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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 눈맞춤에 병마는 씻은 듯 사라지고…

티베트와 결혼한 한국 여인의 다람살라 5년

  • 가연숙 │‘달라이라마 마음의 고향을 찾아’ 저자, 인터넷 ‘가교(www.gayo.org)’ 운영

달라이라마 눈맞춤에 병마는 씻은 듯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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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 홀리다

병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도끼로 머리를 찍는 듯 고통이 왔다. 아귀의 업보를 치르는 듯 음식을 삼킬 때는 목 줄기가 타들어가듯 아팠다. 명상과 호흡으로 다스리려 해봤지만 말초적 고통을 제어하기에도 역부족일 만큼 스스로의 근기가 미약했다. 약을 먹기 위해 수프를 먹는 것으로 속을 달래며 나름대로 치유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새해(로사) 외부 일정을 마치고 다람살라로 복귀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느 여행자들과 어울려 달라이라마의 입성 환영 행렬에 동참했다. 호위 차량들 속에서 달라이라마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서 뵌 온화한 미소 그대로였다. 시대의 성인과의 눈맞춤은 고작해야 3초가량 됐을까. 흥분한 여행자들 속에서 나도 덩달아 환희심이 났다. 그 순간, 마치 지구의 자전이 멈춘 듯 고요의 적정에 들었고 나를 포위했던 고통은 오간 데 없었다.

귀국 후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를 받은 지 사흘 만에 기적처럼 회생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내가 왜 다람살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반년 후. 다람살라는 나의 집이 됐다. 티베트어를 공부하고 달라이라마의 정기 법문을 들으며 좋은 스승을 만나면 출가하고 싶다는 미련도 살짝 일으켜 보았다. 2009년 9월 한국인 불자들의 청으로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열릴 때 적을 두고 있던 불교언론사에 법문을 중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에서 8년 만에 달라이라마 특사와 중국 정부 간의 외교 회담이 열렸으나 그 내용이 한국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으니 심층 취재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를 계기로 다람살라에 거주하는 유일한 한국인 기자의 삶이 시작됐다.



베이징 특사 회담을 마치고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로 복귀한 달라이라마 특사단의 기자회견이 열린 2010년 2월 2일. 나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참석했다. 그 현장에서 나는 티베트의 현실과 달라이라마, 그리고 티베트 망명정부의 삼합을 체감했고 이후로 홀린 듯이 티베트 불교문화와 망명정부의 현실을 한국에 알리는 길에 몰입하게 됐다.

‘불교의 지혜와 방편’

막상 객원기자 이름으로 불교언론사에 기사를 보내도 내용이 편집되거나 때로는 실리지 않았다. 기를 쓰고 취재한 원고료로 4만 원이 입금된 적도 있다. 10년이 넘도록 다람살라에서 한국인을 위한 법회를 주관해오신 진옥스님(경주 동국대 티베트 대장경 역경원 원장)이 카메라를 사는 데 보태라며 미화를 얼마 주신 것을 가지고 전문가용 카메라 장비를 정식으로 구입했다.

취재를 위한 경비는 대부분 사비로 충당해야 했고 통장 잔고는 항상 부족했다. 한국에 기사를 송고하면 원고료를 받았지만 활동 경비로 쓰기엔 역부족이었다. 취재 기사를 보내면 대부분 실어 주었지만 먼저 취재를 요청하지는 않는 구조였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매달 월간 ‘붓다’에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기고한 것이 만 4년이 돼간다. 티베트불교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정우스님(서울 구룡사 회주,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의 은덕이다. 이 모두가 인내와 소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주변의 애정 어린 관심이 없었다면 진즉에 그만둬야 했을 일이다. 취재 일정은 철저히 혼자 계획해야 했고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버텨내는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티베트 망명정부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패기 넘치는 남자다. 망명 3세대로 인도에서 태어난 무국적자다. 우리는 다람살라 인근의 산을 오르면서 티베트의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기를 즐겼다. 자연스럽게 티베트 망명정부 젊은이들의 현주소도 접하게 됐다.

“이번 생은 티베트를 위해 살아보자”고 결심한 우리는 양가의 허락을 얻어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리고 아빠를 쏙 빼닮은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았다. 달라이라마께서는 티베트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성장할 우리의 딸 인서에게 직접 ‘뗀진빼마’(불교의 지혜와 방편을 의미하는 티베트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셨다.

임신 7개월 즈음이던 2011년 9월, 멕시코 법문 취재를 가게 됐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팬인 나로서는 달라이라마의 법문도 듣고 칼로의 생가 코야칸에서 그녀의 그림도 직접 보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법회 일정 중 할리우드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운영하는 재단의 주관으로 티베트 사진전이 열렸고 아침 일찍 전시회에 참석해야 했다. 무리해서였을까. 100여 명의 귀빈과 외신 언론이 함께한 자리, 달라이라마 입장 5분 전에 극심한현기증을 느낀 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기절한 시간은 7초가량. 배 속의 아이에게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 아이는 안전했다. 그날 눈밑으로 깊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초췌한 몰골로 달라이라마의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그 순간을 살아라.’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나만의 결심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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