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슈퍼 영웅도 이젠 정부 안 믿어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4-04-23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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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 영웅도 이젠 정부 안 믿어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의 한 장면.

    미국의 만화책 출판사인 마블 코믹스에서 출간한 만화를 각색해 만든 화제작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2014)’다. 이 영화는 이전의 슈퍼 영웅과 다른 모습의 영웅을 보여준다.

    할리우드는 슈퍼맨(Superman), 배트맨(Batman), 스파이더맨(Spider Man) 같은 영웅을 만들어왔다. 최근의 토르(Thor), 퍼스트 어벤저(The First Avenger) 같은 영화도 절대 선을 수호하는 영웅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영화는 영웅과 절대 악을 상징하는 슈퍼 악당의 대결이라는 문법을 따른다.

    그러나 ‘윈터 솔저’의 주인공인 캡틴 아메리카는 주변 인물 중 누가 진짜 악당이고 누가 정의의 수호신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에 처한다. 선악의 이분법적 대립이 사라진 자리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이 대체하는 셈이다. 이는 미국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마블 코믹스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는 1941년 3월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냈다. 약골이지만 사려 깊고 애국심 강한 훈련병인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미 정부의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참여해 신체적 능력이 증강된 새로운 병사로 태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전쟁이 사회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시기였다. 캡틴 아메리카가 발표되기 이전에는 또 다른 만화 출판사인 디텍티브 코믹스(DC Comics의 전신)가 1938년 ‘슈퍼맨’을 발간한다. 만화 속 주인공은 나치 독일과 일본에 맞서 미국을 지키는 영웅으로 등장한다. 이들 캐릭터가 인기를 끌게 됨에 따라 이 시기는 ‘미국 만화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과 일본이 패망하자 만화에서 다룰 절대 악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캡틴 아메리카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을 두 축으로 한 냉전시대가 개막됐다. 1953년 캡틴 아메리카는 다시 등장했다. 그렇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한다. 1964년 마블 코믹스가 자사의 슈퍼 영웅을 모은 어벤저스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저스 그룹의 리더로 다시 등장한다. 이 시기는 제3세계의 비동맹운동이 알제리 독립이나 베트남전으로 표출되던 시기였다. 미국의 슈퍼 영웅을 다룬 만화책은 개인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양상에서 슈퍼 영웅들이 팀을 이루는 양상으로 변모한다. ‘어벤저스’와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와 ‘엑스멘(The X-Men)’ 시리즈,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Justice League of Amer- ica)’ 등이 그 예다. 이때부터 이야기 속에는 슈퍼 영웅들 사이의 갈등, 개성의 대비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슈퍼 영웅들이 집단적으로 적과 상대하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미국 만화의 은빛시대’로 부른다.

    그런데 주인공인 캡틴 아메리카는 영화 ‘퍼스트 어벤저’와 ‘윈터 솔저’에서 다루어진 것처럼 오랫동안 북극의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인물이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고 변화된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이는 슈퍼맨 같은 인물이 지닌 시골 청년의 순진함과 비슷하게 평범한 보통 미국인의 순박함을 대표한다.

    자경단 vs 정부요원

    슈퍼 영웅이 팀으로 조직되고 이 팀이 후원자를 맞이하게 되는데, 대체로 이 후원자들은 정부, 정부 유관단체, 거대 기업이다. ‘어벤저스’와 ‘윈터 솔저’에서는 쉴드라는 정부 내 거대 조직이 슈퍼 영웅을 모아 팀으로 조직한다. 슈퍼 영웅은 과거 단독으로 활동할 때엔 스스로 판단해 공동체를 악으로부터 지키는 일종의 자경단이었으나 팀이 되면서부터는 정부요원이 된다. 만화는 슈퍼 영웅이 자경단과 정부요원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를 중요하게 다뤘다.

    그런데 영화 ‘윈터 솔저’ 속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 지원병이었고 국가의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슈퍼 영웅이기에 이런 정체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속한 조직, 나아가 국가를 과연 믿을 수 있는지의 문제에 봉착한다.

    캡틴 아메리카인 스티브 로저스는 인도양에서 벌어진 쉴드 소속 정보처리함 납치 사건에서 납치범들을 체포한다. 일행인 블랙 위도-나타샤 로마노바(스칼렛 요한슨)는 작전을 수행하지 않고 함선에서 주요 정보를 USB에 복사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를 보고 의구심을 품는다. 이후 쉴드의 어벤저스 프로젝트 담당인 닉 퓨리(새뮤얼 엘 잭슨)가 테러범들에 의해 공격당한다. 닉 퓨리는 로저스의 집에 들어와 USB를 맡기고 이내 저격범에 의해 살해당한다.

    쉴드의 수장인 알렉산더 피어스(로버트 레드퍼드)의 추궁에도 로저스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닉 퓨리의 말에 따라 증언을 거부한다. 이후 로저스와 그를 돕는 나탸사 로마노바는 쉴드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나타샤는 닉 퓨리를 죽인 저격수가 첩보계의 전설인 윈터 솔저일 것이라고 로저스에게 말한다. 로저스와 나타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살아남은 나치 비밀 조직인 히드라가 쉴드에 침투해 쉴드를 장악한 점을 알게 된다. 히드라는 전 세계 개인 정보를 수집해 히드라에 도전할 만한 인물들을 찾아낸 뒤 신무기를 이용해 모두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전편 ‘퍼스트 어벤저’에서도 히드라가 등장했다. 이땐 정체가 분명했기에 스티브 로저스는 적군과 아군을 명료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윈터 솔저’에선 로저스가 얼음 속에 갇힌 지 70년이 지났다. 히드라는 쉴드 내에도 침투했기에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 정부가 채용한 히드라 출신 과학자들이 오히려 미국 정부 조직을 역이용해서 전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 이들은 히드라에 순종하는 인간만 살려두려고 한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인간을 배제하려는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바탕을 둔 극단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신체적으로 허약한 브루클린 빈민가 출신인 스티브 로저스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에 이에 맞서는 것이다.

    ‘알려져선 안 될 일’

    그러나 쉴드는 본질적으로 첩보 조직이기에 비밀과 음모가 많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스티브 로저스는 그의 새 파트너인 샘 윌슨(앤터니 마키)에게 “나는 군인이지 스파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로저스는 충성스러운 군인이지만 자기가 충성해야 할 정부를 믿지 못한다는 게 이 영화의 설정이다.

    슈퍼 영웅도 이젠 정부 안 믿어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연구원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이는 기존의 슈퍼 영웅 영화와는 다른 맥락이다. 오히려 정치스릴러물, 누아르에 가깝다. 정부로부터 배신당해 쫓기는 정보원을 다룬 영화인 ‘본 (Bourne) 시리즈’와 유사하다. 캡틴 아메리카는 악의 화신인 히드라를 상대한다는 점, 주인공이 평범한 미국인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전의 슈퍼 영웅을 다룬 할리우드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지금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꽤 민주적인 정부조차 결코 알려져선 안 될 비밀스러운 일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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