가 비켜서면서 말했다. 방안으로 들어선 윤기철은 원탁 안쪽에 앉아 있는 오영환을 보았다. 오영환의 옆쪽에도 사내 하나가 또 있다.
“아이고, 윤 선생, 어서 오시라요.”
커다란 목소리로 말한 오영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쪽 사내도 웃음 띤 얼굴로 조금 늦게 일어난다. 오영환보다 직급이 높은 것 같다.
“평양에서 오신 전성일 동지시오.”
오영환이 사내를 소개했다.
“윤 선생 말씀을 듣고 만나보시겠다고 하셔서.”
“반갑습니다. 윤 선생.”
손을 내민 전성일은 50대쯤 되어보였다. 오영환과 비슷한 연배였는데 마른 체격에 후줄근한 양복 차림이다. 전성일은 정순미에게 머리만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원탁에는 이미 요리가 가득 놓여 있었지만 마치 전시품 같았다. 김치 접시는 꽃무늬가 박혀 있고, 꽃병으로 보인 것은 술병이다.
“자, 드십시다.”
전성일이 윤기철에게 권하고는 수저를 들었다.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역시 전성일이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갖가지 요리가 있었지만 어디 맛을 볼 여유가 있겠는가? 건성으로 먹고 건성인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밥그릇이 절반쯤 비워졌을 때 전성일이 물었다.
“부친께서는 뭘 하시지요?”
“예, 개인택시를 하십니다.”
선뜻 대답한 윤기철이 덧붙였다.
“한국에는 개인택시라고 개인 소유의 택시가 있지요. 일반 택시하고는 다른….”
“압니다.”
웃음 띤 얼굴로 전성일이 말을 받았다.
“오래 택시를 하셨습니까?”
“예, 한 30년….”
“개성에 오실 때 부친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예, 잘 갔다 오라고….”
이미 뒷조사는 다 해놓았을 것이므로 윤기철은 똑바로 전성일을 보았다. 아버지 윤덕수는 6·25 같은 전쟁이 또 일어난다면 당장이라도 총 들고 나설 양반이다. 윤덕수가 자신의 월남전 참전과 윤기철의 개성공단 파견을 같은 맥락으로 본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그때 전성일이 된장국을 떠 먹고나서 다시 물었다.
“윤 선생은 북조선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글쎄요.”
수저를 내려놓은 윤기철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대답했다.
“그 핵을 한국에다 쏠 건 아니지요?”
“아,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