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나선<br>제임스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궁리
흥분한 청년은 서른일곱 살의 영국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이고, 멀뚱멀뚱했던 청년은 갓 스물다섯 살의 미국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었다. 이들이 바로 20세기 최고의 과학적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디옥시리보핵산(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학자다. 이 발견은 물리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버금가는 생물학의 쾌거다. 인간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짐에 따라 전 세계에 DNA 연구 열풍이 일어났고, 생명과학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거듭했다.
이들의 발견은 같은 해 4월 25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900단어 남짓하고 1쪽에 불과한 논문으로 발표돼 세상을 뒤흔들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이라는 제목의 이 짧은 논문은 두 사람을 최고 과학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여기에 DNA의 구조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논문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단서가 됐던 ‘로제타스톤’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썼다. 이들은 9년 뒤인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6년 후인 1968년 왓슨은 DNA 구조 발견의 전말을 소설처럼 쓴 책을 단독으로 펴냈다. ‘이중나선’(원제 The Double Helix: A Personal Account of the Discovery of the Structure of DNA)이란 제목의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DNA 구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그리 많지 않다. 위대한 발견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뒷담화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왓슨은 연구 업적을 앞다퉈 이뤄내기 위해 과학자들끼리 펼치는 치열한 신경전과 암투, 갈등, 속임수, 실패와 좌절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저자 특유의 직설과 유머가 포개져 과학에 대한 재미까지 돋운다.
이 책에는 연구에 대한 왓슨의 몰입과 집착이 남다르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영화 관람을 무척 즐긴 왓슨은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DNA 모형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난방장치가 고장 난 기차에서도 DNA에 몰두했다. “추위에 떨던 나는 신문지를 덮었고, 그 여백에 낙서를 시작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DNA가 두 가닥으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는 훗날 노벨상 공동 수상자가 된 모리스 윌킨스가 자신의 누이동생 엘리자베스 왓슨과 함께 점심식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미인계를 꿈꿨다. ‘두 사람이 사귀면 윌킨스와 더불어 DNA에 관한 X선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는 장면은 성취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다.
그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즐길 줄 아는 성격을 지녀 난관을 무리 없이 돌파한 것 같다고 털어놓으면서 과학자로서의 미래를 낙관한다. “과학자의 생활이란 게 지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퍽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책은 과학자로 성공하는 비결에 사교성이 포함된다는 걸 은근히 드러낸다. 왓슨은 뛰어난 두뇌, 성실, 신중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돕도록 했다고 썼다. 실제로 고독하게 연구실에 틀어박혀 실험만 하고, 너무나 뛰어나서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거나, 젊은이의 창의력과 의욕을 무시한 사람은 경쟁에서 졌다. 반면 왓슨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 만한 사람에게 물었다. 경쟁자든, 자신들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다가가 정보를 얻고 의견도 구했다. 책에 동료 과학자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과는 상반된다.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과정에는 전설적인 성공담만 있는 건 아니다. ‘이중나선’은 왓슨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지만,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왓슨은 글 들머리에서 대뜸 공동 연구자였던 크릭이 겸손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촌평하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