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최고의 ‘소리꾼 부녀’ 왕기철·왕윤정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4-22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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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대통령상 수상 명창들 경연 ‘광대전’ 우승
    • 딸 왕윤정, 신세대 판소리꾼 경연대회 우승
    • 동생 왕기석도 전주대사습 장원…형제명창
    • 스승 조상현 명창과의 악연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역대 최고의 한국 영화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게 ‘서편제’다. 딸 송화(오정해 분)를 통해 ‘한(恨)의 소리’를 완성시키려는 유봉(김명곤 분)의 집념과 숙명처럼 이를 받아들인 송화의 비극적 삶은 지금 봐도 깊은 감동을 준다. 국악계에 유봉과 송화처럼 대를 이어 ‘소리’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지만, 왕기철(51)·왕윤정(27) 씨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소리꾼 부녀’라 할 수 있다. 아버지 왕기철 명창이 현역 최고의 소리꾼이라면, 딸 왕윤정 씨는 신세대 소리꾼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왕 명창은 2001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장원(대통령상)을 수상한 데 이어,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 경연을 펼친 ‘나는 가수다’처럼 전주MBC가 국악계 최고 소리꾼(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역대 장원) 10명을 모아 소리 경연을 펼친 2012년 제1회 ‘광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말 그대로 현역 최고 명창임을 인정받은 셈이다.

    왕윤정 씨 역시 지난해 말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한 젊은 국악 명창 발굴 서바이벌 프로그램 ‘소리의 신’에서 우승했다. 2007년 국립창극단 차세대명창 선정, 2011년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악방송이 공동 주최한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젊은 소리꾼으로 손꼽힌다.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

    벚꽃 잎이 봄 햇살에 스러지던 4월 초, 남산 국립극장 앞에서 왕기철 명창 부녀를 만났다. 두 사람은 4월 1일부터 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창극 ‘장화홍련’에 함께 출연 중이었다. 왕 명창은 도창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 창극 ‘장화홍련’은 어떤 작품인가요?

    “국립창극단(이하 창극단) 사상 최초로 시도된 스릴러 창극입니다. 고전 ‘장화홍련’을 모티프로 해서 현대인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그린 작품으로, 고전을 재연하던 기존 창극과는 완연히 다른 파격적인 실험극이라 할 수 있어요. 2012년 초연 당시 논란도 많았지만 관객 반응이 무척 뜨거웠고, 이번에도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 도창을 맡았는데, 도창이 뭔가요?

    “원래는 창이나 아니리로 극과 극을 이어주거나 흥을 돋우는 역할입니다. 때론 관객이 극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자 노릇을 하기도 하고요. 이 작품에선 기존의 도창 역할에서 더 나아가 극에 적극 개입합니다. 소리로 음산한 기운을 깔아주기도 하고, 장화 홍련을 살해하는 장수의 내면을 표현하기도 하고, 살인을 부추기기도 하죠.”

    윤정 씨에게 배역을 묻자 “이웃집 주부 역이다. 실제 옆집에서 살인이 일어나도 모른 척하고 외면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으로도 나온다. 아직은 연수단원이라서 배역이 작다”며 수줍게 웃었다.

    왕 명창이 한마디 거든다.

    “제가 강의 때문에 리허설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 대신 도창 노릇을 했어요. 후배들이 제게 ‘윤정이가 있으니 형님은 안 오셔도 된다’고 농담할 정도로 잘 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별명도 ‘왕기철 미니어처’로 불리더군요.”

    윤정 씨에게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는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어릴 때는 아버지가 너무 큰 존재였는데, 함께 무대에 선 지금은 거꾸로 아버지가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든다. 내가 처음 무대에 오를 때 아버지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신세대다운 당찬 대답이었다.

    ‘비운의 소리꾼’ 왕기창

    왕 명창의 집안은 그의 딸뿐 아니라 형과 동생도 소리꾼인 그야말로 판소리 명문이다. 아홉 살 위인 형(왕기창)이 처음 소리를 시작했다. 박초월 선생의 제자로, 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안타깝죠. 일찍 작고한 이유가 있어요. 창극단 있을 때 조상현 선생이 당시 극장장과 갈등하면서 조 선생 편에 섰던 단원들이 집단 탈퇴를 했어요. 그때 형님도 의리를 지키려 행동을 같이했는데, 막상 나오니 먹고살 길이 막막해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힘들게 살았어요. 다시 창극단에 돌아온긴 했지만 그때 좌절감을 술에 의지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거죠.”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판소리 명창 왕기창·기철·기석 형제(왼쪽부터).

    왕 명창은 형의 추천으로 열여섯 살에 가야금병창의 명인인 향사 박귀희의 제자가 됐다. 소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그를 향사는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소리만 듣고 “목소리가 좋다”며 제자로 받아들였다.

    “가야금을 주시더군요. 거기엔 제 이름과 향사란 글자가 적혀 있었어요. 지금도 그 가야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죠. 처음엔 가야금과 소리를 같이 하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어 방황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런 절 잘 다독이고 기다려주면서 이끌어주셨죠.”

    서울국악예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판소리 전공으로 입학한 학생은 그가 처음이었다. 판소리 학사 1호인 셈이다.

    ▼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창극단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창극단 입단이 오랜 꿈이었죠. 형이 있었던 곳이고, 동생(왕기석)이 있었으니까요.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연수단원으로 입단했어요. 동생도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을 텐데 저 때문에 포기했어요. 집안 형편상 둘 다 대학을 보낼 수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항상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동생 왕기석 씨는 창극단 연수단원 시절,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인 남해성 명창을 만나 제자가 됐다.

    “아무튼 졸업하면서 창극단에 들어가려는데, 제가 교직을 이수했다는 이유로 모교에서 오라고 하는 거예요. 향사 선생이 전 재산을 털어 만드신 학교였으니, 선생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가야 했죠. 그래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창극단 공연이 있으면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보기도 하고, 혼자 가서 보기도 했어요.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었던 거죠.”

    인연과 악연

    ▼ 교사 시절 기억 남는 제자가 있다면.

    “영화 ‘서편제’의 오정해는 예쁜 데다 소리까지 잘했어요. 김소희 선생의 마지막 제자여서 특히 관심을 갖고 가르쳤죠. 영화 ‘휘모리’ 주인공을 맡아 연기한 김정민도 재능 있는 제자였어요. 둘 다 소리꾼으로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는데 영화판으로 가면서 기대했던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판소리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공로죠.”

    그는 조상현 명창의 제자이기도 하다.

    “대학 1학년 때 남원 판소리 명창대회에 참가했는데, 선생이 심사위원이셨어요. 제 소리를 듣더니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그러곤 향사 선생을 찾아가 ‘내가 키워볼 테니 내게 달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때 향사 선생이 제게 ‘왕대밭에 왕대가 자라는 법’이라며 보내주셨어요.”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서편제)의 예능보유자였던 조상현 명창의 첫 번째 이수자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후 깊은 갈등의 골이 생긴다.

    “1990년대 후반, 선생이 전남대 국악과 겸임교수로 계시면서 전공자들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제게 일반 학생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교양강좌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어요.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선생이 그걸 크게 오해하셨어요. 오해를 풀려고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엄청 화를 내면서 손찌검까지 하시더군요. 얼마나 맞았는지 한쪽 고막이 터지고, 다른 쪽 귀에선 피가 날 정도였죠.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동안은 소리를 할 수도 없었어요. 인공 고막이 자리를 잡기 전까진 작은 자극도 주면 안 되었으니까요.”

    그 무렵 형도 간경화로 작고했다. 깊은 상심에 빠진 그는 소리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 1999년 뒤늦게 창극단에 입단했는데.

    “1998년 국립창극단에서 처음으로 완판 창극 춘향전을 올렸는데, 그때 오디션을 통해 객원단원으로 출연했어요. 은희진 명창, 동생, 그리고 제가 이도령 역을 했죠. 그때 무대에 서면서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는 깊은 열망을 느꼈어요. 그런데 뒤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창극단 단장이던 안숙선 선생도, 그때까지 저를 붙잡아두던 학교에서도 제게 입단을 적극 권하는 거예요. 그래서 입단하게 된 거죠.”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국립창극단이 무대에 올린 창극 ‘장화홍련’에 함께 출연한 왕기철·윤정 부녀.

    1999년 창극 ‘심청전’에서는 그가 심봉사를 맡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이던 윤정 씨가 공개 오디션에 합격해 어린 심청을 맡았다. 부녀가 부녀지간 역으로 함께 무대에 선 것이다.

    “동생과는 주로 주인공에 더블캐스팅 됐어요. 재미있었던 게 ‘흥보가’를 할 때는 동생이 놀부, 내가 흥부를 하게 된 거예요. 평생 처음 동생에게 신 나게 얻어맞았죠.(웃음)”

    서편제 ‘사철가’ 실제 목소리

    ▼ 동생에게 라이벌 의식은 없었나요.

    “아주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선의의 경쟁을 했죠. 동생은 창극단 경험이 풍부해 연기적인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더구나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동생 연기를 보면서 공부했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곤 했고요.”

    ▼ 왕 명창과 동생의 차이점이 있다면.

    “동생은 목소리가 중저음이 좋고, 남성적이에요. 반면, 저는 중음과 고음의 음색이 동생보다 더 맑다고 할까.”

    왕 명창은 2001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한다. 이때도 조상현 명창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의 악연 때문인지 왕기철 씨에게 장원을 주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이번에도 왕기철에게 장원을 안 주면 대회 권위가 무너진다”며 설득한 끝에 수상할 수 있었다는 게 당시 심사위원의 이야기다.

    동생 기석 씨는 4년 후인 2005년 역시 장원을 차지하며 국악 사상 최초로 형제 명창이 됐다. 또한 왕 명창이 2012년 열린 제1회 ‘광대전’에서 우승한 데 이어 이듬해 열린 2회 대회에서는 동생 기석 씨가 우승하면서 형제가 2회 연속 우승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광대전’은 전주대사습놀이에서 2000년 이후 대통령상을 수상한 명창들 가운데 최고를 겨뤄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대회였다. 청중평가단도 일반인이 아니라 판소리를 꽤나 알고 들을 줄 안다는 ‘귀 명창’ 100명으로 구성됐다. 명창의 자존심을 최대한 자극한 대회인 셈이다.

    왕 명창과 윤정 씨는 동아일보와 인연이 있다. 왕 명창은 1985년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성악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금상 수상자가 없었으니 사실상 1등이었다. 윤정 씨도 2007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금상을 수상했다.

    ▼ 자식을 가르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던데, 따님은 직접 가르치셨나요.

    “다른 선생에게 보내서 배우게 해야 하는데, 경제적 여유가 너무 없었어요. 레슨비 아끼려고 제가 직접 가르친 거죠. 윤정이가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면 ‘아직 때가 안 됐다’며 안 보내줬어요.(웃음) 그런데 다른 제자는 돈 받고 가르치는 거라 더 열심히 하다보니 정작 제 딸을 가르칠 때는 피곤해서 대충 넘어간 적이 많아요. 미안한 마음이 있죠.”

    영화 ‘서편제’에선 아버지 유봉이 딸 송화가 득음을 하도록 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한다. 왕 명창에겐 그런 욕심이 없었을까. 더구나 그는 ‘서편제’에서 유봉이 부른 ‘사철가’의 실제 목소리 주인공이기도 하다.

    “소리하는 딸을 둔 처지에서 공감이 많이 됐죠. 제 기대치가 너무 높아 윤정이가 따라오지 못하면 화를 낸 적은 많지만, 유봉처럼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마음 약한 아버지죠.”

    ‘소리’의 깊이와 매력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왕윤정 씨는 “이젠 아버지가 무대에 오르면 실수하지 않을까 내가 더 마음 졸인다”며 웃었다.

    화제를 윤정 씨에게 돌렸다.

    ▼ 어린 나이에 소리를 시작했으니, 중간에 하기 싫을 때도 있지 않았나요.

    “사춘기가 오면서 정말 하기 싫었어요. 창극 춘향전에서 춘향이로 오디션을 봤는데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이도령 역을 하라고 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요. 변성기가 오면서 목소리가 바뀌니까 더 하기 싫었죠. 그러던 어느 날, 창극단 창극을 보면서 ‘무대에 서고 싶다’ ‘다시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잡고 다시 열심히 하게 되었죠.”

    ▼ ‘소리가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면.

    “방학 때 산공부(산에서 소리를 하는 것)를 할 때였어요. 춘향전의 한 대목인 십장가를 배우는데 비가 억수로 내리더군요. 빗소리, 바람소리에 제 소리가 얹혀 어울리는 걸 느끼며 ‘이 맛이구나’ 싶더군요. 춘향이의 마음도 느껴지는 것 같고, 마음 깊이 어떤 울림이 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소리의 깊이를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 소리의 매력이 뭔가요.

    “글쎄요, 소리는 소리꾼의 팔자고 걸어가야 할 운명 같아요. 굳이 매력을 꼽자면 무대에서 제 감정을 관객도 같이 느꼈을 때, 관객과 교감이 제대로 이뤄질 때 제가 살아 있다는 희열을 느껴요.”

    왕 명창은 2005년 위암 수술을, 2009년 성대결절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소리를 놓지 않았다. 그런 그가 최근 창극단을 나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갔다.

    “소리꾼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창극단도 정단원은 정원이 정해져 있어 선배가 나가야 신입단원을 뽑을 수 있어요. 지난해 10년 만에 신입단원을 뽑았을 정도로 적체가 심해요. 그래서 저와 동생 기석이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그만뒀어요.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일할 수 있으니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죠.”

    윤정 씨도 아직 창극단 정단원이 아니다. 인턴 격인 연수단원이지만, 정단원이 되기 위해선 공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퓨전 국악? 기본부터 충실하라”

    ▼ 언제부터인가 국악에 퓨전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국악과 다른 장르의 접목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새로운 시도는 항상 중요합니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창작 판소리를 하는 것은 좋은데, 우선 전통을 제대로 알아야 그걸 바탕으로 제대로 된 창작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본이 충실하지 않으면 국악이 왜곡될 수밖에 없어요. 창작 판소리를 하는 후배들에게 그걸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다면.

    “소리꾼은 첫째도 둘째도 인간 됨됨이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 좋은 생각을 가져야 좋은 소리, 좋은 예술이 나옵니다. 욕심이 있거나 나쁜 생각을 하면 그게 소리와 몸짓에 다 나타나요. 관객은 그걸 다 눈치 채고요.”

    ▼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이 여전히 대중과는 멀다는 느낌입니다.

    “국악인도 노력해야 하지만 교육적인 노력, 사회적인 노력도 중요합니다.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게 전체 음악 시간의 10%도 안 돼요. 음악교사도 국악을 잘 모르니까요. 방송에서도 국악 프로그램을 거의 편성하지 않아요. 언론도 국악을 관심 있게 다루지 않고요. 채널A의 한 맛집 프로그램에서 국악인이 출연해 잠깐씩 민요를 들려주던데, 그런 식으로라도 국민이 국악을 접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 국민에게 국악이 좀 더 친숙해지고 사랑받지 않을까요.”

    왕 명창은 더욱 많은 사람이 국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매주 수요일 오후 국립극장에서 무료로 판소리 강습을 한다.

    마지막으로 윤정 씨에게 어떤 소리꾼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아직 배움의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관객과 소리로 소통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소리로 국민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이래서 국악계에선 ‘왕대밭에서 왕대가 난다’는 말을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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